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피코]해를 품은 달 03
˝파수꾼 아저씨…˝
˝…˝
˝어마어마한 기운이 달님에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어요. 그것도 둘 씩이나.˝
˝눈도 막히고 귀도 막힌 주제에잘도 눈치챘구나. …지호에게 그간 느껴보지 못한 행복과 느껴보지 못한 슬픔이 동시에 몰아치겠지.˝
˝어떻게 해요…˝
˝…운명이야.˝
얼음, 겨울 이런 감각적인 차가운 것은 워낙 날씨나 온도에 민감한지라 극도로 꺼려지지만 혼자, 독방 이런 추상적인 차가운 것에는 금방 익숙해지곤 했다.
이 외에도 외로움, 차가움, 어두움, 막막함, 불행, 먹구름 같이 회색빛을 띈 그것들….
그리고,
내가 하얗고 찬 운명을 품고 태어났다는 걸 받아들인 그 순간, 미치도록 외롭고 눈물나던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 나도 궁금하긴해요. 그…새학기가 되기 전 새롭게 반이 배치 될 때 있잖아요. 같은 반이던 친한 친구들과 '너 몇 반이야? 난 2반인데! 너는?' 하고 가슴 조마조마 하면서 물을 때 기분 말이에요. 6년 전, 내 운명을 수긍하면서부터 할머니와 형 빼고는 모든 걸 잃었던 그 때 이후로 단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서요.
어, 음…내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나 이제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요. 내일이면 새로운 교실, 새로운 아이들, 새로운 선생님과 함께 생활을 할거에요. 뭐, 그것들이 새로워지던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원한다거나 바란다거나 이런건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그냥, 오랫만에 그 특유의 간질간질한 떨림이 궁금해서.˝
처음 버스를 탔던 날 이후로 하늘색 300번 버스 아저씨를 볼 수 없었던 것이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였다는 것을 안 이후, 가끔 이렇게 허공에 대고 기사 아저씨께 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다.
글쎄, 그 날 이것저것 종알대던 내가 귀찮으셨을 법도 한데 평소 답지 않게 푸짐하고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시던 기사 아저씨를 잊을 수가 없어서 였을까.
아니면 이렇게라도 해서 누군가 한 명 쯤은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는 느낌이라도 받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일기를 쓰듯 조곤조곤 혼잣말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였다.
그래, 이제 익숙해졌어. 갑자기 불쑥불쑥 찾아오는 운명적인 불행들, 그리고 내게 내밀어지는 따뜻한 손들을 눈물 젖은 손톱으로 할퀴어 쳐내야 하는 내 처지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내 코와 입을 오가는 숨이 붙어있다는 이 사실만으로 다행이라 여기며, 그냥 그렇게 살자. …살다보면, 이렇게 살아가다보면 나 자신을 서서히 잃게 되겠지. 그렇게 나를 완전히 잃게 되었을 때, 이 지긋지긋한 운명도 떠나갈거야.
내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내 영혼에 달라 붙어서 내 심장박동과 함께 쿵쿵 살아 뜀뛰는 운명은 어떻게 존재하겠어.
ㅡ…너 자신을 자책하지는 마. 해를 품었던 달의 운명을 안고 태어난 인간이잖아. 네 잘못이 아냐.
내 잘못이 아니랬어. 가끔 나타나는 눈과 귀가 막힌 그 녀석이, 이렇게 살아가는 운명을 가지게 된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옛날에 분명 그랬어.
내가 점점 더 하얗고 차갑게 변해가는 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했었어.
ㅡ힘내, 달님.
그래, 힘… ….
˝젠장할…˝
애써 얼굴에 힘을 주어 웃어보려는데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는 운명에 온몸에 힘이 빠진다.
말도 안 되지만 너무나도 당연한 운명 앞에 편의점 카운터 뒤의 담배 코너를 정리하는 손이 툭, 힘없이 떨구어졌다.
▒▒▒
사실은 나 이제 점점 지쳐. 아무리 힘내자고 속으로 외쳐봐도, 그렇게 하고 몇 분 안 되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는 한숨이 턱, 턱 목을 두드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늙고 병든 할머니와 자폐증을 앓고있는 형을 내가 떠맡게 된 것엔 전혀 불만이 없어. 누가 뭐래도 사랑하는 내 가족들이니까.
내가 가장 원망하는 건, 왜 내게 다가오려는 사람들에게까지 내 저주스런 운명의 기운이 닿냐는거야….
나 고작 열 여덟살이야. 값비싼 패딩, 메이커 운동화 이런 것은 바라지도 않아.
곧 개학을 하고 아침 여덟시부터 밤 아홉시 반까지 학교에 있을 그 긴 시간동안 나는…또 혼자여야해. 난 이게 제일 싫고 지겨워.
생각해보니 분해. 억울해. 학교 가기 싫어. 두려워.
ㅡ나처럼 눈도 막고 귀도 막아. 될 수 있으면 세상과 접촉을 피해. 그게 그나마 네 운명의 아픔을 덜 느낄 수 있는 길이야.
내 자괴감에서 태어났다고 했지. 어찌되었든 내 속에서 태어났다고 했었지.
그래서 그런지 너는 태어날 때부터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어. 날 잘 알기 때문에 눈도 막고 귀도 막으면서까지 세상과 접촉을 피하라고 한거야. 내 마음이 닿는 모든 것들이 녹아 내릴지도 모르니까.
이 운명의 가시밭길 위에 나 혼자 피를 뿜으며 걷는 것보다 나 때문에 남들도 같이 이 길을 걸으며 아파하는 걸 보는 것을 더 힘들어 할 나라는 걸, 너는 나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던거야.
…그런데, 요즘들어 네가 틀렸다는 생각을 해.
학교에는 계속 나가고, 당연하다는 듯 달력의 숫자는 끊임없이 바뀌어.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긴 하는데 괜찮아지진 않아.
나 더이상…이 익숙한 외로움을 견딜 자신이 없어.
내 운명까지 껴안아 줄 수 있는 강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그 사람 냄새…그 사람의 포근한 품 냄새…있다면, 맡아보고싶어.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항상 날카롭게 세우고 있던 발톱과 이빨을 모두 뽑아 던진 진실된 나의 모습이 되어 그런 따뜻하고 강한 빛을 뿜는 품에 안겨서 울어보고 싶어.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철없는 어리광을 주절주절 다 쏟아놓으면, 기다렸단 듯 토닥토닥 내 어깨를 다독여주는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그 품에 안긴 채로 음, 음…가사는 없고 음만 있는 그 노래를 부를거야.
내가 짊어지고 있는 이 모든 세상의 것들이 하늘이 내린 내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게.
눅눅하고 먹먹한 회색빛을 띄는 이 무거운 짐들을 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펼쳐질 날카로운 가시밭길 위를 내 숨이 다하는 그 날 까지 걸을테니까,
가끔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안길 수 있는 누군가의 넓고 따뜻한 품 하나만…진짜 그거 딱 하나만… ….
와르르ㅡ
˝이…씨발… …˝
멀쩡히 진열되어있던 담배들이 갑작스레 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
찬 바람 몰아치는 겨울의 눈싸라기처럼 내 온몸 구석구석 아프게 두드리며 곤두박질 친 담배들 위에 털썩 주저앉아 머리를 싸매었다.
˝…안 바라면 될 거 아니야…˝
떨어지던 담배처럼 바닥으로 추락하는 눈물방울에 내 모습이 잠깐 담겼다 소리없이 부서진다.
조각 난 내 우는 얼굴이 보기싫게 찢어져 나뒹구는 것을 보는 것도 내가 익숙해진 수많은 것들 중 하나.
그리고, 이 희망과 좌절의 지독한 악순환 속에 갇힌 날 약 올리듯 너무나도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운명의 죽은 적색 가시꽃….
그 와중에 딸랑, 손님이 들어오는 방울소리가 들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어서오세요.' 인사를 건네었다.
'잡지책은 어디에 있죠?' 손님도 말라 비틀어진 내 눈물 따위는 보지 못한 듯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원하는 물건을 찾는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추어 가면을 바꿔쓰는 것은 나를 지금까지 버티게 해 준 가장 쓸만한 재주였다.
감정을 흘려버리면 따뜻하고 착한 눈을 한 사람들이 포르르, 작고 예쁜 파랑새를 타고 날아와 날 챙기려 들테니까, 그런 그들을 떨쳐내는 것은 지금보다 배로 힘들겠지.
˝근데 담배들이 다 쏟아졌네요. 어쩌다가…˝
˝뭐…그것도 내 운명이겠죠. 호흡곤란이 오지 않은게 어디에요.˝
˝네?˝
˝…신경쓰지 마세요, 헛소리니까. 이거, 6500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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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짜 답없다...(김 주의...ㅠ) |
진짜.............연재는 해야하는데...아주 소수지만 너무너무 감사한 독자님들 기다리시는데...손도 굳고 머리도 굳어서 너무 늦게 찾아왔네요..ㅠㅠ 미치겠슴다........이제 곧 새로운 인물들도 나올텐데...글이 안 써져요...이번 편 쓰는게 제일 힘들었어요....글이 진짜 리얼 안 써져서ㅠㅠㅠ...하 똥손 제대로 인증... 그래도 봐주시는 감사한 분들을 위해 진짜 노력할게요ㅠㅠ 정말 너무 안써지네요ㅠㅠ 이번편 별로여도 바다같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ㅠㅠ 이번편 너무 똥이라서 이해를 못 하실까봐 여기에 적어봐요. 지호는 끊임없이 겪어 온 경험 속에서 제 운명이 어떤 식으로 불행한지 대충은 알지만, 본인이 '달' 이라는 것은 몰라요. 앞으로도 영원히. 다음에 등장할 해도, 밤안개도 본인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독자분들하고 파수꾼 아저씨, 눈과 귀가 막힌 소년만 아는거에요. 이번편은 이러면 더 불행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으로 해의 따뜻함을 갈망하는 달의 그런걸 표현하고 싶었는데...똥손 덕에 fail.......이거 보고 이해해주시길...흡.... 다음편은 최대한 빨리 돌아오도록 노력할게요! X ( ....ㅠㅠㅠ |
* 암호닉 :)
쵸코/이불/달/솜사탕/낙서/루팡/오이/쌀알/나의 왕자님/현기증/달토끼/쨔응/새주/꿀/용구리/우샤론/쿠우 님 감사합니다 !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