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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헝거게임 출전자가 결정되겠구나" 홍빈의 눈가가 떨렸다. 아버지인 칼리파 2세의 말에 홍빈은 작게 '네'라고 대답하였다. 홍빈은 칼리파 3세로, 칼리파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인 1순위 왕위 상속자였다. "헝거게임에 나가거라." 홍빈의 아버지는 늘 근엄하고, 기품이 있는 사람이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그는 홍빈에게 내려와 홍빈의 턱을 손으로 잡아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대답." "예, 아버지. 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홍빈에게 있어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게 한 살인자일 뿐이었다. 어린 나이였던 홍빈은 신음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고, 어머니의 목을 조르며 웃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홍빈에게 있어 그의 아버지는 악마이자 살인자였으며, 덤빌 수 없는 산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출전을 얘기하니,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홍빈의 얼굴을 놓았다. "나의 아들을 위해 전쟁에서 쓸 칼을 만들어야겠구나. 자네는 어서 최고급 칼을 만들 원석을 구해보도록 하거라." 아버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던 홍빈은 아버지가 자신의 앞에서 벗어나자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들의 승리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겠구나. 꼭 승리하여 칼리파 가문의 위엄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예, 아버지. 칼리파 가문의 명예를 걸고 꼭 승리하여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와의 조식을 가진 후, 방으로 돌아온 홍빈은 자신의 앞에 놓여진 물잔을 바닥으로 던졌다. 곧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물잔이 파편과 함께 깨졌다. 그 소리에 놀란 하녀가 얼른 홍빈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파편을 치우던 그녀를 쳐다보던 홍빈이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그대로 유리파편에 하녀의 얼굴을 가져다되었다.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치는 하녀를 보며 웃는 홍빈은 마치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의 모습과 다를바없었다. 하녀의 비명에 급하게 달려온 집사는 그런 홍빈의 손에서 하녀의 얼굴을 떼어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정도로 생채기가 나있는 상태였다. 집사는 아무 말 없이 하녀를 데리고 나갔고 다시 들어와 피와 물이 섞여 지저분해진 컵의 파편등을 치웠을 뿐이다. 자신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는 늙은 집사를 본 홍빈은 알 수 없는 쾌감에 사로잡혔다, 자신은 누구보다 강했고 화려했다. 자신 앞에서는 그 누구도 고개를 들지 못했고, 늘 자신 앞에 서있는 이들은 벌벌 떨 뿐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앞의 자신은 늘 보잘 것 없었다. 아버지의 명령에 자신은 늘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올 해 헝거게임은 오로지 홍빈만을 위한 게임이었다. 자진지원을 통해 1구역 주민들의 신임을 얻고, 마지막 생존자가 된다면 홍빈의 힘을 무시할 자는 그 누구도 없을 것이었다. 홍빈은 남의 생각까지 읽을 줄 아는 아버지의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은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 화가 났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이 게임에서 이겨야했다. 승리만이 자신을 대 제국 카타르의 왕위로 인도해 줄 것이다. * 제 2 구역 : 이재환(켄, 22)
재환은 몇 일 전부터 계속되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페로나의 3대 후계자, 재환은 제 2 구역을 다스리는 아버지의 밑에서 모자랄 것 없이 자랐다. 자신의 가문은 50여년 전 칼리파 가문과의 권력 다툼 패배 후 2구역을 맡게 되었다. 재환의 할아버지였던 페로나 1세는 자신들 가문의 패색이 짙어지자 칼리파 가문과의 협력을 통해 가문을 지켜내었다. 조부의 현명한 판단은 우리 가문의 지속과 더불어, 제 2구역을 다스리게 하는 영광을 불러왔다. 인자하고, 늘 자신이 다스리는 주민을 위해 사시는 아버지는 제 2 구역 뿐만 아니라, 제 1 구역 내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훌륭한 관리자였다. 칼리파 2세가 그런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소문은 이미 소문이 아니라 기정 사실화가 되가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몇 번의 반갑지 못한 손님들이 찾아왔었다. 아버지의 목숨을 노린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1급 비서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고문을 통해 누구의 첩자들인지 알고자 했지만, 그들은 절대 입을 열지 않았다. 분명 잘 훈련된 정예병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이란 때로는 정확한 증거보다 탁월했다. 재환은 그자들이 제 1 구역 칼리파 가문의 사람들일 것 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 짐작은 헝거게임 참가자로 자신이 지정 되면서 사실이 되었다. "제 2 구역의 헝거게임 참가자는.. 켄입니다." 가명을 쓰는 헝거게임 특성상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가장 앞 자리에 앉아 투표 결과를 지켜보았고, 사회자의 입에서는 자신의 이름이 불렸다. 자신과 아버지를 죽이기 위한 칼리파 가문의 음모. 아마 저 투표 용지를 다 펼쳐보아도 제 이름 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 시민들은 모르겠지만 각 구역의 관리자 집단에게는 1구역은 왕위 계승자인 H가 자진참가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자신이 H의 희생양이 되리라는 것을 재환은 모를리 없었다. 재환의 옆에 앉아있던 재환의 어머니는 재환의 이름이 불리자 그대로 힘이 풀린듯 휘청거렸다. 아버지는 의료진을 불러 어머니를 모시고 가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재환의 손을 잡았다. "잘하고 오거라. 꼭 살아 돌아오도록 하거라. 아비도 살아서 너를 기다리마." 아버지는 재환을 꽉 안았고, 재환은 그런 아버지의 품에 안겨 꼭 승리를 안겨드릴 것 임을 다짐했다. 죽이지 않는다면 자신이 죽어야 했고, 자신이 죽는다면 그건 곧 아버지의 죽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헝거게임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였다. * 제 3 구역 : 정택운(레오, 24)
"제 3 구역의 헝거게임 참가자는 레오입니다." 택운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단상으로 향했다. 그냥 무료한 일상에 한가지 새로운 일이 생겼다 정도였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 울고있는 어머니를 봤지만 딱히 슬프진 않았다. "3을 센 후 자진하는 분이 안계시다면 바로 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3 2 1 "저희 3구역에 영광을 가져다 줄 헝거게임의 참가자는 레오입니다." 자진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안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누가 자신의 목숨을 걸어 이 위험한 레이스에 참여하겠는가. 택운은 처음부터 이 헝거게임이라는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멀쩡한 청년들이 이깟 유희에 목숨을 걸어야하는지도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이왕 출전하였으니라는 생각을 가졌다. "레오군, 앞으로 3일 후 레오군의 집으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단상 위에서서 택운에게 여러가지 유의사항을 알려주던 사회자는 레오에게 꽃다발을 건내주며 헝거게임의 출전을 축하했다. 백합이 아닌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건가라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택운아." 집으로 돌아오자 택운의 어머니는 바로 침실로 향했다. 그런 어머니를 쳐다보던 아버지는 나즈막히 택운의 이름을 불렀다. "예, 아버지." "잘하고 오거라. 그리고 꼭 살아서 오거라." 그런 아버지의 말에 택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적부터 택운은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했다. 그런 택운에게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택운 또한 딱히 친구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택운에게 있어서 일상은 무료함의 연속이었다. 자신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무채색이라고 생각했다. 헝거게임 역시 또 다른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택운은 그저 어릴 때부터 사용했던 검을 정비하고, 배웠던 검술을 익히며 3구역에서의 마지막 3일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