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물을 가장한 불도저 김재환 下
w.서화
짧은 입맞춤 후의 우리는, 글쎄. 전보다 멀어졌다면 멀어졌지 관계의 진전은 없었다. 나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스며들던 그의 손을 슬며시 빼내며 도망치듯 스테이션을 빠져나왔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별관의 화장실에서야 내 달리기는 멈출 수 있었고, 커다란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잔뜩 열이 오른 상태였다. 손으로 아무리 부채질을 해 보아도, 찬물을 슬쩍 갖다대보아도 달아오른 볼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반 쯤 포기한 채로 벽에 기대 두 눈을 감자 가까이서 마주했던 그의 달달한 눈빛이 자꾸만 떠올라 한숨만 폭폭 내쉬었다. 친구 이상으로 생각 해 본 적은 없을 거라 장장 6년 간 굳게 믿어왔건만, 그 6년의 믿음은 10초도 채 안 되는 입맞춤에 우르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망했다. 단정히 묶은 머리를 아무리 쥐어뜯어보아도 급격하게 빨라진 심박수는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이후, 나는 필사적으로 그를 피해 다녔다. 처음엔 그저 그 때의 상황이 떠오를 것 같아 피했지만 후에는 멍하니 있으면 자꾸만 떠오르는 그의 미소에 절로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실 초반에 연락이 오긴 했지만 확신이 서지 않던 내가 무시해버린 후로 나를 피해 다닌다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화 된 상태였다. 외과와 응급실이 컨택할 사항이 있는 날엔 나를 보겠다며 항상 제 발로 뛰어오던 그의 발길은 끊긴지 오래였다. 그의 1년 후배인 세운의 얼굴만 익숙해져갈 뿐.
그렇게 서로를 피해 다닌 지도 거의 삼 주 째였다. 이제 최근 통화 목록에서 그의 이름을 찾으려면 스크롤을 한참을 내려야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뭐 그리 미련한 짓을 하고 있냐며 답답해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는 몰라도 적어도 나는 이제 막 그에 대한 감정을 깨우친터라 그와의 대면은 너무나도 어려웠고 두려웠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모르기에.
오늘따라 유독 방문객이 적은 응급실에 잠시 그의 생각에 빠져있었을까, 사람 없을 때 빨리 밥을 먹고 오라는 수쌤의 말에 나는 응급실 쌤들 몇 명과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이게 얼마만의 제대로 된 밥인지. 식당에 들어서자 확 느껴지는 맛있는 냄새에 잠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음식들이 꽉꽉 채워진 식판을 들고 앉은 자리의 옆 테이블엔 다름 아닌 외과 사람들이었고 사이엔 당연히 그도 있었다.
삼 주 만에 제대로 마주한 그의 얼굴은 나만 전전긍긍했나 싶을 정도로 밝았다. 사실, 내 신경을 더욱 건드렸던 것은 그의 밝은 표정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긴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는 예쁘장한 여자. 그 여자의 존재가 내 신경을 건드린 제일 큰 이유였다. 새로 온 인턴인 건가. 심지어 그 또한 내 앞에서만 드러나던 맑은 미소 또한 함께 하고 있었다. 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퍽이나 다정해 보이는 두 남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미간엔 어느새 깊은 주름이 새겨지고 있었다.
“ㅇ간 밥 안 먹어?”
“..아, 네. 먹어야죠.”
내내 옆 테이블을 신경 쓰던 탓에 받아 온 상태 그대로의 식판이었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던 직전과 달리 조금 식어버린 반찬을 뒤적이며 대충 입으로 쑤셔 넣었다. 분명 받아올 땐 맛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그닥. 그래도 배는 채워야 일을 하겠거니 싶어 몇 번의 수저질을 하다 무심코 든 시선의 끝엔 우리 쪽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는 그가 있었다. 내게로 시선이 고정된 듯한 그의 발걸음에 나는 급히 입을 닦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ㅈ, 저 먼저 가 볼게요! 뭐 덜 하고 온 게 있어서, 하하. 맛있게 드시고 오세요!”
몇 숟갈 뜨지도 못했는데. 남긴 밥이 아쉽기도, 당황한 응급실 사람들에게도 미안하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나는 그렇게 합리화를 시키며 재빨리 응급실로 향했다. 계속해서 내 뒤를 밟는 발자국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한참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며 그를 따돌렸을까. 응급실 창고의 구석으로 숨어버린 후에야 뒤이어 들리던 발자국 소리가 잦아들었다. 진료 시간인지라 사람도 많고 넓은 데다 구조도 복잡한 병원이 오늘따라 참 감사했다. 감사해하며 겨우 한숨을 돌리려는데 별안간 제 등 뒤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넘어왔다.
“뭐하냐?”
“아, 씨, 깜짝아. 뭐야, 넌 또 왜 거기서 나와?”
갑작스레 등장한 사람은 다행이도 그가 아닌 내과 레지던트 다니엘이었다.
“환자 차트 넘겨받을 거 있어서. 넌 여기서 뭐하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다니엘을 잠시 마주했다. 초점 없이 흐린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 다니엘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시야에 손을 흔들어보였다. 나는 그 손을 그대로 잡아 창고 밖으로 내보내버렸다. 등 떠밀려 쫓겨난 다니엘이 뭐냐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마주했다.
“밖에 김재환 있는 지 좀 봐봐. 얼른.”
덩치만 컸지 성격은 순딩한 녀석의 면모는 오늘도 톡톡히 발현되었다. 갸우뚱한 표정도 잠시 내 부탁을 들어주겠다며 눈을 찌푸리며 그가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이어 스캔을 마친 녀석은 콧대에 걸친 안경을 고쳐 쓰며 시선을 돌려냈다.
"쟤네 과 인턴이랑 같이 가는데?"
"아. 다행, 뭐? 인턴?"
"엉."
인턴이라 함은 식당에서 봤던 그 여자 밖에 없을 텐데. 고작 그 인턴 두 글자에 내 인상은 보기 좋게 구겨졌다. 짜증이 난다는 문장이 지금 내 감정에 최적화 된 문장일까.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야."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온갖 생각을 끊어낸 것은 다니엘의 미적지근한 목소리였다. 이에 나 또한 별 감정 없이 그의 말을 되받아쳤다.
"왜."
"너 재환이랑 뭐 있지."
..뭐지, 이 새끼. 촉이 좋은 건가, 눈치가 빠른건가. 나는 갑작스레 들이닥친 질문에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금세 제자리를 찾곤 이를 부정했다.
"뭐래, 아니거든."
녀석은 당당한 척을 하고 있는 내 속내를 훤히 꿰뚫어보았다.
"맞네. 뭐, 어디서 몰래 뽀뽀라도 했냐?"
"어?"
"헐. 나 그냥 던진건데 진짜야?"
아, 말렸다. 다니엘의 입에서 흘러나온 뽀뽀라는 단어 하나에 내 동공은 심한 요동을 일으켰고 열심히 내 얼굴을 관찰하던 그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다니엘은 대어라도 낚은 마냥 싱글벙글한 미소를 띤 채 깐족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끝은 녀석의 옆구리를 약하게 때리는 걸로 마무리됐다지. 딱히 세게 치지도 않았는데 제 허리를 부여잡으며 엄살을 부리던 그는 아무 소리 없이 멍만 때리는 내 반응에 금세 끙끙대는 소리를 그만두었다. 저거 진짜 소아과 환자들이랑 붙여놔도 정신연령은 별 차이 없을 것 같다. 쯧쯧. 혀를 차며 바라본 녀석의 얼굴은 꽤나 진지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야, ㅇㅇ야. 잘 생각해봐."
"뭘."
"훈훈하지, 돈 잘 벌지, 너 하나 좋다고 6년 동안 쫓아다녔지. 저 정도면 너 인생에서 전무후무한 남자 아니냐?"
"..."
"아니면 아니다, 좋으면 좋다. 딱 선 그어. 너네 삽질 하는 거 보고 있으면 내가 더 답답하다, 야. 그리고 그냥 미적지근하게 넘어가는 거, 재환이한테도 못 할 짓이야."
“......”
“병원에 쟤 좋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잡을 거면 빨리 잡아라-”
항상 미소를 지니고 있던 다니엘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쟤가 저렇게 진지했던 적이 있었나. 첫 수술 들어갈 때도 웃으면서 들어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를 알고 지낸 후로 처음 마주하는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에 내 머릿속은 소용돌이가 휘몰아 친 듯 복잡해질 뿐이었다.
"..됐어. 얼른 가기나 해."
정리를 해 보려 노력은 했지만 역시나 무용지물이었다. 그러게 쟤는 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서.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시 허허거리는 웃음을 띤 채 고뇌에 빠진 날 흥미롭게 바라보는 다니엘의 큰 몸뚱아리를 복도로 슬쩍 밀어버렸다. 그래도 내가 생각이 많다는 걸 느낀 건지 녀석은 더 이상의 시비 없이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응급실을 벗어났다.
다니엘이 묵직한 말을 던지고 떠난 뒤, 나는 힘없이 주저 앉아버렸다. 한숨을 깊게 내쉬어봐도 괜히 드레싱 키트를 만지작거려보아도 제 복잡한 머릿속은 여전했다. 어떻게 6년 만에 좋아한다는 마음을 눈치 채도 이렇게 첩첩산중인 건지. 더군다나 지금은 그냥 서로를 피하는 상태이니 뭐, 말 할 것도 없이 답이 없는 상황만이 머릿속에서 주르륵 나열되었다. 그나마 타이밍 좋게 울려 준 호출 전화에 끊어낼 수 온갖 망상을 끊어 낼 수 있었지. 나는 마른세수 한 번으로 겨우 정신을 차리곤 창고를 빠져나왔다.
애석하게도 나오자마자 마주한 것은, 삼 주 째 나를 괴롭히고 있는 김재환 그리고 같은 과의 인턴이라는 여자였다. 여자는 예쁜 미소를 지은 채 그를 향해 쫑알대다 나를 발견하곤 대충 제 목을 숙여냈다. 그는 그저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안녕하세요.
“..네.”
방금 전, ‘병원에 쟤 좋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라는 다니엘의 말을 금세 입증해주는 셈이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앞에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내 발은 익숙한 경로의 응급실 로비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선이 내게 닿아 열병을 일으키는 듯 했다. 유독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병원물을 가장한 불도저 김재환 下
“자자, 다 건배. 얼른 잔 들어요.”
“......”
“ㅇ간?”
“아, 네!”
나는 옆 테이블에 쏠려 있던 신경을 접곤 맑은 소주로 가득 채워진 잔을 들어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달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불과 몇 분 전으로 돌아간다. 나이트 근무를 하시는 쌤들께 인수인계를 마치고 퇴근하려던 내 뒷덜미는 같은 시간에 근무했던 응급실 사람들에게 보기 좋게 잡혀버리고 말았다. 뭐라 거절할 틈도 없이 응급실 회식 전용이라 할 수 있는 술집으로 끌려와 무작정 잔을 쥐어주었다.
그래, 그것까진 나쁘지 않았다. 술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으니. 문제는 제 옆 테이블의 무리가 외과 회식이라는 것 정도. 게 중엔 당연히 김재환도 있었다. 더불어 내내 옆에 붙어 내 신경을 박박 긁던 인턴 또한 함께 말이다. 피로에 쩔어 딱히 끌리지 않던 술이 옆 테이블을 확인하자마자 유난히 달아졌다. 계속해서 나를 힐끔거리는 그의 시선이 느껴질 때 마다 목구멍을 타고 흘러가는 소주의 양은 늘어날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유독 빨리 취하는 기분이다. 벌써 알딸딸한 게, 집은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 런지.
“저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얼른 갔다 와-”
취했다는 핑계로 시끌벅적한 회식 자리를 뒤로 한 채 술집을 빠져나왔다. 바람을 쐬겠다며 나왔는데, 정작 바람은 무슨. 습한 공기만이 나를 에워쌌다. 묘하게 기분 나쁜 느낌에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어두컴컴한 건물 뒤편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을 감으니 또 다시 재생되는 그와의 입맞춤, 그리고 내게 계속 꽂히던 그의 시선. 온 신경이 그를 향해있었다.
“ㅇㅇㅇ.”
“......”
여전히 듣기 좋은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무릎에 파묻혀 있던 고개를 서서히 들어 올리자, 그 끝엔 네가 있었다. 삼 주 만에 대면한 그의 얼굴은 전보다 살도 많이 빠져있었고 피곤한지 다크써클 또한 많이 내려와 있었다. 저거 또 잠 안자고 공부했겠지. 미운 와중에도 그의 걱정이 먼저 인 걸 보니 나도 뭐, 단단히 빠졌나보다 싶었다. 놈의 목소리가 이어지기 전까진.
“미안해.”
“......”
떨리는 동공으로 마주한 그의 시선은 나 못지않게 불안했다.
“너가 싫고 불편하면 그냥 없던 일로 하자. 내가 접을게.”
그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제 입장에선 나름 배려한답시고 수많은 생각을 거쳐 내뱉은 말이었겠지만 내겐 아니었다. 없던 일로 한다고 쳐도 나는 다시 친구로 돌아갈 자신이 없는데. 사람 마음 다 흔들어놓곤 없던 일? 그런 말을 뱉은 그가 유달시리 미웠다. 술에 취해서인지 그저 본심이 튀어나온 것인지 감정이 격해져버린 나는 벌떡 일어나 그와의 시선을 가까이했다.
“없던 일? 넌 그게 쉬워?”
“뭐?”
“맨날 장난 식으로 좋아해, 좋아해. 무턱대고 키스까지 해서 사람 마음 다 흔들어 놓곤 없던 일로 하자고.”
뻑뻑하던 눈가가 어느새 울컥 쏟아져 나온 눈물로 인해 촉촉해졌다. 불안에 떨던 그의 눈빛은 내 눈물 하나에 당황과 걱정으로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너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끕, 나 좋다고 해 본 적은 있어? 없잖아. 무슨 소아과 애기들 장난처럼 고백하고 키스는 또 왜 해? 사람 다 설레게 해놓고선 나 피하고, 인턴이랑 노닥거리기나 하,”
울먹이며 내 목을 타고 흘러나오던 한탄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그의 두 손이 내 볼을 잡아 급히 입을 맞춰왔기에. 우리의 사이가 멀어진 시발점이었던 키스보다 훨씬 달콤하고, 훨씬 아름다웠다.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하면 단단히 잡아오는 그 입술에 나 또한 그의 목에 팔을 둘러 깊게 응했다. 어두컴컴한 골목 사이로 은은한 달빛이 스며들어와 주인공들을 조명했다. 한참의 키스 후, 떨어진 입술 사이로 긴 실타래가 늘어지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내 입술을 제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쓸어내리는 그에 뚝, 끊기고 말았다.
"나 진짜, 너랑 멀어지는 건 죽어도 싫어서 몇 주를 고민하다 따라 나왔는데 너가 이러면 내가 뭐가 돼."
"......"
“좋아해.”
“......”
“진심이야.”
6년간 수없이 들어오던 장난스런 ‘좋아해’가 아니었다. 그는 옅게 풀린 눈으로 진지한 고백을 던졌고 나는 그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입을 삐죽이는 것으로 답했다. 나도 처음 보는 수줍은 내 모습에도 그는 그저 귀엽다는 듯 꿀이 떨어지는 눈빛으로 달빛과 함께 나를 응시했다. 내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 순간, 그의 눈빛이 아주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키스해도 돼?”
“변태.”
“그냥 변태할래.”
달콤한 입술이 또 한 번 내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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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간호사 선생님 계세요?”
“ㅇ간? 저기 컴퓨터 앞에 있는,”
빳빳한 가운을 걸친 인턴이 급히 응급실로 달려왔다. 뭐가 그리 급한지 숨까지 헐떡이며 ㅇㅇ의 행방을 묻다 대충 답이 나오자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곤, 또 다시 그 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ㅇ선생님!”
“네? 저요?”
외과 인턴 배진영. 빳빳한 하얀 가운에 정갈하게 적혀있는 것이 아무래도 새로 온 인턴인가보다. 낯이라도 가리는 건지, 풋풋한 인턴은 계속해서 내 눈치를 보다 말하라며 판을 깔아주자 겨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진짜 죄송한데 선배님 좀 깨워 주시면 안 될까요? 아침 회진 돌아야 되는데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셔서요..”
저저, 또 안 일어나서 지네 과 후배들만 괴롭히지. 나는 정리하던 차트를 신입에게 넘기곤 선배 잘못 만나 개고생 중인 인턴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위로 차원이었다. 인턴 또한 이를 알아차렸는지 “감사합니다-”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너무나도 익숙해진 외과 당직실까지의 경로로 향했다.
굳게 닫혀있던 당직실의 문을 열자 참, 가관이었다.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컵라면들, 전공책들. 그리고 그 사이 이층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김재환, 내 남자친구. 많이 피곤했는지 쭈글쭈글한 가운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잠에 취해있는 그였다. 나는 쓰레기들을 피해 겨우 그의 침대에 도착했다. 푹신하지도 않은 침대에서 잠은 어떻게 저렇게 잘 자는지. 미동 하나 없는 그에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헝클어진 그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잠을 깨웠다.
“자기야, 일어나.”
그 난리를 피우고 사귄 지도 어언 1년. 이젠 ‘자기야’라는 단어도 입에 착착 붙을 정도로 익숙해졌으며 그만큼 우리 사이도 깊은 발전을 했다.
“......”
“일어나라니까. 외과 아침 회진 돌아야 된, 야, 뭐해.”
자는 줄로만 알았던 그가 내 팔을 확 잡아당겨 제 옆에 눕혀버리는 게 아닌가. 제 아무리 1년을 만났고 ‘자기야‘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다곤 하지만 이런 기습 공격엔 아직 익숙지 않았다. 보나마나 잔뜩 붉어졌을 얼굴을 감추려 그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푸스스 웃으며 익숙한 손길로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는 문장 하나.
“사랑해.”
6년 동안 지겹도록 듣던 좋아해, 가 아닌 사랑해. 달콤한 그의 사랑고백에 허리를 껴안은 채 고개를 들어 올려 배시시 미소를 짓자 꺼칠한 입술이 잠시 맞닿았다 떨어졌다. 그리고 마주한 서로의 입가엔 행복으로 가득했다. 따스한 봄날의 햇빛이 우리의 가슴께를 간지럽혔다. 1년, 그와 사귄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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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뭘 쓴거죠..? 이건 뭐, 그냥 기승전 키스하하핳 맞아요 순전히 제 취향 백프로인 단편이었습니닷...사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건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저 진짜 감동 받았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독방에 추천글들도 하나하나 캡쳐해놨답니당헤헿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콘서트 가시는 분들은 조심히 잘 다녀오시구 못 가시는 분들은 저와 함께 독서실 1열에서 즐겨요..흡...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