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호찡] [낑깡] [8월의 겨울] [봄꽃] [열시십분] [여름밤] [호시 부인] [디케이] [쑤하진] [아니아니] [슝] [스팸] 캔버스와 물감 [물감 열일곱 방울] 등 위를 규칙적이게 토닥이던 손길은 종소리가 울림과 함께 멎었다. 예비종 소리가 잔잔해지다 이윽고 적막에 물들여질 때, 권순영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어깨 위를 누르고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번에는, 안 울었네" '다행이다', 사르륵 접히는 눈과 함께, 그 한 마디가 끝남과 동시에 제 얼굴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권순영은. "반으로 갈까?" 제가 말해놓고는 애꿎은 입술을 꾹 누르더니 눈앞으로 곧게 뻗어진 손 하나가 들이밀어졌다. 그런 손 하나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자 곧게 뻗어져있던 손이 주춤거렸다. 그리고 그런 권순영의 모습에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조그마한 내 웃음소리가 미술실을 채웠다. 그런 내 모습에, 내 눈앞에 들이밀어진 건 곧게 뻗은 손이 아닌 내게 시선을 맞춰오는 권순영이었다. 조금은 동그랗게 떠진 눈을 한번, 그 밑으로 내려가 동그란 코 끝을 한번, 마지막으로 살짝 벌려진 입술 사이로 조그맣게 드러난 이를 한 번씩 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이다 천천히 손을 뻗어 아까와 달리 덩그러니 내려간 권순영의 손을 잡았다. "...세봄아?" 조금 동그랗게 떠졌던 눈이 더 동그래졌다. 차게 식은 제 손과 달리 따뜻한 권순영의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아보았다. "아까, 손잡으라고 내민 거 아니야?" '아니면 말고' 여전히 눈만 깜빡이고 있는 권순영의 모습을 보다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뒤에서 들리는 짧은 단 마디에 약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같이 가" 탁, 탁. 실내화와 바닥이 부딪히던 소리가 멈추며 오른손이 감싸져왔다. 여전히, 따뜻했다. - 이 날 방과 후에는 캔버스 위로 여러 꽃들을 그려 넣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랐었다. 이 캔버스 위에 권순영을 그리고 싶다는, 그런 막연한 생각. 작은 공책 위로, 연필로 그려내는 권순영이 아니라. 커다란 캔버스 위로, 색까지 입혀낸 권순영을. 나는 그리고 싶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왜 굳이 권순영을 캔버스 위에 그려야 하는지. 아마도, 이유가 있었다면. "세봄아, 데리러 왔어" 커다란 캔버스, 그 하나가. 내 유일한 표현이었어서가 아닐까. - 오랜만에 권순영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은 크게 다른 게 없었다. 더운 바람이 뺨 위를 스치고, 두 개의 그림자가 나란히 늘어져 걷고. 그저, 나란히 흔들리는 두 손의 끝이, 조금씩 스쳐지는. 작은 변화. "오랜만에 같이 가니까 좋다"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넉넉하던 골목길이 조금은 좁았다. 좁아졌다는 게, 좋았다. "아까, 뭐 그리고 있던 거야?" 스치던 손끝이 조금은 오래 맞닿았다 떨어졌다. 나는 '수국'이라고 짧게 답을 했다. 그러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국 좋아해?', 이번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고갯짓에 네 물음이 들려왔다. '왜?' 이번 질문에는 잠시 입을 열었다 닫아냈다. "...집 안에 주로 수국이 꽂혀있었어" "좋아하셨나 봐, 엄마가" 제가 말하고도 가라앉아진 목소리에 입술을 물었다. 옆에서는 잠깐의 적막 후 작게 반응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고는 밀려드는 적막감에 이로 짓누른 입술을 잘근거렸다. "내가, 오늘부터 수국 좋아할게" 간질거리게 부딪히던 손끝이 완전히 맞물렸다 느릿하게 깍지가 껴졌다. "네가, 수국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네 말에 그저 잘근거리던 입술을 말아 넣었다. 코 끝이 간지러웠다. - 내용전개상 조금은 짧은 17화입니다. 아무래도 학교로 인해 당분간 연재 시간이 이렇게 될 것 같네요 :( 캔버스와 물감은 점점 완결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20화, 혹은 23화 내로 완결을 맞이할 것 같은데요. 부디 캔버스와 물감의 끝까지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늘,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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