누나, 아까 내가 몰래 누나네 집에 상 차려놓고 왔는데-
"같이 밥 먹을래요?"
L♡VE Recipe
idea. 뿌존뿌존
written. 벚꽃만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애환을 그 누가 알아주리. 고들빼기 소년과 처음 만난 그날도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상사에게 호되게 혼난 후 야근에 찌든 채 집에 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발 편의점에 마지막 삼각김밥이 남아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종이 딸랑, 하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울리고, 단골손님인 내 얼굴을 단박에 알아본 알바생은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쩌죠, 방금 나가신 손님께서 사가신게 마지막 남은 삼각김밥이었는데." 알바생의 목소리에는 나에 대한 미안함과 연민이 동시에 묻어나고 있었다. 그런 알바생의 대답에 한껏 쿨한 얼굴표정을 지어보였다. 거참, 내가 이래뵈도 번듯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몸이라, 이말씀. "그럼 다른거 사먹으면 되죠, 뭐." 내 대답에 알바생이 얼굴에서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쓸데없이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계산대 위에 샌드위치를 올려다놓았다. "얼마에요?" 아직까지도 당당함이 목소리에 진득하게 베어있었다. "육천원 입니다-" 알바생의 활기찬 목소리에 방금전까지만 해도 잔뜩 세우고 있던 자존심을 단박에 구겨버렸다.
"저기... 혹시 오늘 폐기할 삼각김밥도 다 나갔어요?"
다시는 그 편의점에 들르지 않을 각오를 하고 물은 내 질문에 알바생이 쥐어준 삼각김밥에는 그 동정어린 손길이 여전히 여실하게 담겨있었다. 냉장고에서 꺼낸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퍽퍽하기만 한 쌀밥을 씹으며 우물거렸다. 더럽게 맛있네. 흰 쌀밥만이 씹히던 삼각김밥에서 찬 참치마요네즈가 느껴질 때 즈음, 뒤에서 누군가 쯧쯔, 하며 혀를 찼다. 귓가에 확연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자동반사적으로 손등을 입가에 가져다대고 벅벅 문질렀다. 내가 다 흘리면서 먹기라도 했나. 의아한 마음에 가방에서 꺼내어 본 거울에 비친 얼굴은 퍽 말끔한 모양새였다. 그럼 대체 아까부터 누가 자꾸만 뒤에서 혀를 끌끌대는거야. 짜증나는 와중에도 은근히 겁이 나 거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눈을 흘끗대보였다. 내 바로 뒷편에 검은색의 생머리가 팔랑, 하고 움직이던 그 찰나, 뒤에서 사뿐히 발걸음을 뗀 소리의 주인이 내 거울을 확 낚아채고선 내 얼굴 가까이에 제 얼굴을 들이댔다.
"헐, 누나 지금 뭐 드시고 계시는거에요?"
뜬금없는 질문의 주인은 교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남학생이었다. 생긴걸 보아하니 끽해야 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그 남학생은 연신 내 손에 든 삼각김밥을 쳐다보며 설마, 삼각김바아압~? 하고 끝말을 늘어트렸다. 뭐지, 이건. 한입만 달라는건가. 요즘 학생들은 밥도 잘 못챙겨먹고 다니나보네... 아무리 배고프다 해도 거의 반정도 넘게 먹은 삼각김밥을... 나보다 더 딱한 처지라 생각되어 몇분 전의 그 편의점 알바생이 나에게 지어보인 표정을 똑같이 지으며 남학생을 향해 삼각김밥을 내밀었다.
아, 나를 보던 당신의 마음이 이랬나요, 편의점 알바생님.
제게 내밀어진 내 손에 들린 삼각김밥을 몇초간 멍하니 쳐다보던 남학생이 미련없이 탁, 하며 내 손을 쳐냈다. 그와 함께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내 참치마요... "안돼!" 괴성을 지르며 삼각김밥 쪽으로 다이빙을 했지만 이미 그는 손 써볼 수도 없이 처참하게 버려진 후였다. 아무리 공짜로 얻은거라지만 배고파 죽겠단 말이야! 내 표효를 들은체 만체 싱글벙글 웃어보이던 남학생은 갑자기 제 가방을 벗어던지고선 바닥에 쭈그려 지퍼를 열었다. 이게 지금 뭐하는.... 똑같은 말을 연신 내뱉으며 물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가방에서 나온 건...
"삼각김밥이 뭐에요, 건강 나빠지게. 마침 내가 오늘 고들빼기를 기가 막히게 무쳤는데 말이죠,"
흰 스티로폼 용기에 담겨져 랩으로 정갈하게 씌워진 반찬들이었다.
"원래 하나에 삼천원인데, 내가 누나 삼각김밥 못먹게 만든 것도 있고 하니까 오늘은 공짜로 드릴께." 어울리지도 않는 시장 아주머니 어투를 구사하며 영차, 하고 일어나선 바지를 툴툴 털고 다시 제 갈길을 태연하게 걷던 그 애가 생각나 피식 웃다가 녀석의 말을 인용하자면 '기가 막히게' 무친 고들빼기 무침을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 안에서 오도독, 씹힐때마다 봄향기가 가득 들어차는게, 학생 치고는 꽤나 잘 무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장사도 하고, 기특하네. 홀로 생각을 하며 다음에 그 애를 또 우연히 만나면 그 때에는 돈을 주고 반찬 몇가지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의 끝을 완벽히 피곤하게 만들어주는 야근 후에 허기를 달래줄 삼각김밥조차 없다는 사실은 꽤나 절망적이다. 아 배고파 죽겠네.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괜히 죄없는 바닥을 발로 퍽퍽 치며 현관문 앞에서 열쇠를 찾으려 가방을 뒤적거렸다. "아직도 저녁 안먹었어요?" 문득 뒤에서 들리는 질문에 가방에 코를 박은 채 대답했다. "못먹었으니 배고프지 그럼-"
원래부터 내 뒤에 누군가 있었던가?
악, 소리와 함께 뒤로 펄쩍 뛰는 탓에 가방이 퍽, 소리와 함께 복도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또 놀라시네, 이거 참."
대수롭지 않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내 가방을 툭 툭 털어 주워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제의 고들빼기 소년이었다.
"저 바로 옆집에 사는데, 누나는 모르고 있었나봐요." 그럼 자기는 원래부터 알고있었단건가? 지저분하게 안의 내용물을 다 내비치며 열린 가방을 다시 단정하게 닫아주며 어제 제가 챙겨준 고들빼기는 잘 먹었느냐 물어오는 녀석에게 잘 먹었다며 두팔을 내밀어 엄지를 치켜세웠다. 민망할정도로 가만히 내 두 손을 응시하고 있던 녀석이 비로소 씨익 웃더니 내게 물었다. "근데 오늘은 또 왜 아무것도 안먹었어요?" 그 애의 말에 괜히 민망해져 옷 밑단을 손톱으로 슬슬 건드리며 대답했다. "그냥 뭐, 피곤하고 요리 솜씨도 그닥 없고 해서..." 내 말에 소년이 일순간 눈을 번쩍!하고 뜨더니 내 가까이에 얼굴을 바싹 갖다대며 물었다.
"그럼, 오늘 제가 밥 해줘도 돼요?"
네? 올망졸망한 눈망울을 한껏 뽐내며 묻는 녀석의 손은 이미 우리 집 현관 문고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래, 뭐..." 나야 좋지. 얼떨결에 나온 내 대답에 더 크게 웃으며 산책나가기만을 기다리는 강아지마냥 잠자코 있는 고들빼기 소년이다.
"어우, 무슨 다 큰 여자 냉장고에 이렇게 먹을게 없어요?" 있는거라곤 달걀 세개 뿐이네. 인테리어용으로 걸어놓은 하늘하늘한 앞치마를 제멋대로 허리에 두른 채 투덜대는 녀석의 모습을 가만히 턱을 괴며 바라봤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문득 드는 의구심에 이마를 손으로 감싸며 얼버무렸다. "요즘 식재료가 얼마나 비싼데..." 내 대답에 소년은 퍽 단호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리 식재료가 비싸도 그렇지, 밥은 꼭꼭 제대로 챙겨먹고 다녀요!" 왠지 어려진 기분이 드는 탓에 자꾸만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갔다. 요리할 재료가 없다며 투덜대던 소년은 어느새 반찬을 뚝딱 몇그릇이나 만들어냈다. 그리곤 부엌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밥통을 열어보고선 한숨을 푸욱. "오늘은 그냥 반찬만 먹어요." 짜게 만들진 않았으니까 괜찮을거에요. 그 말과 함께 소년은 내 맞은편에 앉아 내가 젓가락을 들고 깨작거릴 때까지 가만히 턱을 괸 채 내 먹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자꾸만 저렇게 쳐다보면 어쩌자는거야, 얼굴 뚫어지겠네. 괜히 젓가락만 쪽쪽 빨다가 이내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음, 저기, 이름이 뭐야?" 내 물음에 소년은 제 교복조끼를 내쪽으로 당기며 이름표에 손가락질을 했다.
"찬이요, 이찬."
아, 찬이- 입안에서 몇번 소년의 이름을 굴리다 웃음을 터트렸다. 이찬... 반찬... 내 우스갯소리에 찬이 풉, 하고 덩달아 소리내어 웃었다. 한번 말문이 트이자 그 다음부터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다. 내 빈그릇을 확인한 찬은 이내 접시를 차곡차곡 쌓아서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선 가방을 들쳐멨다. "오늘 맛있게 먹었으면 설거지는 꼭 하고 자요!" 찬의 말에 웃으며 알았다 대답하고선 문 앞까지 녀석을 배웅했다. 오늘 고마웠어, 잘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내게 찬이 뒤돌아 웃어보였다.
"내일도 배고파야 해요, 내가 또 밥해줄께!"
꽃봉오리 |
앞으로 1~2편 정도 더 나올 예정이어요! 오래 기다려주신 뿌존뿌존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