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호찡] [낑깡] [8월의 겨울] [봄꽃] [열시십분] [여름밤] [호시 부인] [디케이] [쑤하진] [아니아니] [슝] [스팸] 캔버스와 물감 [물감 열한 방울] "아 김세봄..오늘만 같이 먹고 가자아..." "애 좀 내비 둬, 응원 안 해준다고 빽빽거리던 게 누군데" "괜찮으니까 얼른 가 세봄아" 시간은 빨랐다. 눈 깜빡할 새에 코앞으로 다가온 대회로 인해 나는 보다 바빠졌다. 점심을 함께 먹되 먼저 자리를 떴고, 권순영과 함께하던 하교 역시 중단했다. "곧 대회가 있어서 시간이 안 맞을 것 같아" 권순영과 마지막으로 하교를 하던 날, 발 앞에 놓인 작은 돌 하나를 툭, 하고 차며 말하자, '같이 못 가겠네' 하며 옆에서 나지막한 권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그리고 내 짧은 대답과 함께 말소리가 멎었다. "힘들겠다" 조용함 속에 특유의 다정한 권순영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살짝 휘어져 있던 권순영의 눈이 더욱 휘어졌다. "대회가 끝나면 또 이렇게 같이 가자" "기다리고 있을게" '금메달 따오면, 내 목에 걸어줘야 돼',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말하는 말에 나 역시 웃어 보였다. '응, 꼭 걸어줄게' "약속" "응, 약속" 권순영과의 첫 약속이었다. - "대상, 김세봄"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내 이름에 박수소리가 가득 울렸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향했다. 앞으로 나가자 눈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맞잡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들어 올렸다. "위 학생은, 이번에 실시한 제 17회..." 형식적인 상장의 내용이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나는 꼿꼿이 허리를 펴고 정면을 바라봤다. '이 상장을 수여한다' 마무리를 알리는 마지막 말이 흘러나오자 다시금 박수소리가 가득 울렸다. 전해지는 상장을 받고는 고개를 숙이자 메달이 목에 걸렸다. 상장을 오른쪽 옆구리와 팔 사이에 끼고는 다시 눈앞에 내밀어진 손을 잡고는 고개를 숙였다. '이상으로 수여식을 마치겠습니다' 시상의 끝을 알리는 말을 뒤로하며 걸음을 옮겼다. 목에 걸려진 메달을 매만졌다. 평소 잘 만지지 않던 탓인지 오랜만에 만져보는 메달의 감촉이 어색했다. '금메달 따오면, 내 목에 걸어줘야 돼' '약속' 약속을 외치던 권순영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뻐하겠지, 분명히. 그 생각이 듦과 함께 회장을 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다. 내일, 걸어줘야지. 가벼워지는 것만 같았던 발걸음은 다음 날 교실을 들어섬과 동시에 무거운 추를 잔뜩 매단 듯 그 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잊고 있었다. 부승관과 이지훈, 권순영에 의해 잊고 있었다. 내가 대회를 갔다 왔을 때, 주위는 좋은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교실에 들어설 때 보일 시선들을 마주치는 것이, 전혀 득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나에게로 잔뜩 몰린 시선들에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가방에 들어있는 메달이 괜스레 무거워져 잡고 있던 가방끈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은 발걸음을 애써 움직였다. "쟤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귓가에 선명히 들려오는 말소리에 입술을 이로 물었다. "애초에 색맹이 그림을 그린다는 게 말이 안 돼" "그래봤자 죽은 엄마 뒷배경이면서" "노력하면 뭐 해, 뒷배경만 좋으면 노력도 안 하는 애가 대상인데" 익숙한 말들이다, 아무렇지 않게 넘겨버리면 되는 말들이다, 저 아이들을 나를 모르니까, 머릿속으로 말을 되뇌며 옮기던 걸음은 소음들 사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멈춰 섰다. "너희가 뭔데 저 애한테 그런 말을 해" 권순영이었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몸을 돌리자 처음 보는 표정을 짓고 있는 권순영의 모습이 보였다. "너, 그 대회에 입선하기는 했어?" 날카로운 권순영의 말에 여자애는 표정을 잔뜩 구겼다. 여자애의 주위 아이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 여자아이의 등을 쓸어내렸다. 아마 입선에서 떨어진 듯했다. "입선도 못한 실력으로, 대상 탄 애를 비난할 생각이 들어?" 권순영의 그 말을 끝으로 교실 안에 울음소리가 울렸다. 서러운 울음소리는 이윽고 원망의 소리가 함께 흘러나왔다. "내가 노력했는데 안된 걸 뭐! 난 노력이라도 했어..! 쟤가 한 게 뭐가 있는데!!" "네가 쟤가 뭘 했는지 알아?" "알 필요도 없겠지, 어차피 뒷배경으ㄹ....." "거봐, 모르잖아" 울음소리가 가득 섞인 여자애의 말소리에 권순영은 오히려 얼굴을 더 찡그린 체 덤덤히 말을 던졌다. 그리고 그런 권순영의 말에 다시 소리를 치던 여자애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 했다. "노력? 네가 말하는 노력이라는 거, 오히려 세봄이는 수백 배는 더 했을걸" "그리고 색맹? 그게 뭐, 색맹인데도 이런 건 오히려 더 대단한 거겠지, 무시할 일이 아니라" "뒷배경..그래, 뒷배경으로 상 탔다고? 그럼 여기서 자기 그림이 김세봄 그림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말해봐" 그렇게 말하며 교실을 둘러보는 권순영의 모습에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듯 아이들을 저마다 고개를 숙였다. "입만 산 병신들..." 낮은 목소리의 욕설이 조용한 교실에 퍼졌다. 그리고 그런 교실을 다시금 둘러본 권순영은 걸음을 옮겨 내 앞으로 와 있었다. "나가자, 세봄아" 그렇게 말하며 웃는 권순영의 모습이, 아까의 모습이 아닌, 평소의 권순영이라서, 나는 마치 헛것을 본 것 같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권순영은 그런 나를 보다 미안하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내 손목을 잡고는 교실을 나섰다. - 어느덧 중반부로 달려가는 캔버스와 물감이네요. 이번 화는 너무 어려웠던 화에요, 순영이의 화난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어요. 늘 다정한 순영이었던지라 표현이 너무 어려웠어요. 안 그래도 그래서 그런지 많이 부족하게 표현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야기도 조금 잘라냈고요, 여러모로 조금은 마음에 들지 않는 화에요 ;ㅅ; 늘 예쁜 화들만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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