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람 03. "안녕" "....." 내 인사는 어제와 같았다. 하지만 지민이의 반응은 달랐다. 어제의 수줍은 미소 대신 무표정을 지었으며 예쁜 호선을 그리던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생각하지 못했던 반응을 마주하고 굳어 있었고 조회가 끝나자 아이들이 나에게 몰려왔다. 진짜 서울에서 왔어? 왜 온 거야? 연예인 본 적 있어? 아이들의 질문을 하나하나 답해주다 보니 1교시가 시작했다. 수업은 서울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평소에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나는 쉽게 진도를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수업 중간중간에 내 옆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을 지민이가 신경 쓰였고 1교시가 끝나자마자 그는 쏜살같이 반을 나갔다. 1교시 쉬는 시간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쉬는 시간에 그는 반을 나갔고 나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걸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는 것처럼. 점심은 새로 사귄 친구 나리와 함께 먹었다. 서로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리가 표정을 굳히고 목소리를 낮추며 내게 말했다. 혹시 너 박지민이랑 아는 사이야? "어제 학교 구경 왔을 때 운동장에서 만났었어." "걔랑 친하게 지내지 마. 좋을 거 하나 없어." "왜 그러는 거야, 다들? 지민이가 어때서." " 걔네 아빠 싸이코야. 사람도 막 죽이고. 근데 아무도 무서워서 신고를 못해. 우리 마을에는 경찰이 없어. 근데 저번에 마을 주민이 그 남자가 자기 딸 하고 부인을 죽였다고 신고해서 경찰이 우리 마을까지 왔거든. 그때 증거가 없다고 경찰들이 그냥 돌아갔나 봐. 귀찮았던 거지, 경찰들도. 그 다음날 신고한 사람이 산에서 목매단 채 발견됐대. 그때부터 그 남자 관련된 일은 모두가 쉬쉬하고 넘어가. 당연히 아들인 지민이도 안 건들고. 그니까 될 수 있으면 엮이지 마. 위험해질 수도 있어" 열심히 구구절절 말하던 나리 뒤로 급식판을 들고 남은 음식을 버리려 가는 지민이와 눈이 마주쳤다. 너도 나리가 하는 말을 들었겠지. 상처받았을까. 아니면 이미 무뎌진 건 아닐까.
곧바로 고개를 돌렸지만 난 그의 눈이 흔들리는 걸 볼 수 있었다. 보기보다 여린 아이다, 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