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름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에서 번듯하게 살아가기 위한 첫번째 관문이라는 수능을 앞둔, 아따맘마 분식 집네 막내아들 고3 김성규가 다니고 있는 학교기 때문에 성규도 그 이름을 모를 수 없다. 게다가 김성규가 더욱더 그 이름을 모를 수 없는 특별한 이유가 몇 가지 더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같은 동네여서 매일 아침 등굣길에 마주친다는 거고,
"오늘은 웬일로 지각?"
"아오씨. 우현…. 킁. 걔가 계속 안 보이는 거야. 기다리다가…."
"맨날 걔 뒤꽁무니만 보는 거 지겹지도 않냐?"
두 번째는 그 애가 성규의 어머니가 하시는 분식집 단골손님이라는 거고,
"떡볶이 3인분이랑 순대 2인분이요."
"야 남우현 니가 쏘는 거다 이거!"
세 번째는, 김성규가 그 애의 지극한 빠돌이라는 거였다.
아이돌(idol)
w.무한달
그 울림고라면 누구나 다 안다는 이름을 소개하자면 바로 '남우현'이다. 2학년이고, 특출나게 잘생긴 건 아니지만 밴드부 보컬답게 인기가 많았다.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 친구가 많았고 특히 팬서비스는 쩔어서 남우현 하트 한 방에 죽어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울림고 밴드부는 남우현 덕분에 명을 이어간다고 할 정도로 남우현의 지분율이 컸다. 게다가 몇 달 전 나갔던 전국 밴드부경연에서는 입상하지는 못했지만 역시 남우현이란 이름에 걸맞게 여자애들을 울림고로 대거 영입했다. 어쨌든 이 정도로 남우현은 요 일대의 유명인사였다.
성규는 지금 매우 초조했다. 아침부터 우현일 못 봐서 온종일 기분도 바닥을 쳤는데 그대로 집에 들어가기엔 아쉬워서 혹시나 해서 분식집에 와본 것이 화근이었다. 매일같이 우현이 오던 시간에 맞춰서 엄말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왜 갑자기 나대느냐는 엄마의 잔소리도 한 귀로 흘리면서 떡볶이를 국자로 젓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매일 오던 시간에 우현과 그의 친구가 티격태격 거리며 분식집 안으로 들어섰다. 성규가 빠돌이가 맞긴 하지만 여느 순이들과는 다르게 우현의 앞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 본 적은 없었으며, 감히 그러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는데 아침에 우현의 얼굴을 못 본 것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누가 보면 이게 무슨 큰일이냐고(특히 성규가 남우현 빠돌이란 걸 알고 있는 유일한 반 친구 두준이가) 어이없어할 일이지만 성규에겐 평소에 상상조차 못할 일이었다. 앞서 매일 아침 등굣길에 마주친다고는 했지만, 말이 마주치는 거지 사실 김성규의 지극정성으로 우현이 나오는 시간에 맞춰 따라나가 뒤통수만 쳐다보며 미행하듯 학교에 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떨려서 얼굴도 정면으로 쳐다본 적도 없는데(물론 사진은 수도 없이 봤지) 지금 등 뒤에 바로 '그' 우현이가 있다. 엄마가 얼른 떡볶이 담아주지 않고 뭐하냐고 옆에서 옆구리를 찔러도 그대로 굳어버린 성규는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붙잡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릇에 떡볶이 3인분을 담았다.
"엄, 엄마가…."
"뭐?"
엄, 엄, 엄, 엄마가.. 엄마가 갖다 줘. 애가 왜 이러나 눈을 흘기며 그릇을 받아든 성규 어머님께서 우현과 그의 친구 테이블에 떡볶이를 갖다 주었다. 우현이 많이 먹어야 하니까 더 담아주려고 했는데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자꾸 떡들이 흘러내려서 왠지 3인분보다 덜 담은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까 분식집 들어올 때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아니겠지? 내 착각이겠지? 엄마 어떡해…. 이대로 집에 가려고 아까 내려둔 책가방을 찾는데 성규의 눈에 포착된건 우현의 옆 테이블 의자에 놓여있는 자신의 책가방이었다. 저게.. 내껀.. 아니겠지?
"얘 성규야 어디가!"
엄마 내 이름 부르지 마!! 그리고 내 가방 좀 이따 집에 올 때 가져와 줘!! 라고 속으로 울부짖으며 성규는 분식집을 그대로 뛰쳐나갔다. 사실 정신없이 떡볶이를 흡입하고 있던 우현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 옆으로 가서 가방을 집어와도 몰랐을 테지만 혹시나 저한테 이상한 냄새라도 날까 봐, 아니면 잘못하다 그 앞에서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실제로 전에 넋놓고 우현일 보다가 넘어진 적이 있다) 걱정됐던 성규는 가방도 버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성규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겨우 1년 빠돌이 인생인데 엄청난 계를 탔다. 당장 두준이한테 전화해서 방금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떠벌리고 싶었지만, 그것조차도 아깝고 닳을까 봐 우현이와 자신만의 추억으로 남기기로 했다. (대체 뭐가 추억인진 모르겠지만) 사실 이렇게 누군갈 좋아해 본 적이 없어서 이게 옳은 일인가 하고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성규가 생각하기에 사람 좋아하는 일에 옳고 그른 판단은 할 수 없는 것이고, 어쨌든 성규는 우현이가 좋았다. '내가 게이건 아니건 그거랑 관계없이 그냥 우현이가 좋아!' 가 성규가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그게 연예인 좋아하듯 좋아하는 것인지,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것인지 모를뿐더러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도 없긴 하지만.
집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나 이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그렇듯 우현을 처음 봤던 날이 떠올랐다. 무료하게 보내던 일상생활에 우현이가 들어온 날! 그때만 생각하면 성규의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갔다. 그러다 끝엔 항상 우현이의 위치와 제 위치의 거리가 생각나 씁쓸해져 정색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도 성규는 야자를 끝내고 이어폰을 꽂은 채로 집으로 가는 길에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사람이 건너가길래 신호를 확인도 안 하고 무의식중에 건너고 있는데 갑자기 성규의 몸이 거칠게 당겨졌고 그 당사자와 함께 넘어졌다.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넘어지면서 바닥에 쓸린 팔을 잡으며 짜증스럽게 홱 쳐다본 곳엔 우현이 있었다. 무슨 짓이냐고 소리 지르려는 찰나 선수를 친 건 우현이었다.
「미쳤어?!!」
「아니, 지금….」
「신호 안 보여? 죽으려고 작정했어?」
「…….」
「씨발, 이놈의 이어폰은!」
죽을죄라도 지은 듯 역정을 내더니 바닥에 떨어진 성규의 이어폰을 주워다가 그대로 가지고 가 버렸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그제야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성규는 방금 저에게 화를 내고 이어폰을 가져가 버린 사람이 그 유명한 남우현인 걸 깨달았다.
어쩐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더니…. 여자애들이 그렇게 난리였던 남우현이군. 제 짝지가 엄청나게 좋아하고 사진도 가지고 다니면서 성규에게 몇 번이고 세뇌를 시켰던 얼굴이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 날 성규는 이어폰을 돌려달라 하려고 남우현을 찾아갔다. 짜식이 그거 비싼 건진 어떻게 알고 가져간 건진 모르겠지만 이대로 뺏길 순 없겠다 싶어서였다. 그리고 오글거리지만 고맙단 인사도 할 겸. 그렇게 어렵게 물어물어 찾아간 1학년 1반 교실 앞에 선 성규는 젖비린내나는 후배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다가 그중 아무나 붙잡고 남우현을 가리키며 불러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네?」
「…….」
일명 여자들을 뻑가게 만드는 남우현의 팔자 주름 패인 웃음을 멀리서 보고 머릿속이 멍해졌다. 성규에게 붙잡힌 1학년은 하늘 같은 2학년 선배님이 혼자 우리 반 애들을 보면서 무섭게 웃으시다가 갑자기 자기를 붙잡는 바람에 혹여나 해코지를 하는 건 아닌가 안절부절못했지만, 곧바로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성규가 뒤도 안 돌아보고 그 자리에서 줄행랑을 쳤기 때문이다. 훗날 그 1학년은 몰랐겠지만 궁극적으로 따져봤을 때, 그는 김성규가 남우현 빠돌이가 된 순간을 함께한 영광스런 목격인 1이 되는 셈이었다.
*
글잡에 처음 글남겨봐요;;;;;;;;;;;;;;;;;;;;;;;;;;;;;;;;;;땀;;;;;;;;;;;;;;;;;;;
현성홈에 올렸던건데 글좀 다듬고 한번 올려봐요;;;;;;;;;;;;
다른데서 이거 보신분은 그거 제가쓴거 맞아요...땀땀
올려놓고보니까 왜이렇게 짧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