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차였습니다.
-그리고 내일도 차일 예정입니다.
*브금 필수
01
"ㅈ,지민아 좋아해"
"난 너 싫어."
난 너 싫어 라는 말을 듣고 터덜터덜 지민이의 반을 나왔다. 지민이의 반 아이들은 무참히 차이는 내가 이젠 익숙한듯 개의치 않고 자신이 하던 일들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처음엔 모두 지민이와 나를 가운데에 두고 둥글게 감싸 고백을 받아주라며 외치곤 흥미로운 눈으로 우릴 보던 그들도 이젠 나의 고백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그리고 무참히 거절 될걸 알았는지 이젠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민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난 너 싫어 라는 말만 남긴채 다시 친구들과 하던 얘기들을 이어갔다. 축 쳐진 어깨로 내 교실로 들어와 가방 안쪽 작은 주머니에 들어있는 다이어리를 꺼내들었다. 필통에서 하나의 볼펜을 꺼내들어 다이어리를 펼쳤다. 오늘 날짜에 엑스 표시를 그었다. 앞에 앉아있던 현주가 빼곡히 엑스가 쳐져있는 내 다이어리를 보며 한마디 했다.
"야, 무섭다. 왜 맨날 다이어리에 엑스를 긋는거야"
"야 너 모르냐? 탄소 박지민한테 고백 차일 때마다 저렇게 오늘 날짜에 엑스 긋잖아"
"언젠가 이 다이어리에 엑스가 아닌 동그라미가 쳐질 그날을 위해 엑스를 긋는거야"
현주를 비롯한 내 친구들은 다이어리와 나를 번갈아 보며 혀를 차기 바빴다. 그때 현주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뭐라고 하면서 찼는데?' '난 너 싫다고 그랬어' '넌 참 속도 좋다' 현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난 너 싫다로 거절한거면 괜찮은 거절이었다. 중학교 때 였나 한참 지민이가 사춘기를 겪을땐 내게 누구세요 라며 거절을 한적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난 너 싫어는 예의 있는 거절이었다. 그에 한해서지만. 이쯤 되면 언제부터 고백을 했는지 궁금해져 올것이다. 흔하디 흔해 빠진 사랑이야기라 지루 할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그 흔하디 흔해 빠진 상황의 연속들이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 다니던 유치원을 옮기게 되었다. 처음 유치원을 갔을때 엄만 지민이의 아줌마와 아는 사이여서 나와 지민이가 친해지길 바랬었다. 새로 옮긴 유치원으로 등원을 하면서 신발장에서 처음 지민이를 마주했다. 엄마와 지민이네 아주머니는 둘이 친하게 지내라며 내 손과 지민이의 손을 겹쳐주었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작은 긴장에도 쉽게 손에 땀이 차던 나는 사내아이와의 첫 악수에 땀이 차고 말았다. 맞잡은 두손에 축축한 손 땀이 느껴졌는지 지민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으 축축해.."
"..."
창피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때도 지민이는 귀엽게 생긴 얼굴과 다르게 까칠했다. 결국 축축하다는 지민이의 말에 내가 먼저 지민이의 손을 놓아버렸다. 엄마와 아줌마는 서로 얘기 하기 바빠 우리를 신경쓰지 않았다. 이때까진 내가 지민이를 좋아하는게 아니었다. 사실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손에 땀이 자주 나는 것이 콤플렉스 였는데 그것을 저 사내아이가 꼭 짚어 불쾌 하다는것을 표현 했다는 것에 첫인상은 별로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항상 놀이활동을 할때마다 지민이와 짝이 되었다. 어쩔수없이 축축한 손으로 맞잡곤 했었는데 그럴때마다 지민이는 항상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윽, 축축해' 그 말이 익숙해질줄 알았지만 익숙해지긴 커녕 그 한마디가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러던 어느날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이 날이 내게는 역사적인 순간과도 같았다. 2열로 줄을 서서 짝과 함께 손을 잡고 선생님의 지도하에 따라가는거 였는데 항상 활동만 하면 짝이 되던 지민이와 오늘은 짝이 되지 않았다. 대신 사슴반에서 가장 덩치가 있는 사내와 짝이 되었는데 짝과 손을 잡고 선생님을 잘 따라오라는 말에 어쩔수없이 손을 맞잡았다. 하지만 이 아이도 지민이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뒷줄에 있던 지민이가 자신의 짝과 손을 놓고 앞줄에 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양손을 허리춤에 두더니 자신보다 족히 두배는 커보이는 내 짝에게 말했다.
"뭐가 축축해 너는 손에 땀 안나냐?"
"..."
"그렇게 싫으면 나랑 짝 바꿔."
씩씩거리며 말하는 지민이에 덩치 큰 사내는 당황 했는지 이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민이는 앙칼지게 그 사내에게 그렇게 싫으면 나랑 짝 바꾸자며 내 짝을 자처 했다. 덩치 큰 사내와 맞잡은 내 손을 풀더니 자신의 손과 맞잡는 지민이었다. 정말 말 같지도 않지만 그때부터 였던것 같다. 내가 지민이를 좋아하게 된게. 그 뒤로 난 지민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꽁꽁 숨기며 혼자 속앓이만 해왔었다. 초등학교 졸업식에 고백하려고 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난 중학교때 부터 지민이에게 시도때도 없이 고백을 해오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말이다. 초등학교 때 용기가 없던 내가 갑자기 용기를 가지고 중학교 때 고백을 할수있었던건 당시 최고로 인기 있었던 드라마에 한 장면 때문이었다.
'열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어요'
이 대사를 듣자마자 용기를 내었다. 물론 지금까지 열번이 아니라 수백번 고백을 해도 넘어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넘어올거라 나는 굳게 믿는다. 그때 내 책상 위에 있던 다이어리가 쏙 빠져나갔다. 다이어리로 시선을 옮기니 한 남자아이가 내 다이어리를 뺏어들고 있었다. 그 뒤엔 지민이도 있었다. 지민이는 우리반에 친구를 보러 놀러 온듯 보였다. 하지만 같이 따라온 지민이의 친구는 지민이에게 장난을 걸고 싶었는지 내 다이어리를 뺏어들어 놀리기 시작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다이어리를 뺏으들려고 했지만 그러기엔 그 아이의 키는 너무 컷다. 아이들은 나와 다이어리 그리고 지민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버렸다.
"와 이것 봐라 지민아, 온통 엑스 투성이야."
"아 돌려줘. 달라고 내꺼야"
다이어리를 낚아채려고 힘껏 뛰어 잡아 보려고 했지만 허공에 손을 휘휘 젓는 꼴이었다. 그 남자아이는 지민이게 엑스자로 투성이가 된 내 다이어리를 보여주며 낄낄 거렸다. 지민이는 화가 났는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졌다. 그리곤 그 남자아이에게서 다이어리를 뺏어들어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던진 이 곳에서 부터 쓰레기통과의 거리가 떨어져 있어서인지 쓰레기통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다이어리는 벽을 맞고 바닥으로 내팽겨쳐져버렸다.
그리곤 지민이는 내게 한발 한발 다가와서
"쓸데 없는짓 좀 하지마, 쪽팔리니깐."
내 마음에 또 다른 스크래치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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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담을 읽는건 아마 끝까지 읽으셨다는거죠? 재미없는거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암호닉 신청 받아요
설마 아무도 안 신청하면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