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조심히 들어가.”
“네, 선배도요.”
“알았어. 고마워.”
나와 다른 과지만 같은 교양 수업을 듣다 가까워진 한 남자가 있다.
안타깝게도 그 날은 재수가 없었던 건지 필통을 놓고 와 되도 않는 머리로 교수님의 말을 겨우겨우 꾹꾹 눌러 담고 있던 도중 머리가 지끈지끈 아려와 두 눈을 꼭 감고 머리를 짚었다.
가뜩이나 어젯밤 원치 않던 과모임 덕분에 잘 하지도 못하는 술을 퍼마시느라 죽을 뻔 했지만 술집에 들어온 한 취객으로 인해 분위기가 깨진 틈을 타 슬쩍 빠져 나온 탓에 집에 일찍 들어 갈 수 있었다. 한번 취하면 잘 깨지 않은 몸뚱아리에 끙끙 앓다 이럴 때를 대비해 미리 사둔 숙취 음료를 먹고 시끄러운 알람소리에 겨우 겨우 일어났다.
그 운을 어제 다 써 버린 건가, 그렇게 정신없이 준비할 동안 챙길 건 다 챙겼다 생각했는데 왜. 하필. 제일 중요한 필통을 놓고 온 것 인가.
사교성이란 눈곱만치도 없는 나를 알고 계셨던 걸까 그래서 벌을 주시는 건가.
오늘도 맨 뒷자리에서 볼펜 하나 빌려달란 그 쉬운 말 한마디 못하고 쩔쩔매고 있다.
“저기.. 어디 아파요? “
그때, 아무도 없던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더니 대뜸 날 보고 아프냐고 물어본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세요?“
”아.. 저.. 그게..“
”네?“
”어디 아프냐고요. 왜 잡아 뜯어요. 머리“
”아..“
사실 친구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가 부끄러움 많이 타 친해지는 게 어려운 것일 뿐.
처음 보는 남자였다. 웃기겠지만 내 3년 대학 생활 중 처음으로 설렘을 느낀 첫 남자.
진심어린 말투와 꽤나 진지한 표정에 나는 정말 내가 심하게 아픈 건 줄 알았다.
고작 필통 하나 안 가져 와 나 자신을 자책 하던 중이었는데 말이다.
대답을 안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서 그 남자와 나의 눈은 오랫동안 맞물려진다. 꽤나 깊은 사연이 있었던 사이였던 것처럼. 그렇게 아주 오래.
”..나도 지금 엄청 부끄러운데. 대답, 안 해줄 거예요?“
”아.. 사실은.. 볼펜.. 때문에..“
이 사람의 표정 변화가 없다.
”필통이 없어서...“
망했다. 살면서 이렇게 쪽팔렸던 적이 있었나. 순간 얼굴에 열이 확 올라 지끈 거리던 머리가 더 아파오기 시작했다. 슬쩍 그를 쳐다보니 웃는다. 아주 미세하지만 웃고 있다.
내가 웃겼던 걸까, 한심했던 걸까. 후자가 맞겠지
가만 보니 웃는 모습이 이렇게 예쁜 남자는 처음 본다. 조그마한 입으로 조물조물 꿈틀거리는 입술이 꽤나 귀엽다.
”이상하다. 왜 안 부끄럽지..“
”..네?“
입술을 넋 놓고 쳐다보고 있다 이내 그 입에서 나오는, 귀여운 입술과는 상반되는 허스키한 목소리가 튀어나와 놀라 움찔거렸다.
수업 내내 느껴지는 눈빛에 도무지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짧은 시간동안 꽤나 많은 일이 일어난 거 같아 혼란스럽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교양 수업이 끝나고, 펼치지도 않았던 책을 다시 가방 속에 넣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같이 먹을래요?“
깜짝 놀라 오장육부가 배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다.
이 와중에도 이상한 효과음을 저 남자 앞에서 냈다는 거에 더 큰 걱정거리를 두고 있는 내가 너무 이상했다.
”안 갔어요..?“
”내가 왜 가요. 그 쪽이랑 밥 한번 먹으려고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아니 대체 왜? 왜 나랑 같이 밥을?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는다. 몇 년 동안 나를 짝사랑 해온 사람처럼 구는 남자를 앞에 두고 서 있자니 궁금증이 마구 쏟아져 나온다. 성격상 물어보지 못하는 나도 참 답답하다.
”같이 먹어줄 거죠?“
ㅡ
너무 오랜만에 와서 죄송하네요..
사실 부석순들의 첫키스 로망에 대해 살짝 짧은 글만 올리고 사라지려 했지만
이렇게 또 순영이 버전에서 일을 크게 벌리고 마네요 허허
내용이 좀 두서 없어도 이해해 주세요 글의 주제는 첫 키스 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