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였다.
처음 본 순간... 그대를 雪花 라 일컬으니 너는 내게 스며들어와 하얀 '눈꽃' 이 되었다.
"...장린..!!"
평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태환은 싸리문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자신을 향해 그가 희미하게 웃어보인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나지막이 물어오는 인사에 태환은 대답 대신 고개만 연신 끄덕여보이고 그의 손을 끌어 주막안으로 들였다.
나으리가 청으로 떠나고 한달이 지난 무렵이었다.
장터에 가기 위해 방을 나서던 태환은 마당에 우두커니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무표정한 얼굴의 사내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혹, 김재호가 보낸 사람은 아닌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그를 경계하다 쪽마루에 기대어 놓인 빗자루를 급히 들어올렸다.
"누..누구십니까!"
떨리는 손으로 싸리빗자루를 들고 엉성한 모양으로 저항을 하는 태환의 모습에 낯선 사내는 알듯 모를듯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동그란 두 눈에 가득한 공포와 불안.
붉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자신을 향해 힘을 주어 소리를 치는 모습.
하얀 손에 쥐어진 빗자루가 당장이라도 떨어질듯 위태롭기만 하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하는 태환의 모습에 사내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깊이 숙여보였다.
"저는 쑨양 나으리께서 보내신 사람입니다."
"나..나으리..?"
낯선 사내의 입에서 나온 이름 하나에 그제서야 태환은 빗자루를 쥔 손을 내렸다.
품안에서 꺼내든 서찰.
그에게서 서찰을 건네받은 태환은 종이에 단정히 쓰인 글씨를 읽어내리다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지금 가시겠습니까?"
"지금...이요...?
고개를 끄덕이는 사내의 답에 태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버렸다.
몇 안되는 짐을 챙겨들고 싸리문을 나서 그의 뒤를 따르던 태환은 서서히 걸음을 멈춰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더이상은 걸음을 뗄 수가 없다.
해가 지기 시작하여 푸른빛 가득한 길을 말없이 내딛는 장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태환은 꾹- 깨물었던 입술을
천천히 떼었다.
"저기..."
앞서 걷는 그를 불러 세우자 서서히 걸음을 멈추고 태환을 향해 돌아선다.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제가 그곳에서 산다면... 나으리께 좋지 않을겁니다."
"나으리께서 정하신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분명..."
보따리를 끌어안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는 태환의 모습에 장린은 걸음을 떼어 그 곁에 다가섰다.
"무엇을 걱정하시는 겁니까."
"...................."
"지금 마음속에 담고 계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환의 품에서 보따리 받아 든 장린은 눈빛으로 그를 다독이고 길을 재촉하기 위해 돌아섰다.
다시 걸음을 떼려는 그를 붙드는 태환의 작은 목소리.
조심스럽게 건네오는 그의 말에 장린은 다시 태환에게로 돌아섰다.
"저는 여인이 아닙니다."
흔들리는 두 눈으로 장린을 바라보던 태환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곧, 시선을 거두고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모습도 사내가 아니십니까."
"그래서... 제가 사내여서...그렇습니다. 어찌 이런 모습으로..."
태환은 여전히 바닥을 응시한채 힘차게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술만 꾹-깨물었다.
나으리댁에 간적이 있으니 그 집 사람들은 자신을 기억할것이다.
여인이었던... 나으리의 정인이었던 사람이 불쑥 사내의 복색으로 나타난다니...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청에서 이곳으로 돌아와 나으리와 함께 살게 된다면... 그들이 어찌 생각할런지...
자신때문에 잘못된 시선으로 나으리를 바라볼까 태환은 염려되었다.
"태환 도련님."
자신을 부르는 낯선 호칭에 태환이 흠칫 놀라 그와 시선을 맞췄다.
"도련님은... 쑨양 나으리의 정인이십니다. 그 누가 무슨 말을 하건, 어떤 눈으로 보건, 그런건 나으리께 중요치 않습니다."
"......................."
"만약 도련님이 우려하시던 일이 생긴다면 제가 지켜낼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뚝뚝한 얼굴에 웃음은 보이지 않았지만...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건네는 그의 말에 태환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젠 가시겠습니까?"
보일듯 말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태환은 결심을 한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돌아서서 어둠이 내려앉는 길을 걸어나가는 장린의 뒤를 따라 태환도 한걸음을 내딛어 그 곁으로 다가섰다.
주막으로 장린의 손을 붙들고 들어온 태환은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금옥에게 웃음 지었다.
손끝으로 장린과 태환을 번갈아 가리키는 금옥.
너무 놀라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는 여인을 향해 장린이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아니, 어찌 아는 사이오? 태환은 이 사내를 어찌 안단 말이오?"
"장린은... 쑨양 나으리의 오랜 벗이오."
"나으리?!"
태환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금옥의 두 눈이 더욱 커다래진다.
"아니, 그러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장린을 바라보는 금옥의 두 눈이 당혹감에서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빤히 바라보는 금옥의 모습에 태환이 여인의 얼굴 앞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일단! 국밥 한그릇 내오시오. 먼 곳에서 온 사람인데 식사는 대접해야하지 않겠소?"
"어..어! 그럼~그럼~"
그제서야 장린에게서 시선을 뗀 금옥은 얼른 상을 내오겠다며 잰걸음으로 부엌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태환은 여인이 모습을 감추고서야 웅성이는 소음을 피해 방안으로 몸을 들였다.
"갑자기 이곳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멀뚱히 서있는 그를 방안에 앉히고 갑자기 찾아온 그를 향해 궁금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 물음에 장린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떠오른다.
"나으리께서도 곧, 돌아오실겁니다."
"아..."
그가 돌아올거라는 소식에 태환은 그만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진짜요~? 이제 오시는 겁니까? 언제쯤 오시는 겁니까?!"
"삼일 후면 돌아오실겁니다."
고운 얼굴 가득 환하게 웃으며 기뻐서 어찌 할 줄을 모르는 태환의 모습에 그를 바라보는 장린의 얼굴에도 웃음이 비친다.
아이처럼 마냥 기뻐하다가 장린과 눈이 마주치고서야 얼굴이 붉어져버린 태환은 흠흠..헛기침을 해보이고 애써 웃음을 삼켰다.
"기뻐하셔도 됩니다. 지금 이 모습을 나으리께서 보셨다면 좋아하셨을겁니다."
"푸흐흐... 아, 그렇습니까~?"
마음껏 기뻐하라는 그의 말에 태환은 붉어진 양뺨을 감싸고 쑥쓰럽게 웃어보였다.
겨울이 지나 따스한 봄의 기운이 가득한 좋은 날.
갑작스럽게 들려온 나으리의 소식에 태환은 날아갈듯 기뻤다.
그를 향한 그리움이 더해질까... 잠시동안 마음속에 고이 담아두었던 행복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눈앞에 그려진다.
...설화...태환...
자신을 부르던 한없이 다정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올라 두근거리는 태환의 가슴을 간질인다.
밀려드는 손님때문에 급히 식사를 마치고 주막을 벗어난 두 사람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터를 벗어나
한적한 길로 들어섰다.
인적 하나 없는 조용한 길을 말없이 걷던 태환은 장린의 옆모습을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에 흠..하고 헛기침을 해보였다.
몇번을 그랬을까...
한참을 망설이는 태환의 기색에 장린이 서서히 걸음을 멈춰섰다.
"태환도련님. 혹, 저에게 하고자 하는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
"있으시다면 하셔도 됩니다."
"그게..."
장린이 오기 전 금옥과 했던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몇번이나 묻고 싶었지만 지나간 일을 굳이 물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태환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들...
그날 밤, 대화방을 찾아와 포졸들을 피해 도망가라고 전했던 이가 장린이었다는 사실에 태환은 놀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궁금해졌다.
그날 일이 나으리와 관련된 일이었을까?
붉은 입술을 달싹이며 계속해서 망설이고 있는 태환을 바라보던 장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무엇이든 답해 드리겠습니다. 말씀해보십시오."
태환이 자신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듯, 장린은 차분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했다.
그 눈빛에 한참을 망설이던 태환의 입술이 살며시 열린다.
"대화방을 포도청에 고했던 이가...나으리셨습니까..?"
조심스러운 태환의 물음에 장린은 잠시 두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가 천천히 떠올렸다.
"그렇습니다. 나으리께서 그리하셨습니다."
차분한 어조로 답하는 그의 말에 태환은 두 눈을 커다랗게 떠올렸다.
"도련님을 지키기 위한... 나으리의 선택이셨습니다."
장린이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고 있기에 쑨양은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쉬운 상대가 아니기에 그 자신도 걱정은 되었지만 설화를 그냥 두고 볼 수 만은 없는 일이다.
여인의 곁에 두기에.. 김재호는 매우 위험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고 해결을 해야 한다면....."
잠시 깊은 생각에 빠진듯 찻잔만 기울이던 쑨양은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 하나에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에게 부탁할 일이 한가지 더 있다. 그 일만 해결하고... 먼저 청나라로 돌아가거라."
"말씀만 하십시오."
찻잔을 내려놓으며 장린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리는 호롱불에 붉게 반사되어 타오른다.
"대화방을 포도청에 고할것이다."
".....!!!....."
"그리된다면... 김재호도 별 수 없겠지."
"............."
"네가 해줄 일은 포졸들이 그곳에 들이닥치기 전, 대화방의 여주인을 찾아가 알려주면 된다.
내가 관련된 일이라는것을 금옥이 알아서는 안되니... 네가 적격이다."
"그리하겠습니다."
자신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는 장린을 바라보던 쑨양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호롱불에 시선을 두었다.
흔들리는 호롱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제가 그대를 지켜낼 수 있는 방법은...현재로서는 이것뿐입니다.]
깊은 생각에 빠진듯한 그를 바라보던 장린은 시름이 가득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
나의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친왕께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장린은 알고 있었다.
김재호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존재를 여인에게 드러내지 않은채 지켜낼 수 있는 방법.
친왕께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낮은 한숨을 내뱉은 장린은 짙은 구름에 가려진 달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그럼에도 김재호가 여인을 놓지 않는다면... 그땐 어찌하시겠습니까?"
멀리서 불어오는 시린 겨울바람에 그의 검은 옷자락이 휘날린다.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내 쉰 장린은 걸음을 떼어 어두운 마당을 가로질러 나갔다.
***
안녕하세요~흰둥이입니다...
너무 너무 바빠서...정신이 하나도 없어요ㅠㅠㅠㅠㅠ
그래서 글도 이상한것 같고...마지막까지 멋지게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일이 빵빵-터지네요...휴
장린의 마지막 걱정에 대한 답은...
김재호를 찾아가 협박 + 목에 선긋기로 끝이 났지요ㅋㅋㅋ터프 쑨양ㅋ
과거도 다 밝혀졌네요~홀가분해라~~!!ㅎㅎㅎ
원래 29화가 완결인데... 다 적지 못한 상황이라
다음이야기가 완결이라고 확실히 말씀을 못드리겠어요ㅠ
29화나 30화 둘중 하나가 완결입니다...헙;;
그리고...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29화는 '월요일'에 들고 오겠습니다...
좀..특수한 일이라 요즘 밤,낮 없이 일하느라...
정말...너무 너무 바빠서...엉엉ㅠㅠㅠㅠㅠㅠㅠㅠ
자꾸 기다리시게해서 죄송해요!!!!!
절대로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는걸 알아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
저도 얼른 마무리짓고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어요...ㅠ_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댓글 달아주시고...기다려주시기까지 하시는 많은 독자님들...
너무 너무 죄송하고..감사하고..사릉합니다♡
좋은 하루~ 활기찬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