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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아저씨







띵동-




모든 이가 편하게 자며 쉬어야 할 일요일이지만 윤기네 집 초인종은 그러지 못한다. 단이 아침 일찍부터 윤기네 집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단의 손에는 윤기가 좋아하는 반찬이 한가득이다. 팔을 번쩍들어 묵직한 쇼핑백을 눈에 담은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단은 초인종을 누른 다음 거울을 들고 저의 모양새를 확인했다. 머리도 얌전하고 화장도 깔끔하고 전에 윤기가 예쁘다던 흰 블라우스까지 챙겨입었다. 거울에 비친 완벽한 모습을 보고 스스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거울로 점검을 마친 단은 윤기가 문을 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신발 앞코를 바닥에 콩콩 부딫이기도 했다. 이러고 바닥을 바라보고 있으면 윤기는 부시시한 머리를 하고 제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단의 예상은 빗나간 적이 없다.




"뭐야."


"아침이요- 아저씨 또 밥 안 드실 거잖아요."


"무슨 상관인데."


"에이 혼자 사는 아저씨 밥 챙겨주는 건 난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하다."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윤기의 얼굴이 보였다. 윤기는 햇빛에 눈을 찌푸리고 제 까만 뒷머리를 슬슬 정리하고 있었다. 그의 성가시단 얼굴 아래로는 흰 반팔티와 무릎이 조금 늘어난 트레이닝 복 바지가 있었다.


단은 윤기의 무뚝뚝함 말을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저의 심장쪽에 손을 가져다대며 상처받은 척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윤기의 집 안으로 발을 들였다.


윤기는 자기보다 앞서 들어가는 단의 뒤를 따라가며 '진짜 아프냐?' 하고 말했다. 단은 사뭇 진지한 그의 모습에 그런 거 아니라며 손을 저어가며 웃었다. 단이 웃는 걸 보던 윤기는 괘씸하다는 얼굴로 단의 이마를 세게 탁- 치고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단은 챙겨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소파로 향했다. 윤기는 정자세로 앉아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무슨 보도인가 싶어 봤더니 sns에서 유명해진 갈색 푸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애교를 부리는 반려동물을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보는 윤기가 단에게는 코미디 그 자체였다.




"아저씨 오늘 뭐해."


"알아서 뭐하게."


"데이트."


"바빠."


"아저씨 백수잖아. 다 알거든요."


"너랑 데이트할 시간은 없어."




단은 윤기의 옆에 앉아 손에 턱을 괴고 반짝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그는 그런 단을 흘끔 쳐다보고는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서을 돌렸다. 돌아오는 대답과 눈빛이 시릴만큼 냉랭했지만 한 두번이 아니었기에 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왜애애애. 맨날 집에만 있잖아요. 나랑 영화도 보고 밥도 먹어요."


"그럴 시간 없다ㄱ..."


"시간 많잖아."


"...손."


"싫어요."





윤기가 단을 흘깃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허벅지 반쯤에 올려진 단의 손을 한 번 흘겼다. 가늘고 흰 손가락이 느릿하게 피아노 치듯이 허벅지를 두드리는데 그만 말문이 막혔다. 단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윤기는 그런 단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데이트 하자 아저씨. 응?"


"...뭐 할 건데."


"대박... 아저씨가 원하는 건 뭐든지. 통장 줄까요?"





윤기가 호들갑을 떨며 통장을 거론하는 단의 이마를 손꿈치로 슬쩍 밀었다. 천천히 뻗어지는 팔처럼 그녀의 이마도 서서히 밀렸다. 하지만 단은 이마가 밀린 채로도 마냥 좋다며 웃음만 날린다. 그리곤 윤기의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린다.





"이래서 아저씨가 좋아요-"


"별 볼 일 없는 놈 뭐가 좋다고..."


"누가 아저씨 별 볼 일 없대? 어이 없네."






단은 진심으로 화가 난 듯이 목소리를 크게 키웠다. 윤기는 그런 단을 보고 이를 보이며 웃었다. '웃기는 애네.' 하고 흘려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은 제딴에 나름 진지하게 말한 것인데 그런 저를 보고 웃는 윤기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웃는 모습이 보기 좋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윤기는 웃음을 멈추고 단을 쳐다보았다. 그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단은 고개를 기울이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그 때 윤기가 단의 뒤로 팔을 뻗으며 다가왔다. 그가 말 없이 다가오자 놀라 단이 '아저씨! 저는 아직!' 하며 눈을 꼭 감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아무 느낌도 느껴지지 않자 단이 슬며시 눈을 떴다.


윤기는 남색 니트를 손에 꽉 쥐고서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단이 머리를 굴리다 저가 착각했다는 것을 알게됐다. 윤기는 그저 니트를 가져오려고 팔을 뻗었고 단은 그걸 모르고 눈을 꼭 감은채 조금은 기대를 했던 것이다.


단은 얼굴이 빨게져서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윤기는 원 없이 웃은 것인지 표정을 가다듬고 단을 쳐다봤다. 심술맞은 그가 눈을 마주치려 해도 단이 먼저 눈을 피해버렸다.




"젊은 애들은 혈기왕성하네."


"아.. 아저씨 제가 그럴려고 그런게..."


"나 옷 갈아 입고 싶은데."


"예?"


"아니면 네가 갈아 입혀주던가."


"지금 당장 나갈게요."





윤기가 장난으로 건낸 말에 단은 아예 귀 끝까지 빨게져버렸다. 가져온 가방을 급하게 챙기고 방을 나와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방 문 앞에서 발을 쿵 쿵 굴렀다. 안에서는 윤기가 소리내 웃고 있었다.





백수 아저씨





"아저씨, 뭐 보고 싶어요?"


"야 네가 밖에서 나를 아저씨라고 부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냐?"


"그럼 윤기씨?"


".. 그냥 아저씨라고 해."


"알았어요. 윤기씨"


"콩알 만한게."





윤기는 단의 머리를 약하게 쥐어 박았다. 단은 맞은 부위를 살살 쓸며 윤기를 약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눈빛도 윤기가 불만있냐는 듯이 한 번 쳐다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졌다.





"그래서 뭐 볼 건데요."


"저거나 보던가."


"어 저거 태형이 나오는데. 저거 봐야겠다."


"태형이는 누구야, 친구야?"


"태형이 몰라요? 제가 화랑 나온다고 전부터 보여줬잖아요!"


"걔가 쟤였냐."


"어쨌든, 나는 태형이 나온 거 볼래요. 괜찮죠?"


"그래라."





단은 영화의 예고편에서 태형이 얼마나 멋있는지에 관해 읊으며 표 사는 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윤기가 그 뒤에 섰는데 단은 뒤를 돌더니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윤기를 쳐다보았다. 그는 앞만 보다가 제 옆에서 뾰루퉁하게 있는 단을 왜 그러냐는 뜻을 담아 쳐다보았다.





"아저씨."


"왜."


"저랑 일행이죠."


"어."


"저랑 영화보시는 거죠."


"어."


"아저씨랑 영화 보는 게 저죠."


"왜 그러는..."


"그럼 제 옆에 서 계셔야죠."






단은 윤기의 소매를 잡고 약간 늘이며 말했다. 윤기는 그냥 무시할까도 했지만 입술까지 튀어나와서 서운함을 표하는 단을 지나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단의 옆자리에 가서 서고 만족하냐는 눈빛으로 단을 쳐다봤다. 단은 금방 풀어진 얼굴을 하고선 그의 팔에 매달렸다.






"혹시 두 분 커플이세요? 지금 커플분들은 20% 할인해드리는 이벤트를 하고 있거든요."


"아 저희는 아닙..."


"네! 저희 커플이예요! 이런 이벤트도 있었네. 그치 오빠?"


"..."


"그럼 표 두장 할인해서 결제 도와드릴게요."





윤기는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그리고 세면대에서 물을 틀어 손을 씻었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한 번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격상 매일 감기는 하지만 깔끔하지 못한 머리와 언제 샀던 건지 기억에도 없는 남색 니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치 오빠. 단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귓가에 울린다. 한참을 세면대를 짚고 서 있던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조금 세게 눈을 비비고 화장실을 나섰다.


단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자리 확인을 마치고 팝콘과 콜라를 사 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동화 뒷꿈치로 콩 콩 바닥에 발을 부딫이는데 누군가 어깨를 잡아왔다.




"왔..."




당연히 윤기라고 생각한 단은 머리가 노란 남자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학창시절부터 싫어했던 양아치같은 남자. 그녀보다 어려보이면 어려보였지 절대 어른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 남자였다. 단이 느낀 그의 첫인상은 그게 전부였다. 남자는 노란 머리 말고도 해골이 크게 그려져있는 가죽 점퍼와 징이 박힌 운동화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단은 썩 달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단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약간 굳혔지만 이내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저 아까부터 보고있었는데 제 취향이셔서요. 실례지만 번호 좀..."


"아까부터 보고 계셨으면 아실텐데요. 저 혼자 온 거 아니에요."


"그럼 누구... 아 그 아저씨라고 하던 사람이요? 에이 뭔 그런 사람을 만나요. 비실비실해가지고 남자구실도 못하게 생겼던데..."


"그쪽이 뭔데 제 남자친구를 아저씨라고 불러요? 당신처럼 골 빈 남자도 아니고 이상한 사람도 아니니까 괜히 시비걸지 마세요."




남자는 하 소리를 내며 제 가죽점퍼를 벗었다. 그 안에서는 큐빅으로 알 수 없는 영어가 적힌 검정색 티셔츠가 자리잡고 있었다. 또, 염색은 했지만 관리를 하지 않아 닿기만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단을 쳐다보았다. 단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남자를 응시했다. 학창시절부터 이런 류의 남자애들과 마찰이 있으면 말 한마디도 지는 법이 없었던 그녀는 겁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뭐 골이 비어? 말이면 단 줄 아냐? 얼굴 좀 이쁘장해서 말 걸어준 것도 모르고 적반하장질이야."


"제 얼굴이 예쁜데 왜 그쪽이 말을 거세요.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말도 시비도 그쪽이 먼저 걸었는데 왜 저한테 화를 내세요."


"허... 참... 야 그 아저씨가 네 남자친구라고?"


"네. 그러니까 이제 그만..."


"그 아저씨 뭐 돈 많겠다? 너같이 어린 애 꼬셔서 데리고 다닐 정도면?"


"...뭐?"


"얼마 받고 만나냐? 많이 받으니까 만나는 거지?"


"아니, 미친 새끼가..."





단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 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단의 입에서 나온 욕을 듣고 탄력이 받았는지 더 빠른 속도로 말했다.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모양새가 단에게는 혐오스럽게 보였다. 속으로 손에 들고 있던 팝콘을 얼굴에 던져버릴까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아재들이 새파랗게 어린 너같은 년을 만나는게 그것말고 더 있냐? 다 돈 몇 푼 쥐어주고 섹스 한 번 해보자고..."





남자의 고개가 말을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 버렸다. 단은 제 앞에 있는 등판을 보고 눈물이 날 뻔 했다. 작게 떨리는 손으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자 뒤를 돌아보며 '잠시만.'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제 볼을 부여잡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말한다.


남자 앞에 선 윤기는 남자보다 체구가 훨씬 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위압감이 있었다. 남자도 그걸 느꼈는지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곧 베짱 가득한 표정으로 윤기를 열심히 째려보았다. 그럼에도 윤기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매우 굳은 표정으로 남자를 응시했다.




"너 뭐하는 새끼냐?"


"하.. 아저씨가 저년 남자친구... 아!!!"





윤기는 기세 좋게 허리에 놓여져 있던 남자의 팔을 꺾어 등 뒤에 눌러 붙였다. 그의 눈은 여전히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팔을 붙들린 남자는 발을 세게 구르면서 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누굴더러 저년이라는 거야. 쟨 니까짓게 나불거릴 수 있는 애가 아니야."


"아 제발 팔.. 팔!"


"사과하고 꺼져."





윤기는 남자의 등 뒤로 넘겨 압박하던 팔을 그대로 유지하며 단에게로 고개를 돌리게했다. 단은 놀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단을 노려보기만 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윤기가 힘을 더 주자 바로 '죄...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내뱉었다.


계속 남자를 잡아두고 있던 윤기가 남자를 한 번 쳐다보고 단을 쳐다봤다. 이걸로 괜챦나는 눈빛이 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본 윤기는 남자를 바닥에 내팽겨쳤다. 그리고 무언가 더러운게 묻은 것처럼 손을 털었다. 남자는 제 점퍼를 챙겨 급히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한 번 넘어질 뻔한 모습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윤기는 웅성웅성 거리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단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남자가 가고 난 뒤에도 그의 얼굴이 풀릴 줄을 몰랐다. 단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다 괜히 눈물이 나는 것 같아 땅만 쳐다보며 걸었다.


둘이 사는 빌라의 모습이 보일 때쯤 윤기가 단의 손목을 놓았다. 화가 나있던 그가 무의식적으로 세게 잡은 건지 단의 가는 손목이 새빨겠다. 단은 안절부절한 눈빛으로 윤기를 보았다. 그는 제가 만들어 놓은 빨간 자국이 신경쓰이는지 계속 단의 손목만 응시하였다. 단은 재빨리 다른 손으로 손목을 감싸 제 뒤로 숨겼다. 그녀가 괜찮다는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데 먼저 선수를 친 건 윤기였다.





"미안하다."


"아 아니에요. 일부러 그러신 것도 아니고... 파스 뿌리면 괜찮을 거예요. 그니까..."


"앞으로 찾아오지마."


"..네?"


"귀가 삐꾸야? 찾아오지말라고. 반찬도 필요없으니까 도로 가져가."


"아저씨... 전 진짜 괜찮아요..."


"아까 그 새끼 하는 말 못들었어? 뭐하러 내가 너를 만날지 생각도 안해봤냐? 정말로 내가 너랑 섹스나 한 번 해보려고 그런 거면 그땐 어쩔 건데. 나랑 잘 거야?"


"..."


"이제 알겠으면 찾아오지..."


"아저씨 그런 사람 아니잖아요.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면... 지겹도록 해줄게요. 섹스해요 그럼."





윤기는 단의 말을 들으면서 점점 인상을 구겼다. 그러다가 단의 마지막 말을 듣고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제 앞에 얼굴이 시뻘게져서 거의 울기 직전인 단을 벽으로 몰아붙였다. 단은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윤기를 올려보았다. 울음이 새어나오는 소리를 막으려고 꾹 다물고 있는 입술이 붉었다. 윤기는 단의 목덜미를 세게 움켜잡고 입을 맞추었다. 중간중간 숨을 쉬기도 벅찬 단은 눈을 세게 감고 그의 가슴 언저리 옷자락만 부여잡았다.


한참을 입에 집중하던 윤기는 단의 목으로 입을 옮겼다. 그의 콧김과 입술이 닿자 놀란 단이 제 입을 틀어 막는다. 눈가는 이미 눈물로 젖어있었고 틀어막은 손가락 틈 사이로 '아저씨... 제발 그만...' 하는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의 말을 들은 윤기가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추었다. 그리곤 한 쪽 입꼬리를 들어 웃는다. 평소 제게 보이던 표정과는 다른 괴리감이 단을 불편하게 했다.





"섹스는 이것보다 더 해.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


"..."


"아니면 나한테 하자는 소리하지마."






윤기는 말을 마친 뒤 바로 표정을 굳혀 빌라 안으로 향했다. 그가 떠나고 홀로 서 있던 단은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그리고 소리내어 몇 십분이고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 눈가가 짓물릴 때까지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한가지 안타까웠던 건 단과 윤기가 사는 빌라는 바깥에서 나는 소리가 잘들리는 편이었다는 점이다.




백수 아저씨





윤기는 잠에서 깨고난 뒤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42분. 평소대로라면 단이 반찬을 들고와 같이 식사를 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는 애꿏은 핸드폰을 베개를 향해 집어던지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의 검은 핸드폰이 애처롭게 침대 위에 나뒹굴었다.


싱크대에서 냄비를 찾아 물을 붓고 라면 한 봉지를 꺼냈다. 단을 만나기 전과 다른 점이 없는 메뉴였다. 아침은 고사하고 점심만 먹던 그 때 같았다.


직장을 잃으면서 오래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난 뒤 윤기의 삶은 형편없었다. 들어둔 적금과 아르바이트로 근근히 버티는 삶. 돈이 궁한 탓에 끼니를 거르는 건 다반사고 새 옷을 언제 사 입었는지는 기억에도 없다. 그저 칙칙하고 살아가기에만 급급해하며 살았었다.


그리고 그 인생에 신물이 날 때쯤 만난 것이 단이었다. 이사를 왔다며 요즘 세상에 떡을 돌리던 단은 다른 세상 사람 같았다. 마주칠 때마다 밝게 인사해주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저가 좋다고 따라다니고. 저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감이 바닥을 찍었던 윤기에게는 고마운 일이었지만 마음 편할 일은 아니었다.


저는 나이 많은 실업자고 단은 아직 어린 티가 나는 대학생이었다. 항상 어린 애 취급하지말라 하지만 윤기에게 단은 너무나도 어리고 여린 존재였다. 게다가 살기 위한 동앗줄에 매달리기도 힘든 그가 단이 주는 애정을 받고 보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윤기는 어느 순간 물은 날아가버리고 탄내만 나는 냄비를 마주했다. 멍하니 있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냄비 손잡이를 잡았다. 그런데 냄비 손잡이가 쇠로 되어있어 뜨거워진 탓에 그만 손을 데이고 말았다.


윤기는 데인 손을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 앉았다. 차가운 싱크대의 감촉이 얇은 면티를 통과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다. 그는 싱크대 기대어 제 손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벌써 빨갛게 부어오른 손을 쳐다보다 제 가슴쪽으로 당겼다. 그리곤 혹시나 옆집에 사는 단이 들을까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렸다.






백수 아저씨






손에 바를 약을 사러 약국에 다녀오는 길. 윤기는 마주치고 싶지 않던 상대를 마주쳤다. 단이 운동화를 신은 발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것이었다. 그는 쓰고있던 회색 모자를 급하게 눌러쓰고 다리를 빨리 움직였다. 그리고 흘끗 눈을 돌려 단의 반응을 확인했다. 단은 윤기의 염려와 달리 앞만 보고 걸어가 그를 지나쳤다. 그녀의 뒷모습까지 확인한 윤기가 숨을 몰아쉬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걸어가려 하는데,





"아저씨."





하고 단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지나치려 했는데 윤기의 발은 주인의 마음도 모르고 방향을 바꿔 단을 마주했다.


단은 굉장히 화가 났다는 표정으로 윤기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가을이라 쌀쌀해진 날씨인데도 단의 가디건은 속이 약간 비칠만큼 얇았다. 윤기는 그런 가디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은 보고 무시하시더니 이제는 인상까지 쓰시는 거예요? 너무하시네요."


"...."


"저 솔직히 되게 화났어요. 아니지 화가 났었지. 저번에 무작정 키스하신 것도 그렇고 말씀 막 하신것도 그렇고. 근데..."


"..."


"지금 아저씨 보고 기분 좋아져서... 짜증나요. 뭐라고 화낼지 어떻게 따질지 다 생각해 놨는데... 아저씨 얼굴보니까 그런 거 생각은 안나고 기분만 좋아요. 나도... 답답해 죽겠는데... 나 어떻게 해야 돼요?"





애써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가던 단의 목소리가 떨린다. 윤기는 속으로는 당황했지만 위로를 해준다거나 할 수 없었다. 저가 단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죄책감으로 가슴이 무거웠다. 그는 말없이 화상을 입은 손을 느릿하게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했다. 손을 필 때마다 쌀쌀한 바람이 틈새로 지나갔다.





"저번에 아저씨가... 나한테 나쁘게 굴었으니까 나도... 못되게 굴고 싶은데... 그게 안되는데...왜요..."


"..."


"아저씨 내가 다 미안해요. 그니까 얼굴 보지 말자거나 찾아오지 말라고 하지 마요... 나 진짜..."


"김단."


"...예?"


"이리와."






윤기는 '이리와.' 한마디를 내뱉고 눈을 감으며 가만히 팔을 벌리고 서있었다. 그의 말에 울컥한 단이 입을 꼭 다물고 그에게 다가섰다. 윤기가 단의 허리를 팔로 감고 끌어 안았다. 그리고 단의 머리 위에 제 턱을 받치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치며 '이럴 수 있는 사람이... 그 땐 왜 그랬어요... 왜!' 하고 소리쳤다. 윤기는 그런 단을 조금 더 세게 끌어안았다.


단이 잠잠해져 가만히 윤기의 품에 안겨있자 그가 제 품에서 그녀를 조금 떼서 바라본다. 단은 그의 얼굴을 마주 보다가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약간 뭉게지는 발음으로 말했다.






"보지마요."


"왜."


"지금 울어서 엄청 못생겼어."


"예뻐."


"우와, 완전 느끼해."


"싫냐?"


"...아뇨. 아저씨면 다 좋아."


"그럼 됐다."






윤기는 단을 다시 세게 끌어 안았다. 그리고 왼발, 오른발을 살짝 떼면서 몸을 좌우로 움직였다. 단도 기분 좋은 목소리로 '그럼 됐다.' 하고 말한 뒤 웃었다. 윤기는 제 손으로 단의 머리를 쓸어 정리해주었다.


한참을 안겨있던 단이 갑자기 윤기의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고 그를 바라보았다. 윤기는 뭐냐는 표정을 지으며 단을 보았다. 단은 눈을 약간 가늘게 뜨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윤기의 가슴께부터 어깨까지를 쓱 쓸어올리고 말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썩 두껍지 않은 옷을 입고 있었던 윤기는 그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윤기씨."


"그렇게 부르지 말라..."


"지금부터 할까요?"


"...뭐?"


"하자고."


"너 설마..."


"섹스하자고. 지금부터."


"너 저번에 내가 한 말 기억안나냐?"


"윤기씨면 괜찮아."


"..."


"하자, 윤기씨."


"...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난 몰라."


"좋아요."





저를 보며 여유넘치게 웃는 단이 윤기의 눈에는 그렇게 얄미워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만큼 예뻐보이는 걸. 윤기는 그렇게 생각하고 단의 손목을 잡아 빌라 안으로 향했다.




백수 아저씨




"야 김단 빨리 안들어와?"


"아이 아저씨 오랜만에 애들 만나는데 그러지 마요."


"이게 연말이라고 봐줬더니."


"아저씨이이이. 아 친구가 부른다. 좀만 더 놀다 갈게요. 윤기씨 사랑해."





쪽- 소리가 짧게 들리고 통화가 끝났다. 윤기는 까매진 핸드폰 액정을 보고 허하고 헛웃음을 냈다. 그리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는다.


처음에는 팔짱을 끼고 벽시계만 노려봤다. 단이 언제 들어올지 지켜보려는 뜻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다리를 떨고 시계 한 번 핸드폰 한 번 번갈아가며 시간을 확인했다. 초조함의 종결지는 손톱을 물어뜯다가 편의점에 술을 사러 간 것이었다.


소주 3병과 간단한 마른 안주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 윤기는 오기로 두고 간 핸드폰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상단바는 깔끔했고 그의 가슴에서는 열불이 났다. 그래서 핸드폰 배터리도 분리해서 침대에 던져두고 방문을 닫았다. 그는 불퉁한 표정으로 잔을 가져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소주를 한 병 반쯤 비웠을 때 윤기는 허탈감을 느꼈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건가. 나이차이도 많이 나는 어린 애를 데리고 이렇게 초조해하면서 술이나 마시고. 그것도 나 혼자. 그는 그런 제 모습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헝클이며 괴성을 질렀다.


그렇게 한참을 홀로 좌절하던 윤기는 그냥 마시고 죽자는 심정으로 편의점으로 향했다. 3병가지고는 어림도 없지. 하면서 걸어가는데 멀리서 익숙한 형체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형체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윤기를 향해 냅다 달려오기 시작했다. 형체가 누구인지 예상한 그는 그저 서있기만 했다.





"그래 김단 내가 오늘은..."


"오빠~!"


"우리 자기 왔쪄요!"





윤기는 눈을 감고 팔을 벌렸다. 게다가 특별히 봐준다는 마음씨 넓은 말도 준비했건만 돌아오는 건 다른 연인의 염장질이었다. 그는 돌아오는 민망함과 쓸쓸함을 사무치게 느끼고 다시 편의점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땅만 보고 걸으며 편의점 불빛이 보이길 기다리는 윤기의 시야에 예쁜 분홍색 구두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구두의 주인의 얼굴은 저가 그토록 기다리던 김단이었다. 정말 주책맞은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윤기는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녀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윤기에게 말했다. 단이 다가오면서 말하자 미약한 술냄새와 평소에 뿌리고 다니던 복숭아 향수 냄새가 섞여왔다. 




"아저씨."


"김단 너..."


"나 안기다리고 왜 돌아다녀?"


"야 내가 너를 어? 기다려? 안기다려 나는. 안기다린다고..."


"뭐야, 나 안보고싶었어?"





단은 고개를 숙이며 땅만 쳐다보는 윤기에게 눈을 맞추려 똑같이 몸을 숙였다. 그리고 한 번 웃어보이는데 그 모습이 또 너무 예뻐보이는 윤기는 본인이 싫었다. 그가 일부러 고개를 돌리니 '뭐야 왜 나 안쳐다보냐고.' 하며 툴툴거리는 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보고싶었어."


"진짜?"


"..."


"난 아저씨 되게 보고싶었어. 그래서 일부러 나만 일찍 나왔는데 아저씨는 못된 말만 하고... 미워."





단이 윤기의 겉옷 사이로 허리에 팔을 두르며 다가온다. 그는 놀란 얼굴로 주머니 속에 꽂아놓은 손도 빼지 못한 채 굳었다. 단은 밉다며 윤기의 입술을 가볍게 검지로 쳤다.


윤기는 더 이상 제가 어찌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방금까지 유난이다 뭐다 자신을 자책했지만 어쩌겠는가, 제 눈 앞에 있는 김단은 이리도 예쁜데. 그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관두기로 했다.


우선 주머니에 꽃여있던 손부터 뺐다. 그리고 단의 목과 볼을 양손으로 감쌌다. 머리카락이 길었는데 엉키지 않고 부드러운 것이 비단결 같았다. 망설임 없이 입을 맞추려는데 단이 가는 손가락으로 윤기의 입술을 막는다. 눈 모양이 가늘게 초승달 같은 게 장난끼가 넘쳐보였다. 아마 평소처럼 윤기에게 밀당을 시도하는 것이 분명하다.





"아저씨 술 냄새나요. 술 냄새나는 키스는 싫어."


"너도 술 냄새나."


"그건 그래."





이번엔 단이 먼저 윤기의 목 언저리 옷을 잡고 당겼다. 단보다 체격이 크고 무게도 더 나가는 그이지만 적극적인 단은 언제나 좋았다.


항상 맞추는 입술이 뭐가 그리 궁금한지 서로의 여기 저기를 둘러보았다. 한참이나 이어지던 입맞춤은 단이 먼저 끝을 냈다. 윤기는 항상 이게 아쉬웠다. 적극적인 단은 좋다. 내빼는 것 없이 과감하고 제 또래 애들과는 다른 느낌인 것도. 하지만 이렇게 애를 태우는 것은 조금 싫었다.






"아저씨. 안와요? 이어서 해야지."


"허."


"윤기씨, 오늘 기대할게?"





그래도 윤기는 단이 좋았다.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태우는 만큼 끝이 화려하고 한 번 시작하면 끝낼 줄을 모른다.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윤기에게 지는 법 없이 이기려고 든다. 물론 단의 그런 면이 지금 둘을 있게한 것이지만.


단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꺄르르 소리를 내며 빌라 안으로 향했다. 윤기는 아직 찬바람이 부는데도 열이 올라 외투를 벗었다. 그리고 한 번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고 단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저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수 아저씨




여느 때와 같은 일요일 아침. 단은 오늘도 양손이 가득하다. 한 손에는 반찬이 있고 다른 한 손에는 곧 다가올 봄을 맞아 산 꽃들이 있었다. 항상 가는 윤기네 집은 사람이 산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정도로 적막했다.


뭐라도 해보고자 해서 안개꽃 화분을 두어개 정도 샀다. 윤기가 장미 꽃을 꽂아준다고 좋아할 사람은 아니었으니 단 본인은 만족하고 있는 선택이었다.


단은 문 앞에 봉지들을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았다. 있는 걸 다 꺼내다보니 단의 손에는 열쇠 두 개가 놓여져 있었다. 약간 다른 모양새인 열쇠 두 개가 단은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


단은 제 집의 열쇠는 도로 넣고 윤기네 집 열쇠를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는데 그 표정이 참으로 기뻐보였다. 뭐가 부끄러운지 한 손으로 볼을 감싸며 발까지 굴렀다. 초인종 없이 그의 집을 드나드는 것이 단에게는 감격적인 일이었다.





"아저씨-. 저 왔어요."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선 단이 윤기를 불렀다. 어서 얼굴을 보고싶은 단이었지만 그 얼굴이 보이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침실용 방으로 향했다. 이불은 정돈되지 않아 어수선했고 그 위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약간 먼지가 날리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윤기가 저 햇빛을 받으면서 자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단이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던 단은 서재용 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그곳에도 윤기는 없었다. 일이 없다면서 매일 책만 보던 그이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항상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비문학 책을 즐겨보았다. 그래서 한 번은





"아저씨."


"왜."


"아저씨는 왜 그런 것만 읽어요? 다른 것도 좀 읽어봐요."


"다른 거 뭐."


"아니 뭐 로맨스 소설같은 거 많잖아요. 아저씨 감성 완전 메말랐을 걸."


"그런 걸 뭐하러 읽어? 남들 연애하는 얘기에는 관심없어."


"그럼 자기가 하는 연애에는 관심 많나 뭐..."


"..."






윤기는 단을 한 번 흘깃 쳐다봤다. 중얼 중얼 말꼬리를 늘리던 단이 저는 모른다는 눈빛으로 쏙 시선을 돌린다. 그는 그런 단을 보다 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너랑 이러는 거 자체가 로맨스지. 뭐하러 다른 걸 읽어."


"아저씨..."


"...뭐"


"지금 되게 닭살 돋았지만 아저씨니까 봐드릴게요."


"이 콩알 만한게...!"


"안겨요. 아저씨!"


"뭐냐."


"아 내가 안길까 윤기씨?"


"너...제발 그것 좀 그만해라."


"왜, 이렇게 불러주면 좋아하면서. 침대에서도..."


"어린게 발랑 까져가지고."







윤기가 단의 입을 다급히 틀어막았다. 단은 큰 손으로 얼굴 반이 가려졌는데도 눈을 접으며 웃는다. 윤기가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계속 쳐다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 단이 입술을 내밀었다. 그리고 아직 제 입을 막고 있는 손바닥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는 뭐냐는 표정으로 단을 쳐다보며 입에서 손을 땠다. 그리고 제 허벅지 위에 펼쳐 놓았던 책을 덮었다. 단은 얌전히 덮여진 책을 보고 기분좋게 윤기에게 안겼다.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윤기는 약간 마른 팔로 단의 허리를 감았다. 단은 간지럽다고 웃으며 어깨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하지만 단도 자연스럽게 윤기의 목깨에 팔을 둘렀다. 단의 입술을 응시하던 그가 짧게 말을 내뱉었다.





"여우."


"내가 무슨... 그래도 뭐 아저씨한테는 여우할게요."


"그럼 그러든가."






윤기는 눈을 감고 단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목으로 가는 선을 콧날로 한 번 쓸었다. 간지러움을 잘 타는 단이 흠칫하는게 그에 눈에 띄었다. 짧게 단의 쇄골에 입을 맞추고 단의 입술로 향했다. 그러면 올라간 입꼬리가 윤기의 입술을 맞이했다. 두 입술끼리는 사이가 좋아 떨어질 틈이 없었다.


평소같으면 숨이 차다가 윤기를 밀어낼 단이 어느새 각도까지 바꾸며 입을 맞출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그는 저가 애 하나를 요물로 만든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단의 그런 모습은 윤기의 앞에서라는 한정이 있었다. 그리고 윤기도 그걸 잘 알았다.


이번에도 단이 먼저 입술을 뗐다. 항상 비슷했으니까 좀 있으면 저가 먼저 윤기에게 다가갈 것이다. 그는 이제 단이 뭘 하려나 보자라는 생각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저기."


"뭐야."


"호칭은 뭐가 좋아요? 아저씨나 윤기씨 중에서."


"전자가 낫..."


"아니면 오빠?"


"..."


"오빠."


"지금 말한 거."


"저도 이게 좋은 것 같아요 오빠."


"...시발"






윤기의 입에서 욕짓거리가 나왔다. 물론 단이 윤기를 자극하려했던 건 사실이지만 욕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그는 단을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괜그레 겁이 난 단이 제 허리춤에 감겨져 있던 윤기의 팔을 조금 떼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윤기가 단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빨랐다.






"어디가."


"아니 아저씨... 잠시만..."


"그 이름말고."


"그건 제가 장난으로 한 건데 그게..."


"다시 제대로 말해."


"...오빠."


"너 오늘 죽었어."






윤기 단을 잡아끌고 제 침실로 향했다. 그는 그날따라 격하고 맹렬한 것이 꼭 짐승 한 마리를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윤기 오빠."





짐승에게는 멋진 조련사가 있으니 별 다른 걱정은 필요 없을 듯 했다.





백수 아저씨





서재를 나와서 항상 들고다니는 작은 거울로 본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볼과 귀가 새빨간게 저 혼자 겨울을 보내는 사람같았다. 괜히 윤기와 있던 일을 떠올리다 얼굴만 달아오른 단이었다. 그가 이런 제 모습을 보고 놀릴까 걱정이 되었다.


제 볼을 감싸고 발을 구르던 단이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단이 윤기네 집에 온 시간이 10시인데 그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도 받을 수 없다는 문자들만 날아왔다.


단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무릎을 당겨 앉았다. 그리고 평소 윤기가 자주 보던 뉴스채널을 틀었다. 화면 안 아나운서들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단은 오직 남자 앵커의 정장만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거 아저씨가 입으면 멋있겠다.' 하고. 그러다가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오지도 않고 연락도 안되는데 뭐가 예뻐서 이런 생각을 하냐며 자신을 탓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서 시계를 보니 겨우 십분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단은 리모콘을 들어 텔레비젼 전원을 껐다. 그리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소파에 누웠다. '아저씨 언제 와...' 하는 말이 단의 입에서 새어 나왔지만 휴대폰과 현관문은 얌전할 뿐이었다.


소파에 누웠다가 그대로 잠이 든 단은 부시럭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비비며 소리가 나는 쪽을 확인하는데 컵을 들고 있는 윤기가 있었다. 단은 처음에 저가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계속 비벼댔다.


윤기는 단이 저를 보고도 아무 말 없이 눈만 비비자 단에게 향했다. 그리고 눈을 벅벅 문지르는 손목을 살짝 잡고 내렸다.





"그만해. 뭐 들어갔냐?"


"아저씨 맞아요? 나 자다 깨서 분간이 안가요."


"니네 아저씨 맞으니까 이제 그만 비벼."


"아 다행이다-"






단은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윤기에게 안겼다. 그도 가만히 단의 뒷머리를 쓸어주었다. 그의 손길을 온전히 받아내는 단은 얌전한 강아지 같았다.





"근데 오늘 어디 갔었어요? 나 엄청 오래 기다렸는데."


"좀 나갈 데가 있었어."


"그니까 어디..."


"그냥 볼 일이 있었다고."


"...알겠어요. 그럼 밥 먹어요."






어디 갔었는지 말을 하지 않는 윤기가 답답한 단이었지만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평소와 비슷하기는 했지만 뭔가 다른 것이 지금 좀만 따지고 들어도 바로 싸울 것 같았다.


식사하는 내낸 윤기는 정적을 유지했다.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수저를 놓았다 들었다 하는 소리만 냈다. 단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는 신경쓰지 않고 최대한 빨리 먹어치웠다.


식사를 마친 단이 싱크대에 그릇과 수저를 두고 먼저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은 이만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현관으로 향하는데 저가 들고온 안개꽃 화분이 보였다. 윤기가 이걸 보면 기분을 좀 풀까해서 그에게 꽃을 보여주러 다시 거실로 갔다.






"아저씨 이것 좀 봐요."


"뭔데."





봄이 다가오는 날씨가 무색할만큼 목소리가 냉랭했다. 사귀기 전 데이트를 거절당했을 때 목소리같아 괜히 시무룩해졌다. 그래도 윤기가 꽃을 보고 좋아해줬으면 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제 봄이기도 하고 기분 전환할려고 사봤어요. 이쁘..."


"봄 기념이라고. 그러면 여름오면 버릴 거냐? 그냥 한 철 예쁘게 보고 내다 버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저는 그냥 꽃이 예쁘니까..."


"그래 예쁘고 보기 좋으니까. 그게 다지? 그 꽃 갈아치우는 것도 쉬우니까 나도 그렇게 되겠네?"


"하... 아저씨. 지금 화나셨어요? 왜 그러세요, 도대체."


"야 너 그냥 나가라."


"아저씨."


"나가라고."






순간 눈물이 핑 돈 단은 화분을 챙겨 그대로 윤기의 집을 나섰다. 이게 뭐야 몇 발자국 걸어 제 집 문이 나오자 단이 열쇠를 찾으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때 열쇠 하나가 바닥과 닿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단은 허리를 숙여 열쇠를 줍고 확인했다. 윤기가 준 보조열쇠였다. 단은 그 열쇠를 보다가 더 이상 못참겠는지 다른 손으로 남은 열쇠를 다급히 꺼내 문을 열었다. 당장이라도 이 열쇠를 집어던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가득했다.


일단 아무데나 화분을 둔 단이 그 화분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열쇠를 던져버린다는 생각은 어디로 간 것인지 머리가 멍해졌다. 그저 파란색과 분홍색 안개꽃 앞에서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옆집 보조열쇠는 놓지 못해 손에 꽉 쥐고 말이다.





백수 아저씨





윤기는 단이 가고 난 뒤 밥상은 치우지 않고 바로 침실로 향했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그는 작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켜 상단바를 확인했다.


이런 날은 정말 곤욕이었다. 단은 윤기가 무슨 말, 행동을 하든 화를 내는 법이 없다. 한 번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자 수줍은 목소리로 '내가 아저씨 더 좋아하잖아요.' 하고 말했다. 물론 그 순간에는 단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지만 지금같은 상황은 반갑지 않았다.


분명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화풀이를 한 건 윤기였다. 그러니까 단은 가슴을 치든 소리를 지르든 그에게 화를 내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단은 그저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울고 진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일주일정도 지나면 다시 '아저씨-' 하고 부르며 저에게 다가올 것이다.


윤기는 복잡한 머릿 속을 말끔히 정리하고 싶었다. 다른 방에 놓여진 수 많은 책들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애꿏은 머리카락만 헝클였다. 그리고 그 때 전화 알림음이 들렸다. 혹시나 했던 그는 다급히 휴대폰을 확인했다. 하지만 발신자는 '최대리님' 었다. 착잡한 숨을 내뱉은 윤기는 느릿하게 전화를 받았다.






"뭡니까."


'민윤기씨. 생각해 보셨어요?'


"모레까지라고 하셨으니 모레까지 기다리십시오. 재촉하지 말고."


'에이 딱딱하시네. 회사에서 일하셨을 때랑 다를게... 아 죄송해요.'


"끊겠습니다."






윤기는 전화를 마치자 마자 배터리를 분리시켜 침대 아무데나 던져두었다. 그리고 오지도 않는 잠을 억지로 청했다. 하지만 그것도 단의 얼굴이 떠올라 쉽지는 않았다.





백수 아저씨





단이 일요일에 버리지 못했던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예 학교를 갈 준비를 마치고 가방까지 챙겨나왔다. 문을 열기 전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피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쓰레기 봉투를 자리에 두고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전 10시. 사실 수업은 오후 2시에 시작하고 단의 집은 학교와 그리 멀지도 않아 1시가 넘어서 나와도 괜찮을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일찍부터 공부나 하자라는 심정으로 나온 이유는 윤기때문이었다.


단은 아직 윤기에게 난 화가 풀리지도 않았고 윤기의 저기압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은 마주치지 않는게 상책이었다. 운동화 바닥을 끌고 가던 단 앞에 한 여자가 멈춰섰다. 검은 정장과는 대조되는 빨간 구두와 안경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는 구두만큼 붉은 입술 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혹시 민윤기씨 아세요?"


"네?...네... 뭐"


"아, 잘됐네요. 민윤기씨한테 빨리 결정해달라고 전해주세요."


"...누구시죠?"


"민윤기씨를 아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시면 아실 거예요. 그럼 이만."






저게 뭐야. 단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 앉을 뻔 했다. 기다리긴 뭘 기다려? 지금 머릿속이 혼란 그 자체라서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 때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단의 예상이 맞다면 그 사람은 분명 윤기일 것이다.





"...김단 너 뭐야. 왜 이러고 있어."


"아...아저씨..."


"왜 이래. 왜 우는데."


"방금 어떤 여자가... 아저씨 기다린다고 빨리 결정해 달라던대... 그게 뭐예요? 아저씨가 뭘 결정하는데요?"


"... 넌 몰라도 돼."


"아저씨..."


"다친 거 아니면 빨리 들어가."






윤기는 단을 걱정하다가도 표정을 굳히고 제 갈 길을 갔다. 단이 그가 가는 방향에 따라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등판이 보이는데 미칠 것 같았다. 단은 울분이 섞인 목소리로 자리에서 소리쳤다.






"왜 나한테는 말 안하는데요? 아저씨 여자친구는 난데!"





윤기는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상체를 뒤로 돌려 단을 응시했다. 단은 베이지색 얇은 코트를 펄럭거리며 윤기에게 다가갔다. 눈가는 이미 눈물로 붉어져 있었고 아랫입술을 이로 물고 있었다.






"어디갔었는지 묻는게 싫으면 안물어볼게요. 꽃을 계절마다 갈아치우는게 불편하시면 안사올게요. 근데."


"..."


"불쑥 아저씨 기다린다면서 찾아온 여자 물어보는 거에는 왜 화내요. 아저씨가 사귀는 여자는 저예요. 아저씨랑 잔 것도 나고!"


"야."


"아직 말 덜 했어요. 보니까 말 못할 정도로 중요한 결정을 하셔야하는 것 같던데. 저는 그런 얘기를 초반에 아저씨한테 들은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재촉하는 거 전해주다가 들었어요. 이게 뭐예요? 내가 사사로운 것까지 말해주는 거 바란 적 없잖아요. 근데 나한테 왜... 나랑 헤어지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니야."


"그럼요. 뭐냐구요. 왜 말을 안해줘요? 말을 해줘야알지. 왜 나 혼자 바보로 만들어요 왜!"


"김단!"







단은 말을 길게 몰아서 내뱉다가 목이 메이는지 열이 받은 건지 숨을 거칠게 몰아 쉬었다. 윤기는 여태까지 보인 적 없는 눈으로 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단도 기세를 굽히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윤기는 그런 단을 가만히 쳐다보다 지나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단의 어깨도 살짝 쳐버리고 말이다. 단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헛웃음을 내면서 윤기와 부딫인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그 어깨에서 손을 내려 제 가슴에 손을 두었다. 심장이 갑갑할만큼 빨리 뛰고있었다. 그 소리가 귀에까지 울려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단은 그렇게 생각하고 구슬픈 소리를 내어 울었다.






백수 아저씨







"당신 뭐하자는 거야."


"어, 민윤기씨 오셨네요. 결정은..."


"뭐하자는 거냐고."






윤기는 지금 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 카페에 있다. 아까 단이 마주쳤던 여자와 함께. 여자는 윤기가 제게 위협적으로 말하는데도 주눅드는 기색이 없었다.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여자였지만 그 점은 어딘가 불편했다.






"뭐가요?"


"뭐가요? 누명 씌워서 사람 내쫓더니 지들이 아쉽다고 먼저 부른 주제에 그딴 말이 입에서 나와?"


"저희도 그 건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사과드렸어요. 생각보다 그릇이 좁으시네요."


"하..."


"어이없게 생각하셔도 돼요. 저희 프로젝트에 맞는 적임자가 어이없게도 민윤기씨였으니까."


"그래서 지금 갑자기 사람 불러서 단물 빼먹겠다고? 너넨 사람이 우습냐?"


"단물을 빼먹는다뇨. 표현이 섭하시네요. 단물 빼먹을 사람들이 연봉을 재직 중이셨을 때보다 두배로 쳐준대요?"







여자는 뭘 망설이냐는 표정으로 윤기를 응시했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뻔뻔한 태도에 기가차는 윤기였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쳐다보던 윤기는 다시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난 안해. 그리고 앞으로 내 주변 사람들한테도 말 걸지마."


"그럼 그 아가씨는 어쩌시게요?"


"뭐..."


"그렇게 어리고 예쁜 아가씨가 윤기씨 만나는데 맨날 돈 없이 분식집만 가시게요? 선물은 지하상가 가방이고? 아가씨가 불쌍하지 않나. 저라면 안만나요."


"..."


"민윤기씨 인생도 중요하지만 옆에 있는 그 아가씨 위해서라도 다시 생각해보세요. 기한은 내일까지니까. 그럼 전 이만."







여자의 빨간 구두는 또각 또각 소리를 냈다. 윤기는 그 발끝을 쳐다보며 멍을 때리다가 달리기 시작했다. 김단. 윤기의 머리에는 그 두 글자밖에 생각나질 않았다.





백수 아저씨





"너는 무슨 맨날 이런 것만 먹자고 하냐?"


"왜요. 난 떡볶이 좋은데."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이런 떡으로 무슨..."


"와 방금 우리아빠가 하시는 말씀 그대로 했어. 진짜 아저씨."


"콩알 만한게."


"이렇게 크고 예쁜 콩알이 어딨나?"







단이 제 턱 아래 손을 쫙 펴 갖다 붙이며 꽃받침을 만들었다. 윤기는 그런 단을 보고 헛웃음을 짓다가 손꿈치로 단의 머리를 밀어버렸다. 그러면 단은 또 애교 섞인 목소리로 '왜요 나 예쁜잖아요-' 하고 말하며 그의 손을 잡아올 것이다. 윤기는 물을 들이키며 작게 중얼거렸다.






"지 이쁜 건 알아가지고."


"네? 아저씨 뭐가요?"


"됐어."


"치사해."






단이 제 볼을 부풀리며 삐치는 척을 했다. 윤기는 그런 그녀의 볼을 검지 손가락으로 톡 톡 두드리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단은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의 검지 손가락을 작은 손으로 쥐고 해맑게 말할 것이다. '아저씨 진짜 좋아요-' 하고.


단은 어떤 데이트를 하든 불만을 가지거나 하지 않았다. 영화에 빠진 윤기가 영화관이나 dvd방만 가도 좋다고 웃기만 했다. 100일 기념일에 뭘 그런 걸 챙기냐는 그의 말에도 윤기에게 예쁜 새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


윤기에게 단은 과분하고 좋아하는 것도 미안한 여자였다. 분에 넘치는 애정을 퍼주면서도 보상받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뭐든지 윤기를 위했고 지금같은 순간에도 심한 말 한 번 못해 또 혼자 울고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런 윤기의 여자친구 이름은,






"김단!"


"아저씨..."






윤기는 숨을 헐떡이며 문을 두들겼다. 단에게 받은 열쇠가 있었지만 그걸 꺼내 열기에는 그가 너무나도 흥분한 상태였다.


문 안에서 나오는 단을 보자마자 팔을 당겨 안아버렸다. 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숨을 몰아쉬며 저의 품을 파고드는 것 같은 윤기의 등을 찬찬히 쓸어주며 '괜찮아요?' 하고 말했다. 그는 단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어..' 라고 작게 말했다. 그 순간까지도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단의 모습에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


일단 윤기를 집 안으로 들인 단이 컵에 물을 따라 가져왔다. 그는 컵이 놓이자마자 물 한 잔을 비웠는데 급하게 마셔서인지 목이 따가웠다. 그가 기침을 해대자 단이 왜 그러냐며 안절부절하였다. 윤기는 연신 하던 기침을 멈추고 단을 쳐다보았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저를 보는 단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김단."


"네..?"


"다 말해줄게. 숨기는 거 전혀 없게."


"..."







단은 편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고쳐앉았다. 그걸 본 윤기는 듣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 털어놓았다.


저가 회사에서 오해를 받았는데 거의 해고 전에 오해가 풀렸지만 더 이상 그 회사에 있고싶지 않아 제 발로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제부터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 회사에서 제시한 조건과 그 상황에서 윤기가 느꼈던 감정.


내리 눈을 아래로 깔고 말을 하던 윤기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단의 표정을 확인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윤기는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단의 눈가를 훔쳐주며 말했다.






"내가 실업자가 되고 나서 6년 사귄 여자친구랑 헤어졌을 때는 정말 죽기 전만큼 힘들었어. 근데."


"..."


"네 입에서 헤어진다는 말이 나오니까 그자리에서 죽어버리고 싶었어. 나는 그래, 김단."


"..."


"그니까 헤어지자거나 그런 소리 하지마. 나 정말 죽을지도 몰라."


"안해요... 그런 얘기를 내가 왜 해... 아저씨 미안해요. 내가 내가..."


"이리와, 단아."







단의 눈에서 기쁨이 넘처 흘렀다. 분명 기쁘고 행복하다. 헌데 그걸 보여줄 방법이 품에 안겨 우는 것이라니. 단과 윤기는 그렇게 한참 서로를 소중하게 껴안아주다가 잠에 들었다. 잠에 든 것도 아니었다. 서로를 바라보다가 눈 깜빡이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이들인데 어찌 그렇게 쉽사리 잠자리에 들었겠는가.






백수 아저씨






"김단 나 나간다."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






넥타이를 안했잖아요. 단이 흰 셔츠에 정장 자켓만 입고 나서려는 윤기를 불러세운다. 그의 손에는 검은색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가방을 든 윤기는 넥타이 매는 게 서툰 단의 정수리와 작은 손을 바라보았다.


극적으로 화해했던 그 날 밤. 단은 윤기의 입사에 적극 찬성했다. 윤기가 왜냐고 묻자 물론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생각해서라면 입사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며 똑 부러지게 말했다. 자신의 말이 만족스러운 단은 자신감에 찬 얼굴로 윤기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저 흐뭇한 얼굴로 단을 응시하고 있었다.


새삼 윤기를 보고 얼굴이 빨게지는데 그게 심히 당황스러웠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화장실이라도 가려는데 아래에서 윤기가 단의 팔을 잡아당긴다. 그대로 주저앉아버린 단은 그의 양반 다리 위에 정확히 안착했다. 그리고 윤기는 단이 도망갈까 허리를 꼭 끌어안고 뒷목에 얼굴을 묻었다.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당황한 단이 윤기의 팔을 툭 툭 치며 '아저씨...' 하고 말했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목 뒤에서 입술이 닿는 감촉만 느껴졌다. 처음에는 등줄기 위에서 시작하나 싶었던 입맞춤이 어느새 목 거의 끝까지 올라와있었다.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는 단이 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입맞춤의 감촉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자 고개를 돌려 윤기를 바라보았다. 윤기는 눈만 보인 채 저를 보는 단을 보고 한 번 웃었다. 그리고 단의 손등에 한 번 입을 맞추고 말했다.






"손."


"...싫어요"


"소용없을텐데."







윤기는 손을 들어 단의 입을 막아선 손을 확 내렸다. 그리고 단의 입술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고개가 꼭 감은 단의 눈마냥 얌전하다.


평소 침대로 가기 전에 하는 깊은 입맞춤과는 달랐다. 그저 입술에 짧게 짧게 뽀뽀를 하는 게 전부였다. 단은 평소에 하던 입맞춤에는 숨이 찼지만 지금같은 입맞춤에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번에는 윤기가 먼저 입술을 땠다. 눈을 감고있던 단은 갑자기 감촉이 사라져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윤기를 치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저씨 미워."


"네가 평소에 이랬어. 오늘은 여기까지."


"뭐야 진짜."







단이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윤기는 검지로 그 입술을 톡 톡 두드리며 '콩알은 빨리 가서 자.' 하고 말했다. 단은 한참동안 그를 노려보다가 윤기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그럼 같이 자요. 우리집에서."


"어떤 우리집."


"네?"


"우리 집이 401호랑 402호인데 어느 우리집."







단은 불퉁하던 입술을 집어넣고 윤기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매달렸다. 그리고는 '여기요. 402호 우리집이요- ' 하고 말했다. 윤기도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됐다! 완전 이쁘죠?"


"너보다는 별론데."


"으으 오그라들어-. 그래도 뭐, 듣기는 좋다."







다소 오그라드는 발언에 단은 양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윤기는 그런 단을 보고 한 번 웃고 제 구두에 발을 집어 넣었다. 그가 구두를 신고 마무리를 할 때까지 단은 눈을 반짝이고 그를 바라보았다.







"다녀올게."


"잠깐만요!"


"또 뭔..."


"잘 다녀와요 여보-"


"허..."







퇴근하고 오면 죽었어 너. 단이 윤기의 볼에 조금 길게 입을 맞추었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목 부근에 손을 올리니 제 손으로 쳐내어 단호하게 끊으며 '출근해야죠-' 하고 말한다. 윤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단을 쳐다봤다. 단은 꺄르르 웃으며 말했다. '여보 그렇게 보면 단이 무서워-'. 제 말을 마친 단은 거실로 쏙 들어가 숨었다.


윤기는 헛웃음을 짓고 집 밖을 나섰다. 그리고 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았다. 원래부터 있던 401호 열쇠가 하나. 그리고 동시에 만져지는 402호 열쇠가 하나. 윤기는 열쇠 두개를 주머니 안에서 꽉 쥔 채 발걸음을 땠다.










거의 1년전쯤에 썼던 글인데 생각나서 들고왔어요. 엄청 유치하고 오글거리네요. 윤기가 동안이라...

+두시간을 수정해도 놓친 부분이 많아 재업합니다. 부끄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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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까 올라왔을 때 보다가 갑자기 삭제 되서 놀랐는데 다시 올라왔네욬ㅋㅋㅋㅋㅋ 역시 아저씨 공식하면 윤기가 대표적으로 떠오르긴 하나봐요 저도 그렇구요 하핫 암호닉 받으시면 [무네큥] 신청할게요!!
7년 전
니냐니
원글에 있던 등장인물 이름을 지우는데 수정이 덜 돼서 지웠었어요ㅜㅜ 댓글, 암호닉 신청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2
캔디에요!읽다가 갑자기 삭제돼서 놀랐네요ㅎㅎ.와 윤기 아저씨 설레요 그리고 여주가 진짜 활기차고 이쁜거 같아요!결혼까지 하길!
7년 전
독자3
몽구스예요
와 진짜 내용이 엄청 알차요
그리고 진짜 단이 여자로써 엄청 매력적인 사람이네요ㅠㅠ
기다리고 들어주고 이해하고 멈춰주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이라니...
윤기도 참 멋져요

7년 전
독자4
백수아저씨 너무봏잩ㅎ아우ㅜㅜㅜㅜㅜ
7년 전
독자5
레드불1일1캔이에요 ㅠㅠ 달달함이 가득하네요ㅠㅠ 읽는동안 맴찢이였다가 달달했다가 너무 귀여워요 ㅠㅠ 마지막에 잘되서 다행이에요 ㅠㅠ 저는 혹시나 새드엔딩일까 걱정했는데 너무 좋아요 ❤
7년 전
독자6
아ㅜㅜ 너무 좋아요 마냥 달달하지만은 않구, 백수 아저씨인 윤기가 제법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더 좋은 것 같아요ㅜㅜㅜ 너무 설렙니당ㅎㅎㅎ 이런 낭낭한 글 풀어주셔서 감사해요! 단이는 정말 매력있는 여자네요! 역시 윤기=아저씨는 진리이죠 크으
7년 전
비회원9.176
살사리에요ㅎ 윤기아저씨ㅠㅠㅠㅠ대환영입니다❤️ 달달하네요
7년 전
독자7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예뻐요 ㅠㅠ
아직 암호닉 받으시면 [베리슈] 신청할게요 ♡

7년 전
독자8
민윤기입니다 아ㅠㅠ 너무 조ㅎ앙휴ㅠㅠㅠㅠㅠㅠ 단아ㅠㅠ윤기야ㅠㅠ
7년 전
독자9
너무 심장떨어지게 만드는데 뭐 있는것같아요...
암호닉 받으시면 [바다코끼리]로 신청하고싶습니다!!!

7년 전
독자10
세상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넘나 젛은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ㅠㅠㅠㅠㅠㅠ
7년 전
독자11
아 ㅠㅠ 작가님 이런대작을써주시면 정말감사합니다.. 대단하세요 작품하나하나완벽하시다니 !!!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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