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들 앞에서 힘자랑 좀 해보겠다고 나섰던게 화근이었나. 50kg 덤벨을 들다가 그만 왼쪽 팔이 아작이 나버렸다. 팔도 나가고, 쪽도 나가고. 후임들 앞에서 비웃음이나 사고 김종인 체면이 이게 뭐냐. 이불 발차기 50년 치 예약감이라는 생각이 들자 쪽팔려서 몸서리가 쳐졌다. 후임들이 모셔다 주겠다는 걸 극구 사양하고 혼자서 길을 걷는데, 꼴이 처량하기 짝이 없다. 시간이 늦어서 병원은 엄두도 못 내고, 할 수 없이 직접 군의관 숙소로 찾아왔다. 괜히 자는 사람 깨우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 걱정으로 가득 차 머릿 속이 복잡했다. 아, 될대로 되라지. 환자가 먼저지, 잠이 먼저인가. 하고 자기 최면도 걸면서.
“…저, 군의관님 계십니까?”
노크를 하기가 무섭게 닫혀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건, 이게 군의관인가 학생인가 싶을 정도의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남자였다.
머리에 까치집을 틀고, 반쯤 뜬 눈이 영락없는 어린 애 같은 남자.
“무슨 일입니까?”
잠에서 깬지 얼마되지 않아 갈라진 목소리를 다듬으며 남자가 되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제가 팔을 좀 다쳤는데,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꼭 붙들고 있는 왼 팔의 상태가 꽤나 심각해 보였는지, 남자는 낯이 창백해지며 내 몸을 재빨리 안으로 끌어당겼다. 여기 앉으십시오. 하고는 뽈뽈 거리면서 이런 저런 의료 물품을 한 아름 들고 나와 책상 위로 쏟아내었다. 뽈뽈 돌아다니는 꼴이 꽤나 귀여워 보였다. 쬐깐한 게, 새끼 곰 같기도 하고. …아니, 지금 내가 뭔 생각을 하는거야. 팔만 다친 줄 알았더니, 머리도 어떻게 됐나. 잡 생각을 털어버리겠다는 것처럼 머리를 좌우로 마구 흔들었다.
“일단 좀 상태를 봐야겠습니다. 옷 벗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바보 짓을 하고 있는 사이 남자가 맞은 편에 앉아 하얗고 작은 손으로 내 팔을 연신 쪼물딱 댔다. 한 입에 다 들어올 것만 같은 그 작은 손으로.
“…옷, 옷 말입니까?”
만지는 건 내 팔인데 왜 내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지. 자꾸 말이나 더듬고.
“옷을 벗어야 제대로 상태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려우면 굳이 안 벗으셔도 되지만….”
아, 아닙니다. 벗어야죠. 쟤가 말 하는데 왜 종알거리는 입술 밖에 안 보이는 것 같냐. 젤리같은 말랑말랑 하트 입술. 빨갛고 예쁜 게 한 입 베어물고 싶게 생긴….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습니다. 혹시 통증은 없습니까?”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들여다보는데, 순간 충동적으로 입 맞출 뻔 했다. 와, 나 게이로 낙인 찍힐 뻔 했어. 저 놈이 그냥 막 쥐고 흔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통증 없습니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진짜 하나도 안 아팠다. 내가 절대 아까처럼 센 척 하는 거 아니고, 진짜로.
“뼈에 금이 간 듯 한데, 내일 날 밝으면 곧장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 그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붕대를 감아온다. …에라, 모르겠다.
“저….”
망설이듯 뱉어진 목소리에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번쩍 든다. 마주 본 눈동자가 빛난다. 긴장이 밀려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름이 뭡니까.”
“예? 아, 도경수 입니다.”
이름도 꼭 저 같이 지어놨다. 도경수. 도-경수. 부르기도 딱 좋네. 제 특유의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도경수씨, 저랑 언제 한 번 데이트나 하죠. 계급장 다 떼고 말입니다.”
당황해하는 상대의 얼굴을 마주보며 더욱 환하게 미소지었다. 이제는 내가 쥐고 흔들어줄게. 도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