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어?"
"주인, 택배 왔더라. 경비실 가봐."
바야흐로 2017년 여름, 김재환은 반인반묘와 동거 중에 있다.
S#1 How I met....
"냐아-"
웬만하면 동물들을 다 사랑하는 편이지만, 내게 유키-그러니까 지금 나와 동거 중인 반인반묘 김여주-는 꼭 그랬던 것만은 아니다. 사랑스럽고 예쁜 건 사실이었지만, 솔직히 달갑지만은 않았달까.
-김재환, 우리 헤어져.
"ㅁ, 뭐?"
-헤어지자고.
"....이렇게 뜬금없이?"
-넌 이게 뜬금 없는 거라고 생각해? 됐어. 그래, 그냥 우린 헤어지는 게 맞다. 헤어져. 연락하지마.
"야, 야 그럼 유키는?! 야 네 고양이ㄴ,
대뜸 전화로 이별 통보를 날린 내 전여친의 고양이가 김여주였으니까. 전여친은 아주 쿨하게, 본인의 고양이를 내게 맡겼던 것도 잊어버린 것처럼 그렇게 내게 이별 통보를 들이밀었다. 막상 그렇게 차이고 나니 유키를 키워야할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예쁜데 내가 너를 어떻게...."
그렇게 유키와 김재환은 함께 살게 되었다, 는 아주 싱거운 이야기.
S#2 I know who you are
"....나쁜 녀언...."
나는 나의 전 여자친구에게 매순간 진심이었다. 게다가 1년 남짓, 아주 짧지만은 않은 연애기간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대뜸 전화를 받고 이별 통보를 받아버렸다. 아주 당연하게도, 그 때 즈음의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
그건 매번 한숨을 쉬며 술집으로 들어가는 건 예삿일이요,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술을 퍼부어대는 것 역시 일상이었다는 뜻이다. 보통 인간은 술이 들어가면 취하기 마련이다. 취하면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흑역사를 만들기 마련이고.
"너블아아아......."
빌어먹을 열한자리 숫자가 당시 내겐 그렇게도 선명했나보다. 그게 흐릿했다면 그렇게 전화번호를 눌러댈 일도 없었겠지, 전화번호는 이미 삭제된 지 오래였으니까.
술에 취한 나는 아무렇지 않게 무의식에 저장되어버린 열한글자를 누르고 있었고, 정말 전화를 하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다.
"아 진짜 미친새끼."
그 때였다. 어디선가 아주 날선, 그러니까 아주....열이 받은 듯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던 건.
"니가 그러니까 망하는 거야, 이 미친놈아."
처음엔 내가 술에 꼴아 뭔가를 잘못 본 줄로만 알았다. 우리 집엔 저런 여자가 있을 리 없었다. 아니 저런 여자가 아니라, 나 말곤 그 누구도 있을 리가 없었다.
여자가 있다. 아무도 없어야 할 나의 공간에 누군가 있다. 누군가 있다?!
"누, 누구세요!!!!!"
"일단 그 폰이나 내려놔, 이 호구새끼야."
"누, 누구신데요!"
"말하면 알아?"
"....예...?"
"말해도 모를텐데."
싱긋, 웃은 그 여자가 현관 앞에 주저앉은 내게 다가왔다. 점점 여자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점점 더 그 여자의 눈이 더 크게 보이면 보일수록 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딱-
"호구짓 작작 하고, 술도 좀 작작 쳐먹고."
"...."
"본의 아니게 이렇게 나타나서 미안. 오죽 답답해야 말이지."
".....?"
"안녕, 인사할게. 김여주야. 아마 네 전여친의 유키였고, 이젠 네 유키가 된."
그 때부터 였을까. 내가 김여주와 완전히 꼬여버린 건?
S#3 Frankly Speaking, I
"...그래서 네 말은,"
"내가 네 고양이라는 거지."
"그리고, 내가 네가 반인....아니 그래 지금 그 상태인 걸 알아도 같이 살아줬음 좋겠다?"
"뭐, 그런 셈이지. 그 망할 년이 날 버리고 너도 버리고. 휘휘 가버렸으니까."
"....걘 알았어?"
"음, 아니? 걘 몰랐지."
"그럼 걔는 왜 너를..."
"질렸나보지. 내가 그 년 집에서 굶은 날만 세도 며칠일지 감이 안 온다."
"....하."
"너랑 왜 헤어졌는지 궁금하지."
"...."
"궁금한 표정이네. 말해줄까?"
"....뭔데."
"질려서."
"...."
"걔가 한 세달 전부터 노랠 부르고 다녔거든. 너랑 헤어질 거라고."
"....하,"
"내가 그랬잖아. 호구 되기 싫음 잊으라니까."
"내가 네 말을 믿을 거 같아?"
"믿는 눈친데."
"...."
"근데 이건 장담할게."
"뭘."
"나랑 살면, 절대 질릴 일은 없을 거야."
"...."
"매일 매일 색다르게 변해줄게."
"...."
"나 그냥, 여기 짐 풀어도 될까?"
"....하."
"장담할게."
"...."
"매일 매일이 새로울 걸, 주인."
아마, 그 때의 나는 홀렸던 게 틀림이 없다. 지금도 이따금씩 생각하는 거지만.
"....풀어, 네 짐."
그 때, 이 고양이를 가장한 여우를 받아주는 게 아니었는데.
S#4 망측한 고양이
"주인, 일어났어?"
아주 평범한 아침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는 네 자리에, 나는 내 자리에서 맞이하는 그런 아침일 거라고 예상했다.
"꼭 주인은 술만 먹으면 감당 못할 사고를 치더라."
"....니가 여기 왜 있어."
"뭘 묻고 싶은지 직설적으로 얘기해봐. 난 머리가 나빠서 돌려 물으면 모르거든."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도 꼭 저렇게 뱅뱅 웃으며, 살짝 눈웃음을 지으며 내 속을 뒤집어 놓는 건 네 특기일까.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웠기에 저렇게....
저렇게 섹시할 수가 있지.
"...알면서 이러지마."
"난 모른다니까?"
"야,"
"주인은 지금, 우리가 잤냐고 묻고 싶은 거지?"
"..."
"음...내가 굳이 주인 남방을 걸치고 있고, 주인 옆에서 굿모닝 인사를 건넸고."
"..."
"어때."
"상상했던 것보다 더 섹시해?"
아, 오늘도 다시 한 번 느끼는 절대적인 사실.
"맞아. 지금 주인이 상상하는 그런 거."
나는 술을 먹으면 안 되고,
"내가 그랬잖아. 주인 술 좀 작작 먹으라니까."
너를 만나선 안됐고,
"그래서, 아침에 주인 남방 입은 내 모습 보는 기분은?"
네게 매번 이렇게 넘어가서도 안 되는 건데.
"....지나치네."
"....지나치게 야하다는 뜻이야."
또, 김재환은 넘어가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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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핫...당연히 또 첫사랑 첫사랑한 글을 써볼까 했는데, 그냥 치명적인 여주와 순딩하게 넘어가는 째니가 조금 보고 싶었습니다...하하 어쩜 이렇게 매일 매일 거지같은 글만 쓰는지 호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