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시점*
주인에게 내 모습을 보인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간다. 주인과 내 사이에 있던 어색함은 빠르게 지나가던 시간에 묻혀 사라졌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내가 살짝 어색해하는 감이 없지 않지만. 주인이 내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덕분에 그 손을 잡고 조금씩 일어나는 중이다. 며칠이 걸리지 몇 달이 걸릴지는 미지수지만 조만간 주인과 같은 눈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지나간 한 달 동안은 별 큰일은 없었다. 동네는 탄 이의 모습일 때 많이 산책 나가봤으니까 지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주인이 학교에 가면 나도 가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또 뭐 했더라. 주인이랑 같이 장도 봤고, 아! 주인이 옷을 사줬다. 바지도 있고 후드티도 있었고.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새하얀 원피스였다. 내가 신고 다니던 하얀 단 화랑 진짜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지금까지 입고 있던 분홍색 원피스는 이제 추억으로 묻어놓기로 했다.
처음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태형의 집에 갔다. 나의 모습을 본 태형의 표정은 잊을 수 없다. 안 그래도 큰 두 눈이 더 커졌었다. 진짜 뒤에서 뒤통수 세게 치면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윤기도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관심을 받아서 부.. 부끄러웠다. 부끄러워서 주인 등 뒤로 숨었었다. 우리 집이던 밖이던 내가 부끄러워하거나 우물쭈물 되고 있을 때 주인은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앞으로 먼저 나아갔다. 그럴 때마다 심장박동이 심상치가 않았다. 가슴이 벅찬다고 해야 하나. 숨도 막히는 게 내 몸 어딘가 이상이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주인에게 말하기에 날 병원으로 끌고 갈 거 같아서 말 안 했다. 내가 가는 동물병원 의사선생님은 진짜 천사 속 악마이다. 주사를 들고 춤춘다. 무서워. 태형과 주인이 얘기에 빠져있을 때 몰래 윤기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던 윤기에게 물어봤었다.
'야, 민윤기. 내가 요즘 많이 아픈거같은데. 어떡해?'
'어디가 아픈데.'
'평소에는 괜찮은데 주인이 손잡아주거나 가까이 오면 심장이 막 터질라고해. 숨도 막히는것같기도 하고..'
'...'
'나 설마 심장사상충인가..? 안돼, 안돼는데..나 약도 먹었는데?'
'병신이냐?'
'뭐?'
'내가 여태까지 자신 감정 1도 모르는애랑 친구였다니. 민윤기 한심하다.'
날 향해 비웃음 같은 웃음을 날리고 방을 나가던 민윤기였다. 친구는 겁나게 진지한데 친구라는 놈이 저렇게 받아준다. 내가 여태까지 저런 애라 친구였다니. 김탄소알 한심하다. 민윤기는 항상 수 없는 말만 해댄다.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 거야. 나는 민윤기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제 행복해지기 시작했는데 아파서 죽으면 어쩌지. 난 진짜 심각했단 말이야. 그런데 내 대답에 심성 성의껏 대답 안 해준 민윤기에게 삐져있었다. 그래도 나름 미안했는지 민윤기가 방문을 열고 머리만 빼꼼 내밀며 말했다.
'야.'
'뭐.'
'인간이랑 반인반수가 사랑은 할수있었도.'
'?'
'결혼은 아직 불법이야.'
고양이새끼가 여전히 개소리를 한다.
반인반수 골든리트리버 X 주인 정국
G
오늘은 주인이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다. 시험기간이라 많이 바빴었다. 주인이 읽는 책도 두께가 어마 무시했다. 저런 걸 읽는 것도 모자라 공부를 한다니. 나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처럼 주인이가 학교에게 가지 않는 날인데 뭐 특별하게 할 일이 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지만 주인은 아직 꿈나라에 있다. 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아, 잠깐만. 심장이 또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이걸 진짜 주인에게 말해야 하는 건가. 부쩍 가까워진 주인인데 내가 아픈 것 같다고 말하면 날 버릴까. 그냥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내가 너무 아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면 나 혼자 병원에 가봐야지. 나는 턱을 괴어 주인의 얼굴을 바라(관찰) 했다. 진한 눈썹에 오뚝한 코. 눈도 진짜 진짜 큰데 진한 상커풀까지. 그리고 앵둣빛이 나는 얇은 입술. 저 입술로 매일 나에게 뽀뽀해줬는데. 기분 좋았지.
"헐, 나 뭐라는거야."
그때를 감탄하며 생각하던 나 자신이었다. 누가 보면 나 변태인 줄 알겠어. 창피하게 자고 있던 주인 앞에서 이게 무슨 생각이야. 다행히 일어나지 않은 주인에게 감사..
"뭐가 뭐라는거야?"
감사는 지나가던 길고양이에게 주기로 했다.
"아..아니야!"
"궁금하게, 알려주면 안돼?"
"으응.."
"에이. 아쉬워."
"하하, 별거 아니야. 그나저나 언제 일어났어?"
너 얼굴 빨개질 때부터?라며 주인은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어어, 탄이 얼굴 또 빨개졌다. 그.. 그런 거 아니야!
대학생도 이렇게 바쁘구나를 뼈저리게 느낀 나는 정국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오늘을 특별하게 보내거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완벽한 인간도 아니고 뭘 많이 느껴보고 경험을 해봤어야 알지. 쉬는 날에는 그냥 집에 감만 허 있는 게 가장 좋은 건가. 내가 전에 인간일 때 뭐하고 놀았더라. 그게 벌써 몇 개월 전인데. 그냥 산책이나 나갈까.
"주인! 우리 산책하자!"
"산책?"
"응."
"인간 모습으로 나갈꺼지?"
주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버렸다. 저런 질문은 내가 살아오면서 처음 듣는 질문이었다. 어떻게 답을 해줘야 하는 거지. 내가 창피한가? 탄 이의 모습으로 나가야 하는 건가?
"아니..? 인간모습으로 나갈껀데..? 왜?"
일단 밀어붙여야 본전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윤기였다. 이전까지는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방금에 서야 알았다. 아, 몰라. 인간의 모습으로 주인이랑 같이 산책 나가는 거 처음이란 말이야. 탄 이의 모습으로 산책 나가는 거 질려. 내게 이런 용기가 언제, 어떻게 생긴 건지 모르게지만 일단 질러봐.
"아니, 그냥. 인간의 모습을 한 탄이랑 산책 나가보고싶어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랑 산책나가는건 처음이잖아. 그치?"
윤기야, 나 진짜 병원가야하나봐.
*
늦은 점심을 먹고 주인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다. 한걸음 한걸음 주인과 발을 맞춰 걸었다. 걷는 동안 중님과 내 사이에서 오고 간 대화는 별 얘기 없었다. 그냥 주인이 다니는 학교 이야기? 친구 이야기? 덕분에 주인의 학교에 가기로 마음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한숨 돌리려 우린 카페에 들어왔다. 주인은 나에게 뭘 마실 거냐고 물어봤고 나는 아이스티라고 대답했다. 주인을 기다리며 먼저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인이 들고 다니는 책처럼 두꺼운 책과 눈씨름을 하고 있는 남자가 있고 교복은 안 입었지만 누가 봐도 고등학생이라는 걸 알 수 있는 앳된 얼굴을 가진 여학생들도 있었다. 그 무엇보다 내 시선을 강타한 한 쌍의 커플이 있었다. 와, 남자 눈에서 꿀이 떨어지네. 곰돌이 푸우가 아주 좋아할 것 같아.
"어딜 그렇게 보는거야?"
내가 너무 넋을 놓고 봤나? 어느새 주인이 아이스티와 아메리카노를 들고 왔다. 요즘 왜 그러지. 가을 타나. 옆구리가 시린가. 난 아직 못 느꼈는데. 애꿎은 빨대를 휘저었다. 얼음들 이 서로 부딪혀 달그락달그락 나는 소리가 들렸다. 한입 빨았을 때 복숭아 맛의 아이스티가 입안으로 퍼졌다. 캬아- 이게 얼마 만에 마시는 아스티야?
"맛있어?"
"응, 나 진짜 오랜만에 마셔."
주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떨어질 줄 모른다. 자꾸 그런 얼굴로 날 보니까 내가 부끄러워서 주인을 볼 수 없잖아. 내가 너무 어린애처럼 좋아했나.
"많이 마셔. 또 사줄게."
자기가 시킨 아메리카노를 쳐다 보근커녕 아예 날 대놓고 바라본다. 으, 부끄러워. 나는 이 부끄러움을 떨치기 위해 주인에게 말했다
"주인, 내일도 학교가?"
"응, 가야지."
"그랭.."
아쉬워라. 아쉬워. 나도 주인처럼 대학생이였으면 좋겠다.
"아쉬워?"
"응?"
"내가 학교가는거에 아쉽다고 생각한거 아니야?"
"아..아니야!"
"에이, 거짓말. 얼굴에 써져있는데? 나 아쉬워요 하고"
주인은 내 마음을 읽는 초능력이 있는 게 분명하다. 얼굴에 진짜 써져있는 건가? 어떻게 안거야.
"장난치지마, 주인"
"그런데 탄아 나 왜 주인이라고 부르는거야?"
"응? 그거야 당연히 내 주인이니까 주인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정국이."
"...?"
"내 이름 있잖아. 전정국. 정국이라고 불러줘."
그러고 보니 주인이 나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의 이름을 아냐고 물은 날. 그 이후로 나는 주인에게 정국이라고 부른 적이 없는 것 같다. 신경 안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걸 생각하고 있었어?. 귀엽당...
"민윤기처럼 탄이 말고 다른이름 없어?"
"네가 슈가이름이 민윤기인거 어떻게 알았어?"
"...김태형한테 들었어."
"아..그렇구나. 내 이름은 김탄소야."
"..."
"...왜그래?"
"아니 그냥. 탄소야, 앞으로 나 주인말고 정국이라고 불러줘."
지금 당장 병원으로 뛰어가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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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쎄여. 날씨가 갑자기는 아니지만 겁나게 추워졌어여. 하지만 글 속은 겁나게 따뜻한 봄인가봐여. 핑크빛이 돌기 시작한거 보니까(울컥) 아무리 제가 쓰는 글이지만 커플만 보면 울적해져요. 이게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네여(더더울컥) 지금 시험기간이라 더더더더더ㅓㄷ 울컥하는......근데 독감은 아니지만 감기에 걸려서 아주그냥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골든이에여!
정국이를 더 설레게 쓰고싶었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제 손을 원망하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저도 저를 원망하고 있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매화마다 댓글달아주시고 읽어주시는 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려요(하뜌)
사랑스러운 주인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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