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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ura _ arcane
♥암호닉♥
댜댜 세일러문 이불킥 꼬미 로로 민형도령 딱풀 길성이 도룽 미뇽 핫초코 약간
아
가
씨
::
05
“ 저.. 아가씨. ”
“ 응? ”
“ 아, 아니에요. 책 읽어 드릴게요. ”
고개를 갸웃하는 아가씨를 애써 외면하며 책을 꺼내들었다. 처음 아가씨에게 읽어드린, 나에겐 의미가 더 깊어진 책을 펼치려다 표지에서 손길이 멈추었다. 대부분의 책에는 책 표지에 제목이 있지 않던가, 책을 뒤집어 뒷면도 살펴보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책의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저자도 적혀있지 않았다. 나의 행동을 유심히 보던 아가씨가 물었다.
“ 왜 그러니? ”
“ 생각해보니 이 책의 제목도 모르고 아가씨께 읽어드리고 있었어요. 아무리 찾아봐도 제목이 쓰여있질 않네요.. ”
“ 그러면 너가 제목을 지어봐. ”
“ 제가요..? ”
“ 그래. 책을 다 읽고 나서 제목을 지어주면 되잖아. ”
아가씨의 책에 내가 감히 제목을 지어본다라.. 마음 한 켠이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가씨는 어느새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편안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내려 갔고 시간이 흘러 아가씨의 뒤척이는 소리가 줄어들 때 책을 덮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아가씨가 눈을 떴다. 혹시 나 때문에 깨어나신 건가 싶어 나는 다시 황급히 자리에 앉았다.
“ 주무신줄로 알았는데... ”
“ 민형아. ”
아가씨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의 기억이 맞다면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었다. 아가씨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 덕에 정돈되었던 아가씨의 머리칼이 흩어져 조금 헝클어진 모습도 나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아가씨와 나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 누군가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 한다면, 어떡할래? ”
“ 혹시.. 사람도 되나요? ”
“ 응, 사람이던 물건이든 간에. 누군가 너에게 그것을 빼앗아가려 해. 그러면 넌 어떻게 할 거야? ”
아가씨의 물음에 나는 상상을 했다. 꽤나 긴 시간이 흐르고 나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괴로워졌다.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아가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바보야, 내가 잡혀가는데 그렇게 가만히 있으려고? ”
“ 아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
손사래까지 치며 화들짝 놀라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아가씨는 풋- 하며 웃음이 터지셨다. 나는 머리끝까지 열이 오른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가씨는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발가숭이가 된 것 같았다.
“ 그럼? 어떡할 건지 어서 말해봐. ”
“ 막아야죠.. 무슨 일이 있어도. ”
“ 그렇다면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니? ”
용서라는 단어에 나는 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용서.. 나는 조용히 용서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용서해선 안되는 일인데, 왜 이렇게 입이 떨어지질 않을까.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답답한 마음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무릎 위로 질끈 쥐어진 내 두 손 위로 아가씨의 고운 손이 올라왔다. 고개를 들어 어느새 내 눈앞에 가까이 다가온 아가씨를 보았다. 잠시 넋이 나가있는 와중에 아가씨의 손이 내 얼굴을 쥐었다. 두 뺨 위로 내려앉는 보드라운 감촉에 나는 흠칫하고 갑작스러운 이 상황에 어느 곳을 봐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 다시는 나쁜짓을 못하게 벌을 주고, 절대로 용서하면 안되는거야. ”
“ ..... ”
“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멀리, 아주 멀리 벗어나야해. 내 말 알아들었니? ”
“ 아가씨도 같이-.. ”
“ 응, 나도 같이. ”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답했다. ‘ 네 ’ 나의 대답을 듣고 아가씨는 그제야 감싸 쥔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 그만 가보라는 아가씨의 말에 돌처럼 굳었던 몸이 마법처럼 풀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와 몇 걸음 걷다 멈추어 두 볼을 만져보았다. 내 손은 거친데 아가씨의 손은 어찌 그리도 구름처럼 보드랍고 고울까.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오늘은 왠지 그 웃음을 억지로 멈추고 싶지 않았다.
* * *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고 일찍이 동영과 복희가 외출을 마치고 돌아왔다. 두 사람 모두 양손 가득 짐을 갖고 들어왔다. 동영과 복희는 서로 산 새 옷과 장신구를 자랑하며 입어보고 좋아했다. 나는 그런 둘을 보며 함께 좋아했다. 그러던 중, 나를 발견한 동영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 너 어디 아픈거 아니지? ”
“ ...네? 아뇨.. ”
“ 아까부터 혼자 웃고있길래, 음-.. 좀 이상한데? ”
동영은 내 이마를 짚어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저 웃으며 동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복희는 나에게 다가오며 모자를 씌워 주었다. ‘ 동영이 너 주려고 샀어.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검은색 베레모였다. 모자가 굉장히 마음에 들던 나는 나를 위한 선물이 더 있다는 동영의 말에 종이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에 집히는 것을 들었다.
“ 이.. 이게 뭐야? ”
“ 어머 얘, 그건 아가씨 거야! ”
아가씨라는 말에 나는 빠르게 손을 놓았다. 복희는 나를 보고 웃으며 이름 모를 그것을 들어 자신의 몸에 대보았다. 그 광경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고 비웃는 듯한 동영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 하하하, 민형이 귀 빨개진 것 좀 봐. ”
“ 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이건 코르셋이라구 ”
“ ...그게 뭔데. ”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복희를 보았다. 아가씨의 옷이라면서 복희는 열심히도 그것을 본인이 입어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복희가 못마땅했지만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 이걸 이렇게 조이면.. 짠, 허리가 가늘어 보이게 해주는거야. ”
“ 복희 너가 하니까 되게 별로다. ”
“ 뭐, 뭐어-! ”
나의 말에 복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화를 냈다. 나는 그런 복희를 등지고 방을 나왔다. 빗자루를 들고 집을 나와 위에 걸린 종을 울렸다. 어느새 이곳도 가을이 다가온다. 높다란 하늘을 보며 어젯밤 아가씨에게 읽어주었던 책의 한 구절을 생각해보다 하나둘 빨갛게 단풍이 물드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낙엽이 지어 한겨울에 휑한 모습이어도 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푸른 옷을 입는 나무였다.
[ 소년의 추억 속에 소녀가 낙엽처럼 지어 떨어져도 푸른 새 잎이 허전한 그 자리에 다시 돋아날 것을 알기에. - 제목, 작자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