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부터 회색 갱지가 천천히 밀려왔다.
졸려 죽겠는데 뭐 이딴 걸 나눠 갖으라고 하나.
우현은 엎드려 있던 몸을 일으켰다.
며칠 후에 수학여행을 간다는데, 배경지식이랍시고 정보지를 나눠주는 모양이었다.
우현은 앞에서 건네받은 갱지를 옆자리에도 차곡차곡 놓았다.
옆자리에 있어야 할 성규는 앞에서 갱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갯수를 맞추며 인상을 쓰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우현은 요즘 저가 왜 자꾸 저 눈 작은 꼬맹이를 쫓게 되는지 궁금해졌다.
눈도 작은 게 시선 끄는 실력 하나는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할 때 쯤, 성규가 자리에 와 앉았다.
우현은 반 강제로 뒷자리 책상에 올려져 있던 스테이플러를 가져와서 제 프린트에 콱 박았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규가 제 프린트를 모아서 우현에게 내밀었다.
"남우현, 내 거에도 박아줘."
갑자기 우현의 손이 딱 멈췄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어떤 말인지도 알고 무슨 뜻인지도 아는데, 18세 소년에게는 뭐든 필터링해서 들렸다.
교실이 순식간에 제 방으로 바뀌고, 의자에 앉아있는 성규가 침대에 누워있는 성규로 보이는 건 한순간이었다.
"남우현 안 들려? 우현아, 빨리 박아달라니까."
우현의 얼굴이 사정없이 붉어졌다.
앞으로 밤마다, 혹은 성규와 마주칠 때마다 시작될 고통의 예고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