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박찬열과 김종인을 동물에 비유해보기로 했다. 첫번째. 박찬열과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은 '여우'다. 생긴 것은 여우가 아님이 틀림없지만, 하는 행동들을 보면 여우가 틀림없었다. 박찬열은 내가 아는 것 보다 영악하고, 질 나쁜 놈이었다. 그에 비해 김종인은 사자였다. 모든 숲 속의 정상에 군림하는 사자. 여우는 그런 사자에게 앞에서는 아부를 하지만, 뒤돌면 다른 사람이 되기 마련이다. 박찬열은 여우였다. Eclipse W. 푸우 여기 갑갑하지? 책 읽을래? 처음엔 찬열의 권유에 나는 기뻤다. 예전 그 일을 당한 후, 배식 방법도 바뀌었기에 나는 방 안에 갇힌 사람마냥 아무런 사람과도 접촉할 수 없었다. 물론 김종인은 사람이 아니니까 하는 소리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김종인과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뜻 방문을 열어준 박찬열이 반가웠기만 했다. 박찬열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책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는 서재였다. 내 키의 두 배 정도 되는 책장들에는 책이 빼곡히 넣어져 있었다. 와-.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박찬열이 나를 책장들의 중심에 설치되어있는 책상에 앉혔다. 책은 책상에서 읽어야지. 여긴 어디예요? 김종인씨 서재. 말로만 김종인꺼라고 하는데, 그냥 공용이야. 아, 정말요?
어. 근데 있잖아…….
박찬열은 일부로 나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 말끝을 늘어뜨렸다. 그리고 그 날의 나는 멋지게 박찬열의 계획 속으로 온 몸을 담궜다.
저기 서랍은 열어보면 안돼.
…왜요?
김종인의 사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는 노트가 있거든-. 예를 들자면, 다이어리 같은거?
…….
여기서 좀 책 좀 읽고 있어. 나 어디 좀 나갔다 와야 해서.
박찬열은 그대로 서재를 나갔다. 끽- 쿵. 꽤나 둔탁한 소리가 서재를 울리자, 나는 호기심에 뒤덮였다. '다이어리'라는 말이 나를 유혹했다. 과연 아담과 이브는 '선과 악'의 열매를 아무것도 모르고 먹었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아담과 이브도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먹었기 때문에 NO. 나는 조심스럽게 서랍을 열었다. 서랍안은 휑할정도로 깨끗했다. 단 하나, 다이어리로 추정되는 노트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그 겉표지에는 정갈한 글씨체가 적혀있었다. 'Dear my honey'. 나의 부인에게, 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내가 보지 말아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하지만 난 곧 고개를 저었다. 난 이미 여우의 유혹에 빠진지 오래였다.
7월 9일
나는 오늘 참 신기했어.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당신과 똑닮은 아이를 봤거든.
웃는 모습도, 걸어다니는 습관도. 당신이 살아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어.
그리고 난 직감했지.
난 이 아이를 이곳에 들이고 말것이라는 직감 말이야.
페이지를 넘겼다.
7월 31일
당신의 생일이야, 생일 축하해.
그리고 당신과 나의 집에 인간을 들여놓은 것은 정말 진심으로 미안해.
하지만 나도 그 아이를 보며 위안을 받고 싶었어.
날 이해해줄 수 있지?
사랑해. 마지막으로 생일축하해.
7월 31일. 내가 병원에서 나온 날이다.
9월 6일
오늘은 꽤나 겁났던 날이었어.
나는 그 아이를 홀로 방치해 놓은 내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
경수가 밥을 잘못 줬나봐, 피를 가져다 주게 되었는데
그만 그 아이가 그 피가 담긴 그릇을 쏟고서는 창을 열어버렸지 뭐야.
내가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 아이는 불멸의 사람이 될 뻔 했어.
나는 그 아이가 불멸의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그리고 그 아이는 여기에 있는 사람이 모두 뱀파이어라는 것을 알곤 그대로 쓰러졌지.
죽는줄 알고 엄청 놀랬어. 순간 당신이 겹쳐 보였거든.
나는 지금 후회해, 내가 괜히 그 아이의 삶에 끼어들었나 하고.
…….
5월 6일
나는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에게 못 다했던 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노트를 쓸 계획이야.
내 영생 덕분에 아무리 죽음에 무뎌졌긴 했지만
당신의 죽음은 아직도 내겐 너무 큰 상처야.
당신이 죽을 때 흘리던 눈물, 그 증오를 가득 담아 나를 보는 눈빛.
난 아직도 잊을 수 없어.
하늘에선 편안하길 바래.
나는 그대로 노트를 덮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서러움에 휩싸였다. 그니까, 나는 '당신'의 대역이고, 김종인은 그런 나를 통해 '당신'이라는 사람을 봐왔다는 말이었다. 나는 노트를 아무렇게나 서랍속에 쑤셔놓고서는, 서재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열어! 열으라고, 박찬열! 내 외침에 박찬열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바로 열었다. 문이 열리고 보이는 박찬열은 웃고있었다. 나는 박찬열을 똑바로 쳐다보고서는 또박또박 말했다.
…이런, 걸 원했던거야?
…….
왜? 왜 이런걸 원한건데?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표독스럽게 박찬열을 째려보자, 박찬열은 어깨를 으쓱이며 서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아직 서재 밖으로 한 발자국도 딛지 않은 상태였기에 나는 그대로 다시 닫히는 문을 바라보았다. 끽- 쿵. 아까와 비슷한 소음이었다. 소음이 들리자, 난 다시 서재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박찬열은 태생적으로 능글맞은 것이 분명했다. 나는 울고 있는데, 박찬열은 웃으며 책상과 함께 있는 의자에 앉고서는 턱을 괴었다. 왜 그랬냐고. 비록 작은 목소리지만 박찬열이 못 들었을리가 없다. 박찬열 뭐가 좋은지 헤실헤실 웃고있기만 했다.
대답 안할꺼면…….
나는.
…….
김종인이 참 우상이야. 뭘 하든 멋지고, 그렇지?
…….
근데 말야, 백현아.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뜨자, 박찬열은 어느새 내 옆에서 내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날카롭게 그 손을 쳐냈다. 짝, 하는 소리가 나며 찬열의 손이 움츠러 들었다. 만지지마. 내 말에 박찬열은 어깨를 으쓱였다. 알겠어, 까칠하네 은근. 그러고는 또 뭐가 좋은지 낄낄거렸다.
가끔씩 사람들은 우상들의 추락을 보고 싶거든.
너 사람 아니거든?
아, 정정. 가끔씩 모든 생명체들은 우상의 추락을 보고싶거든.
네가 '당신'을 죽였구나?
아니.
찬열이 재빠르게 액자 안에서 사진을 꺼내들었다. 여장한 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똑닮아 있는 얼굴. 박찬열은 그 여자를 '루시'라고 불렀다. 루시. 이쁜 이름이었다. 내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박찬열은 다시 사진을 액자 안에 넣고는 나를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루시는 김종인이 죽였어.
…뭐?
놀랍지? 나도 그랬어. 루시는 김종인 손에 죽었지. 처참하게.
…….
루시랑 섹스를 하던 김종인은 견딜수가 없었던거야. 그래서 섹스 도중에 그대로 물었다고 하더라구-.
꽤나 저질스러운 단어를 섞어가며 말하는 박찬열의 말에 나는, 김종인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던 나는.
그 날 이후로 자살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
Eclipes는 여기서 마무리예요! 'ㅅ'
전 오픈엔딩이 좋으니까요! 헤헿
이번화는 백현의 부정적인 생각의 이유를 보여주는 화였네요!
시험이 끝났으니 불!!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