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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세, 마침 아름다워서


[BGM ; 캐스커 - 천개의 태양]







1월 12일 오전 10시 17분, 큰 창문으로 볕이 길게 드리웠다. 백현이 커튼을 산다는 걸 굳이 말린 경수가 만들겠다 나서서 꾸역꾸역 만들던 극세사 원단의 베이지색 커튼이 햇빛을 삼키듯 옆으로 벌려져 있었다. 거실에 대자로 누워 일요일 아침의 여유를 즐기는 ‘것 처럼’ 보이는 경수의 핏기 없는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흡사 축복을 받는 듯 했다. 잠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 한 백현이 두 눈을 몇 번이고 깜빡이다 초점이 잘 맞지 않는 눈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고 경수를 빤히 바라 보고 있었다. 그러고 몇 분이나 있었을까, 그제서야 깨달은 백현이 비명이 아닌 탄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었다. 아…!




창을 통해 내리쬐는 햇빛을 정통으로 모두 받고 있는 경수는 마침 아름다워서.




 창 쪽을 향하고 있는 경수의 왼쪽 손목에서 분수마냥 뿜어져 나왔을 빠알간 피들이 천장과 베이지톤 커튼을 더럽히다 수그러들어 바닥에 줄줄 새나왔다. 진득하게 들러 붙어있다가 툭 떨어지는 핏방울들을 지켜보던 백현이 경수를 들어올렸다. 도경수가 자살을 기도했다.








집, 너무 큰 것 같지 않아?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경수에게서 툭 내뱉어진 말에 백현이 문을 나서려다 뒤를 돌았다. 기운 없는 목소리의 경수를 빤히 바라보다 또 다시 뒤돌아서는 백현을 경수가 다시 한 번 불러 세웠다. 변백현. 항상 경수에게서 있잖아, 저기, 너로 불려 본질을 잃어가고 있던 자신의 이름이 오랜만에 불리우자 백현은 순간 낯설기까지 했다. 이 집은 창이 참 많지. 경수의 등 뒤로 난 큰 창문을 보며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백현이 불규칙 적이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고 얼마 전 구입한 캐시미어 코트 위로 심장 부근을 움켜 쥐었다. 도경수가 고작 제 이름 한 번 불러줬다고 안달나서 가슴 쿵쾅대는 꼴이라니. 김종인이나 오세훈이 알았다면 배를 잡아가며 웃었을 일에 백현이 잠시 인상을 구겼다.

한참을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꼼지락 대는 백현을 구경하던 경수가 쓰게 웃고선 뜨끈하게 데워진 이불 속으로 얼굴까지 파묻어 버렸다. 백현은 경수의 마음을 참 몰라줬다. 요즘 쓰이는 속된 말로 이르자면 넌씨눈이었다. 괜히 백현에게 다정한 면을 바랐다며 그럼 그렇지하고 경수가 몸을 웅크렸다. 내일은 경수의 생일이었다. 몸을 웅크리는 것은 좋게 말하자면 편하게 잠을 청하려는 것이고, 진실대로 말하자면 현실을 기피하기 위한 경수의 나쁜 습관 중 하나였다. 그런 경수를 뒤늦게 보게 된 백현의 눈이 허망하게 갈 곳을 잃었다. 오랜만에 이름 불러줬는데.



“ …갔다 올게. ”



느즈막히 직장으로 출근하는 백현에 끽끽 계단 밟는 소리에 뒤이어 현관문이 덜컹 소리를 내며 닫혔다. 경수가 이불 밖으로 눈만 보이도록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고요한 정적만이 남았다. 경수는 이런 정적이 싫어 치를 떨었다.

경수의 하얗고 가느다란 발목이 높은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디뎠다. 너무 오래 누워있던 탓인지 휘청,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한 경수가 침대를 잡고 버틴 탓에 다행히 넘어져 무릎이 깨지는 사고는 없었다. 난방을 했음에도 쌀쌀한 집 안이 그 크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걸려있던 수 십개의 가디건 중 하나를 골라 걸친 경수가 방 문을 나서려다 옷걸이고 행거고 여기저기 걸려있는 각기 다른 디자인과 색을 뽐내는 가디건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경수는 가디건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지하상가 표 싸구려 가디건에서 이름 난 명품 브랜드의 가디건 까지. 비록 싸구려 가디건은 백현이 보고 더럭 화를 낸 적도 있었으나 경수의 남다른 집착에 두 손, 두 발 다 든 백현이 포기했다. 빤히 바라보던 걸 멈춘 경수가 방 문 턱을 밟고 나서서 백현이 내려간 그 계단을 밟았다. 문 턱에 올라섰던 왼 쪽 발이 지끈 거렸다.


도어락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현이 나간 지 20분도 채 안 되었다. 백현이 벌써 들어올리는 없는데. 불안함 반, 궁금증 반으로 현관을 확인 한 경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야, 도 공주님이 왠 일로 아랫층까지 행차하셨어. 소문난 밉상답게 이죽거리며 경수에게 다가온 세훈이 케이크 상자를 든 손 말고 나머지 한 손으로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문 턱 밟으면 일진 안 좋다더니, 정말이네. 경수는 앞으로 미신을 무시하면 안 되겠다 생각하며 세훈이 내미는 케이크 상자를 받아들었다.



“ 내일 생일이지? ”



당일에 따악, 와서 축하해주고 싶었는데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잡혔더라구. 눈이 소멸 될 정도로 활짝 웃은 세훈이 경수를 데리고 넓다란 대리석 식탁으로 갔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길다란 식탁의 양 끝에 세훈과 경수가 마주보고 앉았다.



“ 너무 멀어. ”
“ 그런가? ”



내내 만면에 웃음꽃을 띄우고 있던 세훈이 티는 안 내지만 자신을 (혹은 그저 사람의 온기를) 갈구하는 경수가 귀엽고 안타까워 더 활짝 웃었다. 단단하고 차가운 대리석 식탁을 디디고 올라서서 구름 위를 걷듯 사뿐 사뿐 걷던 세훈이 경수가 앉아 있는 자리 앞까지 와서 털썩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았다. 오세훈 이꼴 또라이로 인식하던 경수는 세훈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백현에겐 없는 다정함을.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본 두 사람이 웃었다.







저녁이 되자 아직 잔업이 남아있다며 다시 회사로 돌아간 세훈이 금방 또 그리워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신에 대한 다정함이었다. 경수는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1층에선 불을 켜놓아서 몰랐는데 2층으로 올라오니 어둑어둑했다. 경수는 깜깜한 걸 병적으로 싫어했다. 두어번 눈을 깜빡여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떠듬떠듬 스위치를 찾아 불이란 불은 있는대로 다 켜놓았다. 헉헉대던 경수가 화장실에 들어섰다. 미간이 잔뜩 찌푸러져 보기 싫을 정도로 미운 얼굴이었다. 옷을 입은 채로 샤워기 밑에 서 물을 틀었다. 차가운 물이 그대로 경수의 몸을 덮쳤다. 추워. 항상 추워, 이 집. 이 공간은.


백현이 집에 돌아왔을 땐 자정이 훌쩍 지나 3시가 다 되어 있는 시간이었고, 경수는 일찌감치 샤워를 끝내고 잠 들어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는 백현이 곤히 잠든 경수의 볼을 쓰다듬다가 울컥 눈물이 밀려와 얼른 눈가를 훔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던 백현이 그대로 잠들자 완벽한 정적에 쓸데 없이 넓디 넓은 집이 잠겼다.



경수는 눈을 떴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허겁지겁 부엌으로 들어가 얼마 전에 날을 갈아 반짝 거리는 칼을 하나 들고 거실로 걸어갔다. 커튼을 열어 제꼈다. 인정 사정 없이 손목을 칼로 후벼판 경수가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쓰러졌다. 백현이 아끼던 카펫에도, 자신이 끙끙 대며 만든 커튼에도, 하이얀 천장에도 울컥 울컥 나오는 피에 의해 모두 더럽혀졌다.





오늘은 경수의 생일이었다.
햇빛이 완벽히 비추는 집 안에 쓰러져있는 경수는 마침 아름다워서.





1월 12일 오전 9시 17분, 도경수가 자살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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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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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백도!!!! 아련! 백도하면 아련.. 하 좋네요ㅠㅠ 이런 아련함 좋아 가는거야 아주 좋네요 좋고 좋아요 힝힝힝힝 기대할게요 작가님ㅎ 브금도 아련ㅠ 닉네임도 아련ㅠ
11년 전
독자2
할 말이 없네요... 분위기가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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