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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 전체글ll조회 1161l

 




“경수씨”



난 기본적으로 학교라는 걸 싫어하는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자고로 수학이란 돈 계산 할 정도만 알고, 국어란 대화 통할 정도만 알면 된다는 생각으로 성적에 크게 욕심을 내지 않는 성실한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제일 즐거운 시간은 점심시간.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 남은 시간에 즐기는 축구. 열심히 뛰논 후 땀을 한 바가지로 흘리고 난 후의 노곤함에 꾸벅 꾸벅 잠드는 5,6교시의 나른한 공기를 좋아했다.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일까 그 노곤한 공기에 더 취약해져서 그대로 숙면을 취했다. 사락.. 사락 머리카락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귓가엔 부드러운 목소리로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속삭인다.



“으음...”

“집에 가야 되는데.”

“오 분만...”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자기 싫다 잠투정을 부리면 등을 살살 긁어주시거나 머리카락을 만져 주시곤 했다. 어머니와는 다른 향기와 느낌의 손가락이 기분 좋게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아.. 좋다. 수면제가 따로 없구나. 앞머리 부근을 맴돌던 손가락이 내 코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온다. 코끝에서 맴돌다가 눈 으로 다가와 간지럽게 속눈썹 끝을 톡톡 건드린다. 조곤조곤한 느낌에 슬쩍 입 꼬리가 올라간다. 그런 내 입술위에 살짝 손가락 끝이 닿는다.



“오 분 다됐어 이제 정말 가야돼”



귓가에 간지러운 숨소리가 느껴진다. 으음 잠투정을 하며 숨결이 왔다가 간질거리는 귀를 매만진다. 쿡 웃음 소리가 들리며 볼과 감은 눈 위에 쪽 왔다가는 입술이 느껴진다. 어.. 잠깐. 여기 학교 였는데......? 꿈인가? 누가 나한테 학교에서 뽀뽀를..... 슬그머니 눈을 뜨다 종인과 눈이 마주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깼어? 미인은 잠꾸러기라는데 잠 참 많다니까.”



쿡쿡 웃으며 부드럽게 묻는다. 어버버버 그니까 아까 그거 꿈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 그것도 학교 안에서? 놀라 주변을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다. 김종인 녀석만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있다. 저.. 자세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날 지켜보고 있었던 듯 하다. 얼굴이 화끈 거린다. 다행이다. 해가 지고 있어서. 붉어진 얼굴이 석양 빛을 받아 원래 붉은 것처럼 보이겠지. 지금 저 녀석이 그런 것처럼. 크흐흠 엄청 당황한 주제에 아무렇지 않는 척 묻는다.



“수업 언제 끝났어?”

“한... 한 시간쯤 전?”

“뭐?! 안 깨우고 뭐했어?”

“너무 곤히 자길래. 그리고 나도 몰랐어. 경수씨 자는거 보느라 시간이 이렇게 지난지.”



에라이 천연 버터 녀석아. 어떻게 그런 말이 우동 면빨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나오냐? 오히려 듣는 내가 더 더워 괜히 손부채질을 하고. 놈은 또 큭큭 웃는다. 첫 인상을 보고는 눈이 삐죽삐죽 거리는게 사납다 생각했는데. 저렇게 눈웃음 짓는 것 보면 나름 귀여운 것 같... 이게 아니지. 정신차려 도경수. 볼을 쫙쫙 내리친다. 녀석은 미간을 살짝 조이며 다가와 내 양 볼을 감싸 쥔다.



“왜 괴롭히고 그래?”

“남이사.. 내 몸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혹시 알아 나중에 내꺼 될지. 그러니까 잘 간수해”

“...미친놈.”



어후으어어어어 내 손 내 발 내 귀! 너 안 들리냐?! 내 몸이 오징어처럼 오그라드는 소리!









정략결혼




02 “자..잠깐 거..거기까지!”





“난 멍청이가 분명해.”



김종인의 뒤를 캐겠다는 패기로 학교에 등교하긴 했는데... 녀석이 몇 반 인지를 모르고 왔다. 아..씨. 몇 반이지? 혹시나 날 알아보는 선생님이 있을까 후배 놈이 있을까 잔뜩 움츠러든채 이곳 저곳을 기웃 기웃 거린다. 안보이네. 하아.. 이대로 허탕인가.. 아니지. 도경수 머리를 굴려라. 이대로 그냥 갈순 없지. 곰곰이 생각하다 에라 모르겠다. 길 가던 놈을 툭 잡는다.



“저기. 너 혹시 김종인이라고 아냐?”

“...아니 모르겠는데”

“그래?”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놈이니 길 가던 놈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알겠거니 했다. 그렇게 5명한테 물어봤을까? 다들 그런 놈은 모른다는 반응. 이상한데. 솔직히 녀석이 나보고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할 때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학교에서 한가닥 하는 놈이여서 그런줄 알았다. 선생님들은 모르는 실세라거나... 뭐 그런. 아니면 뭇 여성이든 남성이든 마음에 불을 지피고 떠나는 카사노바라거나. 그런 놈이라고 하기엔 김종인이란 이름이 유명하지 않다. 헛다리 집은 건가...



“이 자식 그냥 학교에 안나오는 거 아냐?”



그래서 나보고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한 거지. 고딩이라는 것도 개뻥이고 실은 대학생이라거나. 아니지 말투를 보면 삼십대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 놈 말만 믿고 민증도 안까봤어. 확실히 난 속은 거다 쪽에 초점을 맞추고 김종인 그거 정체가 뭐야? 이를 바득 바득 갈고 있을 때. 갑자기 등귀에서 커다란 손이 내 눈과 입을 막았다. 뭐야 이거?! 발버둥 치는 내 귓가에. 잠깐 나야 경수씨 라고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가 들린다. 귀를기점으로 온몸에 소름이 오스스 번진다. 뭐..뭐야 김종인 이 자식 설마 엄청 수상한 놈아냐?!

 








“너! 정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려와 시야가 확보 되자마자 뿌리 치고 나와서 소리치려다 딱 굳어버렸다. 어.... 저... 얼굴은..



“...너.. 너..너가 김종인.. 이었어?”

“아.. 이래서 오지 말라는 거였는데.”



내가 알던 김종인과 사뭇 다른 녀석이 눈 앞에 서있다. 얼마나 도수가 높은 건지 그 큰 눈이 콩알 마냥 작아 보이고. 깔끔하게 세팅 돼있던 머리는 어디로 간 건지 부스스. 왠지 이 녀석이라면 교복도 각 잡아서 딱 다려 입을 거라 생각했는데 교복은 개뿔. 채육복을 척 걸쳐 입어 미끈하니 길죽 길죽 한 몸이 펑퍼짐해 보인다.-우리 학교 체육복은 모델이 입어도 흑곰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성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평소와 다른 이미지는 그렇다 치고.. 난 이 녀석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녀석과 선을 보기 전부터 아는 얼굴이었다.

내가 고2 시절. 다른건 몰라도 내 사전에 지각이란건 없다라 외치던 선생님이 학년 담당이었고. 지각하는 놈들은 꼼짝 앉고 오리걸음으로 복도를 뺑뺑 돌아다녀야 했다. 그게 너무 싫었던 나는. 지각을 피하기 위해 월담을 시도했다. 되도 안되는 운동 신경으로 운동부나 되야 넘는 다는 우리 학교 담을 넘기 위해 낑낑 거리는데. 딱 저 차림과 저 얼굴을 한 녀석이 말없이 다가와서 불쑥 몸을 숙였다.



“....? 혹시 나 담 넘으라고 발판 해주는 거..냐?”



녀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 희한한 놈 다 있네. 뭐. 나야 좋지 난 2학년 3반 도경수 거든? 나중에 찾아와라 빵이라도 사줄게. 녀석이 대답도 하기 전에 냉큼 등을 밟고 담을 타 넘었었다. 녀석은 지금과 사뭇 다른 소심한 모습으로 삐죽삐죽 우리 교실 문 앞을 왔다 갔다 했고. 그 당시 친구들과 쉬는 시간 마다 운동장에서 미친 듯 뛰노는 거에 심취한 건장한 고교생이었던 나는 툭 약속했던 빵이다 잘 먹어라. 던져주고 뒤도 안돌아보고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운동장으로 돌진했었다. 그 후로도 저 녀석과 자주 마주쳤었다. 도서관에서 빌리고 싶은 책이 있는데 손이 안 닿아서 낑낑거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슥 나타나서 꺼내주고 고맙다. 한마디 하면 슥 사라지고. 지각하겠다 싶으면 구세주처럼 나타나서 발판이 되어줬었지. 근데.. 내가 왜 이놈 이름도 몰랐지?



“...아.. 내가 이름을 물어 본적이.. 없었구나.”



그래서 몰랐구나. 왠지 미안해지네... 고맙다고 빵이나 과자를 사서 던진 기억은 많은데 이름을 물어보거나.. 먼저 말을 건 기억은 없다. 뒷머리를 긁적인다. 녀석은 처음으로 내 앞에서 불만 어린 표정을 지어보였다. 팔짱을 끼고. 제법 제 나이 다운 얼굴로 입술을 삐죽이며 좀 너무 했다는 생각은 드는 거야? 묻는다. 하하하하... 내가 좀 무심한 성격이라서. 서..서운 했냐? 쩝.



“레스토랑에서 만난 날. 내심 기대했어. 날 알아봐주진 않을까. 근데 당신. 끝가지 모르더라.”



하하.. 내가 무심... 하고 또 관찰력.. 도 부족하지. 물론.. 못 알아본 내 잘못도 있지만.



“...너무 갭이 크잖아. 너 혹시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안경 벗었을 때 반전을 추구하냐? 왜 얼굴을.. 가리고. 다녀서.”



얼굴이 보이긴 하지. 왜곡돼 보여서 그렇지. 지금도 나쁘진 않은데... 그 예쁜 눈을 포토샵으로 장난친 것 마냥 가리고 있으니까. 머리도 그렇고.



“눈이 많이 나빠. 근데 렌즈 끼는거 귀찮아 하거든. 머리 만지는 것도 그렇고. 옷도 원래 편한걸 추구 하는 편이어서.”

“정말?”



그렇게 안보였는데. 내가 멀끔한 모습만 봐서 그런가. 꽤나 신경 쓰고 사는 놈이구나 그랬지. 의외라는 내 반응에 종인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으이그 내 머리를 흐트러트린다.



“그런거 귀찮아 하는 내가 왜 경수씨 앞에 그러고 나타난거라고 생각해? 당연히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거지. 첫날은 뭐.. 경수씨 말고 누님을 보는줄 알았으니까 예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였고... 두 번째는 경수씨 보러 간다고 생각하고 얼마나 신경 쓴지 알아?”



딱 한번만 김종인의 머릿속에 내 머리를 넣어서 살아 보고 싶다. 도대체 어떤 사고 방식으로 어떤 생각을 하기에 저런 말이 아무렇지 않게 툭툭 튀어나오는 걸까. 난 실제로 내가 그렇게 신경을 썼어도 온몸이 개미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어서 솔직하게 얘기 못할 것 같은데.



“아 잠깐만. 야 너. 그럼. 나 원래 알고 있었으면서 모른척 한거야?”

“경수씨가 나 기억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

“아니 그래도 그렇지! 맞다 너 그랬잖아.. 나한테.. 에.. 저기 그러니까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고. 그럼.. 그날 만나기 전부터 나한테...”



어제 첫.. 데... 그..음. 데이트..를 하며 난 물었다. 야 넌 아무리 네 성향이 그렇다지만 대뜸 할아버지가 정한 사람이랑 결혼 할 생각이 들어? 꽃다운 19살에? 억울하지 않냐? 앞으로 앞날이 창창한데. 저놈은 아니.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는데 나 경수씨 니까. 음.. 더 멋지게 말하려고 했는데. 그냥 말해야 겠네. 멋없어도 이해해. 나 실은.. 경수씨 처음 보자 마자 마음에 들었어. 몰랐지? 라고 말해서 사람 혼을 쏙 빼놓았었다. 난 그 ‘처음’이 당연히 그 레스토랑인줄 알았는데. 학교에서 만난거면.. 그때 부터인거야? 나 담 넘던? 취향 이상한 놈 지각해서 담 넘는 놈이 첫눈에 마음에 들었다고...?



“너무해”

“...뭐?”

“너무해 너무하다고. 이제 쫌 기억해주면 안돼 나?”

“...어?”



기억하다니? 뭘? 나 학교에서 너 딱 보자마자 기억해줬잖아. 뭐.. 더 있냐?



“우리가 처음 만난건 레스토랑도 학교도 아니야. 난... 내가 먼저 경수씨 좋아한거니까. 굳이 경수씨가 기억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 차라리 경수씨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레스토랑에서 처음 만난걸로 치고 시작하자 그랬다고. 그래서 학교에 오지 말라고 했던거고.”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학교에서 프리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건가 했지.



“난 경수씨한테 나 기억해 달라고 말할 생각 없었어. 근데 여기까지 찾아와서 그런 마음 들게 만든건 경수씨니까 알아서해. 나 얘기 안할거야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난건지. 알아서 떠올려봐.”



퉁퉁 거리는 모습이 새롭다. 헤에.. 내가 아무리 싫은 티 팍팍 내도 헤실헤실 좋다고 웃던 놈이. 저런 면도 있네. 난감하지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어딘가 귀엽기도 하고. 픽 웃음이 나왔다. 녀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술을 살짝 내민다. 이야. 더 놀려주고 싶어. 그러다 완전히 삐질 것 같아서. 야아 미안 미안 생각해 볼게 알았어. 녀석을 달랜다. 내 다독임이 통한건지.. 아니면 방금까지 나에게 보인 모습이 전부 연기 였는지. 녀석은 불쑥 핸드폰을 꺼내 경수씨 잠깐 여기 좀 봐봐 말하고 생각 없이 고개를 돌린 내 모습을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으로 기록한다.



“..야 뭐냐?”

“교복 입은거 오랜만이잖아. 역시 사복도 귀여운데 교복은 교복만의 매력이 있다니까. 가끔 교복 입고 만날래?”

“..야 너 변태냐?”



교복입고 데이트? 미친놈. 오늘이야 내가 너 약점이라 잡을까 해서 이거 입고 온거지만 교복이 얼마나 불편한데. 아서라 아서. 단호한 나의 대답에 에이 진짜 우리 학교 교복 경수씨한데 잘 어울리는데. 시무룩해진다. 그럼 나 사진 많이 찍어놔도 돼지? 솔직히 작년이랑 재작년에 사진 찍고 싶었는데 그땐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서 못했었거든. 경수씨 졸업하고 나서 어찌나 아쉽던지. 잘됐다 잔뜩 찍어나야지.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너 그럼 그땐 왜 나한테 말 안걸었냐?”



그땐 너가 나한테 이렇게 들이댈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나.



“그야. 나만의 짝사랑으로 넘길 생각이었으니까. 할아버지 입에서 정략결혼 얘기 안나왔으면 영원히 경수씨 모르게 좋아했을거야. 할아버지한테 그 얘기 듣고 나 얼마나 설랬는지 모르지? 비록 상대가 경수씨 누나였지만... 그 자리에 나갈 때 다짐했어. 누님한테 사정 다 얘기하고 경수씨랑 밥 한번 먹을 자리라도 가질 수 있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나랑 결혼까지도 생각 안하고 그냥 같이 밥 한번 먹고 친한 형 동생 사이를 꿈꿨다고 했다. 그런데.. 도경진 그 마녀가 대뜸 날 그 선 자리에 날 보낸 거지.



“처음.. 레스토랑 갔을 때. 그 자리에 경수씨 발견하고. 나 진짜 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딱 굳어서. 멍청하게 한참 쳐다봤었어. 이게 꿈인지 아닌지.. 의심도 되고. 그냥 경수씨도 약속 있어서 거기 온 건데 내가 괜히 착각하는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우리가 조금 늦게 만나게 된거고. 혹시나 하고 기대했다가 아니면 더 상처 받을까봐 바로 나한테 말을 걸지 못했었다고 한다. 누나의 농간질이라고 해도 나와 선을 보게 됐고. 어쩌면 이대로 잘해 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나? 지금은 절대 친한 형 동생 사이로 끝낼 생각이 없다고 경고했다. 한달 동안 야무지게 들이델꺼라나.. 뭐라나. 웃기는 소리 마 꿈깨 라고 말하는게 당연한 건데. 하도 저 녀석 들이댐에 익숙해져서 인지. 이제는 그러던지 말던지. 하고 녀석을 대하게 된다. 이대로.. 익숙해 지고 ... 정말 식장까지 끌려가는거 아닌가 몰라.

 김종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약점 잡으러 왔다가 되려 그 늪에 제대로 발을 담근 나는 하아.. 집에나 가자. 생각했다. 그런 나의 손을 종인이 녀석이 잡았다. 잘됐다 기왕 이러게 된거 오늘 학교에서 같이 있자. 끝나고 데이트 하러 가고. 반짝이는 눈으로 날 꼬셨다. 아.....으..아..이...이게 아닌데? 하하하하 아니. 뭐 졸업한 놈이 있어서 뭐 하겠냐. 나 그냥 집으로.. 갈... 이라고 분명 날 말한 것 같은데 왜 난 김종인 옆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건지. 고3인데다. 기말고사도 끝나서 딱히 수업을 진행하지도 않았지만. 수능을 준비하는 녀석들은 자습을 하다 모르는게 있으면 교탁을 지키고 있는 선생님에게 묻고 수능과 담쌓은 놈들은 잠을 자는 형식의 수업이 대부분 이었다.



“.....”



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가 읽고 종인 녀석은 예상외로 열심히 공부를 했다. 평소엔 내가 일초라도 쳐다보고 있으면 내 눈빛을 쫒는 센서를 온몸에 장착한 놈 마냥 눈을 반짝이며 왜? 내 얼굴 보고 싶어서? 난 이 각도가 괜찮은데 이쪽이 좀 더 멋지지? 물어 보더니. 오늘 만큼은 내가 십초를 봐도 일분을 봐도 느껴지지 않는 듯 책에 몰두 한다. 그동안 부담스러워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녀석의 얼굴을 그제야 똑바로 관찰한다. 사나운 듯 묘하게 크고 예쁜 눈과 곧게 뻗는 콧날. 도톰한게 특징인 입술. 에이 재수없게 잘빠졌네. 지금 안경으로 가리고 있는게 아까울 정도로.



“...!”



신경 안쓰는줄 알았는데. 갑자기 종인 녀석이 고개를 돌린다. 화들짝 놀라 경기를 일으키는 나를 보고 배를 움켜쥐고 책상에 얼굴을 박은채 큭큭 웃는다. 고개를 들어 올리고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귓가에 ‘ 나 집중해야 되는데 그렇게 보면 설래서 못해. 나중에 밖에서 실컷 보여줄 테니까 책 좀 봐. 방치하면 불쌍하잖아.’ 속삭인다. 미..미친놈. 소리치려다 주변에 고요히 자습을 하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와 크흠흠 헛기침으로 대처하고 책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옆에서 폭탄이 터지고 총소리가 들려도 난 책만 읽으리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내 귓가에 푸흐흐흐 늦은 종인 녀석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뭐 그렇게 열심히 하냐? 너 공부 잘해?”



점심시간. 급식을 먹고 꼭 해보고 싶다는게 있다며 교무실로 들어와 선생님과 한참 시름하더니 옥상열쇠를 들고 나타났다. 영화나 드라마 만화 속에선 자주 등장하는 고등학교의 옥상은 어떤 로망과 같은 존재인데.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이 현실상 학생들에게 옥상을 오픈하는 학교는 많이 없다. 우리 학교도 그건 마찬가지고. 평소에 행실이 바르고 착실했는지. 열쇠를 받아와 꽁꽁 잠긴 미지의 세계였던 옥상 열쇠로 문을 열고 날 데리고 왔다.



“나? 그냥 보통인데. 수시로 가려고”

“수시는? 왜? 빨리 치우고 놀려고?”

“응. 빨리 치우고 경수씨랑 놀아야지. 수시로 빨리 합격 해버려야 제대로 된 신혼생활도 할꺼 아냐. 안 그래?”



....물어본 내가 미친놈이다. 이놈에 주둥이야 너 그냥 가만히 있어라. 네가 나서서 제대로 되는 일은 없는 것 같으니. 뭐 씹은 표정으로 야... 영화나 만화 속에선 시원해 보이더니 겁나 푹푹 찌네. 중얼거리며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 본다. 여기 그늘로 와 여긴 시원해. 놈이 툭툭 옆자리를 두드리고. 점심 시간 찌는 듯한 태양을 피해 순순히 옆자리에 앉는다. 뭐.. 이것도 나쁘진 않네. 나름 추억거리가 되겠구나. 하늘을 보고 웃는 내 모습을 녀석은 또 찰칵 소리와 함께 핸드폰 속에 집어넣는다.



“......너 내 스토커냐?”

“몰랐어? 아주 오래된 스토컨대. 신고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어. 가족까지 인정한 성공한 스토거잖아 나.”

“.....미친놈.”



에휴. 이젠 화도 안 난다. 그냥 그런가 싶지. 이대로 익숙해지고.. 이대로.. 저놈이랑...... 아으.. 도경수 생각을 말자. 부르르르 떤다. 푸흐흐흐 이제는 익숙해진 종인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꿈만 같다. 여기 이러고 있는거. 중얼거리며 손을 뻗어 능숙하게 내 양 볼을 감싸 쥐고. 주둥이를 내 입술에 가져다 덴다. 이것도 기겁하며 싫어했는데 이젠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넘어가는 경지에 이르렀다. 뚱하니 그래 넌 뽀뽀 해라. 난 잘랜다. 등 뒤 벽에 등을 대고 눈을 감는다. 슥 뭔가 움직이는 기척이 들리더니 뭔가 묵직한게 앞으로 쭉 뻗은 내 다리위에 앉는다. 이번엔 볼을 감싸 안는게 아니라 한쪽 팔을 목에 두르고 한쪽 손으론 내 턱을 짚은데 생각보다 길게 입을 맞춘다.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했더니. 눈을 뜨고 야! 소리치며 밀어 내려 했는데 밀리기는 커녕 입안에 뭔가 슥 들어오는 불길한 느낌과 함께 날 붙잡은 손에 힘이 더들어간다. 야아아 이..이거 뭐야 이거 뭔데 막 움직이고 그러는데?! 자..잠깐 야 김종인! 기겁하며 벌떡 일어난다. 녀석은 그제야 한발 물러난다.



“야! 너!”

“긴장 좀 하라고.”



실실 거리던 놈 얼굴이 아니다. 반전 스릴러 물 마냥 웃음기와 다정함을 싹 뺀 얼굴로 날 내려다본다. 꿀꺽. 내 침 넘기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왕왕 울린다. 말없이 눈을 내리깔아 날 바라본다. 살벌한 얼굴에 비해 다정한 손가락이 얼굴에 내려와 찬찬히 앞머리를 매만진다.



“나 진심이야. 한 달 동안 들이덴다는거. 경수씨한테 관심 있다는거. 편하게 대하는 것도 좋지만. 긴장 좀 하라고. 내가 괜히 경수씨한테 형이라고 안부르는거 아니야. 그냥 형 동생 이상이 욕심이 나서 그러는 거지.”



코와 코와 마주치는 거리까지 다가와 속삭인다. 입이 움직일 때 마다 숨결이 느껴진다. 그냥 밀어 버리면 되는 건데. 예상치 못한 박력에 어쩔 줄 모르고 눈동자만 데구르르 굴린다. 거기까지 말한 녀석은 본인이 알아서 한발자국 떨어져 식 웃는다. 놀란 나에게 한손을 뻗어 볼을 만지작 거리며 너무 겁먹지는 말고. 긴장하라고 그런 거지 나 무서워 하라고 그런건 아냐. 아깐 미안. 좀 과했던 것 같기도 하네. 싫다고 하면 그 이상 안할거야. 사람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내 심장을 롤러코스터에 태운다. 그 이후 녀석이 갑자기 어색해 져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멀찍이 앉아 핸드폰만 만지는 나에게 녀석은 난감한 얼굴로 다가와 손을 꼭 잡는다.



“미안하다니까? 많이 놀랬어?”

“..얌마 너 같으면!”



안놀래겠냐?! 나 정말 거기서 내.. 그 그러니까. 몰라! 이씨. 옥상에서 내려가려는 나를 등 뒤에서 꼭 안는다.



“미안.”

“....”

“화 풀어라. 어?”

“....하아. 알았어. 이거 놔봐.”



누가 보면 어쩌려고. 순순히 손에 힘을 풀고. 난 돌아서서 꼬리를 축 내린 강아지 마냥 힘없는 녀석과 눈을 맞춘다.



“좀 놀래서 그래. 그니까.. 얌마.. 어깨 좀 펴라. 보기 싫으니까.”



어깨를 툭툭 친다. 녀석은 바로 알았어. 다행이다 슥 웃는다. 이럴 때 보면 나보다 어린 놈 인게 좀 티가 난다니까. 그 뒤로 밑으로 내려와 5,6,7교시를 풀로 자고도 한 시간이나 더 자고 일어났다. 허둥지둥 학교 밖으로 나와서 약속대로 데이트도 했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임장에서 내기 게임을 해서 처절하게 패배를 했다. 녀석에게 저녁을 사주는 걸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 됐다. 오늘도 이렇게 마무리 되는 구나 터덜터덜 녀석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잘자 말하며 쪽 입 맞추는 걸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녀석은 돌아서서 걸어간다. 아 피곤해.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방안에 들어오자 마자 핸드폰이 울린다.



“왜 또?”



순간 나도 모르게 나 보고 싶어서 그러냐? 하는 드립이 튀어나갈뻔 했다. 워워. 김종인한테 말리면 안됀다 도경수.



“아.. 내가 깜박하고 말 못 했는데.”

“응”

“...내일 우리 영감님 보러 가야 되는게 괜찮아?”



아 그래. 알았..... 어...? 뭐...? 누..굴 봐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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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보신다는 분들 있어서 힘이 납니다 ㅠㅠ 기분좋네요

과연 두사람이 처음 만난곳은 어디일까요. ㅋㅋㅋ

행복한 크리스 마스되세요~!!!




암호닉


울지요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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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성동한스토커 김조니니라니ㅜㅜㅜㅜㅠ
10년 전
독자1
아 진짜ㅠㅠ너무 재밌어요ㅠㅠ담편에 이제 영감님 뵈러 가는 건가요?ㅋㅋㅋㅋ기다리고 있을게요ㅠㅠㅠ
10년 전
독자2
헐 꿀잼! 저도 암호닉 체리밤으로신청해도될까요...?
10년 전
독자2
내가 진짜 이런걸 원해따ㅜㅜㅜㅜㅜ작가님 신알신해요ㅜㅜㅜ사랑합니다♥
10년 전
독자3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정말ㅈ ㅐ밌어영!~!!!!!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4
역시ㅠㅠㅠㅠ 볼수록 볼수록 너무 좋다ㅠㅠㅠㅠ
10년 전
독자5
진짜 재미있어요 ㅠㅠㅠㅠㅠ 다음편 기다릴게요 ㅠㅠㅠ
10년 전
독자6
우아....설레요ㅠㅠㅠㅠㅠㅠ좋다좋다ㅠㅠㅠㅠㅠ담편 완전기대되요!!!!!!!!
10년 전
독자7
헐헐....담편이 시급함다ㅠㅠㅠㅠ혹시 암호닉 신청가능한가요?그름초코우유로 부탁하겟슴다!ㅎ
10년 전
독자8
ㅠㅠㅠㅠㅠ작가님 ㅠㅠㅠ하.....진짜 ㅜㅜㅜ완전꿀꿀꿀잼 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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