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으, 몇 시야? 어제 겨우 맥주 한 캔 먹었다고 머리가 이렇게 아픈 거란 말이야? 이런, 술쓰레기 이여주 같으니라고. 몇 시야, 지금? 헐, 11시? 미친, 나 학교는!! 이 아니라, 오늘 주말이구나. 휴, 깜짝 놀랐네. 주말이라서 다행이지, 강의 있는 날이었으면, 휴! 카톡? 누구지, 민형인가?
그럼 그렇지, 이민형한테 먼저 카톡이 와 있을 리가 없지. 근데 정윤오? 이게 누구야... 아, 어제 그 손수건?! 아니, 근데 이름까지 알려 줬는데 왜 자꾸 예쁜이라고 하는 건데? 저 예쁜이 아니라니까요!! 밥을 얼른 한 끼 먹고 헤어지는 게 낫겠다 싶어 그럼 오늘 만나자고 타자를 치려는 찰나에 전화가 걸려왔다. 저장 안 된 번혼데...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여보세요? 하고 받는 순간, 역시나. 여보, 세요? 라며 장난을 치는 상대방이다. 보나 마나 정윤온지 뭔지 하는 사람이겠지.
" 쓸데없는 소리 말구요, 그럼 오늘 만나요. 지금 열한 시니까 딱 세 시에 만나요. 괜찮죠? "
- 뭐가 이렇게 급하실까? 아, 일찍 만나서 늦게까지 같이 있자고?
" 저기요!!!! "
- 저기요 말고, 정윤오예요, 내 이름.
예, 예... 알겠습니다... 어제 그 레스토랑 앞에서 보는 걸로 하죠... 아, 너 넘어진 곳? 아이고, 골이야. 더 화낼 힘도 없어. 어찌어찌 하다가 전화를 끊은 뒤 씻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바로 전화가 또 한 통 걸려왔다. 아, 거 참! 하면서 핸드폰을 집어 드는데 이민형? 대박, 무슨 일이야. 전화를 받아 웬 일이야? 먼저 전화를 다 걸고. 라고 하자 어제 그렇게 갔다고 삐쳤냐. 라며 되물어온다. 목소리에서 티가 났나... 하긴, 5년을 사귀었는데 이런 거 하나 모를 리가 없지.
" 근데 이 시간에 갑자기 왜? "
- 오늘 만나자.
오늘? 나 오늘 약속 있는데.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어제의 너한테 내 자신이 많이 섭섭했나 봐. 그리고, 약속 있는 것도 사실이구... 앞으로 드라마 촬영 때문에 오늘 아니면 자주 못 만날 거라고, 약속을 못 미루냐는 너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 중요한 약속이라 못 미룬다고 대답해 버렸다. 그래, 알겠다. 무미건조하게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 너에 혼자 주먹을 쥐고 머리를 치며 왜 그랬냐고 자책하는 나. 아니지, 이럴 필요가 뭐 있어? 항상 이민형 네 멋대로였으면서. 오늘은 나도 내 마음대로 할래. 핸드폰을 대충 쇼파 위에 던져 두고 어제 혼맥을 했던 흔적을 치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아!! 일어나자마자 자리에 앉아 버렸다. 맞다, 나 무릎 다쳤었지... 그래도 어제 정윤오 씨가 소독을 잘 해 줘서 그런가 어제보다는 덜 쓰리네. 청소고 뭐고, 상처 치료부터 다시 해야겠단 생각에 구급함을 찾기 시작했다. 피로 물든 데일밴드를 떼어내고 대충 티슈로 상처 주변을 닦은 후에 연고를 바르고, 데일밴드를 대시 붙이고... 이게 다 이민형 때문이야! 갑자기 북받쳐 오르는 화에 혼자 씩씩 거리다 12를 넘어가고 있는 시곗바늘에 분주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민형? 정재현?
두 갈래 길
Written by, 진끄리
화장도 다 했고, 머리도 다 했고,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향수를 손목에 두어번 정도 뿌려 주고 거울을 보았다. 이씨, 무릎에 상처만 아니었어도 완전 완벽한데! 한숨을 한번 내쉬고 저 멀리 던져진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보았다. 아직 두 시 반? 약속 장소까지 십 분이면 충분히 가는데. 시간도 많이 남았고, 오늘 상태도 괜찮은데 셀카나 좀 찍어 볼까나? 바로 카메라를 켜서 이 포즈도 해 보고 저 포즈도 해 보면서 셀카를 마구 찍어댔다. 와, 나 오늘 좀 예쁜데? 중간 중간 감탄도 잊지 않고. 제일 잘 나온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바꾼 뒤 시간을 봤더니, 뭐? 3시? 뭘 했다고 벌써 세 신데?!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오늘은 굽 낮은 걸로 신어야지. 집에서 나와 한쪽 손으로는 신발을 정리하고 다른 한 쪽 손으로는 휴대폰으로 얼굴 점검을 다시 한번 하고 휴대폰을 내리자마자 보이는 어제 그 얼굴. 뭐야?!
" 빨리도 나오네, 아주. "
" 아, 깜짝이야!!! "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입술을 대빨 내밀고 쳐다보자 귀엽다는 듯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는다. 진짜 자꾸 놀래키고 그럴 거예요?! 주먹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하자 어이구, 무서워라. 라면서 하나도 안 무서운 말투로 얘기하는 정윤오 씨다.
" 왜 여기까지 왔어요, 어제 거기서 만나자니까. "
" 어제 거기서 만났으면 음, 한 세 시 반 쯤에 만났으려나? "
손목에 시계를 슥 보더니 대답하는 정윤오 씨 덕에 얼굴과 귀가 잔뜩 빨개져 버린 나다. 아까 그 웃음을 다시 지어 보이더니 조수석의 문을 열어 주며 타라는 듯 턱짓을 해 보인다. 차에 올라타자 자신도 운전석에 올라타 차에 시동을 건다. 근데 뭐야, 왜 이 쪽으로 오는 거야?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안전벨트를 채워 주더니 눈썹을 찡긋하며 웃어 보인다. 휴, 괜히 긴장했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한숨은 왜 쉬어요? 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 무릎은 다 까져 가지고 왜 치마를 입고 왔어. "
장난스러운 말투로 얘기하더니 긴 팔로 뒷좌석에서 담요를 하나 가져오더니 내게 건내 주며 말없이 웃어 보이곤 운전을 시작하는 윤오 씨다. 이 사람, 웃는 게 참 예쁘단 말이지. 아니 아니,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대체 왜 하고 있는 건데? 고개를 한 번 도리질 치고 무릎에 담요를 덮었다. 괜한 어색함에 입술만 꼭 물고 있는데,
" 나 영화 보고 싶은데, 밥 말고 영화나 한 편 사 주면 안 되나? "
먼저 정적을 깨 준 건 정윤오 씨. 영화 한 편 정도 사는 거야 뭐, 나쁘지 않지. 그럼 영화나 보러 갈래요? 내 말에 신난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약간은 귀여워 보이는 모습에 살짝 웃어 보이자 나 영화 진짜 오랜만에 보거든. 라며 대답한다. 엄청 신났나 봐요? 환히 웃어 보이자 웃는 것도 예쁘네~ 라는 그의 말에 아까의 그 어색함은 어디로 증발한 건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영화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영화를 고르고, 예매까지 한 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정윤오 씨의 앞에 앉자 턱을 괸 상태로 활짝 웃으며 " 영화 잘 볼게 " 라며 기분 좋은 티를 팍팍 내신다. 근데 여섯 시 영화라 적어도 두 시간은 남는데, 그동안 뭐 하지?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시간 많이 남았지, 밥 먹고 나왔어? 밥 먹고 올까? 라며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내 팔을 끌고 나간다. 그러고 보니 나 진짜 밥도 안 먹고 나왔구나... 아니, 그리고 언제는 밥 말고 영화 사 달라고 하더니, 뭐야? 다시 나를 차에 태우더니 어디론가 나를 데려간다. 대체 어디 가는 거냐고 묻자 아까 데리러 오면서 봐 둔 곳이 있단다.
" 우와, 여기 분위기 대박! "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단 말이야? 감탄하며 직원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을 보며 메뉴를 고르는데 메뉴는 무슨,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이 사람. 모르는 척을 하고 메뉴판을 덮으며 저는 봉골레 파스타요. 그쪽은요? 라고 묻자 그쪽이라는 소리에 기분이 상했는지 입술을 삐쭉 내민다.
" 그쪽 말고, 윤오 오빠라고 불러 주면 안 되나... "
황당한 말에 잠시 멍하니 있었지만 오빠라고 안 부르면 평생 주문을 안 할 것만 같은 모습에 알겠어요, 윤오 오빠는 뭐 먹을 거예요? 라고 묻자 나는 바질페스토! 라며 해맑게 웃는다. 메뉴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 아니, 근데 오빠인 거 확실해? 메뉴를 기다리는 동안 나이를 포함해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알게 되었다. 일단 이름은 정윤오, 나이는 나보다 딱 세 살 많고, 직업은 프리랜서라며 얼버무리는데 뭔가 의심쩍단 말이지. 본인이 프리랜서라는데 뭐, 어쩌겠어.
" 이름은 이여주, 나이는 올해 스물둘에 시민대학교 다니는 거야? 애기네, 애기. "
" =_= "
티격태격 하는 사이에 음식이 나왔고 입맛을 한 번 다시곤 바로 포크를 집어 들었다. 허얼, 오빠 여기 완전 맛있어요! 나도 모르게 나온 감탄사, 그리고 오빠 소리. 내뱉고 나서 헉, 하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왜, 나는 좋은데. 맛있어? 많이 먹어, 여주야. 란다. 네에, 많이 먹겠습니다...... 금방 파스타를 다 헤치우고 화장실에 다녀 오겠다는 오빠를 기다리며 입술 정리를 하고 아까 바르고 나왔던 코랄빛 립스틱을 발랐다. 자리로 돌아온 오빠의 가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가는데 " 남자친구 분이 계산하셨어요 " 라는 종업원의 말에 오빠를 째려보자 어깨를 으쓱한다. 남자친구 아니거든요 ㅡㅡ!! 종업원을 한번 노려봐 주고 조수석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맸다.
" 영화는 여주가 샀으니까 밥은 오빠가 사야지. "
지금 나보고 미안해 죽으라는 말 돌려서 하는 거 맞지, 그치?! 한숨을 쉬며 바람으로 앞머리를 날리자 내 앞머리를 정리해 주는 오빠다. 이제 영화 볼 시간 다 됐지? 오빠의 말에 시계를 보자 벌써 여섯 시가 다 되어 간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삐쳤어? 사탕 사 줄까? 라면서 나를 완전히 애취급을 한다. 정 미안하면 다음에 여주가 사~ 이거 뭐, 또 만나자는 거야, 뭐야?! 식당에서 영화관까지 그닥 멀지 않았기에 금방 영화관에 도착했고, 양 손에 콜라와 팝콘을 들고 영화관에 입장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치마를 괜히 입고 나왔는지, 신경 쓰여서 죽을 거 같다. 평소에 치마도 잘 안 입는데 오늘은 치마가 엄청 입고 싶더라니. 다음부터는 치마 절대 안 입어야지! 라고 생각하며 대충 핸드백으로 다리를 가리는데 옆에서 겉옷을 벗어서 내 무릎에 덮어 주며 " 어때, 멋있지, 반하겠지. " 하는 오빠다.
이민형? 정재현?
두 갈래 길
Written by, 진끄리
영화는 금방 막을 내렸고 여덟 시가 넘은 시간에 이제 슬슬 들어가 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 밖으로 나왔다. 오늘 내가 풀코스로 쏘려고 했더니 결국 한 거라곤 영화 산 거밖에 없다니... 내 속은 또 어떻게 읽었는지 미안해하지 마, 내가 사 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라면서 눈웃음을 보인다. 뭐,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네. 데려다 준다는 오빠 말에 됐다고 손사래를 치자 그래... 알겠어...... 잘 가....... 라며 잔뜩 시무룩해진 모습을 보이는데, 어떻게 저 사람을 그냥 보낼까.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타자 언제 슬퍼했냐는 듯 환하게 웃는 오빠 모습을 보고 나도 픽 웃어 버렸다. 오늘 종일 돌아다니고, 차도 따뜻해서 그런가 나도 모르는 새에 창문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조심스레 날 흔드는 오빠에 왜애... 하면서 칭얼 거리다 깜짝 놀라서 헉! 하고 일어났다. 벌써 도착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오빠에 안전벨트를 풀고 허겁지겁 내리자 날 따라 내리는 오빠에 얼른 들어가라며 차에 오빠를 구기듯 밀어넣었다. 창문에 대고 손을 흔들어 보이고 오빠의 차가 출발한 것까지 본 뒤 건물로 들어가려는데
" 이여주. "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서 있는 이민형.
" 너 나 모르게 남자 만나고 다니냐? 그래서 카톡도 안 보고 연락도 안 받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