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 연애, 남친새끼가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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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두웠다. 고기집에 들어오자마자 일어나라며 나를 내려다보던 강다니엘의 모습을 곱씹었다. 사과부터 하려했는데 그럴 새도 없이 잡혀나왔다.
"지금 어디가는 거야?"
"너네집."
아, 우리집? 혹시 집주인이 강다니엘 너는 아니지? 하하. 존나 자연스럽네.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말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은 다 오케이.
하는 짓을 봐서는 아직 화가 안 풀린 것 같은데 무슨 대화를 이어가려해도 가위마냥 싹둑 잘라내니 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너도 나한테 들을 사과가 있으니까 은지 전화받고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거 아니야? 자꾸만 충동적으로 비집고 나오는 말을 수십 번이나 삼켰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말 없이 평소처럼 내 걸음 속도에 맞춰 걷는 녀석을 올려다봤다. 또, 또 이 표정. 무서워서 오줌 갈길 것 같다고 수십 번은 이야기했던 그 표정. 물론 아무 생각이 없을 때도 이따금씩 보이는, 그저 아무 표정도 없는 무표정이지만... 그냥 내가 압도를 당한다고 해야하나.
"뭐라도 먹을래?"
"뭐있는데."
"음... 양파?"
"......"
"...오는 길에 장 좀 봐올걸 그랬나."
그렇게 아무말도 없이 도착한 우리집에선 답지않은 어색함까지 돌았다. 사과하려고 부른 쟤는 왜 지금 우리집까지 와있는 거고, 이미 놓친 타이밍은 도대체 언제 다시 돌아오는 건지, 머릿속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저녁이라도 먹이려던 계획도 텅 빈 냉장고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조용히 냉장고 문을 닫고 강다니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역시나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강다니엘을 슬쩍 쳐다봤다.
"...너 이거 왜이래? 다쳤어? 누가 그랬어?"
"아! 멍든 곳을 그렇게 잡으면-!"
"이거이거, 딱 봐도 누가 각목으로 쳤네, 쳤어. 어?"
어떤 새끼야? 어? 어떤 미친자식이 내새끼 팔뚝에 이런 흉측한 멍이 들도록 쳤어? 핸드폰을 잡고있는 녀석의 팔 위로 보라빛이 돌다 못해 새파랗기까지 한 커다란 멍에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끼리는 절대 안 지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하이에나 두 마리가, 어디가서 지고오거나 맞고오는 일은 절대 용납할 수가 없는거다. 차라리 나한테 맞지, 누구한테 맞고 다녀. 사이즈를 보니까 각목 아니면 야구빠따네. 시발. 상대가 좀 무서운가. 권총은 어디서 구하지.
"각목은 무슨, 너 내가 영화 좀 그만 보라고 했지."
"아 그럼 뭔데, 그게 아니면 어떻게 이런 무식한 피멍이 드냐고."
"너 취했다는 전화 받고 급하게 옷 주워입다가 선반에 부딪혔어."
"......"
뜻밖의 대답에 주춤하며 강다니엘을 쳐다봤다. 나야? 또 나야?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내가 얼마나 더 미안해 해야 하는 거니.
"...아니, 그냥 내가 등신같이 난리 피우다가 그런 건데 왜 니 표정이 죽상이야."
"...미안해."
들릴 듯 말 듯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내 속삭임에 강다니엘이 미간을 좁히며 나를 가까이 들여다봤다. 금세 잔뜩 풀이 죽은 내 표정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꽉 잡고있던 녀석의 팔뚝을 내려놨다.
그날 강다니엘 마음이 얼마나 조급했을지는 굳이 설명이 없어도 눈에 훤했다. 들어오자마자 나를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던 강다니엘에 급해서, 뛰어오느라 헐떡대며 숨을 고르던 강다니엘은 놓쳤던 거다. 물론 나 때문에 선반에 부딪혀 부어올랐을 팔뚝까지 놓친 건 보너스.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어."
"......"
"너도 속상했을텐데. 그치."
"......"
"그냥 내 얼굴 보자마자 화부터 내지, 괜히 참았다가 오히려 나만 짜증 다 부리고..."
내가 땅을 보며 여러 말들을 늘어놓는 동안 강다니엘은 한 순간도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오롯이 나로만 꽉 채웠다.
"어휴, 꼬맹이."
"......"
"이런 꼬맹이가 속상하다고 막 짜증부리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냐. 그렇다면 그런 거지."
"......"
"다 알았으면 됐어."
바람 빠지는 웃음 소리를 내며 나를 끌어안는 강다니엘의 품은 언제 안겨도 우리학교 캠퍼스보다 넓다. 이럴 때보면 나보다 나이많은 게 확실히 맞다니까.
"배 안 고파?"
"고파."
"라면이라도 끓여줄까? 먹을래?"
"아니, 그거 말고."
"다른 거 없어. 아님 지금이라도 같이 장 보러..."
"다른 게 왜 없어-, 여기 라면보다 더 가까이 있는데."
"오빠, 일어나 봐. 어?"
"......"
생각없이 늘어지게 자고있다가 본능적으로 번뜩 떠진 눈과 함께 스쳐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설마 그날이 오늘인가 싶어 얼른 핸드폰 캘린더를 켜보니 '과외시간 오전 11시로 조정' 진짜 그날이 오늘이다. 부리나케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을 땐 과외시간까지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던 거다. 시발. 침대 밑으로 널브러져 있는 속옷과 옷가지들을 쏜살같이 낚아채며 강다니엘을 마구 때려 깨웠다. 아침잠도 없는 게 오늘따라 왜이래. 일어나, 일어나라고.
"오빠 나 진짜 늦었어. 과외 까먹었어."
"과외 시간 멀었잖아..."
"찬영이가 오늘 약속있다고 그래서 오전에만 잠깐 봐주기로 했었단 말이야."
하도 오래 전에 말해뒀던 거라 하마터면 까먹고 평소 과외시간대로 갈 뻔했다. 내 직감, 아주 칭찬해.
"오빠 일어나세요-, 해 봐."
"닥치고 안 일어날래? 넌 계속 자든가, 난 갈테니까."
평소엔 곧 죽어도 야야 거리는 내가 강다니엘에게 오빠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순간이 있다. 할 때, 하고 나서 일어났을 때 잠깐. 딱히 의식하고 부르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한참을 오빠오빠하다 잠들고 일어나면 '야' 보다 '오빠'가 더 자연스럽게 나온달까. 물론 그 소리를 죽어라 좋아하는 강다니엘 때문에 정말 잠깐 부르다 아차 싶어 다시 야, 너, 로 돌아오는 게 다반사지만.
침대에 좀비 같이 앉아있는 강다니엘을 두고 화장실로 달려가 칫솔부터 입에 꽂아넣었다.
"아침 먹을 거 없는데 어떡하지?"
"없긴 왜 없어, 거기 화장실에..."
"한 대 맞고 그만 할래, 그냥 그만 할래."
그제야 입술을 쏙 집어넣고 화장실로 들어오는 녀석의 엉덩이를 팡팡 쳤다. 곱게 씻고 나가자, 응?
"근데 그 양아치는 왜 틈만나면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막 바꾸는 거야."
"뭘 또 찬영이가 시간을 막 바꿨다고 그래? 오늘은 진짜 한 달 전부터 말해놨던 거야. 내가 까먹고 있었던 거지."
"......"
"아아, 알았어. 걔가 막 바꿨어. 그런 걸로 해. 됐지?"
강다니엘은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꿍얼대기 시작했다. 고딩 꼬맹이한테 무슨 질투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인간이라는 게 우스워지는 순간. 아무 생각없이 찬영이 편을 들었다간 저렇게 입술을 댓발 내놓고 나를 쪽 째진 눈으로 째려보곤 한다.
찬영이가 워낙 장난기도 많고 공부를 하기 싫어하다 보니, 걱정삼아 강다니엘한테 했던 말들 때문에 녀석한테 찬영이 이미지가 막 좋은 편이 아닌 건 사실이다. 애한테 양아치가 뭐냐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건 질투를 떠나서 그냥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거다. 내가 고민만 늘어놔서 그렇지, 맨날 그렇게 농땡이만 피우는 애는 아닌데.
"잠깐. 너는 왜 들어와?"
"너랑 점심 같이 먹을 거야. 방해 안 되게 구석에 앉아있으면 되잖아."
"......"
"뭐-, 걔 내 얼굴 알아?"
"...그럼 진짜 가만히 앉아있어야 된다."
"내가 애냐.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카페에 들어섰다. 역시 택시를 탔더니 아슬아슬하게 늦지는 않았네.
"쌤!"
"어, 왔어?"
"음료 시키셨어요?"
"응, 너 것도 자몽에이드로 시켰어. 앉아."
생각해보니 찬영이 2학기 중간고사 준비도 곧 해야되는데. 과외 당일날 펑크를 자주 내는 녀석이라 오늘처럼 얼굴 본 날, 생각해놓은 진도를 후딱 해치워 버려야 마음이 편안하다. 머리를 질끈 묶고 펜을 들었다. 녀석이 어찌나 언어의 마술사인지, 펜을 들고 열심히 수학공식을 가르치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딴 길로 새고있을 때가 너무 많다니까.
"......"
"...어딜 보고 그렇게 웃으세요?"
"어,어? 아니아니, 미안. 잠깐 딴 생각을 했네."
열심히 문제집을 넘기다 문득 우리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강아지처럼 앉아있는 강다니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이시여. 저게 뭐야? 존나 귀여워. 미친. 주인 기다리는 사모예드 같아. 당장이라도 핸드폰을 들어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은 욕구를 꾹 눌러 참았다. 뭐가 저렇게 또 불만인지 입술이 삐죽, 하고 나왔을꼬. 애새끼야, 애새끼.
"저번주에 우리 어디까지..."
"어? 쌤 오늘 귀걸이 안 하셨네요?"
"응?"
"아니-, 쌤 귀걸이 뺀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아..."
그랬나. 말을 듣고 보니 어쩐지 허전한 듯한 귀를 어루만졌다. 하긴, 평소엔 강다니엘이 빼놔도 외출 전엔 꼭 끼고 나오곤 했는데 오늘처럼 과외시간에 늦어서 급하게 나왔던 적은 여태 없었으니까 아마 그럴 수도 있겠다. 잘 때 귀걸이 거슬린다고 쥐어빼는 게 강다니엘 특기니까, 응.
"솔직히 오늘 늦게 일어나셨죠."
"아니야-. 나 너보다 일찍 왔거든?"
"택시 타셨겠죠-, 아님 남친이 데려다줬나?"
둘 다 맞아.
"아니야."
"에이!"
"이제 진짜 책 펴. 벌써 10분이나 지났어."
"칫-, 몇 쪽이에요?"
"77쪽 134번 문제 한 번 풀어볼래?"
숙였던 고개를 들고 에이드를 쪽쪽 빨며 다시 강다니엘을 확인했다. 주문은 또 언제 했는지 그 큰 두 손으로 커피를 꼭 쥐고 얌전히 마시고 있다.
"아 맞다, 쌤. 이번에는 저 등수 오르면 뭐 해주실 거예요?"
"오를 자신 있어?"
"당연하죠. 제가 한다고 해놓고 못 하는 거 보신 적 있어요?"
갑자기 또 문제를 풀다 말고 고개를 번쩍 드는 찬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응, 매번. 못 하는 거 매번 봤어. 문제나 풀어.
오늘은 진짜 넘어갈 생각이 없다. 안 그래도 30분밖에 못 하고 가야 한다면서. 그 30분도 벌써 반은 수다로 날려먹었다. 제기랄. 나따위가 무슨 선생을 한다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책상 위에 엎드린 채 나를 올려다보는 녀석을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찬영아. 너 내년에 고3이야. 대학 안 갈거야?"
"내년에 하면 되죠..."
"안 돼, 빨리. 응?"
딴 말을 꺼내면서 화제 돌리기에 실패한 찬영이가 대놓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이거 18살 맞아? 어? 십팔살 맞냐고, 시팔살.
마치 3년 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간절했다. 내가 그러다가 내신 죽쒔어, 찬영아. 개새끼 똥만도 못 한 내신 때문에 남들 수시합격 할 때 혼자 독서실에 남아 정시준비 했다고. 그러니까 내가 너만은 구제하고 싶다. 구제할 수 있게 해주라, 내가.
느릿느릿 일어나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샤프를 들어 끄적이는 찬영이의 계산에 집중했다. 찬영아, 근데 7 곱하기 6은 48이 아니라 42란다. 이정도면 존나 나는 구몬선생이 아닐까. 가장 기본적인 인수분해를 두고 곱셈에서 막히는 모습에 좌절했다.
그래 찬영아, 하기 싫을 때 시키면 진짜 더 하기 싫은 거 내가 잘 아는데...
"야, 꼬맹이."
"...야, 너."
"...누구세요?"
"일어나. 이 누나 두 번 말하는 거 존나 싫어해. 너 그거 모르지."
얘는 언제 일어나서 여기까지 왔니.
안녕하세요 꿀딴지예요!
아니 글쎄 여러분... 제가 아까 낮에 글이 도무지 풀리지 않아서 이 창을 띄어놓고 이것저것하다가 엔터를 세게 팡 쳤거든요?
근데 그게 글쎄 글 등록이 되더라구요... 땀땀... 식은땀...
아마 독짜님들께 신알신이 울렸겠죠? 하핫 어찌나 죄송하고 뻘쭘하던지^^;
너무 놀라서 입 틀어막고 얼른 삭제했어요...
뜻 밖의 스포...
하지만 오늘 글은 별 내용이 없다는거★
작가는 암호닉 신청을 받기 위해 평소보다 아주 조금 이른 시간에 노트북을 켜고 달려왔습니닷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암호닉 신청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제 독짜님들의 암호닉을 신청받고 꼭꼭 기억해두려고 해요.
암호닉 신청 양식은 따로 없습니다!
저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든 뭐든 아무말이나 상관없이 사족을 붙여주신다면 더 좋아요~
오늘도 내일도 저는 댓글들 하나하나 읽는 낙으로 긴 방학을 보내고 있답니다...
늘 감사합니다 독짜님들
(주말에 본 영화에서 옥자를 부르는 아기배우의 대사가 독짜야~ 독짜야~로 들려서 독짜에 꽂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