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생애 세번째인 학교 입학식이고, 두번째인 낯선 교복이지만 낙엽 한 장에도 꺄르르 웃는다는 그 사춘기인 나에게는 설레고 설레고 설렜다.
딱히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어서 평소 깨발랄한 성격이기에 난 커서 롯데월드 알바 할거야. 라는 생각으로 중학교와 같은 지역인 가까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같은 지역 다른 학교에서 온 새로운 친구들이 궁금했고 중학교 입학식을 상상하기도 하며 등교길을 밟았다.
배정 받은 교실으로 들어갈 때, 그래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어. 아니 근데 들어갔더니 아는 애들은 전체 같은 반 친구들의 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거다.
보이는 얼굴마다 초면초면초면초면, 심지어 번호순으로 배열한 자리인 내 옆 짝꿍 마저도 초면..
친해지면 활발한 성격이다만 나름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에 애들이랑 친해지기가 어렵겠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 난 김여주 이기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짝꿍에게 말을 걸었다.
짝꿍은 우리 중학교랑 조금은 멀다고 할 수 있는 중학교를 나왔고 빛나는 이라는 그룹의 팬이라고 했다. 어쩐지 트위터의 기운이 오더라, 왜 그냥 그런 느낌 있잖아 (아는 척
교실에 비교적 일찍 들어온 편이라 자리에 앉아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며 들어오는 같은 반 친구들을 구경했다.
지각학생을 확인한다는 종이 치기 직전에 들어온 학생이 있었다. 늦어서일까 첫인상이 좋지는 않았지 그럼,,
죄송합니다-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허허 지어보이며 자리가 어디지 라며 눈가를 긁적이는 그 모습을 보고 마냥 나쁜 애는 아닌가보다 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괜한 생각이었지,,
어색한 그 공기속에서 며칠을 보냈고 번호순으로 앉던 자리에서 새롭게 남녀를 혼합한 자리로 바꾸겠다는 날이 와버렸다.
정이 들었다면 들었던 짝꿍이랑 이별한다는 아쉬움? 사실 그것보다는 새로운 짝이랑 또 얼마나 어색할지가 너무너무 고민이 컸다.
남자 아이들이 먼저 종이를 뽑고 여자 아이들이 종이를 뽑는데, 첫 날 지각했던 그 남자애 (이름은 강다니엘이라고 했다.) 의 옆자리인 20번만 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거짓말 같이 강다니엘의 옆자리는 피했으나, 진짜 거짓말 같이, 강다니엘의 대각선인 13번 자리에 앉게 됐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염병할
짝을 바꾸고 첫 국어시간이었다. 우리 국어쌤의 국어시간 규칙은 꼭 모둠 책상으로 돌려놓고 수업을 하는 것인데 그래서 강다니엘이랑 같이 얼굴을 보며 수업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좌우명으로 그림을 그려서 친구들한테 퀴즈를 내라는데 어쩜 중학교 1학년때랑 똑같은 프로그램인지.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왔다.
내 좌우명은 '하기 싫은 걸 해야 하고 싶은 걸 한다' 였다. 그래서 무난하게 뭐 왼쪽엔 비오는 그림 오른쪽엔 햇살이 가득한 그림 이런걸 그렸는데. 강다니엘의 종이를 슬쩍 훔쳐보니까 먹을 것을 엄청 그리고 있는 것이다.
어 맞다, 여기서 여담을 하나 풀자면 강다니엘만큼 내 짝꿍의 첫인상도 좋지는 않았다. 별로 눈에 띄지는 않던 놈인데 이름이 뭐더라 황민현? 얼굴은 날카롭고 잘생긴게 말은 그렇게 없는거다.
처음 짝을 바꾼 날에 짝인걸 확인하고 인사라도 하자 싶어 세상 해사한 웃음으로 안녕? 이라고 말했더니 그냥 무시하면서 오만상을 지어버리더라.
아 얘도 만만치 않은 놈이다 라는 생각으로 일부로 더 치댔다. 난 얼굴에 철판을 깐지 오래니까 ㅋㅅㅋ
그러다보니 민현이도 슬슬 내 인사를 받아주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찡찡대기 때문에...ㅋ
사실 이 여담이 여담 아닌 여담인 이유가 항상 민현이가 내 인사를 씹을때면 강다니엘이 비웃다가 자기가 인사를 하고 민현이가 이상한 눈빛으로 인사를 받아주면 더 비웃곤 했기 때문이다.
또 황민현이 무뚝뚝하고 싸가지 없는 만큼 강다니엘도 내가 말 걸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는거다.
아니 뭐 아무튼은, 그래서 짝꿍의 종이를 스윽 보는데 애가 낯을 심하게 가리는지 종이도 백지길래 강다니엘의 종이를 봤다.
그런데 강다니엘이 먹을 것만 잔뜩 그치면서 혼잣말인지 황민현한테 하는 말인지 아 옥수수 먹고 싶다- 라는 말을 하길래
어디서 나온 자신감인지 난 강다니엘한테 옥수수 좋아해? 난 옥수수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옥수수 아이스크림 먹어봤어? 라며 속사포로 뱉어댔다.
이미 우리 반에서 내가 황민현한테 엄청 치댄다는 것은 유명했던지라 (어쩌면 애들이 내가 민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강다니엘한테 그렇게 얘기하니 선생님부터 강다니엘을 포함한 애들까지 날 쳐다보며 빵 터진 것이다.
뭐지뭐지? 그렇게 웃겼나 라는 생각도 잠시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소심하게 거기 옥수수 아이스크림도 그려줘..! 라는 말을 뱉고서는 난 내 그림을 괜히 수정하고는 했다.
옥수수 아이스크림 사건을 이후로 강다니엘과 나는 나름 친해졌던 것 같다. 장난도 많이 치고 서로 디스도 하고 우리 반의 톰과 제리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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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을 둘러보다가 내 에스크에 들어갔는데 새삼스럽게 이런 질문이 와있었다.
이상형이 어떻게 돼?
익명
새질문 거절하기
난 평소에 내가 생각하던 이상형인 [손이 예쁘고 목소리가 좋고 나보다 키크고 어깨 넓으면 좋겠고, 또 웃는게 예쁘고 말 예쁘게 해주는 사람] 이라고 적었다.
그 질문에 답변한지 한 1시간 정도 지났으려나? 강다니엘한테 이런 카톡이 오는 것이다.
(사진)
이거 너무 내 저격이다 ##ㅇㅇ아
나 좋아하는 거 티내지 말랬잖아
내 에스크에 있는 이상형 질문을 캡쳐해온 사진과 함께 저렇게 보내길래 사실 그때 다니엘에게 마음이 조금은 있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라는거야 진짜
왜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아 내 에스크도 염탐하냐? ;
드립 VS 드립 으로 답장이 올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다니엘에게서는 날 너무 헷갈리게 하는 답변이 와버렸다.
(사진)
이건 네 저격인데
내 저격이라며 함께 보내온 사진은 강다니엘의 에스크 속 이상형을 묻는 질문이었고, 거기에 강다니엘은 [조잘조잘 말 많이하고 나보다 키 작고 귀여운 애] 라고 답변했다.
훅 들어온 고백 아닌 고백에 놀라서 난 드립으로 맞받아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짜식 이거 완전 선수다,
그 카톡이 있고 다음 날부터 강다니엘은 뭔가 날 좀 다르게 대했다. 자리에 앉아서 소설을 읽고 있으면 옆자리에 슬금 와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지를 않나 부담스럽게시리;;;
원체 얼굴이 잘 빨개지는 편이라 부담스러워서, 정말 레알 단지 꿀단지 훈장님의 꿀단지 부담스러운 마음에 얼굴을 붉히면 얼굴이 빨개졌다며 날 놀리곤 했고
화장실을 갔다가 교실로 돌아오는 길 복도를 걷고 있다가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며 옆에를 무심코보면 인기척도 없이 서 있다가 내가 놀라고 나면 또 허허, 웃다가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고서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교실에 가질 않나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톰과 제리 일상의 반복에 자꾸만 내 감정이 헷갈리는 거다. 그래서 아 오늘은 진짜 말해야지 하고 학교에 간 날 강다니엘을 붙잡고 복도로 나와서 정색빨고 딱 말했다.
' 야 너 나 좋아하냐? 아니면서 왜 자ㄲ.. '
" 헐. 들켰다 "
' ..뭐? '
" 나 너 좋아하는 거 맞는데?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르냐- 그렇게 안봤는데 "
" 어? 너 지금 얼굴 빨개졌다 "
' 아니 좀, 장난 아니고 진지하게 얘기 좀 들어보라고 '
" 나 지금 진지한거야 "
' 너 자꾸 장난처럼 그렇게 얘기할래? 네가 자꾸 그렇게 헷갈리게 하니까 나도 너 좋아하는 것 같고 그러잖아! '
" 그럼 그런 것 같은 거 말고 그런거 하면 안되나? 너랑 나랑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런거 하면 안되나? 하핳 "
' .. 뭔 소리야 얘가 또..! '
공주 대접 제대로 해줄테니까 내가 남자친구 하면 안되겠냐고. 라는 강다니엘의 말을 끝으로 무슨 마음이었는지 왜 때문이었는지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아 주책이야 진짜..
곧 주르륵이 아닌 오열을 하는 나에 강다니엘은 어어..! 울면 안되는데? 울지 마라 라며 당황했는지 사투리를 남발했다.
뭐 덕분에 다니엘 사투리도 들어보고 나쁘지는 않네.
ASK
남자친구가 어떻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익명
공주라고 불러주면 진짜 설레서 미칠 것 같아.
##ㅇ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