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일 - 안아줘
[EXO/징어] 헤어집시다, 우리 (부제: 한 조각의 나약함) 02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온 몸으로 느껴지는 초조함을 애써 숨기려, 창 쪽으로 몸을 튼 나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에만 시선을 집중했다. 머릿 속이, 엉망 진창이였다. 어쩌자
고 이 차를 탔을까. 이제와서 어떻게 내려달라고 말해야 하나. 최소한의 접촉으로 끝내려고 했던 일적인 관계였다. 촬영 내내 끈질기게 따라 붙는 시선들을 몰랐던 것이 아니였
지만, 그저, 이 일이 끝나면. 외국으로 다시 나가던지, 극단적이라고 말해도 방법은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나였다. 찬열은 계속해서 아무 말 없이 핸들만
붙잡은 체로 운전에만 집중했다. 이대로는 안되. 마침, 엄마의 집이 있는 동네로 들어가는 코너가 보였다. 입술을 짓이겨 물었다. 여전히, 무엇인가를 끝내야 한다면 그건 내가
되어야만 한다.
" 세워줘. "
웬일인지, 찬열은 순순히 차를 멈추어 세웠다. 안전벨트의 잠금을 해제한 내가 운전석의 잠금을 해제하려는 찰나,
달칵 -
또다시,
달칵 -
몇 번이고 반복된 실랑이에 나는 지친 숨을 내쉬며 몸을 젖혔다.
" 내릴거야, 잠구지마. "
" 나 한테 할 말이, 고작 그런 것 뿐이야? "
" ....... "
" 어디있었어. "
" ....... "
" 뭐했어. "
" 찬열아. "
" 8년이라는 시간동안, 전국을 뒤져 찾아도 못 찾을 정도로 어디에 꽁꽁 숨어있었냐고!! "
선한 눈을 가진 찬열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 ........ "
" 지금 이 상황이, 넌 아무렇지도 않은 가 보다? "
" 나, 내려. "
어떠한 답도 줄 수가 없었던 나는, 그저 이 상황에서 도피하고자 다시, 운전석의 잠금을 해제했다.
" 루한은, "
이어진 낮은 음성에, 일순간 모든 사고회로가 멈춘 듯 했다.
" 루한은 모르지? 너 돌아온거. 하긴, K 멤버들이 숙소에서 말했을 지도 모르겠네. 그런데 내 전화기가 이렇게 얌전한 걸 보면 아직 모르나보다. "
" ....... "
" 예나 지금이나, 병신같지. "
" 박찬열. "
" 난, 왜 항상 이런 순간들에 있어서만 너한테서 우선이야. 항상, 모든게 내가 먼저였는데 왜 항상 결정적인 순간들은 루한, 그 새끼가..!! "
" 박찬열!! "
점점 고조되는 듯한 찬열에 음성을 멈춘 것은 잔뜩 화가 정제되어 있는 나의 울부짖음이였다. 찬열이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 그 사람, 너보다 두 살이나 많고, 형이야. "
" ........ "
" 말 조심해. "
씹어뱉듯 내 입에서 나온말에 찬열의 인상이 보기좋게 구겨진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내리려던 나의 어깨가 돌려진 것도 아주 찰나였다.
" 아..! "
" 내 앞에서, "
" ....... "
" 한 번만 더 그 새끼 편들어. "
" 찬열아. "
" 나도 내가 어떻게 돌지 모르니까. "
그 말을 끝으로, 찬열이 차의 모든 잠금을 해제했다. 나는 눈물이 차오려고 하는 것을 입술을 깨물어 애써 참으며, 찬열의 차에서 내렸다. 울지마, 무너지면 안되. 뒤에서 바라
보고 있음이 분명할 터인 찬열이를 생각하며, 위태로운 걸음을 다잡았다. 오랜 시간, 단단이 굳어지고 무뎌졌던 마음은 찬열의 입에서 둥글게 발음되어 나온 이름에 보기좋게
무너지고 말았다. 코너를 돌아, 동네의 입구에 다다르자 핸드백에서 휴대전화를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 엄마. "
' 딸, 마쳤어? '
" 응. 나 지금 거의 다 왔어. 빈이 데리고 내려와. "
' 그래, 근데 너 우니? '
" ...아,아니. 울긴, 내가 왜 울어. "
' 목소리가 안좋아서 하는 말이지, 딸 괜찮아? '
" 아, 피곤해서...피곤해서 그래. 오늘 일이 많았어. "
멀리, 파란색 지붕을 가진 주택의 대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중년의 여성과, 그녀의 손을 꼬옥 잡은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엄마아아아아아!! 아이의 낭랑한 목소리가 가
득 울렸다. 통화를 끊고, 전화기를 집어 넣은 징어가 무릎을 접어 앉고는 팔을 활짝 벌렸다. 중년 여성이 손을 놓아주자 마자 아이가 씩씩하게 두 다리를 펄쩍이며 뛰어왔다.
이내, 품 안에 가득 들어차는 온기에 징어가 아이를 꼬옥 들어 안았다.
" 엄마아!! 다녀오셨어요오!! "
" 아드을, 할머니 말 잘듣고 있었지? "
" 응응!! 당연하죠!! 헤헤 "
오물거리는 아이의 입에 짧게 입맞춤한 징어가, 다가오는 엄마를 향해 안부인사를 전한 뒤 손을 흔들었다.
" 엄마, 갈게. 이만 들어가봐요. "
" 그래, 집에 도착하면 전화하고. 밥 잘 챙겨먹고 다니는 거 맞지? "
" 내가 뭐 어린앤가.. 밤 날씨 쌀쌀해, 들어가요 엄마. "
" 그래. "
징어가 몸을 돌려, 품 안의 아이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귓가에 재잘거리는 사랑스러운 음성을 들으니 오늘 하루, 고단했던 모든것이 사라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자. 그저, 빈이만. 빈이만 생각하자. 빈아, 엄마는..아무것도, 어떤것도 필요 없어. 그저, 너만. 사랑스러운 나의 아이..빈이 너만 있으면..그러면 되.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한번 더 입맞춤을 한 징어가 품에서 사라질까 아이를 다시 꼬옥 끌어안았다. 징어의 등 뒤로, 헤드라이트의 불을 밝힌 자동차가 매끄럽게 골목을 빠져나
갔다.
**
그 새, 잠이 들어버린 아이를 자신의 침대 옆자리에 조심스레 눕힌 징어가 오른 쪽 손목을 주물렀다. 습하다고 느껴졌는데, 내일 비라도 올 것인지. 오래전에 나은 상처는 지독
하고 끈질기게, 자신의 존재를 잊지말라 끈임없이 아우성쳤다. 손목을 돌려가며 스트레칭을 하던 징어의 귓가로, 휴대폰 벨소리가 가득 들어찼다.
- Rrrrrrr
시끄러운 벨소리에 혹여 아이가 깰까봐 징어가 재빠르게 휴대전화를 잡아채어 귓가에 대었다.
" 여, 여보세요. "
잠귀가 밝은 아이인지라, 시끄러운 벨소리가 찰나, 달콤한 꿈에 침범했던듯 아이의 인상이 살짝 찡그러졌지만, 이내 입을 오물거리며 곱게 펴졌다.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
아이의 앞머리를 조심스레 쓸어넘기던 징어가 반복해서 말했다. 뭐지, 장난전화인가. 번호를 확인하고 한번 고개를 갸웃거린 징어가 다시 말했다.
" 말씀 안하시면, 끊겠습니다. "
' 징어야. '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징어의 손길을 멈추게 한 것은 수화기 너머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남성의 목소리였다. 징어가, 휴대전화를 다시 잡아 들어 귓가에 가져다 대
었다.
' 징어야. '
" ...누구세요. "
' 나, 민석이 오빠야. '
징어가, 휴대전화를 들고 있지 않은 손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 준면이 한테, 들었어. 널 만났다고. '
" ...오,오빠. "
' 지금 좀 만나고 싶은데, 괜찮을까? '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요청에, 징어가 동작을 멈추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빈이를 두고 나갈 수도, 민석과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 ..아뇨, 제가 지금 나갈 상황이... "
' 그럼 내가 갈게. 어디야. '
맞받아쳐오는 민석의 대답에 징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다급하게 대답했다.
" ..아뇨, 안되...어,그게. "
민석이 온다면, 빈이가 노출되는 것은 시간문제야. 징어의 손이 초조하게 떨려왔다.
' 혹시나, 루한 때문이라면... '
" ....... "
' 급하게, 중국 스케줄 갔어. 걱정하지마. '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민석의 목소리가 잔뜩 떨려왔다. 잠 든 빈이의 얼굴을 바라본 징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 ..만나요, 어디로 나갈까요? "
김민석. 준면과 함께 자신을 아껴주었던 오빠. 그리고, 루한의 가장 친한 친우. 그와의 약속 장소를 향해, 떨어지는 징어의 발걸음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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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왕, 자고 일어났더니 댓글이 뙇!!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꾸벅)
많은 분들께서, 찬열이가 남주냐고 물어봐 주셨는데 남주 맞습니당. 하지만, 남주가 한명뿐이면 재미 없죠?
소설 전개에서 알수 있으시다 시피 징어는 엑소 모든 사람들과 아는 ㅅㅏ람이지요.
4편? 부터 과거 이야기가 전개될 듯 싶습니당.
헤시우는 현재- 과거 -현재 순으로 전개되어요! 그리고, 소설 중간중간에 깨알같은 복선이 있으니 찾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합니당. (별 볼일없는 복선이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