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본 남자가 옆집으로 이사왔어
"자 그래서, 해주겠다는 얘기가 뭔데?" "한모금만 더 마시고 얘기해줄게 기다려봐" "뭔 얘기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냐" 우진이는 급하게 나왔는지 흰 나이키 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카페안으로 들어왔다. 야, 뛰어왔어? 그러라고 전화한거 아니었냐. 야 미안, 그런건 아니었는데... 됐어. 카운터로 터덜터덜 걸어가더니 나와 똑같은 블루베리 스무디를 시킨다. 시킬 거 없으면 꼭 나랑 똑같은거 시키더라. "나 저번부터 자꾸 꿈에 남자나온다 그랬잖아" "엉" "그 남자 내 옆집으로 이사온 것 같아. 대박ㅇ," 신나게 스무디를 먹어대다가 사레가 들렸는지 카페안이 떠나가도록 켈룩켈룩거린다. 야야, 괜찮아? 고개를 의자 등받이 뒤로 돌린 우진이 옆으로 가 등을 두어번 두들겨주었다. 으이구 그러니까 천천히 좀 먹지. 손에 쥐고있는 것은 모든 다 먹어버려야 마음이 풀린다던 우진이는 이와중에 손에 스무디는 꼭 쥐고있었다. 차가운 스무디를 계속 쥐어 손끝이 빨개진 것을 보고 나는 조심히 손에서 음료수를 빼냈다. "이제 괜찮아." "진짜...?" "...엉" 얼굴 시뻘개졌는데... "...이번에도 꿈 꿨어?" "응. 어제 꿨는데 그 사람이 안녕이라고 했어. 뭔가 잘가-이 느낌도 아니고 반가워 안녕- 이 느낌도 아니었어. 그냥 안녕." 나는 원래 꿈을 잘 안 꾼다. 뭔가 꿨다하면 기억도 안나고 그냥 자고 일어나면 아침. 그게 다였다. 이 꿈을 꾸게 된건 겨울 어느날,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미래 남편을 볼 수 있다는 글을 보고 난 후 부터였다. 성 아그네스 기념일 전야제. 로즈마리를 배게맡에 두고 자면 미래 남편이 보인다는...민담같은 이야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로즈마리 배경으로 휴대폰 배경을 바꿔놓고 일찍 잠에 들었다. '자, 아-' '너부터 먹어, 너가 제일 좋아하는거잖아' 뭐야, 진짜 꿈을 꾸네. 굵직한 인상을 가진 남자가 날보면서 웃는다. 얼굴이 흐릿흐릿해... 게다가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자막처럼 말이 전해진다.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지만, 마음에서 말이 울리는 것 같다. 남자가 환하게 웃는데,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저녁, 야경이 환히 보이는 레스토랑. 음식이 나왔는데도 서로를 보느라 정신없다. 테이블 위에서 한참을 서로의 손을 가지고 장난을 쳤다. 손을 잡기도 하고 살짝 꼬집기도하고, 그렇게 웃다가 꽤 오래걸린 식사가 마치고, 공간이 휘어지며 배경이 바뀐다. '야, 자꾸 장난칠래?' 이번에는 더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아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였다. 아까는 마음이 간지럽게 들뜬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편안하지만 묘한 설렘이 느껴진다. 남자는 내머리를 조심히 쓰다듬고는 내 어께에 머리를 기댄다.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늦여름 오후였다. 나무들의 초록빛이 은은하게 빛난다. 그렇게 한참을 붙어있다가 남자가 일어난다. '...이리와봐' 어디를 갔는지, 남자는 꽤 멀리에 있는 것 같았다.나는 슬금슬금 그 남자곁으로 다가갔다.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꿈이라 그런지 저절로 발이 그 남자 곁으로 향한다, '왜?' 라고 조심히 묻는 나에게 남자는 씨익 웃더니 '악! 진짜 죽는다!' 물을 온몸에 뿌려대고는 도망간다. 스프레이는 어디서 난거야.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뭐야, 아까전과의 갭이 엄청난데? 로맨틱한 남자인줄 알았더니, 순 개구쟁이 남편이잖아? 그리고 나도 물이 사방으로 뿌려지는 스프레이를 들고 남자를 쫓아간다.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빛나게 웃는다. 장난을 치다가, 추워서 꽉 안았다가, 그리고 다시 장난을친다. '잡히면 죽어어!' 시선이 바뀌어 나는 그 남자와 내가 저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곤 서서히 강한 빛이 나듯 눈 앞이 환해졌다. 이제 꿈에서 깨는건가? 이게 내 남편인가... 그때,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주야, 나중에 보자 우리.' '김여주. 나중에 봐. 잊지마' 뭐야...두명이었어? 그리고 지금까지 그 두 명의 남편 꿈을 꾼다. 다섯, 여섯달이 흘러가면서 점점 첫번째 남자는 목까지 이미지가 선명해졌다. 또 다른 두번째 남자는 점점 흐려지더니 요새는 가끔 나와 장난을 치다가 서둘러 모습을 감춘다. 남편이 둘이 있다는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꿈속의 삶은 여유롭고 즐거웠다. 내가 정말로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첫번째 남자는 첫번째 남자대로, 두번째 남자는 두번째 남자 대로, 나를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했다. 좋았다. 그저 좋았다. 누구든지 좋았다. ...그런데 최근들어 첫번째 남자가 이상해졌다. 나와 알콩달콩 지내다가도, '여기서 시간을 더 쓰면 안 돼. 그러면 더 늦어질거야. 아마' 이런 요상한 소릴 하며 꿈을 끝내려고 했다. 시간을 보내면 안된다, 빨리 가야한다. 그러면 더 빨리 볼 수있다...와 같은 의미심장하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그리고 바로 어제는 나와 함께 살던 곳의 짐을 몇개 싸더니 '안녕' 하고는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오늘, 옆집에 한 남자가 이사왔다."안녕하세요. 이사와서 인사드리려고 왔습니다."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박우진" "...엉." "이제 가도 돼. 우리집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은거 알지? 혼자 갈 수 있어." 내 말을 가볍게 제치고 우진이는 먼저 앞장서서 걸어갔다. 하여튼, 말은 더럽게 안들어요.
"안 가나" "아 알았어! 혼자 갈 수 있대도...꼭..." 꿍시렁꿍시렁 걸으면서 얘기하는 내 모습을 보며
"그렇게 말하면 안들리는 줄 아냐" 면서 조용히 웃는다. 우진아 근데, 나 너한테 꿈얘기 전부 다 한거 아니다? 사실 남자 한명 더 있어. 근데 음...너한테 얘기 안하려고. 왜냐면...두번째 남자가 꼭...너같았거든. ---- 연재는 심심할때 해야듀 키듀키듀 댓글 너무 감사해요! 자주 못와도 시간 쪼개서 막 오고싶고 그래요! 그래서 왔어요! 이번 글은 꿈과 관련된 내용인데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어요! 단편은 아닙니다 헤헤 굿밤이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