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줘야 언제까지 꿈꿀 수 있어.
내가 그리는 세상은 너로 시작하니까.
다리아는 아직 정신이 맑게 개지 않은 채로 덮여있던 눈꺼풀을 살포시 올렸다. 반투명한 커튼 사이로 자잘하게 부서진 투명한 아침 햇살과 고아한 잔월이 뒤섞여, 그녀와 그녀의 남편의 몸 위로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새의 지저귐이 집 밖에서 어렴풋이 들리고, 커튼이 드리워져있는 창문 밖으로 나뭇가지가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리며 바스락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고요하고 평화로움 속에 뒤덮인 채로 나른히 누워있던 그녀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그녀가 잠에 빠져있던 방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큰 정사각형 모양의 구조를 가진 그 방은 적색의 긴 나무 패드로 뒤덮인 한쪽 벽면을 제외한 나머지 세 벽면을 은빛 비단 벽지로 꾸며, 꽤나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천장은 매우 높게 위치한 편이였는데, 천장도 벽과 마찬가지로 은빛 비단이 발려져, 한가운데에 매달려있는 유리로 세공된 샹들리에에 불이 들어올 때마다 천장 전체가 반짝반짝 빛나게 하는 효과를 주었다. 벽면 위와 아래에 얇게 붙여져 있는 패널은 그 고풍스러움을 더 짙게 만들었고, 정사각형의 검은 대리석 바닥은 그 고풍스러움이 지겹지 않은, 세련됨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였다. 퀸 사이즈 침대 바로 아래에는 우윳빛의 흰 양털 카펫이 깔려있었는데, 잠에서 깨어난 뒤 첫 발을 내딛는 감촉이 보송보송하고 따뜻하게끔 만들려는 의도인듯하였다.
몸을 일으킨 후, 무표정하게 창밖을 훑던 그녀의 눈이 제 옆에 누워 아직 새근거리며 잠에 취해 있는 에드워드를 향했다. 그의 얼굴의 상이 제 망막에 맺히자, 일직선을 그리던 그녀의 입꼬리가 금세 여리하게 휘말려 올라갔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손길로 그에게 흐트러진 두꺼운 이불을 단정히 덮어주었다.
미소를 띤 채로 가만히 그를 뜯어보던 다리아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침대에서 완전히 벗어나, 제 피부와 대조되는 검은색의 얇은 슬립 위에 허벅지에서 무릎 부근까지 늘어뜨려져 내려오는 새하얀 실크 로브를 걸쳤다. 싸한 민트향 치약으로 양치질을 끝내고 차가운 물과 장밋빛 비누로 세수와 긴 머리칼에 제라늄향 샴푸질까지 마친 그녀의 경쾌한 발걸음은 계단을 타고 내려와 일층 부엌으로 향했다. 따뜻한 흑갈색 나무 문을 조심스레 열자, 반질반질하게 닦여, 보는 이로 하여금 은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가지게 하는 각종 조리기구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는 깔끔한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우유와 잘게 간 쌀을 넣은 포리지가 가늘게 끓고 있는 냄비를 벽난로 위에 얹혀놓고 꾸벅꾸벅 졸던 마가가 기척을 느끼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그녀는 그녀의 여주인의 얼굴을 보고는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숙이며 굽신거렸다. 다리아가 그녀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차를 끓이러 온 것이니 방에서 쉬어도 좋다고 말하자, 마가의 몸이 움찔하며 굳어졌다. 마가는 자신이 순수 혈통인 카일론 가문의 저택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집요정이었고, 주인이 자신의 일을 대신하는 것을 불편해했다. 다리아는 차 끓이는 것을 직업이자 취미로 삼고 있었는데, 이는 자신의 여주인이 직접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길 바라는 마가에게 그리 내키지 않는 것 중 하나였다. 마가가 우물쭈물하며 몸을 움직이지 않자, 다리아는 짙고 화사한, 따뜻한 기운이 풍기는 미소를 그녀에게 보였다. 다리아의 미소를 보고 어쩔 수 없이 걸음을 옮긴 마가가 부엌을 나서자, 다리아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자스민 찻잎을 꺼내고, 물을 주전자에 부어 불 위에 얹히는 등 부산스레 움직이던 다리아의 손짓이 그녀의 허리에 매끄럽게 감겨오는 팔의 감촉 덕에 멈춰졌다. 뭐 해? 하고 나직이 물어오는 에드워드의 목소리를 음미하듯 가만히 듣던 그녀의 입술이 열렸다.
" 자스민 차 끓이고 있었어 ━. "
아, 하고 작은 탄성을 내뱉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려던 그가 무엇인가 생각난 듯 퍼득 고개를 들고는 하려던 말을 입 밖에 내었다.
" 자스민의 꽃말이 뭔지 알아? "
갑자기 무슨 꽃말이람. 다리아가 갸웃거리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젓자, 그가 놀리듯 말을 이었다.
" 바보. 자스민을 그렇게 좋아하면서 그것도 몰라. "
" 아, 뭔데 ㅡ. 말해줘! "
입을 삐죽거리던 다리아가 투덜거리며 답하자, 그가 고개를 젖히곤 낮게 키득거리며 웃어 보였다. 다리아의 투덜거림이 칭얼거림으로 변해갈 즈음, 그는 그녀의 귓가에 소곤거리며 무어라 속삭인 후, 재빨리 그녀의 입에 제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세상의 끝에서 먹는 초콜릿만큼,
아주 달콤하게.
" 자스민 꽃말이 뭐냐면,
당신은 나의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