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
그런 날이었다. 아마 늦은 주말 밤, 열 시 쯤이었을 거다. 남들은 아마 불타는 밤을 보낸다고 바빴겠지만, 시험기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개 대학생이었던 나는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추욱 늘어져 있던 날이었다. 막 씻고 나와 물기가 서려있는 머리를 대충 넘기고 침대 위에 몸을 던져 만화책 따위나 몰아 보고 있던, 아주 무료하고 평범했던 그런 날이었다.
야ㅑ 1
색ㄲㄲ꺄 1
어디ㅣ냐 1
김요용ㅇ국 1
어디야??&!!? 1
아니나 다를까, 너는 그 새를 못 참고 평화를 깨버린다. 연달아 온, 아주 익숙한, 오타 가득한, 네 메시지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익숙한 패턴이었다. 항상 손가락이 제일 먼저 취하는 너는, 술에 약한 주제에 술을 좋아한다. 이 밤중에 또 어디서 누구랑 얼마나 마신 거야. 책상 위에 비스듬히 올려져 있던 작은 알람시계의 시침이 지금 막 11시를 넘기고 있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곤 습관적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이
기묭구욱...
지금 어디신가요오...
길게만 느껴졌던 통화연결음이 멈추고 이내 세상 깨발랄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늘어지는 네 발음이 신경쓰이다가도 피실피실 잘도 웃으며 말하는 네 덕에 내 입꼬리마저 슬며시 올라간다. 너는 진짜 겁이 없는 거야 아니면 멍청한 거야. 나는 후자일 거라 확신한다. 입꼬리를 끌어 내리고 대답을 이었다.
"집인데 또 왜"
아니이...내가 친구랑...
오랜만에 술을 마셨는데에...
그 썩을 것이 말이야아...
남자친구 만난다고 가버린 거 있지이...
"너 또 데리러 오라는 거면 죽"
야!!!!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어...
내가 말이야...딱 한 잔만 더 하고 싶은데에...
우리 용구기가 딱! 생각이 나는 거 아니겠냐아...
슬슬 새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은 채 현관문 앞 제일 가까이 보이는 스니커즈를 구겨 신었다. '생각이 났다'라…. 네가 뱉었던 단어들을 연신 곱씹어보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신발 뒷축을 잡아 올리다, 아차. 겉옷 가져가는 걸 깜빡했다. 너는 한여름에도 술을 마시면 춥다고 징징대는 버릇이 있었다. 급하게 가디건을 챙겨 들곤 곧바로 집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던 너와 나의 아지트같은 곳이었다.
[1층입니다.]
들뜨지 말자. 들뜨지 마. 발걸음이 무겁다. 무거우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가볍다. 일순간 짜증이 났다가도, 저 멀리서 편의점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는 다시 웃음이 났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렁이다 결국엔 뒤엉켜버린다. 머리를 헤집었다.
혹시라도, 네가 이상한 사람들과 마주할까 네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진 않을까 이미 뛰다시피한 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도착한 편의점 앞에는 구겨진 빈 맥주 두 캔과 함께 엎어져 잠든 네가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는 겁도 없고 답도 없다.
"야"
"일어나"
"..."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네 어깨를 쿡쿡 찔러보았으나 미동조차 없다. 언제 잠든 건지 네 몸이 차갑다. 급하게 들고 온 가디건을 네게 덮어주곤 곤히 잠든 너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이내 으응- 하며 제 손길을 밀어내더니 다시금 색색대는 소리를 낸다. 대체 어쩌자는 건데.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너를 업을 채비중인 그 때였다. 네 옆머리가 스르륵, 네 눈가로 흘러내려 네 미간이 찡그려졌을 때, 내가 무의식적으로 네 옆머리를 네 귀 뒤에 꽂아줬을 때.
"언제"
"알아줄래"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충동적으로 내던진 대답 없을 물음에 이내 혼자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그렇게 옮겨진 내 시선은 곤히 잠든 네 얼굴에 꽤나 오래 머물러 있었다. 네 머리칼을 다시 한 번 쓸어 넘겨 본다. 샴푸의 잔향이 연하게 끼쳐온다. 그리고 찾아온 진득한 고요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을 정적을 찌르르 울던 풀벌레가 대신 채운다.
그 날은,
달님과 고요히 비밀을 나누던
그런 날이었다.
용국이 몰래 뽀뽀했대요 얼레리 꼴레리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