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쁜아! "
뭐야, 예쁜이? 설마 나?! 설마 저 사람 나 부르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손가락으로는 나를 가르키곤 주변을 둘러 보는데 웬걸, 이 근처에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네. 근데 이 사람 낯이 익은데... 아! 아까 손수건! 마음 속으로만 한다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나 보다. 손수건 받으러 왔나, 손수건 좀 더러워 졌는데. 빨아서 드려야 하나... 근데 예쁜이는 또 뭐야? 초면인데. 속으로 생각하며 눈썹을 살짝 찡그리고 운전석 가까이에 다가가니 활짝 웃어 보이는 남자다. 웃는 게 뭐 이렇게 예뻐? 아니, 내가 이렇게 감탄할 때가 아닌데.
" 그, 손수건은 "
" 손수건 때문에 온 거 아닌데? 아까부터 계속 봤는데, 너. 나랑 눈도 마주쳤으면서! "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아까 저 남자친구랑 있는 거 못 봤나? 속으로만 생각한 건데 내 속마음은 또 어떻게 읽었는지, 아까 그 사람은 남자친구? 음, 내가 보기엔 예쁜이가 별로 사랑을 못 받는 거 같아 보이길래. 라면서 안 그래도 속상해 죽겠는데, 시원하게 돌직구를 날려 주신다. 그나저나 왜 자꾸 예쁜이 타령이야?! 인상을 살짝 구기며 운전석의 남자를 쳐다보자 일자로 곧게 뻗은 눈썹을 살짝 찡긋하며 미안, 아직 이름을 몰라서. 란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 이름도 모르는 사람한테, 그것도 여자한테, 그것도 이여주한테 손수건을 빌려 주긴 왜 빌려 줘? 웃기는 사람이야!
" 나 지금 손수건 안 받고 그냥 가면, 그 핑계로 다음에 또 볼 수 있는 건가? "
웩, 저 쌍팔년도 멘트는 뭐람? 미간을 좁히고 쳐다보자 민망했는지 괜히 구렛나루를 만지작 거린다. 그 손수건 비싼 건데... 라는 말에 주머니에 넣어 뒀던 손수건을 꺼내서 상표를 봤더니, 브랜드 이름이... 이거 실화냐...? 왠지, 차도 때깔이 고운 게 비싸 보이더라. 근데 이거 자기가 먼저 빌려 줬으면서! 또 속으로만 생각했던 말이 입 밖으로 나갔나 보다. 자기? 우리 벌써 그런 사이야? 라며 큭큭대신다. 그러지 말고 예쁜아, 여기 번호 좀 찍어 주지? 라면서 핸드폰을 내미는데 이거 번호를 찍어야 해, 말아야 해? 그냥 손수건만 주고 볼 일만 보고 헤어지면 되는 거겠지, 뭐... 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손은 눈보다 빠른 건지, 이미 번호를 다 찍고 다시 핸드폰까지 돌려 준 후였다. 예쁜아, 이름은? 아! 정말! 그놈의 예쁜이 소리!! 인상을 찡그리고 쳐다보자 그럼 이름을 모르는데 어떡해, 울어서 그런가 꾀죄죄한데 못난이라고 부를까? 아니면 울보? 라며 눈썹을 찡긋한다. 저 눈썹 찡긋거리는 건 버릇이야, 뭐야?
" 이여주요. 손수건 때문에 번호 준 거예요, 알았어요? "
"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여주야? "
" 이 사람이 진짜!! "
결국 폭발해서 소리를 빽 질렀더니 놀란 건지, 깜짝아, 나 방금 좀 무서웠어. 라며 제스처를 취한다. 저 되게 무서운 사람이니까 얼른 가던 길 가시죠?! 라며 주먹을 올려 보였더니 이렇게 예쁜 여자를 눈앞에 두고? 라신다. 예쁜 여자는 무슨, 세상에 나보다 예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에휴... 택시나 잡자! 기분도 꿀꿀해 죽겠는데 왜 자꾸 일이 꼬여가지고... 같이 술 마실 친구도 없고, 오늘은 집 가서 혼술이나 해야지. 속상해서 또 눈물 나겠네, 진짜. 이민형 이 나쁜새끼!! 생각하며 뒤를 돌아섰다. 아니, 돌아서려고 했다. 이 남자가 내 팔목을 잡기 전까지는.
" 남자친구 먼저 간 거 같은데, 데려다 줄까? "
세상에, 이 사람 나 남자친구 있는 거 알면서도 이러는 거야? 미쳤나 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더니 아까 말했잖아, 네가 별로 사랑을 못 받는 거 같다고. 그래서 좀 뺏어 보고 싶기도 하고? 지금 상황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혼자 내뱉고 혼자 킥킥댄다. 내 표정을 보더니 뭐 때문에 또 화가 났냐고 묻는다. 이 사람이 진짜, 몰라서 묻는 것도 아니고!! 남자를 한 번 째려봐 주고 누가 봐도 나 화났어요 하는 걸음걸이로 걸어가는데, 아악!! 오늘 뭐가 이렇게 안 풀려 진짜? 길가에 넘어짐과 동시에 서러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이놈의 구두, 내가 이민형한테 뭐 예뻐 보이겠다고 신고 나와서... 길가에 쪼그려 앉아 쪽팔림도 모르고 혼자 엉엉 울었다. 이민형 나쁜 새끼야... 너는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도 모르지? 나는 지금 서러워 죽겠는데... 혼자 한참 동안이나 쪼그려 앉아 울다 일어났는데, 깜짝아! 저 사람은 왜 여태 안 간 건데? 지금 차 문에 기대서 나 지켜보고 있던 거야? 미친.
" 다 울었어? "
" 지금 다 보고 있던 거예요?!
" 응, 보면 안 돼? "
내가 미쳐 진짜. 오늘 처음 보는 사람한테 우는 모습만 몇 번을 보여 주는 건지. 쪽팔리니까 가요, 얼른. 손등으로 얼굴에 남아 있는 눈물들을 마저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아야!! 무릎에 상처들이 여간 쓰린 게 아니다. 우느라 몰랐는데 무릎에서 피가 흐르다 말고 응고되어 있었다. 무릎에 상처는 남자도 몰랐던 건지 허겁지겁 달려와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앉더니 괜찮냐고 묻는다. 지금 이게 괜찮아 보여요? 아파 죽겠구만... 라는 말은 속으로만 생각하고 남자에겐 괜찮다고 하며 일어나는데, 아. 진짜 하나도 안 괜찮다, 너무 쓰리다.
" 그러게, 내가 데려다 준다고 했을 때 내 차 타고 갔으면 됐잖아. 어휴, 멍청이. "
" 뭐요? 멍청이?! "
" 어쩔래, 데려다 줘? 싫다고 해도 데려다 줄 거지만. "
그럴 거면 대체 왜 물어본 건데? 됐다, 됐어. 이제 더 화낼 힘도 없다. 어차피 집까지 걸어갈 힘도 없고, 이미 신세진 김에 한 번만 더 신세져야지. 잠깐 여기 앉아 있어 봐. 라며 날 다시 벤치에 앉혀 놓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뭔데, 나 버리고 간 거야 지금? 이여주 인생 왜 이래... 다시 고개를 떨구고 우울함에 빠져 있는데 남자가 양 손에 약 봉지와 물 한 병을 들고 미안하다며 달려온다. 그러더니 내 주머니에 넣어 뒀던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더니 물에 적셔서 내 무릎에 있는 상처를 닦아준다. 내 남자친구도 안 해 주는 일을 오늘 처음 만나는 바깥 남자가 해 주고 있네. 다시 속상해지려고 할 때 쯤에 상처를 다 닦은 건지 연고를 바르고 밴드까지 붙여 준다. 무슨 처음 보는 여자한테 이렇게 다정해?
" 저기, 그게... 고마워요... "
" 고마우면 나중에 밥 한 번 사요, 여주야. "
안 산다고 하면 내가 나쁜 년이지, 그치. 이러고 혼자 집까지 가는 건 도저히 무리일 거 같아 조수석에 올라탔더니 소독 제대로 안 하면 덧난다, 알지? 하며 생긋 웃곤 약봉지를 내 손에 쥐어 주는 남자다. 안 돼, 설레면 안 돼 이여주. 정신 차려. 곧이어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집이 어디냐 물어서 역 앞 사거리에 세워 달랬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 너 그 다리로 혼자 어디 못 가. 아, 너 설마 사거리에서 내려서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길 바라는 거야? "
" 미쳤어요?!?! "
거 봐, 집 어딘데. 끈질기게 묻는 남자 덕분에 집 주소를 읊어 주곤 오늘 처음 보는 남자 옆에 앉아 집으로 향하는 중이다. 이여주 인생 한번 스펙타클하네! 아, 생각해 보니까 아까 그 손수건 비싼 거라면서 그렇게 막 써도 되는 거야? 은근슬쩍 손수건에 대해 묻자 얼마 안 한다며 얼버무린다. 거짓말, 그거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몇십만원이 넘는데... 쪼금, 아주 쪼오끔 감동. 감동 먹은 게 표정에서 티가 난 건가 왜, 감동이야? 라고 묻는 남자다. 어쩜 이렇게 내 속마음이랑 표정을 잘 읽는 건지, 사람 민망하게! 대답을 대충 피하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 감사해요, 내가 미안해서라도 비싼 밥 꼭 살 테니까 아까 그 번호로 연락해요. 알겠죠? "
아무 말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절뚝거리며 집에 들어왔는데 머리에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인데... 얼른 옷을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 마시다 쇼파에서 나도 모르게 잠에 든 거 같다. 남자한테 연락이 왔다는 것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