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얹은 것처럼 무거운 눈에 보이는 건 어둠 밖에 없었다. 검고 퇴색되고 암울하고 우울한 기운, 흔히 고양이들이 하는 행동처럼 나른하게 쭉 뻗은 몸을 침대에 한가득 늘여 뜨리고 마지못해 한 쪽 눈꺼풀만 들어올렸다. 깜깜할 줄 알았더니 벌건 대낮이더라. 제길, 좀만 더 잘 걸. 얇은 이불을 말아 올리고 얼굴을 부볐더니 더 깨기가 싫었다. 아니, 그냥 죽고 싶었다. 늘 하는 생각이었지만, 그걸 실행에 못 옮기는건 아프기 싫어서 인가, 겁만 많은 새끼. 바짝 마른 팔을 들어올려 다 뜨지도 못한 게슴츠레한 눈으로 벽시계를 바라봤더니 벌써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수면 시간도 들쭉날쭉 하는 구나. 현빈이가 걱정하려나.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형… 하고 부를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강아지는 맞지. 길가에 버려진 걸 주워 왔으니까. 트렁크 하나만 달랑 들고 그 새벽에 홍대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걸 데리고 와서 사람 만들어 놨더니 주인 찾은 강아지처럼 꼬리 흔들어 되는 꼴이 아주 가관이었다. 피가 섞인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수업 갔으려나, 현빈이. 늘어진 티가 거슬렸지만 갈아입을 기운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엉기적 엉기적 거실로 걸어갔다. 이 새끼, 참 정성이기도 하네. 곱게 차려 놓은 밥상 옆에 아기자기한 것 좋아하는 거 아니랄까 봐 딱 지 취향 포스트 잇을 붙여 놨다. 그 있잖냐. 카카오톡에 핑크색, 그 캐릭터.
-형, 형 좋아하는 반찬해 놨으니까 조금이라도 먹어요. 오늘 좀 늦어요. 미팅 있어서.
배웅은 해주지 못했지만 기뻐서 이 멋 저 멋 부리고 갔을 모습을 생각하다 피식 웃었다. 최근 들어서 처음 웃는 웃음이지 싶었다. 정성껏 차려 놓은 것에 무색하게도 몇 술 넘기자 속에서 거북함이 밀려왔다. 완전 범죄 저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반찬 몇 개는 넣어두고 비닐에 죄다 부어서 대충 들고 집을 나왔다. 후줄근한 반바지 차림에 질질 끌리는 큰 슬리퍼가 덜렁덜렁 흔들렸다. 사람 몰골은 아니네. 윤지성.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언젠가부터 따라온 무기력함이 의식을 지배한지 오래라 적당히 따뜻한 햇볕도 녹음이 푸르러져서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 느끼기 싫었다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적당히 우울한 기분, 암묵적인 침묵이 쌓인 어둠이 좋았다. 그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멈칫 서서 과거를 회상했다. 나도 엄청 밝게 웃었던 적이 있음을, 삶이 너무 보람차고 멋져서 무엇이든 해보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는 것 말이다. 폰 속 전화목록에 가득 찼던 지인들의 통화와 300을 넘어갔던 카톡들, 바쁜 삶, 원동력 있었던 그 때가 그립진 않다고 말할 순 없었다.
툭-
깊이 생각했던 걸까, 부딪힌 어깨에 뚱하게 위를 바라 보았다. 우선 나보다 키가 큰 게 마음에 안 들었고 덩치도 마음에 안 들었다. 괜히 시비 걸고 싶다고 할까. 부러우니까 지는 거다. 다시 고개를 도리도리질 하고 바라보았더니 왠 멍뭉한 인상의 남자가 미안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깨는 괜찮아요?”
어색한 서울 말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경상도 출신인가. 말없이 빤히 보니 어디 다친데는 없나 싶어서 안절부절이다. 딱 개과 같은 게 현빈이랑 좀 닮았달까. 귀여워서 놀려보고는 싶었다.
“안 괜찮은데.”
“제가 남는 건 힘뿐이라… 하핫, 이름이…”
“이름은 왜?”
“제가 어제 이사 와서 친하게 좀 지내려고요.”
아아, 어제 소란스러웠던 소리의 원인인가 보다. 한참을 넉살 좋게 떠들어 되던 소리, 목소리는 좋다. 라고 생각했었나? 그것도 시끄러워서 이불을 돌돌 말아 귀 막고 다시 잠들었던 기억 또한.
“귀찮은데.”
“전 강다니엘인데요. 진짜 안 가르쳐 줄라고요?”
어디서 배워왔는지 허허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어릴 때 키웠던 흰둥이가 생각났다. 큰 덩치도 그렇고 좀 닮았나? 말없이 빤히 보니까 재빠르게 손에 들려 있던 걸 낚아채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어 버린다.
“뭐하는 거야?”
“미리 아부요?”
“왜?”
“강다니엘이라서요.”
“강다니엘이라서?”
“이라서, 떼고요.”
“강다니엘?”
“형, 이름은 뭔데요?”
“윤… 그 거랑 그 거랑 무슨 상관이냐고.”
“오래 들고 있길래 형 손에 냄새 날까 봐서요. 형, 이름은요?”
“? 윤지성.”
“윤지성. 지성이형.”
뭐지, 이 새끼는. 몇년은 본 사람처럼 구네. 가만히 강아지 같은 표정을 오래 보려니까 다니엘인지 뭔지 얘 페이스에 말려버릴 것 같았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흔들거렸다. 잔 머리가 눈가에 스치는데, 꽤 매력있게 생겼네. 짧은감상평을 마치고 그냥 돌아가서 잠이나 더 자야겠다.
“초면에 형형 거리는 거 안 좋아하니까, 혹시나 마주쳐도 아는 척 할 생각 말고.”
말을 이어갈 때마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눈꼬리가 축 내려가는 게 양심에 찔렸다. 내가 왜 양심에 찔려야 하는지 도저히 모를 일이었지만 그랬다. 멍뭉하면 단가. 강아지는 현빈이 하나로 족했다. 친해지면 귀찮아지니까. 휙 돌아서서 걷는데 한참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다.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싶어서 생각해봤지만 그런 게 없는데… 찝찝해서 돌아보니까 가고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는데, 은근 신경 쓰인다. 신경 꺼라. 윤지성.
-그 때는 몰랐다. 이미 그 새끼 페이스에 말려 들었다는 것을. 강다니엘. 그 이름부터 듣지 않아야 됐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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