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ROMANCE
w.피크닉
# 라디오 로맨스는 중장편으로 메인 커플: 찬백 / 사이드 커플: 카디 입니다.
오늘부터 카디가 출몰했어요. 찬백 카디 행쇼 ~♡
" 권 작가님. "
" 어? 변 작가가 왜 왔어? 오늘 주말인데? "
백현의 밝은 목소리에 뭔가를 열심히 작성하던 권 작가가 고개를 돌렸다. 오늘 주말인데? 여기 있으면 안되는거 아닌가. 혹여나 자신이 착각한건가 싶어, 조정실 벽에 걸린 달력을 확인해봤다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이는 권 작가를 보며 백현은 픽 웃었다.
" 주중코너 끝났는데. 이 작가랑 교체 했나? "
" 그런건 아니구 오늘 공개방송 장소 섭외하러 가거든요. 여기랑 별로 먼 거리는 아니라서 가던 길에 들렸어요. 방송 준비중이신가 봐요? "
" 응. 대본 수정할게 있어서.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
" 9시 30분밖에 안됬는걸요 뭘. 근데 이 작가님은 어디 계세요? "
" 화장실로 직행 하셨지 뭐. "
아 맞다. 혀를 끌끌 차는 권 작가에 백현은 입꼬리를 쓱 올렸다. 그렇게 화장실 왔다 갔다 하시면서 일에 지장도 많이 가실텐데 계속 먹을 정도면 그렇게 중독성이 강한가.
" 마침 잘됬네. "
" 왜요? "
" 커피 타놨거든. 왠지 오늘따라 커피 한잔 더 타고 싶더라니. 맨날 변 작가가 타왔는데 뭔가 색다르지? "
" 헤헤 좀 그렇네요. 마셔두 되는거죠? "
" 그럼. "
추울텐데 한잔 마셔. 권 작가는 백현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종이컵을 내밀었다. 감사해요! 권 작가의 성의에 백현은 함박 웃음으로 보답하며 종이컵을 받았다. 근데 김 감독님은 뭐하시는 거에요. 그러니까 말이야. 항상 오면 " 변 작가. 왔어? " 라는 말을 내뱉는 종인이 가만히 앉아서 백현이 온지도 모르고 뭔가에 몰두하다니. 백현은 종이컵을 입에 앙 물고 슬금슬금 종인에게 다가갔다.
" 김 감독님. 감독님? "
" .. "
" 감독니임!! "
에이씨. 사람이 왔는데 대답도 없구 말이야. 사근사근하게 종인을 부르던 백현은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며 종인이 앉아있는 책상을 주먹으로 툭툭 쳤다. 감독니임! 어,어? 종인은 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는 쥐고 있던 펜을 황급히 놓으며 종이를 덮었다. 어 미안. 자신을 힐끗대는 백현을 보며 종인은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 어? 벼, 변작가가 왠일이야. 뭐 두고 갔나? "
" 공개방송 장소 섭외하러 가던 도중에 들렀어요. 근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
" .. 아 아니야. 아무것도. "
" 에이. 아무것도 아닌게 아닌거 같은데요? "
그.그냥 사연 정리하는거야. 종인의 말에 백현은 코웃음을 쳤다. 음향 감독님이 왠 사연 정리. 그래 내가 엄청 궁금하지만 꾹 감고 넘어가지 뭐.
" 뭐 그냥 넘어가 드릴게요. "
"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할일인가 이게. "
" 뭐 고마워 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죠. 제가 오늘 일은 비밀로 해드릴게요. "
" 고마워. 아니 이건 고마워해 할게 아닌데? "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백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종인을 음흉하게 바라봤다. 변작가 뭐 잘못 먹었어? 하루 쉬었다고 사람이 변했네. 변했어. 종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백현은 손에 들린 커피를 후르륵 들이 마시며 아무렇지 않게 뒤로 돌아 투명한 창 너머로 보이는 스튜디오를 바라보았다.
" 오늘 보이는 라디오인가 봐요. 새 코너도 시작한거 같구. "
" 응. 변 작가가 새코너 구성안 내야 되는데 오늘 생각해 보니까 쉬는 날이었더라구. 그래서 어제 부탁한건데 와줘서 고마워. "
" 에이.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하지 않으셔두 되요. "
" 어쭈. 변 작가. 우리가 무슨 사인데? "
" 음… 가족? "
얼씨구. 변 작가 다 컸네. 제가 원래 키는 좀 작지만 정신적으로는 다 컸거든요. 재치 있게 받아치는 백현의 모습에 권 작가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오늘 방송 하는 날도 아닌데 너무 빨리 온건가. 평소에는 지각을 일삼아 하는 터라 항상 분주한 조정실과 스튜디오실만 봐왔던 터였는데 이렇게 여유로운 연출진 모습들이랑. 특히 불이 꺼져 컴컴한 스튜디오실 이라니. 백현은 신기한듯 주위를 휘휘 둘러봤다.
" 왜, 신기해? "
" 좀 민망하긴 하지만… 네. 저희 라디오 전에 다른 라디오가 없어서 그런가 엄청 조용하네요. "
" 그치. 나도 가끔 적응 안될때가 있어. 집에가면 엄마 잔소리에 동생이랑 아빠랑 싸우는 소리까지. 으휴. 지겹다. 얼른 결혼을 하던가 해야지. "
" 제가 괜찮은 사람 소개시켜 드릴까요? "
" 됬네 됬어요. 나이 차가 몇살인데. 내가 자존심 있어서라도 변 작가님 한테는 소개 안 받네요. "
권 작가는 휴, 바람 빠진 풍선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가 하루하루 주름이 는다니까. 두꺼운 기획안을 들고 책상을 탁. 치는 권 작가의 행동에 백현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 가세요? 백현의 물음에 권 작가가 대답했다.
" 국장님께 제출할 서류가 있어서 난 그럼 이만… 어? 아 깜짝이야. 박 피디님 왜 그러고 계세요. "
"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변 작가님. "
" 네.네? "
" 크흠. 전 가볼게요. 그럼 이만. 변 작가 다음주에 봐. "
" 권 작가님? 권 작가님! "
헐. 이거 어뜩하지. 먹이를 갈구하는 아기새 처럼 이미 발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진 권 작가를 애타게 부르던 백현은 슬금 슬금 시선을 이동했다. 오늘은 또 뭐 때문에 그런걸까. 조정실 문에 기대고 있는 찬열의 표정은 마치 사람 몇명 죽일듯한 살기 가득한 표정을 잔뜩 담고 있다. 변 작가님? 신종 스타카토 창법 말투에 백현은 자동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 지금 장난하십니까? 혹시 저한테 악감정을 품고 계신건가요? "
" 그,그럴리가요. "
" 그럼 왜 모른척 합니까. 예? 잘리고 싶으신거군요. 아무리 작가, 피디. 이렇게 분류됬다 해도 제가 선배인데요. "
선배는 지랄. 속으로 궁시렁 대면서도 백현의 시선은 목에 달랑달랑 걸려진 사원증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찬열의 말이 맞다. 아무리 다른 직업이라 할지언정 방송계에선 구분없이 인맥이 중요시 되는 치사하고 더러운 세계이니까. 백현은 굳어 있던 표정을 확 피고 자신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찬열에게 눈을 반짝였다.
" 그럴리가요. 하하. 박 피디님도 장난은. "
" 장난 아닙니다. 저 아까부터 조정실에 있었습니다. 근데 저는 보지도 않으시고 뭐. 전 제가 투명인간이라도 된지 알았네요. "
" 그럴리가 없는데.. 분명 조정실에 권 작가님이랑 김 감독님 밖에 안 계셨는데.. "
" 그럴리가 있습니다. 그냥 변 작가님이 보고 싶은 것만 보신거겠죠. "
정답. 차마 뱉을 수 없는 말을 꾸울꺽 삼킨 백현은 눈알을 도록도록 굴렸다. 이거 은근 쫌생이인 것 같은데 안 풀어주면 괴롭히기 업그레이드 될 것 같구. 뭔가를 곰곰히 생각한다는듯 비장한 얼굴과 다부지게 닫힌 백현의 입술을 바라보는 찬열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후우.
" 됬습니다. "
" 네? 아 저 그게요. 저는 그런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게 아니라.. 그니까 박 피디님이 오해 하시는거 같은데. "
" 쌩까죠. "
" 예? "
" 변 작가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쌩. 까자구요. 그럼 전 이만. "
뭐요? 저기요 박 피디님? 바른말 고운말 표준말만 쓸 것 같던 찬열의 곱디고운 입에서 나온 쌩이란 단어가 한번 죽고. 자기 말만 하고 멋대로 단정 짓고 발걸음을 떼는 찬열의 모습에 두번 죽고. 내가 왜 오늘 여기 온걸까. 오늘따라 운이 안 좋더라. 어떡해. 백현은 발을 동동 구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박 피디니임 !
" 박 피디니임! "
" ? "
백현의 기차 화통 삶아먹은 목소리에 찬열이 귀를 후비적 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 나쁜 놈아. 외치려던 백현은 어둠의 로비속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한층 업된 시선에 입술을 떼었다 붙였다 망설인다. 목소리가 너무 컸나.
" 뭐요? 불렀으면 말을 해요. "
" 그게… 오늘 방송 안 하실거에요? "
" 지금 그 말 하려고 부른겁니까? "
" 그,그럼요. "
" 됬습니다. 제가 알아서 잘할테니까 변백현 작가님이나 잘하세요. 그럼 갑니다. "
박 피디님! 백현은 또 한차례 자기 말만 내뱉는 찬열을 보며 세차게 흔들던 손을 힘없이 탁 내렸다. 다 자기 멋대로야. 잘 해주려고 해도 저 모양이지 진짜.
" 변 작가. 여기서 뭐해? "
" 어? 권 작가님… 저 어떡해요? "
"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 저 박 피디님한테 또 한번 제대로 까였어요. "
" 왜 또? "
" 글쎄 인사 제대로 안했다구 쌩 까쟤요. 변 작가님이 그렇게 좋아하시는 쌩 까자구요. 이러면서요. "
박 피디가? 성대모사 후 힘없이 쳐지는 백현의 눈꼬리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던 권 작가의 눈이 반짝였다. 박 피디님 귀엽네. 입맛을 다시는 권 작가의 모습에 백현이 입을 다물 추호도 없어 보인다. 헐.
" 뭐, 귀엽다구요? "
" 그래. 자기한테 인사 안해줬다고 삐지고. 지금까지 봐왔는데 은근 귀엽다니까. "
" 헐. 귀여운건 절대 절대 아닌거 같은데요. "
" 은근 여리고. 으휴. 무튼 나 먼저 들어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더 추위를 잘 타는거 같아. 무튼 변 작가도 얼른 들어와. "
으 추워. 몸을 웅크린채 팔을 살살 쓰다듬으며 총총 걸음으로 조정실 안으로 들어가는 권 작가를 멍하니 바라보던 백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절대 조정실이 환해서 눈쌀을 찌푸린게 아니다. 뭐? 귀여워? 여리다고? 다들 라디오 하더니 피곤해서 미친거 아닌가. 백현은 고개를 설레 설레 내저었다. 나 빼고 다 정상이 아니야. 암.
RADIO ROMANCE
W. 피크닉
" 박 피디님! "
" 변 작가님이 왜 여길 오셨습니까? "
" 저는 뭐 오면 안되요? "
찬열의 흘겨보는 시선에 백현은 큼큼 소리를 내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할 말 있는데. 백현은 얼음이 된 눈을 총총 걸음으로 밟으며 조심스레 찬열에게 걸어갔다.
" 빨리 좀 오면 안됩니까? "
" 박 피디님. 여기 빙판길 이거든요? 그러다가 넘어지면 콱. "
" 콱? "
" 죽어버릴수도 있다구요. "
" 참나. "
" 왜요. 제가 죽는다니까 얼씨구나 흥겹구나. 잔치나 열자, 뭐 이런 기분이시겠죠 뭐. "
말은 똑바로 하시죠. 저 살인자 만들지 마시구요. 찬열의 아니꼽다는 표정에 고개를 푹 숙인채 궁시렁대던 백현은 킁 코를 들이마셨다. 저 할말이 있는데요. 뭔데요. 적대적인 말투에 백현은 찬열을 흘긋 노려보며 말을 꺼냈다.
" 같이.. 가실래요? "
" 같이 가실래요 라고 하면 어떡합니까? 작가라는 분이 참. "
" 에이씨. 같이 공개 방송 장소 섭외하러 가자구요! "
" 제가 왜요? "
" 뭐요? "
이번엔 지지 않겠다. 백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찬열을 힘껏 노려 보았다. 아. 이 키의 굴욕이여. 같은 남자인데 나는 왜 이 모양이야. 쳐다보기엔 너무 목이 아픈걸까, 결국 백현은 쳐들었던 고개를 내리고는 검정 크로스벡을 만지작 거렸다. 그냥요. 백현의 말에 찬열이 눈썹을 꿈틀거린다.
" 권 작가님 대본 수정하시느라 바쁘구 이 작가님은 화장실 들락날락 거리시고. "
" 김 감독님은요. "
" 음향 조절 하셔야 되잖아요. "
" 유빈씨는요? "
" 지금 장난하세요? 디제이 해야 하잖아요. 다 바쁘신데. "
" 그럼. 뭐 저는 안 바쁘단 겁니까? "
" 아니 그게 아니라… "
" 딱 그 말씀이시네요. 너는 한가하고 지지리 할 일도 없으니까 닥치고 나랑 섭외하러 가면서 밥 값이나 해라 이거네요. "
눈썹을 치켜 올리며 찬열은 손에 들린 머그잔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 아. 얄미워. 얄미워 죽겠다고! 어쩜 말을 해도 저렇게 얄밉게 탁탁 내뱉냐. 백현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 됬어요. 됬다구요. "
" 어? 같이 안갈거에요? "
" 됬다구요. 그래요! 피디님도 큐싸인 주고 지시 해야 하니까 참 바쁘시겠죠. 그래요. 저 혼자 갈거에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
백현은 찬열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진짜 밉다. 백현의 머릿속엔 두 단어가 떠올랐다. 밉상 그리고 싸가지. 눈은 소만해서 일도 잘하고 착할거 같은 얼굴을 가지고 저런 모습은 백현에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성격에 따라 얼굴이 변화 된다는데. 혹시 나한테만 저러는거 아냐? 웃음을 참으려는듯 큭큭 거리는 찬열의 모습에 백현은 메롱. 한 후 재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지금 메롱한겁니까? 예? "
" 어머. 보셨어요? 보라고 한건데. 죄송해요. 됬죠? 그럼 전 이만. "
" 변 작가님! 같이 가요! "
" 왜 따라 오세요. 가세요! 어서! "
손에 들린 코트를 거칠게 입은 후 여러 자료물로 무거워진 가방을 낑낑 대는 백현을 찬열은 웃음기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다 백현의 옆에 다가섰다. 가방 줘요 무거운데.
" 가방 줘요 무거운데. "
" 저 여자 아니거든요? 그리고 가세요. "
" 삐졌어요? "
" 뭐요? "
" 자꾸 뭐요 뭐요 거리지 마요. 내가 변 작가님 보다 7살이 많거든요? "
" 그래서 지금 나이로 승부를 보겠다 이거에요 박 피디님? "
" 참. 그게 아니라 뭐요 뭐요 거리다가 입에 붙어서 대본에 쓰면 방송사고 나니까 그런겁니다. 얼른 따라와요. "
결국 낑낑 대며 안간힘을 쓰는 백현에게서 가방을 뺏어든 찬열은 씩 웃으며 앞서 걸어갔다. 뭐야. 저 인간 왜저래?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찬 바람 쌩쌩 부는 날씨에 맞서 몸을 웅크린 찬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백현은 음흉하게 웃었다. 콱 넘어져라. 넘어져라.
* * *
" 앗. "
" 괜찮으세요? 제가 밑에 쳐다보고 걷다가 그만. "
" 아 괜찮아요. 다친 것두 아닌데요. "
빨리 국장님께 가져다 드려야겠다. 바쁜 권 작가를 대신해서 심부름을 하기 위해 서둘리 걷던 종인은 짧은 비명과 함께 뭔가 부딪치는 충격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놀랐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다 종인의 물음에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무튼 정말 죄송합니다. "
" 아 괜찮아요. "
"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죄송했습니다. "
남자의 긍정의 표시에 후,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종인은 남자를 스쳐 지나갔다. 늦음 안되는데. 저기요! 몇 발자국 걸었을까. 조용한 로비에 울리는 목소리에 종인은 고개를 돌렸다.
" 저요? "
" 네. 저기 물어볼게 있는데. "
물어 보세요. 남자의 말에 종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혹여나 조금 멀어진 거리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 혹시 이유빈씨의 사랑은 라디오를 타고 스튜디오실 어딘지 아세요? "
" 예? "
" 모르세요? 모르시면 그냥.. "
" 아니요. 잘 알죠. "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 사랑은 라디오를 타고' 란 말에 종인은 반만 돌려진 몸을 완전히 돌리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엄청 잘 알죠.
* * *
" 무대 양 사이드에 불꽃 설치해 주세요. 가운데는 빼구요. 다치면 곤란하거든요. "
" 또 다른 요구하실 건 없으세요? "
" 아 참. 바닥은 되도록 미끄러지지 않는걸로 해주세요. 공개방송 하는 날에 눈 올 확률이 높던데. 무튼 끝. 이거면 될 것 같아요. "
못 말린다니까. 피디는 자신인데 그것도 막내 작가가 이것 저것 요구하는 꼴이라니. 찬열은 팔짱을 끼고 백현을 흘겼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찬열의 심상치 않은 표정에 백현은 시큰둥한 눈빛으로 찬열을 흝어 보았다.
"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
" 아니요. 변 작가님이 혼자 잘 하시니까 뭐. "
" 그럼 말구요. 아 맞다. 잠시만요. "
잠시만요. 짧은 말을 내뱉고 크로스벡을 뒤적 거리는 백현의 모습에 공사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백현을 바라보았다. 아 여깄다. 이내 뿌듯한지 밝게 웃는 백현이 꺼내는 물체에 찬열의 눈가가 휘어졌다.
" 짜잔. 이거 드시구 하세요! 안 식게 하려고 꽁꽁 숨겨 놨는데 다행히 식진 않았네요. "
" 어, 감사합니다. 이런 것두 주시고. "
" 헤헤. 감사하긴요. 이 추운 날씨에 이렇게 열심히 일 하시는데 "
"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
" 감사해요! 그럼 저흰 가볼게요. 화이팅. "
그래서 오늘따라 큰 크로스벡 가지고 온거구나. 귀엽네.… 뭐 귀여워? 변 작가가? 응? 찬열은 혹시나 너무 추운 날씨가 자신의 머리도 꽁꽁 언거 아닐까 머리를 감싸 쥐었다. 변 작가가 귀여울리 없잖아.
" 박 피디님? "
" … "
" 박 피디님? "
" 네.네? "
" 왜 그렇게 정신을 놓고 계세요. 얼른 차로 가요. "
그렇지. 저렇게 퉁명스러운 변 작가가 귀여울리 없지. 찬열은 뺨을 소리나게 착 때리곤 고개를 흔들었다. 저 인간 또 왜 저래. 추워서 미쳤나. 가방을 힐끗 힐끗 거리며 주저 하던 백현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가방을 뒤적였다.
" 커피 드실래요? "
" 네? 커피요? "
" 저번에 싫다 하셨나. 싫으면 말구요. "
" 제가 언제 싫다고 했습니다. 주세요. "
" 참나. 그럼 일찍 일찍 말하시던가요. 튕기기는. "
백현은 옛다, 미운놈 떡 하나 더 주지. 하는 심정으로 찬열에게 캔커피를 내밀었다. 그래두 온기는 있네. 탁. 소리와 함께 커피캔을 시원하게 까서 후르륵 들이마시는 백현을 찬열은 가만히 바라보다 따라 커피캔을 땄다. 큼. 이미 밤 11시 30분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에 맞춰 하늘은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
" … "
" 왜요. 할말 있으세요? "
" 변 작가님은 왜 이렇게 사람들은 챙겨요? "
" 왜요. 마음에 안 드세요? "
" 그냥 악의없이 물어보는 겁니다. "
나지막하게 들리는 저음에 백현은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뭘 그렇게 봅니까. 어둠속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백현의 시선에 찬열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민망해 하기는. 안 어울리게. 그 모습에 푸스스 작은 웃음을 흘린 백현은 입을 떼었다.
" 아빠가 이런 일 하셨거든요. "
" 네? 변 작가님 아버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
" 잘 모르시는구나. 네. 아빠가 이렇게 현장 뛰어 다니셨어요. 얼마나 밖에서 일 하셨는지 손이 다 트셔서 오셨구요. "
" … "
" 그래서 이런거 보면 그냥 안 지나쳐요. 물론 아버지 이젠 일 그만 두셨지만 그래두 그때 생각이 어렴풋하게 나거든요. "
" 아. 죄송합니다. "
" 죄송하실거 없어요. 뭐 엄청난 이야기도 아닌데요. 무튼 끝. 별거 없죠? 그냥 이런거 보면 그러구 싶었어요. 그렇다구요. "
변 작가님 왜 작가 하세요? 말이 끝난지 얼마 안되서 다른 질문을 던지는 찬열의 모습에 백현은 황당하다는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냥 하는거지 뭘.
" 그럼 박 피디님은 왜 피디 하시는데요? "
" 그게 궁금해요? "
" 네. 엄청. 매우 궁금하네요. "
" 저요? "
" 네. 그쪽이요. "
" 그냥요. "
뭐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비장하게 떼길래 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려나 봤더니. 그럼 그렇지. 백현의 눈꼬리 가늘어짐과 동시에 자신을 샐쭉 노려보는 시선에 찬열은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 그게 끝? "
" 그럼 별거 있어요? 이제 제 물음에 대답해봐요. 왜 작가 해요? "
" 저도 그냥요. "
" 에이 그냥이 아닌거 같은데. "
" 그냥 하고 싶어서요. 멋있어 보였어요. 지금보면 참 드라마랑 현실은 다르구나 하긴 하지만요. "
" 현실이랑 매치가 안되는 이유가 나 때문이죠? 맨날 괴롭히고. 괴롭히고 또 괴롭히고. "
" 잘 아시네요. 아주 잘 파악하고 계세요. "
짝짝. 이해 능력 죽이시네요. 박수까지 치며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백현을 찬열은 힐끗 노려보며 걸음을 빨리 했다.
" 근데 안 추워요? "
" 네? 당연히 춥죠. 영하 십도에 안 추운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
" 아니. 지금 꼴이 말이 아니잖아요. "
" 제 꼴이 왜요? "
" 거울 드릴까요? "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올려보는 시선에 찬열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바본가. 백현은 마치 곧 있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루돌프와 흡사했다. 코도 빨갛고 귀도 빨갛고. 얼른 들어가요. 발을 동동 두르면서 손을 후후 부는 백현의 모습에 찬열이 짧게 물었다.
" 바보에요? "
" 뭐요? "
찬열의 짧고 굵은 말에 백현의 선한 얼굴이 표독하리만큼 굳어졌다. 바보라니. 지금 바보라 했어요? 백현의 물음에 비수를 제대로 꽂으려는 심산인지 찬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 영하 몇돈지 잘 아는 사람이 이렇게 입고 와요? "
" 그야 밖에 나와서 안거죠. "
" 참나. 변 작가님 진짜 바봅니까? 추우면 춥구나 하고 옷을 가져 왔어야죠. "
" 아 몰라요. "
" 연예인도 아니고 이 날씨에 무슨 재킷 하나 달랑 걸쳐요. 멍청이도 이렇게 멍청하진 않겠네요. "
백현은 얼굴을 굳히고 거만하게 찬열을 올려다보며 재킷 안에 손을 넣었다. 누구보고 멍청이래 이 인간이. 백현은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네. 박 피디님은 추운 날씨에 상황 파악 잘 하셔서 옷도 곰 같이 두껍게 입고 오시고. 참 좋으시겠어요. "
" 네. 좋습니다. 근데 언제부터 그렇게 말 대꾸를 잘 했어요? 애처럼 굴땐 언제고. "
" 저도. 말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애 같으면 따라 오시질 말든가! 혼자 올 수 있다 했잖아요. "
" 차는요. 차 없잖아요. "
" 버스 타면 되지. "
됬어요. 밤길 운전 잘해서 가세요! 백현은 일부러 발을 쿵쿵 거리며 온몸 가득 성을 냈다. 무슨 진짜 앤가. 신경 안쓰게 하려면 잘 하던가. 백현의 입에선 안쓰러울 만큼 하얀 입김이 마구 분출되고 있었다. 에이씨. 짧게 욕을 읊조린 찬열은 뛰어가 백현의 팔을 강한 힘으로 낚아챘다.
" 자요. "
" 이게 뭐에요? "
" 보면 몰라요? 장갑이잖아. "
" 장갑 뭐요. "
" 진짜 바보에요? 끼라고. 변 작가님 끼라고 주는거잖아. 지금. "
손에 껴있던 장갑을 거칠게 빼고 잡힌 손목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백현을 노려보며 찬열은 백현 손에 장갑을 쥐어 주었다. 손이 이렇게 빨간데 뭐가 괜찮아. 찬열의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던 백현은 어이 없다는듯 허, 하며 짧은 웃음을 내뱉곤 찬열의 품에 장갑을 세게 던졌다. 됬거든요.
" 됬거든요? 왜 갑자기 착한척 이세요? "
" 제가 뭘요? 변 작가님 걱정 해준건데. "
" 뭐요? 그게 걱정? 참나 요즘엔 걱정을 그렇게 전투적으로 하나 보죠? "
" 비꼬지 말아요. 지금 자존심 싸움 하자는거 아니에요. 온 몸이 꽁꽁 얼었는데 왜 자존심을 세워요. "
" 됬거든요? 박 피디님꺼 워낙에 커서 안 맞아요. "
" 그냥 대충 끼고 있어요. 불쌍해 보일 정도로 추워 보이니까. "
아 진짜 됬다구요. 저 장갑 하나 못 살정도로 가난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보지 마세요. 백현은 찬열을 더욱 더 매섭게 노려보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쁜 새끼. 걱정을 해줘도 저딴 식으로 해주냐.
" 변 작가님! "
" 아. 부르지 마요! "
" 차 안타요? "
" 됬거든요? 누구한테라도 불쌍해 보이기 싫어서 그냥 혼자 가려구요. 얼른 가요 훠이훠이! "
변 작가님! 아무리 불러도 무슨 소용이요. 찬열은 어찌나 발이 빠른지 이미 저만치 멀어진 성난 백현의 뒷모습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곤 머리를 거칠게 헝크러 뜨렸다. 이게 아닌데. 저번에 미안해서 좀 친해지려 했건만. 변 작가님! 삑. 차에 급하게 시동을 키고 달려가는 찬열의 모습이 오늘따라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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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들 모두 MERRY CHRISTMAS!
연인과 재밌는 시간 보내셨나요?! 저는 당연히!..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애인이 있어야 놀죠 엉엉 그냥 저에겐 크리스마스란 폭연 하는 날이죠 암요.
무튼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맞아서 조금 달달한 찬백+카디를 만나보셨을거에요. 카디 분량이 소멸될만큼 작았지만 이제 많아질거에요.. 흡.. 에블바디 세이 게이~ ♡
에이, 찬백 저게 달달한거? 라고 하실수 있지만 프롤로그와 1편을 본다면 와.. 달달하구나 하실 거에요 ㅎ.ㅎ
무튼 쉬는날이나 다름 없으니까 솔로이던 커플이던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 하트하트
* BGM : 건휘 - Happy my star / drama ver. ( 환상의 커플 ost )
바나나맛우유님/ 한시님/ 엘리얼님/ 호빵맨님/ 큥님/ 콘타님/ 탱탱볼님/ 함박눈님/ 은하수님/ 맹구님/ 정강이요정님/ 딸기밀크님/ 백뭉이님/ 모카라떼님/ 뚱이님/ 슬구님/ 도도하디오님/ 삐약이님/ 제이님/ 콜라님/ 매미님/ 치즈님/ 변백님/ 똥개님/ 되돌리다님/ 아리님/ 장이씽님/ 벚꽃님/ 지렁이님/
♡ 암호닉 신청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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