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호찡] [낑깡] [8월의 겨울] [봄꽃] [열시십분] [여름밤] [호시 부인] [디케이] [쑤하진] [아니아니] [슝] 캔버스와 물감 [물감 여덟 방울] "김세봄, 이게 뭐야?" "아, 이번 대회 팸플릿.." 점심시간, 늘 그렇듯 우리 반의 뒷문을 거세게 열어젖힌 부승관이 반 안으로 들어오더니, 수업 시간 내내 연신 만지작 거린 덕에, 여기저기 주름이 잡힌 팸플릿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어왔다. 부승관의 물음에 아차, 싶은 내가 나지막이 대회 팸플릿이라 말하자. 동그랗게 뜨였던 눈이 더욱 커졌다. "아, 부승관 너 혼자 뛰어가버리면 어ㄸ.." "야야, 이지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열려져 있는 뒷문으로 부승관 때문인 듯한 신경질적인 이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부승관은 개의치 않은 체 이지훈이 말을 다 잇기도 전에 아직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팸플릿을 들고는 이지훈에게 향했다. "김세봄 대회 나간데 대회!" "그게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야?" 자신에 손에 들려진 팸플릿을 이지훈 눈앞에서 힘차게 흔들며 외치는 부승관의 행동에, 이지훈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부승관의 손에 들려진 팸플릿을 빼앗았다. "누가 보면 김세봄이 처음 대회 나가는 줄 알겠어" 빼앗은 팸플릿을 가볍게 훑어보더니 이내 나에게 팸플릿은 건네는 이지훈이었다. 건네진 팸플릿이 구깃 했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스러워?" 아, 권순영이다. 아직까지도 닫히지 않았던 뒷문을 닫고 들어오는 권순영의 모습에 일순간 소란스럽던 말소리가 멈췄다. "어, 어! 권순영! 네가 이것 좀 봐봐" 무슨 일이냐 묻는 권순영의 말에 부승관은 자신의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짝, 소리를 내더니 내 손에 들려있던 팸플릿을 가리키며 권순영을 불렀다. 그리고 그런 부승관의 모습에 권순영은 의아해하며 걸어와 내 손에 들린 팸플릿을 바라보았다. "대회 팸플릿이네?" 알았다는 듯 말하는 권순영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부승관은 옆에서 주먹을 쥔 자신의 손으로 가슴 부근을 통통, 약하게 내리쳤다. "다들 반응이 왜 이렇게 미적지근해?" "너는 무슨 애가 대회 하나 가지고 이 난리야, 너도 대회 한두 번 나갔던 아니잖아. 그리고 김세봄이는 너보다 훨씬 많이 나갔었거든?" "아, 세봄이 배고프겠다. 너희 둘 다 그만하고 급식실이나 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민 부승관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이지훈을 중재시킨 건 걱정된다는 듯 날 바라보던 권순영이었다. 권순영의 말에 그제야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두 시선에 나는 그저 옅게 웃어 보였다. "하여간, 둘 다 정말 무드가 없어, 무드가. 김세봄, 나라도 응원의 말해줄게. 파이팅!" 닫힌 뒷문을 열고 나가며 혀를 쯧쯧, 차던 부승관은 몸을 살짝 돌려 나를 보더니 두 손을 주먹 쥐고는 '파이팅' 이라는 소리와 함께 팔을 들어 올렸다 내리는 행동을 취했다. 아까 그렇게 흥분하던 게 내 응원 때문이었나, 머릿속에 드는 생각에 설핏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 듣는 진심 어린 응원. 가슴께가 간질간질해지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 "왔어, 세봄아?" 본관 현관 앞 벽에 기대어 서 있던 권순영의 몸이 일으켜졌다. 손에 쥐어져 있는 핸드폰의 화면을 끄며 나를 바라보는 권순영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대회 나간다며?" 길을 걷는 중 들려오는 권순영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권순영의 시선과 마주쳤다. 날 또렷이 바라보는 시선에, 저절로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응, 곧 대회 준비 들어가려고" "이제 바빠지겠네" "안 그래도 바빠지기 전에 부승관한테 줄 선물 하나 만들려고" "선물?" "응, 사실 처음 만났을 때 너처럼 그때 그 그림 좋아하길래, 저번에 생각나서 그렸었는데 아직 미완성이거든" '대회 준비 전에 얼른 완성해서 줘야지' 그렇게 말하며 집에 놓여 있는 작은 캔버스를 떠올렸다. 이제, 정말 줄 수 있는 그림. 벌써부터 부승관의 표정이 눈앞에 선했다. 볼록히 귀엽게 나온 광대가 올라가고, 앙 다문 입술이 벌어지며 둥글게 변할 것이다.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과 함께. "그러고보니 이지훈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이지훈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 "나는 네가 그려주는 거면 다 좋은데" "어...?" 부승관의 생각이 끝마치자 이어서 떠오르는 이지훈의 모습에 이지훈에게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생각을 해봤지만. 부승관처럼 이지훈이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 걸 알 리가 없었다. 아차, 싶은 생각에 권순영에게 물었지만 뒤이어 들려온 권순영의 대답에 나는 그저 바보 같은 소리와 함께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부승관도, 이지훈도. 네가 주는 거면 뭐든 좋아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돼" 잔뜩 굳어져버린 내 모습에, 권순영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내가 권순영을 제외한 두 명만의 선물을 말했다. 권순영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닌데. 머릿속에는, 다 채웠지만 늘 가방 속에 가지고 다니는 공책이 떠올랐다. 그 공책 속의 중간 부근에는, 처음 그려냈던 권순영의 모습이, 흐릿하게나마 담겨있었다. 다음에 완성해야지.라고 했던 말을 비웃듯, 나는 권순영의 모습이 담긴 그 장을, 그 이후로 한 번도 건들지 못 했다. 잡은 연필의 심이 종이에 닿지 못 했다. 약간의 마무리만 거치면 충분히 금세 완성할 수 있는 그림이었다. 그럼에도 종이에 닿지 못한 체 허공에 머문 연필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 다 왔다" 집 앞에 다다르기까지도, 내 입은 열리지 못 했다. 가장 처음 준비한 건, 부승관도, 이지훈도 아닌 권순영이었는데. 나는 그저 열리지 않는 아랫입술을 이로 지긋이 눌렀다. "나도, 응원할게 ##봄아" 아랫입술을 꾹, 눌러내리던 이와 입술 사이가 나도 모르게 벌어졌다. 흩어져있던 머리카락이 넘겨지며 따뜻한 온기가 귓가를 스쳐갔다. 놀라 바라본 권순영은, 허상일 것만 같던 방금의 일이, 진짜라고 알려주는 듯이. 늘 그렇듯 말갛게 웃어 보이고 있었다. "내일 보자" 다시 한번 들려오는 권순영의 목소리에 옅게 웃음이 띠어졌다. 아마 곧, 가방 속에 있는 공책을 안 들고 다닐 수 있을 것만 같다. 아무래도, 집에 새로운 캔버스를 하나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짧은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인에 찍혀진 '이지훈' 이라는 이름에 의아해하며 문자를 확인했다. '힘내' 확인한 문자에는 짧은 한 마디가 남겨져 있었다. 단 두 글자이지만 넘치도록 가득한 마음이, 따뜻했다. 나 지금, 사랑받고 있구나. - 지훈이가 세봄이 대회에 흥분한 승관이를 그렇게 대한 건, 응원이란 게 낯간지럽기도 했고, 세봄이에게 자칫 동정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에요. 뒤늦게 문자를 보낸 건 승관이와 순영이에게 물은 뒤에 한 행동이고요. 세봄이는 점점 지금의 생활에 녹아들고 있어요. 자신이 승관이에게 선물을 건네면 당연히 승관이가 기뻐할 거라 생각한 건, 큰 변화에요. 그리고 세봄이가 공책의 그림은 완성시킨다는 건 굉장히 큰 의미에요. 지금껏 연재된 캔버스와 물감 하나하나에 숨겨놓은 것들이 많으니 잘 알아봐 주세요. 또한 오늘 세봄이를 부르는 순영이의 '#봄이' 는 언젠가 또다시 나올 말이에요. #봄이, 세봄이. 참 예쁜 것 같아요. 저희는 주말을 보내는 다시 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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