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양아치 三
w.서화
옅은 뙤약볕이 내리 쬐던 날 치뤄졌던 축국 시합은 그의 부상 외엔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올해는 웬일인지 동재와 서재가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없어 대사성 어른께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며칠 후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어린 유생들도 입궁했고, 그렇게 성균관의 큰 행사들이 하나 둘 씩 저물어갔다. 그러나, 정작 내게 큰 문제는.
"..나리, 강연 들어가실 생각은 없으신 겁니까?"
"가봤자 했던 얘기 또 하는 영감 밖에 없는데 뭘 배우겠느냐. 네 얼굴 한 번 더 보는 것이 내겐 더욱 큰 가르침이야."
대사성 어른을 영감이라 칭하고 있는 이 능글맞은 남정네였다. 강연도 일체 들어가지 않고 내내 성의원만 들락날락 거리는 이 사내. 그가 이렇게 성의원에서 살다시피 한 지도 시합 날 이후부터 헤아려도 벌써 한 달 째였다. 몸이 약한 것 아니냐고? 절대. 며칠 전, 축국 시합에서 동재의 득점은 전부 그의 몫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방문 목적은 무엇일까. 물어 볼 가치조차 없었다. 저렇게 대놓고 추파를 던지는 데 제 아무리 사내와 연정을 나눈 적이 없다지만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또한 이런 그의 행동이 그리 싫진 않았다.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관심이라 어색할 뿐 거부감 따위의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자리는 없었다. 허나 궁금증은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풀리지 않았다. 저리 잘난 양반집 아들이 굳이 날 왜? 천민이라고 창기와 동급으로 보기라도 하는 걸까. 그저 노리개 정도의 여인으로 대하는 것일까. 상상은 갈수록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정작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은 눈치 채지 못한 채로.
그가 이곳에 오면 하는 일은 항상 같았다. 맞은 편 걸상에 앉아 턱을 괴곤 실실 웃으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그 뿐이었다. 아, 가끔 경연 시간이라고 타박을 하면 능글맞은 대답을 던지는 정도도 있긴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영감이라뇨! 농은 이쯤 하면 됐으니 어서 들어가시지요. 그러다 또 벌이라도 받으면 어쩌시려구요!"
호통이었다. 어째 신분이 뒤바뀐 것 같긴 하다만, 어린아이 마냥 떼를 쓰는 사내에겐 이 방법 밖에 없었다.
"유생들 사이에선 다 그렇게 부르는데 뭐가 문제인 게야."
"아무리 그래도 어르신 존함을 그렇게 막 바꿔서 부르고 하시면 아니되,"
"너 지금 내게 훈계라도 두려는 것이냐?"
한창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내뱉던 말소리가 사내의 낮은 목소리에 도로 제 목구멍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슬쩍 고개를 들어 마주한 그의 표정은 짐짓 엄한 빛을 띠고 있었다. 평소엔 그저 장난기 많은 사당패의 무동과 다름없던 그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이라니. 어색하기도 했으나 양반의 고고함이 동시에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
"농이다, 농. 넌 어째 매일 똑같은 수법에도 움츠러드는 것이냐."
"아니, 나리께서.."
"끝나는 대로 오마. 기다리고 있거라."
"...예."
그는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곤 콧노래를 흘리며 성의원을 빠져나갔다. 저 발걸음이 명륜당으로 제대로 향하긴 할런지. 괜한 걱정이 나를 감싸왔으나 굳이 따라 나가 뒤를 밟을 용기까진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길이 닿았던 곳을 괜히 한 번 쓱 건드려보며 얼굴을 붉히는 정도. 딱 그 정도의 용기만이 내게 주어진 경계선이었다. 안타깝게도 조선 땅에선, 그 이상을 밟아선 안 된다는 걸 너무나도 깊이 알고 있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의원에 스며들어 와있던 햇빛이 걷혔다. 이어 어둠이 내려앉았다. 마치 현실에 부딪혀 이리저리 멍울이 생기기 시작한 내 모습을 투영하기라도 하듯.
잠시 제 모습을 드러낸 햇빛과 개미 한 마리 없이 조용한 의원의 분위기는 내 눈꺼풀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경연이 언제쯤 끝나려나.. 스르르. 햇빛도, 풀린 눈동자도 잠시 안녕을 고했다.
***
어릴 적 먹던 엿가락 마냥 단 꿈에서 눈을 팍 떴을 땐 이미 어둠이 깔린 시각이었다. 쨍쨍한 주황빛 대신 어스름한 은빛이 창을 통해 녹아 들어오고 있었다. 해시 쯤 됐으려나. 경연은 끝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나으리는..
"..그럼 그렇지. 뭘 기대해."
바람 빠진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래, 아무리 관심을 표해봤자 별 반응 없는 의녀보단 제 말 한 마디에도 꺄르르 웃음을 흘리는 기녀들이 더 그의 적성에 맞는 것이겠지. 원래 그래오던 사람이니. 당연한 일인데, 왜 이리 한숨만 폭폭 새나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몇 주 사이에 그에게 마음이라도 내어주었던 것일까. 나는 애꿎은 입술을 질근 씹으며 쓸 데 없는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한참을 씹어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점점 더 선명해지는 그의 잔상이었다.
복잡했다. 알 수 없는 굴레들이 자꾸만 제 몸을 감싸오는 그런 느낌.
성균관 양아치 三
채비를 해 향한 곳은 처소가 아닌 반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촌의 기방. 내가 나고 자란 곳이자 유일하게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곳. 그 익숙하고도 편한 곳으로 향했다. 기방에 다다를수록 사람들의 말소리가 커지는 것과 빠져나오는 사내들의 옷차림을 보니 반궁의 유생들은 대부분 저 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사성 어른은 아실런지. 나는 절로 나오는 한숨을 굳이 막지 않곤 쓰개치마를 한 번 더 고쳐 쓰며 기방의 문을 열었다.
"어서오, 어, ㅇㅇㅇ! 뭐야, 너 궐에 있는 거 아니었어?"
실로 오랜만에 마주한 월희의 낯은 손님이 나인 것을 확인하자 배로 밝아졌다. 월희는 조심스레 잡고 있던 치맛자락도 놓아 버린 채 한걸음에 달려와 내게 안겼고 나 또한 그 조그마한 체구를 따스하게 감싸 안았다. 옅게 나는 분 냄새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오랜 동무를 만났다는 기쁜 마음이 더 컸기에.
"반궁에서 근무한 지가 며칠이 지났는데, 이제 안게야?
"아아, 나으리들이 말씀하시던 의녀가 너였구나- 난 또. 얼른 들어와."
월희의 손이 날 잡아 제 처소로 이끌었지만 내 신은 땅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냐. 그냥 잠깐 이야기나 나누려고 온 건데, 뭐. 그리고 지금 기방 바쁜 것 같은데.."
"오늘 성균관 신참례라 그래. 이번엔 또 누구 속곳을 가져오라 하셨을까-"
"아, 신참례.."
그도 처음 반궁에 들어왔을 땐 신참례를 겪었겠지. 그 때도 지금처럼 능글맞았으려나, 아님 홍조를 띠며 부끄럼을 탔을까. 이러나저러나 자꾸만 그려지는 그의 앳된 모습이었다.
"ㅇㅇ야?"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뭐, 반궁에 너 괴롭히는 사람이라도 있어?"
"..아냐, 그런 거."
그럼 됐고.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말해야 된다? 나름 비장한 표정으로 으름장을 놓는 월희였다.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나를 감싸 도는 그녀에 살풋 웃음이 새어나왔다. 비웃음도, 억지웃음도 아닌 자연스레 지어진 미소였다. 내 미소에 그녀 또한 같은 미소를 띠었다. 말, 해 봐도 괜찮겠지. 기방 앞의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작은 나뭇잎이 내 질문에 고개를 두 어 번 끄덕였다. 찬바람은 아니었다.
"연아."
"그 이름도 오랜만에 듣는다. 왜?"
"..."
"뭐야, 불렀으면 말을 하세요. 마마님."
"양반이 천민을 연모 한 다는 게 가당키나 할까?"
순간 마주친 두 눈엔 아무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겠지. 잠시 앙 하고 다물려 있던 월희의 붉은 입술이 열리고 옅은 분홍빛의 내 입술이 말려들어갔다.
"..글쎄.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혼인 올리려면 저기 어디 산골짜기 가야 하지 않을까. 부고 명예고 다 버려야 할 텐데 곱게 자란 나으리들이 포기하긴 힘들 것 같은데."
"..그치?"
씁쓸한 맛이 혓바닥에 맴도는 듯 했다.
"그래서, 누군데."
"어?"
"그 양반 나리가 누구냐고. 누구신데 우리 마마님 마음을 홀딱 빼앗으셨을까-"
잊고 있었다. 워낙에 눈치가 빠르던 아이인데 그 성격이 어디 가랴. 가재미눈을 하곤 그 사내가 누구냐며 물어오는 월화에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거 아니야. ㄴ, 너, 얼른 들어가 봐야지. 바쁜 거 아니, 악!"
뒤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슬그머니 내빼려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에게서 받은 꽃신이 내 뒤에 있던 누군가의 신을 꾹 밟아냈다. 그러나 정작 밟힌 신의 주인은 휘청이는 내 어깨를 확 감싸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줄 뿐 고통을 알리는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를 지른 것은 놀란 내 쪽이었지. 무튼, 어깨를 감싼 사내 탓에 거의 안기다시피 한 민망한 자세였다. 사내의 품에서 어딘가 익숙한 향기가 풍겨오는 듯 했으나 이를 판단하는 이성 보다 그 품에서 재빨리 빠져나와 고개를 숙이는 본능이 더욱 빨랐다.
"ㅅ, 송구합니다."
"예서 뭘 하는 것이냐."
방금 전 스며들었던 익숙한 향기는 내 이성의 오진이 아니었다. 내게 꽃신을 안겨 준 그였다. 어째 기방에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질 않는 지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으나 지금 당장은 붉어진 얼굴을 감추는 것이 우선이었다. 무슨 영문인지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열이 확 올랐으니 붉어진 볼은 안 봐도 뻔했다. 마루를 향하던 시선은 이제 흙바닥으로 향했다.
"잠시 동무를 만나러 온 것뿐입니다. 신참례라 들었는데 즐기다 오시지요.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충 할 말만 던지곤 청색의 쓰개치마를 뒤집어썼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로 인해 벌개진 얼굴을 가린 뒤 몇 발자국 떼었을까, 큰 손이 내 손목을 잡아끌었다. 제 악력을 자랑이라도 하듯 나는 힘없이 그 앞으로 마주 서 버렸고 그는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말했다.
"같이 가자꾸나."
"예? 신참례는 어쩌시고.."
"사내놈들 술에 취한 모습 보단 붉어진 네 볼이 더 재미있어 보이는데."
그의 손이 쓰개치마를 슬며시 벗겨냈다. 고작 쓰개치마 하나 내린 것인데 발가벗은 모습을 보이기라도 한 듯 더욱 열이 올랐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데도 왜 이리 덥기만 한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해도 꽉 붙잡고 있는 탓에 도망가지도 못하게 된 난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댔다. 건너편 나무도 보고, 바닥을 지나다니는 개미도 보고, 마루에서 가야금을 뚱땅 거리는 기녀들도 보았으나 그의 시선은 걷힐 줄 몰랐다. 꽤 길어진 시선에 나는 애꿎은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댔다. 긴장할 때면 나오는 행동들의 총 집합이었다. 그 강도가 평소보다 심했는지 금세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으나 멈출 생각은 시도조차 하지 못 했다.
"뭘 그리 깨물어."
순간, 그의 하얗고 쭉 뻗은 손가락이 내 입술을 살짝 훑어냈다. 볼을 슬며시 쥔 채 엄지손가락으로만 입술을 쓸어내는 그의 모습이, 어딘가 야살스러웠다. 두 시선이 공중에서 맞물리자 그의 눈빛은 진득하게 나를 얽매어왔다. 위험하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의 새하얀 얼굴에 경보가 울리자 나는 손을 뿌리치곤 급히 뒤를 돌아 기방을 빠져나갔다. 아, 덥다. 그 수많은 소리 중에서 내 뒤를 따르는 그의 발자국 소리만이 내 귓가를 맴돌았다.
"......"
"......"
어색하다. 이 밤에 단 둘이 저잣거리를 걸어서 그런가? 아니다. 낮에만 해도 이리 어색하진 않았는데. 정적만이 맴도는 기운에 숨이 막히는 듯 했다. 흘끔 봐도 그는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고.. 결국 먼저 말문을 튼 것은 내 쪽이었다.
"왜 오늘은 기방에 오래 계시지 않으신 겁니까?"
"..어? 아까 말하지 않았으냐. 그 놈들 취한 모습 보단 네,"
"나리!"
자꾸만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그에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갑작스런 접촉에 그도 나도 놀라 동그래진 눈이 마주쳤다. 망했다. 커진 눈망울을 두 번 꿈뻑이다 급히 손을 내리며 시선까지 함께 걷어냈다.
"그게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오라,"
"괜찮다. 나야 실이 될 건 없지."
"......"
정적은 또 다시 틈새를 파고들어 그 범위를 넓혀갔다. 각자의 신이 흙과 맞닿아 나는 소리는 달빛이 내린 밤이라 그런지 인기척 하나 없이 조용한 저잣거리의 유일한 소리였다.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저 은빛 물결만이 그 자리를 메꿀 뿐.
"ㅇㅇ야."
갑작스런 부름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듣는 이름은 두근거린 다기 보다는, 불쾌한 긴장감만을 전해주었다.
"예, 나으리."
"너는 해와 달이 함께 할 수 있다고 보느냐."
어딘가 떨리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가 던진 질문엔 깊은 뼈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그저 새벽 감성에 치우친 농이 아닌 제 마음에 관한 내 의사를 빙빙 돌려 묻는 중이었다. 뭐라 대답하는 게 정답인걸까. 그를 만나고 부터 계속해서 나를 괴롭혀왔던 소재였으나 아직 정확한 답은 내리지 못 한 상태였다. 기방에서의 연이의 대답,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고민들. 마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때마침 달빛이 내 머리 위로 올라타 긍정의 표시를 보내자 피딱지가 앉은 입술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니요. 둘은 너무나도 상극인 존재인 걸요. 평생 함께하지 못 할 것 입니다."
"......"
"그것이 진리이자 도리라고,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의 걸음이 턱- 하고 멈추었다. 이를 따라 나 또한 걸음을 멈추자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강하게 어깨를 부여잡는 힘에서 그의 기분이 상했고 화가 났다는 것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내 대답은 회수 할 수 없었고 그럴 마음조차 없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들어 내 텅 빈 눈을 화로 가득 찬 그의 눈과 마주할 뿐이었다.
"아니. 내 생각은 다르다. 둘 다 이 저잣거리를 밝혀주는 존재인데 뭐가 그리도 다르더냐. 세상에 진리이고 도리 그런 건,"
"나으리."
"......"
"전 달도 아닌 그저 조그마한, 저잣거리는커녕 좁은 골목 하나 조차 비출 힘없는 죽은 별 일 뿐입니다."
고작 내 말 한 마디에 그의 손이 힘없이 떨어지고 말았다. 상처받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그를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사부작거리는 치맛자락의 소리가 오늘 따라 유독 제 눈물샘을 건드려왔다.
그를 가까이 할수록 생채기는 더욱 깊어져갔다. 하지만 그 상처들은 이름 모를 깊숙한 곳에서 시작되었기에 눈치 채지 못 했을 뿐. 결말은 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였다.
성균관 양아치 三
결국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떠오르는 그의 다정한 행동들과 어젯밤 마주했던 화가 가득 담긴 눈빛이 도저히 잠에 들 수 없게 만들었기에. 몇 번 시도는 해 보았지만 질끈 감으면 감을수록 자꾸만 선명해진 탓에 눈을 뜨고 있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땐 수탉이 울고 있었다.
퀭해진 안색을 한 채로 조용한 성의원에 앉아 괜한 헝겊만 괴롭히던 중, 드르륵 소리를 내며 의원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그였다. 밤새 날 괴롭혔던 장본인.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이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다가와 익숙하게 제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내 자리의 맞은편 걸상. 그 자리에 앉아 어제와 같이 턱을 괸 채 날 바라보았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 말, 못 알아들으셨습니까?"
"알아들었다. 내가 어디 바보천치라도 되는 줄 아는 게냐?"
"예?"
감았던 두 눈을 슬며시 뜨자 그의 달콤한 눈빛이 나를 반겼다.
"네가 빛 없는 별이라도 난 상관없다. 그러니 피하지만 말거라."
"......"
분명 어제 부로 조금 자라났던 새싹을 잘라냈다 생각했건만, 확신에 찬 그의 목소리 하나에 그 새싹은 꽃을 피우고 말았다. 휘어진 눈을 마주하니 자꾸만 커지는 심장 소리에 고개를 푹 숙였다. 눈이라도 안 마주치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방안이었건만, 이 또한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답."
다정했다. 그리고 난, 그 다정함에 녹아 어쩔 줄 모르는 소녀일 뿐이었다.
"..예, 나으리."
열린 창문 사이로 시원한 초여름의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바야흐로, 여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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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연재했던 성균관 양아치를 들고 오는 게 맞는 것 같아 이 글로 찾아뵙게 되었네요. 성균관 양아치 끝나는 대로 조각글로 썼던 작품 들고 오겠습니다. 투표해주신 모든 분들 다 감사드려요! 워너원도, 워너블도 모두 행복한 나날이라면 좋겠어요. 굿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