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호찡] [낑깡] [8월의 겨울] [봄꽃] [열시십분] [여름밤] [호시 부인] [디케이] [쑤하진] [아니아니] [슝] [스팸] 캔버스와 물감 [물감 열다섯 방울] "아..거기 공 좀 줄래!" 뺨 위로 닿아오던 권순영의 손이 떨어진 건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도르륵, 권순영의 발 근처로 굴러 온 공에, 운동장에 있던 한 남학생이 말 한마디를 외치고 나서였다. 느릿하게 떼어지는 권순영의 두 손에, 양 뺨이 진득이 붙어질 것만 같았다. "잠깐 공 좀 전해줄게" 두 손을 떼어낸 권순영은 이번에는 두 손으로 자신의 발 근처에 위치한 축구공을 집어 들고는 가볍게 떨어트리며 오른쪽 다리를 뻗어 떨어지는 공을 걷어차냈다.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운동장 중앙으로 날아간 공에, '고마워!' 라는 남학생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들어가자. 많이 더운가봐, 볼이 뜨끈해졌어" 이윽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금세 부스스 웃어 보이며 내뱉는 권순영의 말에 닫혀있는 입술을 더욱 꾹 눌러내렸다. 달아오른 양 뺨의 원인은, 뜨거운 태양빛도 아니며 무더운 바람도 아니라고. 원인은 그저 양 뺨 위로 닿아왔던 네 두 손이, 시선을 맞춰오던 그 두 눈이. 너무 따뜻해서라고. 그리고 그 말들을, 나는 그저 속으로 삼켜냈다. "그러게, 들어가자" 사람들은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 했었지만, 나에게는 끝이 있고, 한계치가 있다. "순영아" 그렇게 말하며 살포시 눈을 접어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욕심이다. - 뜨거운 태양빛을 피해 들어온 학교 안의 복도는, 밖의 날씨와 달리 시원해서. 달아오른 양 뺨이 금세 식을 것만 같았다. "아, 시원하다" 분명 차가울 복도 벽에 손바닥을 붙이며 웃어 보이는 권순영의 모습에 나 역시 살풋 웃어 보이며 손바닥을 벽에 붙였다. '응, 시원하다' "있지, 순영아" "응?" 잠깐의 적막 사이에, 나지막이 권순영을 부르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며 답하는 권순영의 모습에 가라앉았던 웃음을 다시금 띠어 보였다. "미술실, 같이 갈래?" 이상하게도. 권순영이라면, 괜찮을 것만 같아서. - 아까 전 복도와 달리 소음 없이 조용한 복도에 울리는 작은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에 권순영은 흠칫, 몸을 떨었다. 먼저 미술실에 들어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 밖에 멈춰 서 있는 권순영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들어와?' 그 물음에 권순영은 그제야 '아' 하고 짧은 소리를 내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미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그게', 그런 권순영의 모습에 가볍게 웃자 권순영은 약간은 머쓱하게 웃어 보이더니 입을 열었다. "저번에는 내가 여기 들어오는 거 싫어하는 것 같길래" '같이, 들어가면 안 돼?' '금방이야, 괜찮아' 권순영의 말에 스치듯 떠오르는 기억에 그제야 아, 하고 단마디의 소리를 냈다. '그때는..' 그리고, 내가 전하려던 말은 목 끝에서 턱, 막혀왔다. 차마 나오지 못하고 속으로 삼켜진 말에 벌려있던 입을 닫았다. '이제는, 너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 라는 말은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또다시 달아오르려는 듯한 볼에 괜히 발걸음을 옮겨 미술실 한 쪽의 책상 위에 놓인 액자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있지, 너는 내가 왜 색맹인지 모르지?" 쓸던 액자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사실 나도 잘 몰라. 그냥, 부모님 두 분 중에 색맹 유전자가 있었을 뿐이거든" 말을 마침과 함께 일정하게 액자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추자 미술실 안이 유독 조용했다. "기억 속에 남은 어린 시절도 온통 흑백으로 가득 차 있어" "태어났을 때부터 색맹이었으니까. 나한테는 모든 게 흑백이었거든" "그리고, 그래서인지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엄마는 날 괴물이라고 불렀었데" - 오늘은 일이 있어 늦게 이야기를 올렸네요, 죄송합니다 ;ㅅ;..큼큼, 이제는 세봄이의 이야기도 다뤄야겠죠. 다음 캔버스와 물감 16화에서는 세봄이의 과거 편이 공개될 예정입니다. 지금껏 세봄이의 상세한 얘기는 잘 안 다뤘었는데 눈치채셨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두 아이들이 봄에서 잠깐 겨울을 맞이하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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