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ll - Losing Control
재환이는 표정없이 차에 올라타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 불과 몇시간까지만 해도 경리가 제 옆에서 떠들었는데.
정신병에 걸릴것만 같았어, 빈 차안에서 한숨을 푹 쉬다가 경리와 네가 서있던 그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감아버려.
벌이구나, 엄청난 벌. 재환이는 집으로 가던 차를 돌려 자주가던 술집에 들렸어.
"아직 영업시간 안됐는데ㅇ 어, 이재환. 얼마만에 얼굴을 비추는거야 도대체."
"그냥, 형. 나 아무거나…"
"오늘은 경리없네?"
"…앞으로도 없을거야."
"헤어졌냐? 그러게 내가 제수씨한테 잘하라니까, 이제와서 하는 얘긴데, 아내로는 솔직히 ㅇㅇ씨가 짱이지.
저번에 너 개되가지고 헬렐레할때 ㅇㅇ씨 왔잖아. 와. 진짜 내가 제수씨였으면 벌써 난 죽빵 날렸는데 아오, ㅇㅇ씨 착해가지고 그 조그만 몸으로 쩔쩔매는ㄷ,"
"아, 형."
"알겠어.
니 상태보니 취할만한거여야겠네."
"말동무는. 필요없고?"
딱히. 학연이는 그러시겠죠. 하며 양주와 잔을 재환이에게 내밀었어. "돈은 안받을게."
"…그래."
-
술을 연거푸 마시던 재환이가 결국 테이블에 엎어졌어. 학연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
"야, 이재환, 야! 일어나. 아오, 적당히 마셔야지 미친놈. 야, 나도 일해야하거든?"
"…형, 나 ㅇㅇ이 보고싶어요."
"이혼했잖아, 그렇게 박경리랑 죽고못살더니."
"씨이…그때 나 정신 좀 차리게 때려주지. 그럼, 그럼 내가 ㅇㅇ이랑 계속 살았을지도 모르잖아."
"남탓으로 돌리긴."
학연이가 누워있는 재환이쪽으로 가선 재환이 코트를 뒤졌어. 핸드폰을 찾으려고.
"ㅇㅇㅇ, ㅇㅇ이 데려와요. 응? 형, 나 ㅇㅇ이. ㅇㅇ이…"
"아 가만 있어봐 좀, 연락할거니까."
학연이는 너에게 연락을 하려고 전화부를 뒤졌어. 아내, 없고. 부인, 없고. ㅇㅇㅇ. 있네.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다가 학연이는 재환이가 너무 안쓰러운거야. 사실 나쁜놈은 이재환이 제일 나쁜놈이긴 한데, 불쌍하기도 해서.
두 눈 딱 감고 통화버튼을 눌렀어. 왜 내가 다 떨리는지 손톱까지 깨물어가며.
근데 역시 안받을 생각인지 한참동안 연결음만 들렸어, 아. 그냥 택시태워 보내야지. 하는 찰나에,
- …여보세요?
헐 받았다. 학연이는 막상 받으니까 더 당황스러워서 한참 말이없었어.
- 여보세요? 이재환?
"아, 아. 저기 ㅇㅇ씨, 저 학연인데요…"
-
"야! 너네 케잌 먹으라고, 누가 얼굴에 팩하라고 했냐?"
"아 형 진짜 죽어요, 나 이거 형 콧구멍에 쑤셔버릴줄 알아요."
"어쭈? 말하는거봐라, 아주 그냥 혼나야겠어"
"니네 둘다 그만해라? 집 니네가 치우냐?"
크리스마스트리도 꾸미고 온 집안이 뻔쩍뻔쩍 빛나는데 상혁이와 원식이는 갑자기 서로 얼굴에 케잌을 찍어 바르더니, 서로에게 던지며 놀았어.
넌 그만하라며 화를냈지만, 얘넨 듣는둥 마는둥.
"셋 세면 그만해. 하나, 둘, ㅅ… 아."
상혁이와 원식이가 웃음을 터뜨렸어. 아, 누나 미안. 조준을 잘못해서. 상혁이가 너의 볼에 케잌을 문댔어.
원식이도 기다렸다는듯 반대쪽 볼에 케잌을 문대곤, 헐. 누나 상혁인줄. 능청을 떨었지.
넌 부들부들 떨다가 케잌을 양손에 들고 상혁이 입에 집어넣고, 원식이 얼굴에 범벅을 해놨지.
근데도 얘네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신나가지고 웃고있었어.
하지만 넌 나이도 나이인지라 이런건 진작에 졸업했지.
"알아서 치워-"
"네-!"
대답을 듣고선 욕실로 들어가서 얼굴에 붙은 케잌조각을 때놓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마무리로 세수를 말끔히 하고 나와선 상혁이 방에 들어가있었는데
전화가 울리는거야.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이 없는데.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는데 저장되어있지 않은 번호였지만,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번호였어.
한참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에라모르겠다 싶어서 전화를 받았지.
"…여보세요?"
재환이는 아무말이없었어. 잘못걸었나?
"여보세요? 이재환?"
재환이의 이름을 불렀어. 몇시간 전만해도 너의 앞에서 보란듯이 키스를 하고있던 이재환의 이름을.
근데 그런건 생각이 안나고 그냥 이재환이 나한테 전화를 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 너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거야.
-아, 아. 저기 ㅇㅇ씨, 저 학연인데요.
학연이가 누구지? 하며 머리를 굴리는데 재환이가 술을 마셨을때면 항상 봤던 그 까무잡잡한 남자가 생각이난거야.
"안녕하세요, 근데 무슨일로...?"
-그, 죄송하지만 지금 재환이가 술을 많이 마셔서요.
이럴줄 알았지.
"네. 그래서요?"
-제가 이제 곧 가게 문을 열어야하는데, 얘가 일어날 생각을 안해서. 혹시 ㅇㅇ씨가 수고해주실 수 있나 해서요.
안되겠죠?
"네. 죄송해요…"
-그렇겠죠. 죄송해요. 크리스마스 잘 보내세요.
학연이 전화를 끊었어. 넌 안된다고 말은했는데 일단 고민이 되는거야.
만약 내가 안갔는데 재환이가 술취한채로 간다고 고집부리다가 음주운전을 해서 사고라도 나면..
아니 그래도 경리가 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넌 결국 상혁이 가디건을 걸쳤어. 아직도 거실에서 놀고있는 둘을 뒤로한채 신발을 막 신었지.
"어디가요?'
"누나 늦었는데."
"놀고있어, 나 나갔다올게. 금방 올게, 알겠지?"
신발이 잘 안신겨져서 넌 대충 구겨신고선 1층으로 내려갔어.
택시가 너의 앞에섰고, 넌 택시에 몸을 실었지.
-
넌 택시에서 돈을 던지듯이 아저씨께 드리고선 학연이네 가게를 향해 막 뛰었어.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테이블에 떡하니 누워서 있는 재환이가 보이는거야. 넌 서서 숨을 고르다가 재환이에게 다가갔어.
"재환아."
"으응…"
잠든 재환이가 몸을 뒤척였지. 그새 학연이가 나왔는지 동그래진 눈으로 널 바라봤어.
"못오신다면서요."
"걱정이 되가지고. 다행이네요 누가 안채가서."
학연이는 빙그레 웃어보였지. "다행이네요. ㅇㅇ씨가 데리러와서."
넌 재환이의 옆에 의자를 끌고 앉아서 재환이를 보기위해 허리를 숙이며 재환이를 흔들었어.
"재환아, 이재환. 일어나 집에가야지."
"…"
"이재환, 일어나. 가자-"
"…"
묵묵부답이었어. 엄청 깊게 잠들었나봐. 넌 결국 재환이의 등짝을 막 치면서 "일어나, 가자! 집에 가야지. 응?" 그렇게 말하니까 재환이가 눈을 살짝 뜨더라고.
헤, 미소지으며 "ㅇㅇ이다 ㅇㅇ이. 내 아내." 널 끌어안았어.
미친것같아. 이제와서 이러면 뭐 어쩌자는거지? 이미 이혼도 했는데.
근데, 또 웃긴게 너의 심장이 막 뛰는거야. 그게 더 미친것같았어.
넌 재환이의 팔을 너의 어깨에 걸치고선, 학연이에게 도움을 받아 택시잡기까지 성공했지.
"들어가세요, 죄송해요. 불러내서…"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재환이가 민폐를 끼쳐서. 그럼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고개를 꾸벅 숙이곤 택시에 타서 재환이네 집주소를 불렀어. 재환이는 너의 어깨에 기대선 눈을 감고 있었지.
심장이 터져나갈것같았어. 옛날엔 술취해도 모르는 사람처럼 택시에 타있었는데, 너무 낯설어서.
재환이의 머리통을 어깨에 대게하자니, 이상한 감정이 휘몰아쳐오고.
머리통을 치우자니 그건 또 그렇고.
결국 넌 택시에서 내릴때까지 재환이의 머리를 너의 어깨에 기대게 했어.
-
재환이도 술이 좀 깬건지 비틀대는 걸음으로 너에게 의지한채로 걸어갔어.
현관문에서 "음.. 비밀번호가, 뭐였더라아?" 하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안들어갈래.. 모르겠어.." 하며 주저앉는거야.
넌 비밀번호가 바뀌었겠지만 설마하는 마음으로 너가 살때 비밀번호를 쳤더니 문이 열려버렸어.
비밀번호를 안바꿨네. 하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넌 주저앉아서 꾸벅이는 재환이를 안아올리듯이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집어넣고 일으켰어.
재환이가 키가 좀 큰가, 넌 비틀비틀거리며 재환이를 침대위에 앉혀놓고 그새 흐르는 땀을 닦았지.
재환이의 외투를 벗겨 의자에 걸어놓고 재환이를 눕혀 이불을 덮어줬어.
이제 가야지, 하고 몸을 일으키는데 재환이가 너의 손을 딱 잡는거야.
"..ㅈ,재환아. 손 놔야지."
"가지마,"
"응? 재환아. 손 놓자. 나 가야해."
재환이는 막무가내로 널 침대에 앉혔어. 절대로 도망못가게 손에 힘을 꾹 주고선 "못가. 절대." 말도안되는 고집을 부렸어.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놓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재환이가 널 뒤에서 끌어안았어.
"나 취했는데, 내일 속아플텐데. 안가면 안돼요?"
-
될것같니 재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