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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훈루한] 타인의 리베르테

 

[세루] 타인의 리베르테

w.Starry Night

 

 

 

 

 

 

 

 

 

 

-

악의 심연을 들여다 보기엔 너무 늦은 것 같았다. 열 여덞 살의 넌 여전히 열 여덞 살이었고 스물 둘이던 나는 지금 스물 아홉이었다. 7년의 세월동안 너는 시간을 살지 않았고 나는 걸어왔다. 애타게 기다려온 숨 가쁜 나날들의 보상을 결국 받지 못했다. 아무도 우리 둘의 아픔을 알지 못할 것이다.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차라리 니가 영원한 존재였다면 내가 울지 않았을텐데. 차라리, 내가 그 날 이후로 시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갖을 아픔은 없었을텐데. 아니, 어쩌면 너도 나처럼 이렇게 먹먹한 아픔을 안고 있었을까. 왜 하필 너는 그날 그렇게 비릿한 미소를 지어야했으며, 왜 하필 나는 그 악으로부터 네 손을 잡아 이끌지 못 했을까. 아니, 왜 나는 진실의 흰 방을 무시한 채 악으로 널 들였을까. 너는 열 여덞 살의 소년이었다, 평생 그런 소년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네가 지금 스물 다섯의 청년을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나는 너를 끌어 안는다. 하지만 너는, 열 여덞 살의 소년이었고, 그 날로부터 너의 시간은 멈췄다.

 

7년 전의 일은 암묵적으로 모멸되었고, 진실을 알릴 수 없었다.

그게, 네가 원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다고 자기합리화를 한 채 7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너는, 열 여덞 살의 상태로 7년을 살았고, 이제는 더이상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 이제는 더이상 울음을 참지 않아도 괜찮았다. 하지만 너는 왜, 끝까지 공허하게 흩어질 웃음만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 제발, 7년 전만큼 아름답지 못한, 망가진 외면이지만 내면마저 그러진 않았으면 했는데 내면은 더욱 망가져 버린 것 같았다. 너의 웃음은 오롯하게 나를 좇았을 것이다. 나는 그 웃음을 회피할 수 밖에 없었다. 네가 나를 원망하는 건지, 보고싶은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후자라면 내 처량한 모습을 네게 보이고 싶지 않아 회피한 것이고, 전자라면 네게 미안해서 회피한 것이다. 아득하게 멀어지던, 너와 나를 정의하던 카탈로그들의 환멸. 모든 것은, 흑 또는 백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무것도 당당할 게 없었다. 마른 네 입술이 안타까웠다.

 

 

 

 

 

 

 

 

 

 

-

―루한

―…….

―왜, 그랬어?

―…….

 

한번만 더 그러면, 죽여버린댔잖아. 소름끼쳤다, 오싹했고, 벗어나고 싶었다.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는 그는 참, 잘생겼다. 짙은 쌍커풀이 매력적이게 보이는 그, 그가 무서웠다. 내 입술을 매만져주고, 그리고, 입 맞춰줬다. 어두운 피부 톤의 그는 그렇게 입을 맞추고 금방 입술을 떼어냈다. 그리고 런닝만 입고 있던 그는 의자에 걸쳐져 있던 흰 셔츠를 맞춰 입었다. 그의 그런 모습은 섹시했지만, 그를 향해 시선을 던질 수 없었다. 그는 왜, 나를 이렇게, 갖으려 하는 건가. 그는 창문이라고는 쇠창살로 막혀 있는 작은 창문 하나인 이 반 지하 방을 나섰다. 나에게, 도망가지 말라고 위협적으로 말을 하고는 문을 굳게 잠그고 나갔다. 쇠창살로 막혀진 창문은, 그마저도 종이 판에 가려져 밖을 볼수도 빛을 볼 수도 없었다. 어두웠고, 그가 내게 들이밀던 은빛의 칼날만이 형광등에 비춰져 반짝였다. 칼날 끝에는 붉은 피가 들여져있었다. 내 다리를 흘끗 쳐다보았다. 역시,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 나는 익숙하게 티셔츠를 찢어 지혈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괜찮다 싶을 때에 일어나 물을 한컵 따라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넘어갈 때의 쾌감은 짜릿하다. 그 몰래 탈출을 시도하던 그 순간들에 비하면 아찔할 것도 없지만 갇혀 지내는 내가 느낄 쾌감은 이런 소소한 것들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컵을 따라 다 마실 때 즈음, 그래 이 때 즈음에 나는 창가 쪽으로 걸어가야했다. 그리고 창문이 있는 벽에 기댔다. 그러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오늘도, 틀리지는 않았다.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곧, 아마 나를 부를 것이다. 다시 다리가 조금 무거운 기분이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목소리가 들렸다.

 

―형?

 

익숙한 소년의 목소리는 나를 녹이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으로 조금 남았던 물을 삼키고 나서 그에게 대답을 했다. 왔어? 창문 사이로 아주 작게 들리는 그 목소리는, 소소한 쾌감들 중 하나였으며 유일하게 웃음 짓게 해주는 요소였다. 위태롭게 지내는 나에게 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유일하게도 이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형, 오늘 목소리가 조금 꺼끌한데 괜찮아요? 감기?

―아니, 그냥 방금 자다가 일어나서 그래 집에만 있는데 감기는 무슨.

―그래도, 보일러 안 틀고 있을 것 같아서 그렇죠.

―괜찮아 세훈아, 너는 매일 밖에 나돌아 다니는데 옷 따뜻하게 입고 있지?

 

…오세훈이라는, 어떤 한, 소년이었다. 소년과의 소소한 대화들에 잊었던 웃음을 되 찾아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웃고 있었고, 안정된 마음에 자연스런 목소리도 흘릴 수 있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와는 확연한 차이였다. 나는 따뜻함을 더 좋아했고, 그랬기에 이 소년이 더 좋았다. 그는, 너무 차가웠다. 나는, 차가운 것이 싫다. 그가 들이미는 칼날도 참 차가웠다. 그를 닮아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소년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소년의 목소리라서, 그렇겠지. 소년과 나는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이 종이 판자 때문에 볼 수 없었다. 차가운 그는 생각보다 똑똑해서 뗄 수 없게 만들었고 나갈 수 없게 쇠창살을 쳤지만, 소리는 막을 방법이 없었나 보다. 따뜻한 소년의 목소리가 차갑게 얼었던 내 체온을 녹여주는 것 같았다. 못 느낀지 오래인 햇살이 따뜻하단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형, 저 이만 가볼게요. 푹 쉬세요, 걱정되요 그런 목소리.

―…응, 잘 가 세훈아.

 

아쉬워요 형? 그럼 언제 한 번만 나와요. 형 얼굴 보고 싶다. …그래. 세훈이라는 소년에게는 내가 대인기피증이 있었고 그랬기에 사람을 볼 수 없어서 이렇게 지낸다는 거짓을 말했다. 세훈은 이상하게 느꼈겠지만 나를 위한 것인지 더 묻지는 않았다. 그렇게 세훈이 가고, 남은 이 공간은 다시 싸해졌다. 흰 색의 저 침대에 몸을 뉘여 자고 일어나면, 그 때 쯤이면 아마도 차갑게 얼어 붙은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생각만해도 온 몸이 얼어 붙는 느낌이었지만, 매일 그래왔기에, 저 침대에 누울 뿐이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익숙한 듯 몸은 잠을 청했다.

 

―루한, 잘잤어? 다리는, 좀 어때.

 

역시, 일어나보니 그가 의자에 앉아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셔츠를 다시 벗은 건지 구릿빛 피부에 런닝만 입고 있는 그는 꽤 위협적이게 보였다. 입술을 열어 답을 하려했지만 아까 세훈과 있을 때와는 다르게 완전히 잠긴 목소리가 퍼졌다. 괜찮아. 다리에 대한 물음에 답을 해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가 따라 일어서 내 손목을 잡아왔다. 그리고는, 한 쪽 입꼬리를 들어 올려 웃는다. 루한.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낮았다. 피하고 싶었다, 그랬으나 피할 힘이 없었다. 나는 그가 입을 맞추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정신이 없다가 맞을 표현의 상태에서 그는 내 옷을 벗겼고, 매일 그렇듯 나를 탐했다. 이리저리 휘둘려가며 항상 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그는 혀로 내 눈물을 쓸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내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랬다. 난 반항이나 거절의 선택권이 없었고 그랬기에 매일 그의 이름을 담아 부를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오롯하게 쫒은 이름은 아마도 세훈, 이 아니였을까 싶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이름은 애석하게도 종인아, 였고 차가운 그가 그 이름을 들으며 나를 안을 뿐이었다. 이제 더이상 체념할 것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이런 비참한 생을 이어가야 하는, 가. 쓰게 웃었다. 관계가 끝나고 그는 항상 뒷처리를 해주지 않은 채 다른 일을 할 뿐이었다. 때로는 아예 집을 나갔다 오기도 한다. 나는 혼자 욕실로 향할 뿐이었다.

 

비참한 생을 이어가야 하는가? 한다. 생각해보면, 세훈이라는 존재로 인해 그런 것, 같았다.

 

종인이 영원히 세훈을 모르길, 세훈마저 잃으면 죽어도 상관이 없고 오히려 죽는 게 편해 죽고 싶어 할 것 같았다. 내가 살아야 할 맹목적인 이유는 세훈이었을까? 온전하게 세훈만을 위할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종인에게 지쳐 죽어버린 나를 살리는 것이 세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종인이 나와 세훈의 소통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을까. 나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종인은 금방 알아버릴 것이다. 세훈이라는 존재를. 나는 그걸 원치 않았지만. 단 한번도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일이 흘러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매일이 초조했고, 매일이 위태로웠다. 하지만 세훈을 보면 안정감이 스미는 것이, 그것이 더 위험했다.

 

매일이 일어나서 종인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본 후 제 몸의 상처에 혼자 반창고를 붙여가며 시간을 보내다가 익숙한 시간 즈음에 물 두 컵을 마시고 창문이 있는 벽에 기대 세훈과 대화를 나눈 뒤 잠을 청한다. 그리고 나서 깨면 종인이 웃으며 나를 탐하고 그를 익숙하게 받아낸다. 그리고는 혼자 씻고 집을 정리하며 침대에 누워 잡다한 생각을 떠올리다가 어떨 때는 탈출을, 어떨 때는 체념을 하고 잠이 든다. 이게, 내 생활 패턴이었다. 탈출을 시도해서 성공한 적은 없었지만 만약에 성공한다면 이 패턴은 깨진다. 순간일지라도 깨진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지? 막상 탈출한 뒤의 이야기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탈출하더라도 얼마 안 가 다시 종인에게 잡힐 것을 알았다. 그래도, 만약, 탈출을 한다면. 세훈을 찾고 싶었다. ……. 욕심, 이었다.

 

오늘도 똑같이 종인을 보내고 어제 다쳤던 다리에 약을 바르고 나서 물을 따라 마셨다. 세훈이, 오겠지. 벽에 익숙하게 기대었고, 얼마 안 가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따뜻한 목소리는 언제나 내게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고 그 안정감에 나는 취했다. 익숙하게 안부를 주고 받다가 세훈이 다른 질문을 물어왔다. 형, 저 아침에 형 집에서 나오는 어떤 남자 봤는데 누구에요? 순간 숨이 막혀버렸다. 바로 내 뒤에 종인이 있는 기분이었다. 뒤를 돌아봤지만 다행이 종인이 있지는 않았다. 나는 대충 얼버무려 대답했다. 아는 동생이야, 나 생활하는 거 도와주고 그래…. 그러자 세훈은 아…. 하는 탄성을 뱉더니 왜 저는 안 되냐고 장난을 쳤다. 다행이라고 생각을 하고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다. 어디선가 종인이 저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은 떨쳐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뒤에 종인이 있는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오싹했고,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역시 익숙하게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타인의 입에서 종인이 거론되자 벌벌 떨게 되었다.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혹시라도 순진한 세훈이 종인에게 말을 걸어 나를 언급한다면 세훈이 위험에 처하는 것은 내 탓일 것이다. 세훈을 구해야 했는데, 세훈에게 단단히 일러두어야 했는데. 안타깝게 그럴 수가 없었다. 세훈에게 어떠한 진실도 알릴 수 없었다. 전에, 전에 한 번 창가에게 소리쳐서 경찰에 신고를 한 적이 있었는데 종인은 나를 구석에 쳐 박아 놓고 욕을 지껄여댔다. 경찰은 두 명이 왔었는데 한 명이 구석 구석 뒤지다가 나를 발견하고 다른 경찰에게 소리치려던 순간 종인이 죽여버렸다. 급소를 후려 친 경찰은 심정지라는 판정을 받아버렸고 다른 경찰 하나는 내 존재를 모른 채 돌아갔다. 종인은 위험했다. 세훈이 그런 종인에게 다가가지 않길 바랬다. 따뜻한 소년을 지키고 싶었다. 전과 달리 잠이 쉽게 들지 않았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은 무섭다.

물론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익숙해지는 것이다.

 

잠을 청하고 일어나니 언제나 그렇듯 종인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종인은 잘 잤냐는 물음 대신 내게 다가와 내 머리를 쓸어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입을 맞춰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오늘은, 조금 더 잔 것 같네? 라는데 소름이 돋았다. 그는 내게 익숙한 패턴을 알고 그렇다는 것은 내가 이상함을 눈치 챌 것이 뻔했다. 놀라서 눈을 크게 뜨자 종인은 아주 낮게 그르렁 거리는 목소리로 웃었다. 뭔가, 조금 다르다. 내가 세훈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조금 위험했고, 달랐다. 하지만 종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내 옷 가지를 벗겨 가기 바빴다. 정말, 몰랐으면 좋겠다. 내가, 과민반응 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생각해본다. 세훈을 지키고 싶었다. 그것을 나를 지키고 싶은 것과 마찬가지다. 종인은 생각과는 다르게 평소와 같은 패턴으로 나를 이끌었다.

 

입술을 깨물고 불안한 기색을 숨겨보려 했다. 종인은 나를 범하고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혹여 세훈을 보러가는 것일까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제 몸부터 가눠야할 것 같다. 덜덜 떨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욕실로가 깨끗히 씻어냈다. 더럽다는 느낌은 가시질 않았지만 익숙한 생활에 체념할 뿐이었다. 세훈은 제발 멀쩡하길 입술을 물어 뜯으며 저녁을 준비했다. 집에 있는 찬밥과 반찬거리를 데우는 것 뿐이었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손이 심하게 떨린다. 제발 다시 멀쩡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 이런 눈에 띄는 행동은 세훈이 위험해지는 것을 재촉할 뿐인데. 생각과는 다르게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부디, 제발, 멀쩡했으면 좋겠다. 저녁을 차리고 대충 밥을 몇 숟가락 떠 먹고 세훈 걱정에 지쳐 침대 위로 다시 누웠다. 여전히, 종인은, 들어오지 않았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닫혔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네 볼을 쓸어주면서 저녁 준비 했네? 라 묻는다. 종인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는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종인 역시 나처럼 많은 양을 먹지 않았다. 종인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자 아, 저거 치워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하지만 몸은 따라주질 않았고 눈은 감겨 버렸다. 마음 속으로 일어나는 두려움과 걱정에 몸이 지쳤나 보다. 어떻게 할 수도 없이 그냥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다. 종인은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 라고, 단정, 지어, 본다.

 

―루한, 다녀올게.

―…….

―밥 잘 챙기고.

―…….

―나가려고 하면….

―…….

 

말을 이을 것 같이 굴더니 더이상 말을 않고 집을 나섰다. 종인은 나를 이렇게 가둬두고 따로 하는 일이 있는지 매일 아침 나간다. 그렇기에 그 때에 맞춰 일어나는 나는 시계가 없어도 대충 시간이 익숙했고 세훈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떼울 뿐이었다. 오늘은 청소를 하려고 한다. 다리는 꽤 괜찮아졌다. 종인이 죽일 생각이 없음이 분명해 보이는 상처 크기였다. 집 안은 종인의 옷 가지가 널려 있었다. 그것을 세탁기에 몰아 넣고 돌렸다. 반 지하 방이지만 꽤 넓었고 있을 것도 다 있었다. 종인은 그저 단지 나를 가두기 위해 반 지하 방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침대 정리를 하고, 옷도 갈아입었다. 종인의 옷들은 내게 맞지 않았지만 나름 잘 찾아서 입고 있었다. 보여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사이즈만 따질 뿐이었다. 집 안 냉장고에 있는 썩은 먹거리들도 나 싱크대 옆에 가져다 놓았다. 저러면 종인이 알아서 치워주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익숙한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자 역시 나는 물을 따랐다. 한 컵은 마시고, 다시 따라서 한 컵을 들고 창가 벽에 기댔다. 세훈을, 매일 익숙하게 기다렸다.

 

―형, 날씨가 좀 녹았어요.

―그러게 세훈아, 봄, 맞지?

―네, 4월 중순도 지났죠.

―올해는 유난히 추웠던 것 같아….

―제 생일이 겨울인 줄 알았다니까요?

 

생일? 모르고 있었다. 놀란 목소리로 세훈에게 생일이었어? 하고 묻자 아 형 몰랐나, 얼마 전에 제 생일이었어요. 하고 답을 해 온다. 바보 같이 세훈의 생일도 모르고 있었다니. 미안한 투로 어쩌지 하고 걱정을 하니 형, 몰랐으니까 괜찮아요 생일은 다음 해에도 오는 거고. 세훈이 이렇게 말해도 마음의 짐은 무겁다. 나는 세훈에게 삶을 선물 받았는데 나는 세훈에게 짐만 되어주고 있는 기분이었다. 세훈, 미안해. 선물, 줘야 할텐데. 어차피, 줄 수 없었지만 세훈에게 말이라도 해 봤다. 형 얼굴 보고 싶지만 아직 이른 것 같다고 생각하면….

 

―제가 핸드폰 번호 문 쪽에 끼워 놓을테니까 언제, 언제 한 번 전화라도 해 주세요, 형.

 

나는 그 길로 문가로 가서 작은 종이를 뽑아 들었다. 세훈의 삐뚤빼뚤한 글씨가 보였다. 문가에서 다시 창가로 가자고 말을 한 뒤 쓰게 웃었다. 조금이라도 일상 패턴의 궤도에서 어긋나면 불안했다. 창가로 가서 세훈 글씨가 귀엽다는 소리를 하자 못 쓴다면서 자책하는 소리가 들렸다. 난, 그러고보니 난 글을 써본 게 언제였을까. 딱히 글을 남긴 적도 없었을 뿐더러, 대화도 근래 들어 세훈을 마주하며 자주 할 뿐이지 종인과 있을 때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세훈은 내게 산다는 것을 일 깨워주는 존재인 것 같다. 그리고 세훈은 내게 물음을 던져왔다.

 

―형, 형 생일은 언제에요?

 

아, 내 생일. 까마득하게도 잊고 지낸 것 같다. 나, 내 생일. 루한, 나의 생일은. ……. 4월 20일. 짧게 대답을 마치자 세훈은 아…. 하고 목소리를 삼키더니 작게 웃었다. 형 저랑 생일, 8일 밖에 차이 안 나네요. 그렇다면 세훈의 생일은 4월 12일. 나와 세훈이는 4년 보다 8일 적게 세상에 공존하지 않았다. 새삼 이렇게 접하니 세훈보다 많이 늙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오늘이 며칠인지 몰랐다. 그저 4월 중순 넘어간단 소리를 방금 세훈을 통해 들었을 뿐이다. 집에, 세상 밖과 소통할 무엇도 없다보니 그랬다. 세훈에게 들키지 않게 일부러 날짜 이야기는 짧게 마치고는 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생일이 지났는지 오늘인지 아직인지, 조차 불확실하다. 세훈은 금방 나와 이별을 고했다. 내일 또 보겠지만, 세훈의 핸드폰 번호를 손에 꼭 쥐었다. 종인이 모르게 지녀야한다. 위험했지만, 안정감이 스몄다.

 

나는 역시 흰 침대로 가서 누웠을 뿐이다. 세훈의 폰 번호는 달달달 외워서 종이를 삼켰다. 어디에다가 두던, 종인이 찾을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이 자꾸 스쳐서 그랬다. 누워서 바로 잠들지 못한 이유도 번호를 외우느라 그랬다. 머리가 좋지 못했지만 내게 외울 것은 세훈의 번호 뿐이었다. 굳이 하나 더 가져다 붙이자면 세훈의 생일이었다. 종인은 언젠가부터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겨우 잠이 들었다. 제발 번호를 까먹지 않길.

 

일어나보니 역시 종인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위협적인 붉은색 셔츠를 입고 있는데 괜히 혈액 색 같아서 토기가 오를 뻔했다. 종인은 잘 잤냐 물어주고는 세탁기에 빨래 그대로 있더라, 라고 말을 덧붙여주었다. 아, 맞다, 안 널어 놨네. 일찍 잠든 것 같이 굴면서 아무렇지 않게 세탁물들을 널러 향했다. 햇빛 하나 들지 않아서 마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건조대를 펼치고 옷 가지를 걸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식탁 위에서 빛나는 은빛 칼날이 왠지 오늘따라 너무나 날카로워 보였다. 종인이 씻은 건지, 내 혈흔 자국은 남아 있질 않았다. 왠지 예감이 불길했다. 은연 중의 내가 세훈을 언급하기라도 한 걸까. 하지만 종인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침대로 와 누운 내 위로 올라탔다. 오늘도 끔찍한 관계를 맺었다.

 

종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종인이 리드하는 대로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조금 달랐다. 정말로. 종인은 상체까지만 나를 애무하더니 이내 일어나서 담배를 태웠다. 담배 냄새를 싫어했지만 종인에 의해 이제 익숙해졌다. 왜일까. 종인은 입에 물었던 담배를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빼고는 웃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내 이름을 부드럽게 부르는데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설마, 세훈을 안 걸까? 나는 다시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몸이 바르르 떨리는 것 같았다. 루한아, 너는 참, 아름다워. 종인은 달랐다. 아까 그 칼이 머릿 속에 그려졌다. 옷을 추스리면서 나 역시도 자리서 일어났다.

 

―루한.

―…….

―열 여덞 살짜리 꼬마애, 알지?

―……!

―세훈, 이라고 했던가.

 

루한, 너를 알더라고. 종인이 금방 알아차릴 것은 예상했지만 어제를 넘긴 오늘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무슨 일일까. 어째서 그는 세훈의 이름도, 나이도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혼란 속에 빠져 버렸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 버렸다. 제발, 종인아. 제발…. 하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를 않았다. 그저 나는 발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종인은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의 왼쪽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그는, 그렇게 웃을 때 제일 잔인해보였다.

 

―무슨 사이야?

―…….

―말 안 해?

―…….

―죽여도 괜찮아?

―…아니.

 

루한, 목소리 되게 오랜만에 듣는다. 종인은 장난스럽게 말하더니 내게 다가와 내 머리채를 꽉 잡는다. 처음부터 세훈과 접촉하는 게 아니였다. 나를 위해서, 그를 위해서, 세훈을 위해서라도. 나와 세훈이 만난다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종인은 내 머리채를 흔들면서 미친 듯 물어왔다. 그 새끼 뭐야. 그 새끼 뭔데 씨발. 그 새끼가 뭔데 형을 알아! 그 씨발 놈이 뭔데 내가 죽이면 안 되는 건데 루한? 종인은 흥분한 게 틀림 없었다. 종인은 나를 식탁 위에 억지로 엎드리게 만들고 입술을 맞춰왔다. 그리고 남은 하의를 벗기려고 하고 있었다. 그는 위험했다. 반항하려 하자 그가 내 머리를 식탁에 세게 박았다. 아, 아프다. ……. 그는 한 번으로 족하지 않았다. 계속 내게 분노를 표하고 있었고, 해를 가하고 있었다.

 

그 새끼랑 언제부터 알았어? 아예 한 번 탈출을 시도한 날 자기라도 했어? 그 새끼가 나보다 잘 해주디? 씨발? 창녀 같은 년아, 넌 그냥 평생 나랑 같이 살아야 해. 나랑 평생 섹스하면서, 내 사랑 받으면서 지내라고 씨발!

 

종인은 제 정신이 아니였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내 시야에 들어온 건 종인이 아마, 세훈을 죽이기 위해 갈아 놓은 칼, 이었다.

 

 

 

 

 

푹―.

칼이 종인의 복부를 찌른 건 순간이었다. 아…. 종인은 낮게 신음했다. 그리고는 말을 잇는데, 너무 안 쓰러워… 보였다.

 

―으….

―…미안해 종인아.

―…루…루한….

 

종인은 쓰러졌다. 붉은 피가 바닥을 적셔 들어갔고 나는 겁에 질렸을 뿐이었다. 내가, 종인을 죽였다? 내가 종인을 죽였다. 내가, 종인을, 죽였다. 종인은 숨을 쉬지 않았다. 종인은…. 나를 사랑하던 김종인은…. ……. 죽었다. 기쁘지는 않았다. 걱정만이 앞설 뿐이었다. 너무 놀라 소리조차 지를 수 없었다. 의도한 것이 아니였다. 나는 종인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다. 종인을, 종인을…. 종인을…. 하지만 어쩌면 나는 원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건 그가 죽는 것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무서웠다. 종인을 내가 죽였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몸이 발발 떨려온다. 안식처가 필요했다. 제발, 제발. 종인의 바지 주머니를 뒤적였다. 금방 종인의 핸드폰이 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세훈의 번호를 입력해 갔다. 공…, 일…, 공…. 빌어먹게도 이 상황에 생각나는 사람은 세훈 하나였고, 세훈 밖에 없었다. 나는 오로지 종인과 세훈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다. 신호가 갔다. 다행이도 익숙한 목소리로 여보세요? 라는 말이 들렸다.

 

―세훈아….

「형? 형이에요? 루한 형?」

―세, 세훈아 나, 나 어떡해…?

 

형, 무슨 일이에요, 천천히 말해봐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내가 사람을 죽였어 세훈아…. 다짜고짜 사람을 죽였다고 말을 하니 세훈도 놀랐을 것이다. 막상 뱉고 아무 대답이 없는 핸드폰 저 편을 생각하니 괜히 말했나 싶기도 하다. 생각이 짧은 나를 죽도록 탓했다. 바보, 바보! 나는 왜 이것까지 밖에 안 되는 것일까. 하지만 저 편에서는 침착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형, 제가 지금 갈테니까 거기 있어요, 집이죠? 응….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눈물이 나왔다. 종인이 죽은 게 마음이 편치 만은 않았다. 오히려 너무 갑갑해 내가 다 죽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괜히 세훈에게 전화를 했다는 생각까지 겹쳤다. 죽고 싶었다, 세훈이 오기 전에 죽어버릴까…? 종인의 피로 물들어버린 칼날 끝을 제 목가에 가져다가 대는 짓을 하다가 칼을 떨어뜨렸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아직은, 죽기 싫었던 걸까 나는. 붉게 물든 바닥과 그 위의 종인, 그 둘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문 앞에 있었다. 나도 모르게 세훈이 나를 감싸주길 바라고 있었다. 웅크려 앉아서 떨리는 몸을 달래본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떨리는 손을 애써 붙잡아가며 문을 잡았다. 세훈, 세훈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면 어떡하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은 문을 잡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형, 저 세훈이에요. 아…. 문을 열었다. 나 같은 괴물을, 사람을 죽인 괴물을 위해 한 밤 중에 내게 와준 세훈….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한다. 늘 목소리로만 마주쳐 정을 나눴다. 그리고, 그리고 오늘 처음 세훈의 얼굴을 보았다. 세훈은 키가 컸다. 세훈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어졌다. 피가 묻은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내 꼴은 사람 꼴이 아닐텐데. 이런 모습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게 미웠다. 세훈의 눈을 마주하지 못 했다. 그는, 어떤 눈을 하고 있었을까. 세훈은 내게 다가왔다. 낮은 발소리가 짧게 들렸고, 내 맨 상체 위로 자켓을 덮어주었다. 추워요… 형. 하고 말하는 세훈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나는 내 손을 쳐다봤다. 아…, 내 손은 여전히 붉었다. 손이 바르르 떨렸다.

 

―세, 세훈아. 어, 어떡해? 나 이제… 어떡해….

 

대충…, 알고 있었어요 형. 세훈은 저를 따라 앉아 나를 품에 안아줬다. …세훈의 품은 따뜻했다. 작게 신음하며 붉게 물든 두 손을 어찌 하지 못 했다. 세훈은 나를 꽉 안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세훈으로부터 받은 따뜻함과 미안함, 그리고 비참함. 세훈은 나를 토닥였다. 그리고, 나에게 씻고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세훈은 종인이 누워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나는 세훈을 종종 따라갔다. 혼자, 혼자 있기가 싫었다. 세훈은 그런 나를 다시 한 번 더 안아줬다. 그리고 내 볼을 쓰다듬어 주었다.

 

―형은, 붉은 색이 안 어울려요. 씻고… 씻고 나와요.

 

나는 세훈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세훈은 겉 옷을 벗었다. 나는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밖에서 세훈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방을 치울까…. 나는 물소리가 크게 나게 수압을 강하게 틀어 놓고 샤워를 했다. 나는 더럽다, 너무 더럽다. 이 두 손은 사람을 죽였고, 이 몸뚱아리는 이미 순수를 잃은지 오래였으며, 나의 뇌는 이기적이었다. 눈물이 다시 흘렀다. 흰 욕조에 흐르는 물이 붉다. 깨끗히 씻으려고 해도 지워지질 않았다. 낙인과도 같이 물들은 나란 존재의 불결함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죽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이기적인 존재였다. 제발, 제발 나의 파멸은 처음부터 나에 의한 게 아니였잖아. 그렇잖아. 그러니까, 나는 나쁜 게 아냐. 더럽단 생각도 들었고, 그렇지 않단 생각도 들었다. 모순이었다, 웃겼지만 정말 나는 후자를 믿고 싶었다. 나는, 나는 더럽지 않다. 나는 나쁘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순수한가.

 

세훈의 얼굴이 생각났다. 나는 거의 울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지금.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애써 억누르면서 세훈의 얼굴을 끌어 내리려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세훈의 얼굴이 그러졌고, 이미 종인의 마지막은 내 생각 속에서 사라진 것과도 같았다. 세훈…. 나는 끝까지 이기적인 존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종인과의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그런 거라고, 나는 잘못이 없다고, 오히려 종인은 죽어 마땅한 녀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난 처음부터 현실을 부정하고 남 탓하기를 좋아했던가? ……. 물줄기가 얼굴 위로 내렸다. 적정 온도의 물은 느슨했다. 아늑한 기분이 들어야 했겠지만 내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 사람을 죽였지만 나는 정당하다. 나는 참, 가식적인 아이다. 샤워기를 끄고 수건으로 대충 물기를 닦았다. 내 몸에 새겨진 죽음의 낙인을 완벽히 지워낼 방법은 없었다. 그저, 그저 세훈이 너무 보고싶었다. 옷을 대충 껴입고 수건을 걸치고 나왔다. 세훈은 칼을 씻고 있었다.

 

―다 씻었어요?

―…….

―형, 씻으니까 예쁘잖아요, 더.

 

뭐하는 거야 세훈아. 세훈은 칼을 다 씻어냈고, 그리고 내게 다가왔다. 세훈의 웃음은 참 예뻤다. 나 같은 놈과는 어울릴 수 없을 웃음이었다. 세훈은 나를 꼭 껴안았다. 아직 다 마르지 못한 젖은 내 몸을 따뜻히 안아줬다.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는 세훈은 왠지 모르게 위태로워 보였다. 형, 좋아해요…. 세훈은 그 말을 내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나를 더 세게 끌어 안았다. 그러다가 세훈도 마찬가지로 몸을 떨었다. 세훈과 나, 나와 세훈은 모두, 두려웠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세훈은 몸을 떼어 나를 쳐다보았다. 키가 조금 큰 세훈을 나는 올려다 보았다. 세훈은 아주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형….

―…어, 세훈…아.

―형도, 저… 저 좋아해요?

―…좋아해, 세훈아.

 

끝끝내 나는 이기적일 수 밖에 없었다.

 

세훈은 나를 다시 안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모순, 이 모든 상황이 모순이었다. 딜레마였고, 모순이었다. 제발, 제발 나는 어찌 해야하는가. 세훈을 잡아두어야 한다. 세훈을 절대 내 옆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해야 한다. 내게 남은 건 세훈 뿐이었다. 하지만 세훈은 나를 제외하고도 많은 것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세훈을 잡아야 한다. 난, 이기적이었고, 난 몹쓸 놈이었다. 내 얼굴은 무표정한 얼굴일 게 뻔했지만 옅게 웃으면서 세훈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세훈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이 어린 양을, 이 어린 양을 내가 추락시켜 죄송합니다.

 

―사랑해…, 세훈아.

 

그리고 세훈은 내 입술에 키스해왔다.

 

 

 

 

 

 

 

 

 

 

-

그리고 아마 세훈은 아주 슬프게 웃었던 것 같다. 7년 전의 기억은 나를 너무 아프게 조여왔다. 머리가 아팠다. 지끈했다. 악몽과도 같던 7년 전의 일들. 종인이 나를 감금한 일, 종인이 나를 강간한 일, 세훈과 만난 일, 내가 종인을 죽인 일.

 

…그리고, 세훈이 그 죄를 뒤집어 쓴 일.

 

7년 전 내가 종인을 죽이고, 세훈이 자수를 했다. 그리고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경찰은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고 종인과의 다툼이 있다가 화가 나서 죽였다고 했다. 나는, 종인과 세훈이 알던 사이였다고 말한 것 밖에 없었다. 그 조차도 불분명한 사실이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진실을 고할 수가 없었다. 세훈은 여전히 쓰게 웃었다. 그리고 법은 세훈에게 7년 형을 선고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날로부터 7년이 지난 날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은.

 

세훈이 출소하는 날이다.

 

7년의 시간 동안 나는 꼬박꼬박 세훈을 찾아갔다. 나의 이기심으로 인한 다른이의 몰락. 그것이 바로 세훈이었다.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었다. 종인에게 억눌려서 그 핑계를 대며 살아왔고, 세훈을 만나 기뻐서 그 핑계를 대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 핑계거리가 모두 동이 났을 때 나는 알았다. 아, 나는 죽지 못 해 사는 게 아니라, 사는 이유가 있어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그냥 살고 싶었구나. 그냥, 자유를 얻고 싶었구나. 온전한 내 삶을 바라고 있었구나. 그래서, 빌어먹게도 세훈을 말리지 못하고 한 발 뺐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이기적이었고 미칠 것만 같았다. 7년의 시간 내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겁쟁이인 나는 할 수 없었다. 그래, 세훈은 날 위한 거였는데 내가 진실을 돌려 놓으면 모두 소용이 없는 거잖아. 나는, 나는 정말 악마 같았다.

 

그리고 그 7년 동안 나는 나의 자유가 아닌 타인의 자유를 갈취해서 살아왔다.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합법적이지 못한 자유를 놓을 수 없었다. 갈망하고 갈망하던 내가 바라던 그 자유를 얻었는데 내가 걷어찰 수 있을까. 나는 그 정도로 곧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였다. 그러니까, 나는, 겁도 많았고 이기적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희생된 건 종인과, 세훈이었다. 나는, 미친 놈이 분명했다. 발 끝만 바라보며 걸었다. 너와 닿았다.

 

멀리서, 세훈이 보였다.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나를 위해 너를 버렸는데. 아니 어쩌면 나는, 네가 도망갈까 봐 너를 가둔 건데. 너는…, 면회를 찾아갔던 7년 내내 너는 왜 나를 보면 천사처럼 웃기만 했니, 쓸쓸해 보였지만 왜 그렇게 웃었니. 차라리 욕을 하고 화를 냈다면 나을텐데. 너는 체념이라도 한 건지, 아니면 정말 나를 사랑한 건지 진실되게 웃었다. 쓰게 보였지만, 넌, 너는…

 

―형.

 

어느 새 너와 내가 가깝게 자리했다.

 

―보고싶었어요.

 

세훈아….

 

―말 좀 해 봐요, 형….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세훈아.

―…저 형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은 게 아닌데.

 

세훈은 나를 끌어안았다. 마치, 마치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따스함처럼. 7년의 세월이 무너졌다. 너는, 열 여덞 소년이다. 나는, 스물 아홉의 악마다. 눈물이 흘렀다. 세훈을 옥 죄일 때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지금 세훈과의 포옹으로 터져버렸다. 서럽게 울어 버렸다. 울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넌데, 세훈아. 나는 그저 울기만 하였다. 세훈은 내 등을 토닥였다. 나는 더 크게 울 뿐이었다. 그동안, 그동안 내가 너의 자유를 살아왔어. 내가 너의 자유를 억지로 뺏어서 썼어. 내가 그토록 미워하던 종인과 내가 다를 게 뭐야? 종인도 나를 갖고 싶어서 나를 가뒀는데. 나도 너를 잃기 싫어서 진실을 숨겼잖아. 내가 종인과 다른 게 뭐야? 나는 울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7년의 세월이 지나고 너에게 용서를 빈다. 웃겼다.

 

아, 맞다. 종인이 그런 소리를 한 게 생각이 났다. 종인은 내 아름다움도 20대에서 끝이 날 것이라고 했다. 서른이면, 서른이면 어차피 자신이 나를 죽이지 않을까라고 했다. 나는, 스물 아홉이였다. 세훈도, 종인과 마찬가지이진 않을까?

 

세훈의 가족들이 보였다. 나는 세훈에게 손짓했다. 돌아가라고. 세훈에게 너무 미안했고, 그 가족들에게도 미안했다. 나는 죽일 놈이었다. 세훈은 아쉬운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가족들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세훈을 볼 면목이 없는 놈이었다. 내가 뺏어서 살아오던 자유는 주인을 만났다. 그럼, 나는 어디로 추락해야 하는 것인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잊고 지낸 종인이 기억이 났다. 나는 스물 아홉이었고, 세훈은 열 여덞, 스물 다섯이었다. 그렇다면 종인아, 대답해 줘. 너는 나를 어찌 했을 것이니?

 

 

 

나는 더이상의 자유가 없다.

 

세훈의 자유, 타인의 자유, 종인의 자유, 나의 자유 모두를 잃었다면,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미안해 세훈아, …사랑해.

그리고, 생일 축하해.

 

 

 

어차피 나는 서른 살에 죽을 목숨이었다.

 

 

헐 처음으로 쓴 세루 폴인럽 팬픽이긴 한데 이게 뭘까요 퓨퓨.. 역시 비루한 손은 나아질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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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작가님 대박~!!!!!!!와 글 올라오자마자 단숨에 읽었어요ㅠㅠ 세루 많이 써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2
혹시 암호닉 받으시나요????ㅠㅠ
11년 전
Starry Night
ㅇ어머사랑해요저도세루별로없어서자급자족하려고쓴글인데ㅠㅠ좋아해주셔서감사합니다헐암호닉당연ㄴ히받죠sz퍼스트시네요sz
11년 전
독자3
와 제가 퍼스트 영광입니다~로즈~로 신청하고 신알신도 하고 갑니다~세루행쇼~작가님 하트~ㅠㅠ 자급자족하지마시고 많이 써주세요 금손작가님 ㅠㅠ
11년 전
Starry Night
로즈님ㅁ저랑결혼^^농담이고감사합ㅂ니다금손이라뇨기분ㄴ은좋은데엉엉ㅇ............
11년 전
독자4
이로케 또 하나의 금손여신님이 등장하셨따...ㅠㅠㅠ잘쓰세여ㅠㅠㅠㅠㅠ아...그런데 궁금한게 있는데요..루한이는 자살할생각인가요??세훈이랑잘사는게아니라요??
11년 전
Starry Night
헉ㄱ전금손ㄴ여신ㄴ이아니라는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네루한이는자살ㄹ하려가려고ㅠㅠㅠ이유는많은ㄴ데되게서술하기귀찮아요......사랑ㅇ!
11년 전
독자5
헐 세루픽에 금손여신이 나타났다!!!!!!헐진짜로 자까님 댜릉해여ㅠㅠㅠㅠㅠㅠ스토리도 너무좋고 분위기도 너무좋아여ㅠㅠ암호닉 버블버블신청할게요!세루는 사랑입니다S2
11년 전
Starry Night
헐금손여신ㄴ이아니라는거!!!!사랑ㅇ해요저도ㅋㅋㅋㅋㅋㅋㅋ버블버블ㄹ기억할게요!!!사랑해요그렇죠세루는사랑ㅇ이고영원한행쇼,....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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