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하성운
안녕하세요 '홍차화원' 입니다.
통학은 지긋지긋하다. 내 하루의 3시간을 지하철에 투자해야한다니. 자도 자도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취는 절대 안된다는 단호박 먹은 부모님을 이길 생각 조차 하지 않고 나는 프로통학러가 되었다.
학교에서 잔뜩 기가 빨린 채 동네에 도착하면 늘 지하철 출구에서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기다리고 있는 저 인간.
“ 뭐야 또 심심해서 나왔냐 “
“ 뭐야 오늘은 엄청 늦게 도착했어! “
내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뒤돌아 보는 하성운.
빽! 하고 투덜 거리지만 반가운 듯 웃으며 다가온다.
“ 안 춥냐? 너 귀에서 피나 “
“ 춥지! 그니까 일찍 일찍 다니라고! “
춥다면서 왜그렇게 실실 웃는 거야..
자연스럽게 내 무거운 가방을 들고 걸어가는
" 남자친구야 뭐야.. "
하성운. 그냥 동네 멍청이 정도로 설명하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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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좋은 주말 청하와 함께 이태원에 놀러 나왔다.
요근래 비만 오다가 오늘따라 구름 하나 없이 날이 좋길래 루프탑 카페에 앉아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한참을 먹고 수다 떨며 해가 지는 지도 모르게 놀고 있었다.
토독 - 토도독 -
한두방울 시작하는 비에 실내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어쩐지 웬일로 날이 좋더라니.
Rrrrrrrrr -
“ 여주야 어디야! “
“ 나 지금 이태원인데 “
“ 아 이태원에 지금 왜있는데! 이시간에! 비도 오는데! “
귀 따갑다. 잠깐 핸드폰을 귀에서 떼고 인상을 찌푸리니까 앞에 앉아서 케이크를 먹던 청하가 물었다.
‘ 성운오빠? ‘
고개를 끄덕거리자 못말린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 아니 아저씨. 제가 주말에 어딜 나가서 놀든 무슨 상관이세요… “
“ 비가 온다고 비가! 시간이 늦었다고 시간이! “
“ 지금 9시고 더 놀거고 비는..편의점에서 우산 사면 됨. 이상. “
나는 더 놀고싶단 말이다. 대충 끊어 버린 전화가 살짝은 신경 쓰였지만.. 집가서 전화해주지 뭐.
그 시각 하성운(24세/맨날 전화 뚝뚝 끊어 먹는 여주한테 삐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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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로 많이 오네..
근처에 남자친구가 있다며 남자친구 얼굴 보고 가겠다는 청하가 먼저 일어난 후 얼마 안되서 나도 카페에서 나왔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건지 하성운 말대로 비가 엄청 많이 오고 있었다.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 하나를 샀다.
동네에 가까워 지면 가까워 질 수록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우리동네에 비구름이 더 많은 건지…
우산을 사는 바람에 집 앞까지 갈 택시비가 모자랐다.
“ 기사님 여기 앞에서 세워주세요. “
택시에서 내리자 마자 우산을 보란듯이 고장 났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근처 버스정류장으로 뛰었다.
그 짧은 순간 한 5초? 뛰었다고 이렇게 홀딱 젖을 수 있는 것인가.
날이 아무리 많이 따뜻해졌다고 해도 일교차가 심하고 게다가 비까지 내리니까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어쩔 수 없이 지금 밖에 있을 동네친구 찬스를 쓰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 프듀초 버정 앞 ‘
이럴 때 하성운 찬스를 써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하성운은 놀랍게도 9시 뉴스 클로징과 동시에 꿈나라 행 열차를 탄다.
그런 인간이니까 9시가 됐는데 왜 집에 안 들어 가냐고 난리난리 대환장난리를 치는 것.
망했다. 저 메세지를 보내기가 무섭게 핸드폰이 수명을 다해버렸다. 너도 배고프니 나도 배고프다..
우선 누구든 보면 이게 무슨 의미일까 추리를 해낼 것이고, 그럼 궁금해서 라도 기어나오겠지 싶어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분명 지금 시간이면 김재환 연습실 갔다가 집에 들어 갔을 시간이고, 나보다 기타가 소중한 애라 감성에 젖어 기타나 치고 있을게 확실하다. 패스.
오늘이 일요일. 최애 드라마가 오늘 마지막회 라며 치킨까지 시켜서 경건하게 마지막을 장식할거라고 했던 윤지성. 패스.
비오는 날 신발 젖고 머리 만진거 죽는게 싫어서 절대 나올 생각 조차 안하는 옹성우. 패스.
그냥 내 연락 씹는 권현빈. 패스...(험한욕)
남은 사람은.. 없다.
집에 가야지. 비가 비록 정수리를 뚫을 것 같이 쏟아 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에는 가야한다.
버스정류장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얇은 남방을 머리에 둘렀다. 신속하게 뛰어가기 위해 신발끈도 동여 맸다.
뛸 준비 완벽. 이제 앞만보고 뛰어가야지 하고 몸을 돌리자,
우산인지 파라솔인지..
“ 그니까 일찍 좀 다니라고. “
그 안에는 하성운이 있었다.
“ …이거 파라솔이야? “
“ … “
우산인가..
걸어가는 내내 서로 아무말도 없이 걷기만 했다.
괜히 민망해진 나는 한참을 땅만 보고 걸었다. 자다 나왔는지 뒷머리는 까치가 둥지를 틀었고, 슬리퍼는 짝도 안맞는걸 신고 왔다.
지금 한참 꿈나라에서 놀 시간인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나왔을까.
“ 어떻게 알고 왔는지 궁금하지. “
“ …?! “
내가 물어 본 건가..?
아닌데. 나 가만히 조용히 걷기만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 현빈이 전화 받았어. “
오 권현빈...
“ 내가 권현빈 때려줄게. “
“ 너 여기있다고 알려준건 현빈인데 왜 때려 현빈이를? "
" 김여주 완전 양아치야~ "
" 비 온다고 들어 가라고 해도 끊어버리고 “
“ 그때는 비 이렇게 많이 안 왔잖아..”
“ 우산은 산다더니 왜 안 사고 “
“ 샀는데 고장이 나버렸지 뭐야? ”
“ 사도 꼭 지 같은거 사가지고 “
“ 맞고 싶다고? “
“ 나한텐 한번을 데리러 오라고 안하더라 넌 “
그야 당신이 9시만 되면 죽은듯이 잠들어 계셔서요..
“ 애기때는 그렇게 나만 좋다고 쫓아 다니던 게, 오빠랑 결혼한다고 난리 치던 게. “
“ 그때는 세상에 남자가 아빠랑 너, 끝 인 줄 알았어. “
" 그럼 지금은? "
" 널리고 널린게 남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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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한테 연락을 하지 않아서 삐진 하성운은 나한테 투덜거렸다.
일찍 일찍 다녀라 너는 못생겼어도 생물학적 여자라 누구든지 잡아 갈 수 있다며 망언을 날리는 하성운을 무시 한 채 앞만 보고 걷다 보니 집에 다왔다.
바로 옆 동에 사는 하성운은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 고마워 내가 피맥 쏜다. 조심히 들어가. “
“ 여주야 “
현관 비밀번호를 치고 있는 나를 불렀다.
왜 부르냐는 듯 슬쩍 뒤돌아 보고 마저 비밀번호를 쳤다. 지 몸보다 큰 것 같은 파라솔같이 생긴 우산을 들고 여전히 서있는 하성운이 또 나를 불렀다.
자꾸 부르는 통에 비밀번호를 한번 틀렸다. 아씨.
“ 세상에 널린게 남자면 오빠도 남자야? “
몸이 나도 모르게 돌아졌고, 하성운이 여전한 자세로 날 보고 있었다.
주머니에 있던 손을 빼서는 우산을 잡고 있던 손을 바꿨다. 이제 보니까 입고 있던 연분홍색 티셔츠 한쪽 어깨가 진하게 젖어 있었다.
한참을 서로를 보았다.
“ 널린게 남자여도 그 중에 여주 남자친구는 없네~ “
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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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성운이 글이 글잡엔 없길래...(쭈굴)
그럼 총총총..=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