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혹은 짝짓기, 교미, 성교, 기타 등등. 낯부끄러운 단어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이건 죄다 아침부터 쓸데없이 사람을 자극한 전정국 탓이다.
그래 놓고도 속 편하게 잠이 들었는지, 등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전정국의 굳게 닫힌 방 문은 열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자식.
버릇처럼 입에 붙은 말을 내뱉고는 발에 운동화를 꿰었다.
오늘은 놈을 깨우고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미친 늑대 소굴로 일부러 기어들어갈 필요는 없으니까.
물론, 나라고 해서 전정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정국은 젊은 수컷 늑대들의 우두머리이고, 나는 암컷들의 우두머리이다.
각 무리에서 가장 강한 전정국과 나는 서로 짝을 맺어 가장 강한 자손을 남겨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었다.
이 의무는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것으로서, 단지 규칙으로서가 아니라 육체적인 속박으로 우리를 옭아맨다.
즉, 전정국과 나는 페로몬의 영향으로 서로에게 강렬한 섹스 어필을 느낀다는 것이다.
페로몬이 가장 활발하게 분비되고 또 가장 예민한 시기는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아 성년이 되기 전까지.
전정국은 바로 그 시기에 놓여 있었다.
놈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우리는 둘 다 성년이 되기 전까지 관계를 맺는 게 금지되어 있다.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서로의 몸을 상하게 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놈보다 한 살이 더 많은 나는 작년에 성년식을 치렀고, 지금은 어느 정도 절제가 가능하지만 전정국은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처럼 보름달이 떠서 늑대의 본능이 강성해지는 날이면 놈은 눈에 띄게 괴로운 기색을 보였다.
그러니까 오늘 같은 날은 서로를 피하는 게 상책일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암컷 알파라지만 내게 전정국을 당해낼 재간 따위는 없으니까 말이다.
마주치지 않으면 평화롭다. 이게 내가 내린 결론이자 내 삶의 진리였다.
*
교실에서 내 자리는 항상 정해져 있다. 창가의 맨 뒤쪽, 혼자 앉는 자리.
동물의 직감이란 예민하기 그지없어서, 아이들은 내가 자기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것 같았다.
나는 근 3년 동안 학교에 다니며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 편이 내 쪽에서도 편했다.
전정국과 내가 동거까지 해 가며 인간들의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음 세대의 늑대들을 이끌 알파로서, 현재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인간들에 대해 알고 있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전정국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그러면서도 순순히 동족의 마을에서 내려온 까닭은 단 하나.
'기회가 많아지잖아.'
그렇게 말하며 나를 훑던 녀석의 끈적이던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전정국은 학교에 오자마자 그 지랄맞은 성격 때문에 한바탕 싸움을 했고, 당연하게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런 식으로 개싸움을 해 대며 스트레스를 푸는 건지 놈은 그 이상의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다만 다른 학년인 주제에 자꾸 나를 찾아오려고 한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전여주, 정국이는 오늘도 결석이냐고 정국이 담임 선생님이 물어보시던데."
학교에는 놈과 내가 남매로 알려져 있는 탓에, 종종 이런 식으로 엮이는 일이 있다는 것도 무척 귀찮았다.
나는 저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충 둘러대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 시큰둥한 태도를 익히 알고 있는 담임은 곧장 화제를 돌렸다.
"자, 우리 반에 전학생이 왔다."
"오오- 쌤, 남자예요, 여자예요?"
"남자다. 쌤이 슬쩍 봤는데, 되게 잘생겼어. 들어와, 태형아."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여학생들의 환호 소리가 높아졌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나는 인상을 쓰며 칠판 앞을 건너다보았다.
제법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마른 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뼈다귀가 걸어다니네. 심드렁하게 그런 과장 섞인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시선을 올려 얼굴을 보았을 때, 문득 그와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을 알았다.
1초, 2초, 3초-
민망해서 시선을 돌릴 법도 한데 말이지.
나 역시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묘한 느낌이었다.
"태형아, 저기 창가에 혼자 앉은 친구 보이지? 그 옆에 앉아라."
"네."
뚜벅뚜벅 걸어온 그가 옆에 가방을 걸치며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넸다.
바로 그 순간, 잔잔했던 호수에 우연에서 비롯된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아직 나는 그 파문이 얼마나 많은, 그리고 얼마나 큰 동심원들을 그려내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
김태형은 완벽하게 나와 반대되는 존재였다.
헤실헤실 헤프게도 뿌려 대는 웃음부터, 언제 봤다고 여주야, 여주야- 하며 말을 붙여 대는 것까지.
덕분에 전정국 외의 사람과 말을 섞어 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나는 딱 죽을 맛이었다.
전정국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전개가 항상 정해져 있었다. 기-승-전-섹스.
그렇게 원하는 것이 뚜렷한 상대와의 대화는 오히려 편하다.
하지만, 얜 대체 나한테 뭘 바라고 이렇게 달라붙는 걸까?
"여주야, 필기 안 해?"
생각에 젖어 멈추어 버린 펜을 보았는지, 태형이 내 쪽을 건너다보며 의아하게 물었다.
나는 황급히 영어 지문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놓쳐 버린 지점을 찾으려 방황하던 시야에 제법 커다랗고 마디 굵은 손이 쑥 들어왔다.
"여기."
"아, 고마워."
"필연적인."
단정한 손톱 끝이 한 단어를 가리켰다.
"이 단어 뜻이 그거래."
중요하다고 그러셨어.
나는 잠시 그의 미소를 바라보다가 애써 시선을 끌어내리며 붉은색 볼펜을 쥐었다.
힘주어 밑줄을 그은 단어가 볼드체로 도드라져 기억 속에 잔상을 남겼다.
inevitable, 필연적인.
반드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
어쩐지 남의 일 같지 않은 단어라 나는 남몰래 한숨을 삼켰다.
*
전정국은 끝내 야간자율학습이 끝날 때까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잘된 일이었다. 어쩌면 잠시 동족들이 사는 마을에 간 것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밤에 녀석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나의 희망사항이었지만.
나는 그 작은 확률에 기대를 걸며 집 문을 열었다.
"...미친, 전정국."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들이치는 페로몬 냄새에 경악에 가까운 욕설을 뱉었다.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가는 그 짧은 거리가 버거워 다리에 힘이 풀렸다.
벽을 짚고 간신히 걸어간 곳에는 소파에 드러누워 팔로 이마를 가린 전정국이 있었다.
"...전여주?"
잠이라도 잤는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녀석이 나를 불렀다.
"왜 이제 와."
"나도 삼학년이야. 공부해야지."
"헛소리."
전정국은 콧방귀를 뀌며 내 대답을 일축했다.
"근데 넌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너 기다리고 있었지."
전정국이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내가 콧방귀를 뀔 차례였다.
"하나도 안 반갑거든."
"정말?"
전정국은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의뭉스러운 눈초리에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꿍꿍이가 가득했다.
집 안에 가득 찬 전정국의 냄새가 숨을 쉴 때마다 내게 놈이 수컷이라는 사실을 인지시켰다.
나는 덜덜 떨리기 시작한 다리를 애써 숨기며 전정국이 누워 있는 소파를 지나쳐 내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발 닦고 잠이나 자."
"나 오늘 되게 많이 자서 말똥말똥해. 밤새 놀아도 될 것 같은데."
같이 놀자, 누나. 그렇게 말하며 전정국이 팔을 뻗었다.
스치듯 닿은 손끝이 녹아내릴 듯 뜨거웠다.
나는 주먹을 꾹 말아쥐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놈의 그 손을 잡아 버릴 것 같았다.
분명히 말하건대, 전정국만 성욕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내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이성이 친동생처럼 오랫동안 보아 온 녀석에게 거리낌없이 욕정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잘 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전정국에게 인사를 건네고 방에 들어왔다.
손바닥에 초승달처럼 깊게 패인 손톱 자국이 내 번뇌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었다.
*
'필연'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건 정국이일까요, 태형이일까요?
암호닉 신청해 주신 분들입니다. 예상치 못한 많은 관심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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