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하나쯤은 있는 하성운
안녕하세요 '홍차화원'입니다.
“ 아..여주 죽어요 여러분 ”
종강이 오기 전, 초여름의 시작이라는 뉴스를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이다.
한동안 가뭄으로 비가 내리지 않아 매말랐던 땅들이 요근래 장마로 촉촉하다 못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장마철만 되면 괜히 더 덥고 습하며, 맑던 하늘에서 언제 내릴지 모르는 비 때문에 짜증이 더해진다.
게다가 나는 여름과 상극 그 자체. 나 김여주는 여름엔 그냥 죽어 있다고 보면 된다.
“ 김여주는 삼인칭에 토악질 나와서 죽는 우리는 생각 안하나봐. ”
“ 인성이 거의 폐차급. ”
“ 에어컨 끄고 싶다고? ”
“ 여주가 근데 인심은 흥부급. ”
“ 야 그거 참 격하게 인정하는 부분이고 상당히 동의하는 부분이다! “
여름만 되면 그나마 구석에 위치한 우리 아파트가 그늘진데다가, 유독 우리집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며 피서오는 바보들.
게다가 여름엔 거의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나를 알기 때문에 알아서들 심심해서 여기로 기어들어온다.
안그래도 더워서 짜증나는데, 다들 깝치지 말고 나가줬으면 좋겠다.
띠- 띠- 띠..
“ 김여주 저거 또 성운이형 또 빙수 심부름 시켰네. ”
“ 사오면 잘만 쳐먹는게? ”
“ 성운이형은 맨날 저기서 틀리더라. ”
“ 자기집은 어떻게 들어가나 몰라. ”
띠- 띠- 띠- 띠- 띠- 띠-
나는 하성운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널부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뛰어갔다.
하성운 손에는 역시 내가 좋아하는 딸기빙수가 들려져 있었고, 나는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밖에 비와! 너무 더워 여주야! ”
“ 빙수 비 안 맞았지? ”
“ 나 진짜 비 맞고 더워 죽는 줄 알았어! ”
덥다는 하성운의 투정을 무시한 채, 하성운 손에 들려있는 빙수를 정성스레 받아 들었다.
“ 우리 빙수도 너무 더웠겠다. ”
“ 김여주 너 빙수야 나야? ”
“ 아직 안갔어? ”
“ 진짜 김여주는 나중에 성운이형한테 제대로 고문 당해야 돼. ”
“ 엘레베이터 타고 닫힘 버튼 못누르게 해야 돼 쟤는. ”
올 여름도 하성운의 딸기빙수로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
" 여주야 천천히 먹어... "
“ 에-취! “
여름만 되면 찾아오는 세 가지.
비 , 딸기빙수 그리고 김여주의 감기.
자주 아프진 않지만 일년에 한두번 크게 앓는데, 이 말인 즉슨 체질적으로 여름에 몸이 약해지는 나는 그 한두번이 꼭 여름에 찾아온다 이 말이다.
“ 에-취! “
“ 그치 김여주 감기 빼면 여름이 아니지. “
내 재채기 소리와 함께 사라진 스푼, 하성운의 손은 아래로 천천히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 내놔라. “
“ 저 형은 저걸 또 들켜요.. ”
“ 아 먹지마라고! "
“ 아 왜! 먹을거야! 에-취! "
“ 입가리고 해라. 개도 안걸리는 여름 감기, 나는 너 처럼 개가 아니고 사람이라 안걸리고 싶다. “
“ 우리 지성쿤 감기 걸린 개한테 물려서 인간계를 뜨고 싶은거구나? “
킁. 개도 안걸리는 여름 감기 어디 한번 너네도 걸려 봐라.
“ 병원 안가도 돼? “
“ 병신아 오늘 일요일이야. “
“ 아 괜찮아! 오늘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 진짜라니까? 에-취! “
-
" 에-취! "
진짜는 개뿔.
나는 이 더운 여름 날 바깥 날씨와 경쟁이라도 하듯 보란듯이 열이 39도를 찍었다.
게다가 타이밍의 아다리가 어쩜 이리 잘 맞을 수가.
요 근래 아랫배가 살살 아프더니만, 오늘 터지고야 말았다.
“ 이것봐! 너 이럴 줄 알았어! “
“ 나 물… “
우리집엔 언제 들어 온 건지 물수건과 삼다수 한 통을 들고 들어와서는 계속 잔소리다.
얼굴에 잔뜩 먹구름이 낀 하성운은 꿍시렁 꿍시렁 내가 못살아 정말 말을 저렇게 안 들을 수가 있는거야 정말? 기타 등등 아줌마 같은 잔소리를 하며 내 말에 자동반사로 물을 주었다.
물을 한 모금 한 모금 삼킬 때 마다 바위를 삼키는 것 처럼 목이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자 같이 찌푸린다.
잔뜩 부은 얼굴만 빼놓고 이불을 덮어 주는 하성운이다.
뭐가 그렇게 웃긴지 또 혼자 히죽히죽 거린다.
“ 얘 좀 보세요~ 오빠 말을 귓등으로 듣더니 이렇게 병나서 안그래도 못생긴 얼굴 더 못생겨진 것 좀 보세요~ “
“ 꺼져.... ”
“ 매년 보는거지만 깡패같던 여주가 매년 그런 몰골로 가련하게 누워있으면 적응이 안되는걸 어떡해~ ”
“ 진짜 죽고싶다는 말을 여러방면으로 얘기하는 재주가 있어. 콜록- 콜록- ”
“ 뭐래~ 지금 다 죽어가는 사람이 누군데~ ”
이마에 올려진 물수건을 내리고 자신의 손을 갖다 대며 열을 재는 하성운.
기침을 할 때 마다 아랫배의 통증은 더 해오고, 머리는 점점 후라이팬으로 맞은 것 마냥 울려왔다.
“ 옆에서 잔소리 하지 말고 집에 가라고. 에-취! ”
“ 나도 집에 가면 심심해서 너 얼굴 구경 하는건데? ”
“ 시끄럽고, 애기 밥차려 주러 안가? ”
“ 애기 소풍 갔어 오늘~ ”
쩝.. 할 말이 없다. 집에 돌려보낼 껀덕지가 없네..
사실 그 날 이후로 자꾸 나도 모르게 오빠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올까봐 조심조심 하는 중이다.
하성운은 그때 이상하다는 걸 못느낀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 여주야 ”
“ 왜 또 불러 목아픈데.. ”
구름이를 무릎에 눕히고 배를 살살 만져주며 나를 부르는 하성운.
“ 구름이가 나 되게 좋아하는데, ”
“ 구름이 원래 나보다 널 더 좋아하잖아. ”
“ 우리 애기도 너 되게 좋아하잖아. ”
“ 나는 만인이 좋아해 ”
“ 참나~김여주 진짜 어이없는거 알지? ”
" 아직도 안갔냐? ”
" 너 아플때 마다 누가 옆에 있어줬어 ”
“ 이제와서 이렇게 생색 내겠다고? “
오늘따라, 아니 뭐 평소에도 그랬지만 오늘따라 더 생색을 내려는건지 밑도 끝도 없이 자꾸 답은 정해져 있는 질문을 해댄다.
“ 아직 크려면 멀었다 김여주~ ”
한껏 짜증이 담긴 얼굴로 하성운을 쳐다보니까,
" 아 알겠어 알겠어~ 그렇게 쳐다보지마 "
“ 성운아 짜증나게 하지마. "
“ 쪼꼬만게 말 예쁘게 안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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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잠든지 모르게 깊이 자고 일어나 보니 벌써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어제 엄마아빠는 부부동반 여행을 갔고, 이 집엔 구름이와 나, 단 둘이다.
일어나 침대에 끝에 앉아 방 안을 둘러 보았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있을 나를 위해 스탠드가 켜져 있었다.
침대 옆 탁상에는 하성운이 사다 놓은 죽과 약이 있었다. 그리고 작은 상자 안에는 사탕과 초콜렛이 있었고, 그 위엔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 애기 밥 먹이고 김여주 밥 먹이러 돌아올게~!
이거는 마법을 이기는 마법이야! '
하성운스러운 글씨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참 한결같다.
쪽지를 내려 놓으며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화장대 위에 있던 액자가 내려와 있었다.
하성운과 나.
고등학교 입학식날 찍은 사진이다.
나는 잔뜩 심술이 나있고, 그에 반해 하성운은 뭐가 그렇게 신이 났는지 내 머리위에 손가락으로 뿔을 만든채 웃고 있다.
어렸을 때 부터 부모님은 맞벌이에 바빴고, 형제가 없어 외로움을 많이 탔다.
늘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 했고, 지금보다 심하게 낯을 가렸던 것 같다.
유치원이 끝나면 집에 혼자 있을 시간이 싫어 놀이터에 죽치고 앉아있었던 나를 하성운은 매일 놀아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사이는 여기까지 왔다.
혼자 밥먹는걸 죽도록 싫어한 나는 자주 끼니를 거르곤 했다.
내가 밥을 거르면 대단히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어린 하성운은 꼭 우리집으로 찾아와 나를 자기네 집으로 데려가 밥을 차려 주고 내가 먹는 걸 지켜보곤 했다.
하성운은 나에게 아빠이자 오빠이자 대체불가 친구이기도 했다.
늘 함께 했고, 늘 나를 알뜰살뜰 챙겨 주었다.
중학교 때엔 낯을 심하게 가리는 나를 위해 매 쉬는 시간 마다 우리반으로 찾아와 친구는 생겼냐고 물어봤고,
고등학교 마저 같은 학교를 가게 된 나를 위해 매일 아침 나를 깨우러 집에 찾아 오곤 했었다.
멘탈이 무너지면 잡아주었고, 사춘기 반항심에 괜한 심술을 부리면 받아주었다.
하성운이 군대에 갔을 때엔 하성운의 이름 따 지은 구름이를 안고 매일 밤 운 것 같다.
내가 속상해 하면 분명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계속 뒤돌아 볼 것을 알기때문에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마지막 피자를 먹은 기억이 있다.
하성운이라는 사람이 내 기억 속에 있었던 시간 이례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었던 건 처음이었다.
하성운이 없는 동안 하성운의 빈자리는 크게 느껴졌다.
외롭고 혼자가 싫었던 그 때 마다 하성운에게 편지를 썼던 것 같다.
내 편지엔 늘 잘지내고 있다는 말만 가득했고, 그에 돌아 오는 답장은 자기도 없이 잘 지낸다며 서운해 하는 하성운의 투정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편지를 쓸 때마다 어떤 감정으로 썼는지 하성운은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그런 하성운 임을 알기에, 나는 지금의 우리에겐 끝이라는게 없다고 생각했다.
늘 우리는 함께이고, 늘 우리는 우리니까.
최근 들어 하성운의 행동, 그 행동에 느끼는 내 이상한 감정이 우리에게 끼어드는 걸 두려워 하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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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몸을 일으켜 땀이 흥건한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빈 속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그런지 눈 앞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겨우 샤워를 끝마치고 젖은 머리칼도 못 말린 채 나왔다. 언제 온 건지 하성운이 내 방에 앉아 있었다.
“ 김여주 진짜 말 안듣네 “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에게 다가와 손에 들려있는 수건을 가져갔다.
그러고는 정성스럽게 머리카락에 있는 물기를 닦아 주었고, 나를 손목을 끌고 화장대 앞 작은 의자에 앉혔다.
드라이기를 키더니 머리를 따뜻한 바람으로 정성스럽게 말려 주었다.
머리가 어느정도 다 말랐고, 드라이기의 소음은 조용해졌다.
하성운은 나를 맞은편 침대에 걸터 앉아 나를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고요한 내 방 안에는 정적만이 흘렀고, 나는 괜히 어색한 이 공기가 싫어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 괜히 나 미안해 하라고 이러는거지? "
고마운 마음과는 다르게 하성운에게 괜히 틱틱거렸다.
“ 죽도 혼자 못 먹고, "
“ 죽을 안먹었으니 약도 먹었을리 없고, "
“ 머리도 혼자 못 말리고, "
“ 이것 봐. 김여주 너 크려면 멀었다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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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운이 사온 죽을 먹고, 약까지 다 챙겨 먹은 뒤 침대에 다시 누웠다.
내가 눕기 무섭게 바로 이마에 척! 하고 물수건을 올려 놓는다. 아 차가워.
내가 잠들었을 때도 몇 번이고 이렇게 물수건을 갈아 줬을 걸 생각하니 나는 물수건을 괜히 만지작 거릴 수 밖에 없었다.
하성운을 알고 지낸 십 몇년 간, 이렇게 나를 간호해 준 건 셀 수 없이 많다. 오죽하면 오늘 같이 내 생리주기까지 꿰고 있으니까.
이런 일이 하루이틀이 아닌데 오늘 따라 하성운의 손길이 더 다정 하다고 느끼는 내가 이상할 따름이다.
그리고 유독 더 표정이 어두운 것 같다.
또 다시 흐르는 정적에 이번에도 내가 먼저 깨고 말았다.
“ ..이제 가라니까. 나 괜찮아. 9시의 신데렐라 잠들 시간 오잖아. ”
“ 아 알겠다고~ 넌 빨리 잠이나 자 ”
" 여주 너가 빨리 잠들어야 내가 집에 가지. "
덮고 있는 이불을 끌어 올려 목까지 덮어 주었다.
이불 끝만 만지작 만지작 하던 하성운은 아직도 먹구름이 가득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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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드 불빛을 제외한 방 안은 어두웠고, 약기운에 나는 눈을 감았다.
한참을 조용히 이불 끝을 만지작 거리던 움직임은 없어졌고, 조용했던 방 안에는 하성운의 목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 맨날 내가 사온 빙수만 먹으면 아프더라. ”
“ 여주 너는 여름에 내 손에 빙수 들려 있는거 아니면 웃는 얼굴을 안보여주잖아. ”
“ 난 너 웃는게 좋아서 빙수 사오는거야. ”
“ 근데 그거만 먹으면 이렇게 아프고. 아무 것도 몰라 김여주 넌. ”
그 날의 나는 언제 잠든지도 모르게 편하게 자고 일어났고, 열감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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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하세요 요로분~~~~~
매일 한 편! 꼭 들고 오려고 노력하는데 참 힘드네여 핳...
그래도 독자님들 댓글 보면서 힘내서 쓰고 있어여!
동네오빠 성운이는 완결을 언제 쯤 낼까 생각해봤는데
4편 정도 더 쓰고 끝날 것 같아요!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핫트
그럼 다음 편에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