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박우진이 나 좋아한대 ++
박우진과 내가 사귄 날은 6월이 다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안그래도 시험기간인 탓에 예민한 애들이 나와 박우진이 사귄다는 이야기가 떠돌자 난리가 났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여전히 서로의 옆자리였고 하교도 같이 했다. 아, 매일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긴 했다.
"김여주. 니 보충 할 거가?"
"아니. 너도 어차피 안 할 거지?"
"어. 내 다시 학원 다니기로 했다."
"진짜?"
"어. 어제 결정 됐다."
박우진과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선 박우진은 춤을 굉장히 잘 췄고 3개월 전까지만 해도 댄스학원을 다녔는데 잠시 무릎이 안좋아져서 한동안 다니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박우진은 무용과로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
"나도 방학 때만 단기 학원 다니기로 했어."
"니 힘든 거 아니가."
"괜찮아. 아, 내가 다닐 학원 너 다녔던 학원 근처던데."
"진짜? 아싸."
우리는 같은 동네, 같은 동네 학원이라는 것에 행복해했다.
1학기 기말고사는 꽤 중요한 시험이었다. 쉬는 시간에 더이상 자질 못하고 공부에 전념했다. 박우진은 내 옆에서 떠나질 않았고 그냥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거나 댄스 영상을 보았다. 내가 옆에서 공부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친구들과 놀러가진 않았다.
"여주야. 인나라 야자 끝났다."
"우응.."
야자가 끝나기 20분 전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결국 책상에 엎드렸다. 야자가 끝나면 옆에 있는 박우진이 알아서 나를 깨워서 데리고 가겠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깐 졸았더니 박우진이 야자 끝났다며 나를 깨웠다.
"니 피곤해보이길래 안깨웠다."
"잘했어..너무 졸렸어 아까."
"이제 잠 좀 깼나."
"응..집 가자."
"손."
이제는 박우진이 건네는 투박한 손을 자연스럽게 잡는다. 가방을 메고 나면 박우진이 자신의 손을 뻗고, 그 손을 잡으면 깍지를 껴온다. 그리고 우린 둘 밖에 없는 세상을 걷는 것 마냥 교실 밖으로 나와 집으로 걸어갔다.
지긋지긋한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시작 됐다. 왜 하는 지 모를 의미없는 방학식을 마치고 박우진과 놀기로 했다. 아직 우리에겐 데이트라는 말이 부끄러워 매일 '논다'라고만 표현했다. 하교를 하고 우리는 번화가로 가기 위해 나란히 버스 정류장에 섰다. 그리고 내가 선물해준 휴대용 선풍기를 나란히 사용하고 있었다.
"여주야. 내 염색 할라고."
"염색? 무슨 색으로?"
"몰라. 그건 안정했다."
"왜 갑자기?"
"아..이번에 내 대회 나가야하는데..눈에 좀 튈라고.."
염색하겠다는 박우진의 말에 염색을 해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박우진을 마주보고 손을 뻗어 복슬복슬한 박우진의 머릿결을 만졌다. 갈색, 조금 연한 갈색을 하면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나도 염색이나 한 번 해볼까.
"박우진."
"어."
"나도 염색 할까?"
"니도?"
"너 연한 갈색하고 나는 좀 진한 갈색하고. 응?"
"니 학교가면 혼나지 않겠나. 내는 그렇다 처도."
내가 진한 갈색으로 염색을 한다면 분명 선생님들이 한 마디 하실 것 같지만 고등학생 때 한 번은 염색을 꼭 해보고 싶었다. 혼나는게 대수인가. 무작정 하고 싶다는 말에 결국 박우진이 오늘 미용실에 가자고 한다.
나와 사귀게 된 이후로 박우진은 담배는 물론 술 이야기도 입에 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에서 공부하는 내 옆에 앉아 잠을 자고 있거나 나와 함께 매점에 가곤 했다. 술 마시자며 부르는 친구들이 있어도 정신차려라 새끼들아. 라고 말하며 일체 나가지 않았다. 이런 박우진의 변화에 조금 뿌듯했다.
"너 방학인데 친구들이 놀자고 안 해?"
"하긴 하지."
"친구들이랑 안 놀아?"
"됐다. 걔들보다 니랑 노는게 훨 재밌다."
"나 노잼인데."
"나는 니 얼굴만 봐도 기분 좋다."
마침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나란히 버스에 앉아 창 밖을 구경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너무 더워 시원한게 먹고싶다는 내 말에 바로 빙수가게로 들어갔다. 이렇게 더운데 진짜 한 여름에는 어떻게 살지 걱정이다.
"어? 박우진?"
"..."
박우진과 마주앉아 조잘조잘 거리며 빙수를 열심히 먹고있는데 처음보는 교복을 입은 여자애가 박우진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화장기가 없는 내 얼굴에 비해 화장이 진한 얼굴이었다.
"야 너 다시 학원 다온다며? 왜 진작 말 안했냐?"
"내도 어제 쌤한테 말씀 드린거다. 니 갈 길 가라."
"여기는 친구?"
"아닌데."
"여자친구야?"
"어. 그니까 좀 가라."
"와. 내가 따라다닐 땐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뭐라네. 빨리 좀 가라. 불편하다."
"아 알았어. 갈게. 나중에 학원에서 봐."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박우진의 학원 친구인듯 했다. 얼굴도 예쁘던데 박우진의 학원에는 저런 애들이 널렸나보다. 박우진이 학원에 갔다가 나보다 훨씬 예쁜애들 보고 반하면 어떡하지. 그럴 애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괜히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따라다닐 땐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가 너무 거슬렸다.
"..너 인기 많지."
"아니다. 인기는 무슨."
"나 다 알아. 너 고백도 많이 받아봤잖아."
나도 인정한다. 박우진은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편에 속했다. 아무리 양아치라도 잘생긴 건 다 알아보는지 어디서 듣기로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고백을 받는다고 들었다. 물론 그 고백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럼 뭐하는데. 나는 니 고백밖에 기억 안난다."
"..뭐야.."
"니 또 얼굴 빨개진다."
박우진이 사투리를 써서 그런지 무심코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심장에 콕 박힌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숙이면 박우진이 손을 뻗어 내 고개를 들어올린다. 눈이 마주치면 속 없이 웃어보이고만다.
미용실에서 빠져나오며 거울 속으로 한 번 더 본 내 모습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갈색이지만 이미지가 좀 변한 것 같았다. 반면에 나보다 밝은 박우진의 머리를 보면 더 낯설었다. 이게 박우진이 맞나 싶어서 머리칼을 쓸어보기도 하고 괜히 한가닥 뽑아봤다가 혼나기도 했다.
"나 좀 이상한 거 같아."
"왜? 뭐가 이상한데."
"나 아닌 거 같아. 나 괜찮아?"
"..예쁘다."
"..."
"검은 머리도 예쁘고 이 머리도 예쁘다."
"..뻥."
"진짜다. 내는 니한테 거짓말 안 한다니까."
늦었다. 이제 집 가자. 박우진이 내 손을 이끌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오늘 방학식 마치고 박우진과 버스를 타고 여길 와서 빙수도 먹고 밥도 먹고 이것 저것 구경하다가 염색까지하고 다시 정류장으로 왔다. 사소한 건데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피곤해?"
"..아니라곤 못하겠다."
늘 박우진의 어깨에 기대기만 했는데 이번엔 내가 반대로 박우진의 고개를 내 어깨에 얹었다. 창문을 열러둔 탓에 밤 공기가 창문으로 흘러들었다. 그 공기가 박우진을 거쳐 나에게 오면 염색약 냄새가 난다. 이 마저도 좋으면 어떡하지 난.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우리의 일상은 항상 컨트롤C+V의 반복이었다. 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학원에 가서 수업을 받은 후, 학원에 있는 자습실에서 공부를 하다 저녁은 늘 박우진과 먹었고 다시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가 11시나 12시 사이에 박우진과 항상 같이 걸어갔다. 가끔 공부를 하는 게 따분하다 느껴지면 박우진에게 연락을 했고 박우진은 연습을 하다가도 나를 위해 우리 학원 앞까지 찾아와주었다.
"아. 잠시만. 내 오늘 땀 냄새 많이 난다."
"매일 땀 냄새 난대. 근데 너한테 별로 안나."
"별로 안나도 나긴 난다이가."
"싫어. 그래도 너 옆에 있을래."
"..내가 매일 진다 니한테."
오늘도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는 나를 위해 박우진이 학원 앞까지 찾아와주었다. 학원 근처 벤치에 앉아서 얘기나 좀 나눌랬더니 땀 냄새 난다며 멀리 떨어져 앉으려는 것이다. 연습이 고된 박우진에게서는 땀 냄새가 나긴 했어도 코를 틀어막을 정도는 아니었다. 땀 냄새와 섬유탈취제 냄새가 적절하게 섞여 기분 나쁜 냄새가 아니었다. 그래도 늘 한 걸음 떨어져있다가 내가 다시 징징 거리면 내 옆으로 와주었다.
"나 내일 학교 가야해. 아까 담임선생님이 내일 상담하자고 연락 왔었어."
"내도 연락 왔었는데. 내일 같이 가면 되겠네."
"그래. 근데 수능 101일 전 날에 상담하는 건 좀 우울한 거 같아."
"우울하다는 소리 하지 말랬제."
"아..미안."
"미안하다고도 하지 말라니까."
"아 알았어."
박우진은 내 입에서 안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을 싫어했다. 예를 들면 우울하다, 안 좋아, 미안 등. 내가 이런 말을 하면 괜히 자신이 더 속상해진다고 했다. 휴대폰 잠금을 켜 디데이를 봤다. 이제 들어가자. 응. D-102. 수능이 102일 남은 시점이 야속했다. 얼른 끝나고 박우진이랑 편하게 놀고 싶다.
"여주야. 너 수학 등급 안 올리면 힘든 거 알지? 최저 맞춰야지."
"네."
"다른 건 잘 하는데, 혹시 모르는게 수능이니까 수학 좀 만 더 열심히 올려."
"네."
"너 이러다가 1지망 못…"
아, 듣고 싶지 않다. 나도 다 알고 있는 얘기고 다 나를 위한 얘기인 걸 알지만 들을 때마다 심적으로 너무 힘이 든다. 박우진은 나보다 먼저 상담이 끝난 후라 교실에서 기다리겠다 했다. 선생님의 말씀을 다 듣고 교무실에서 빠져나왔다. 몸에 힘이 주욱 빠졌다.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별로 쓴소리를 들은 것도 아닌데 왜이렇게 속이 상하는지 모르겠다. 느릿느릿하게 교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교실의 문을 열면, 박우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니 눈이 왜이리 빨간데."
"속이, 너무 상해서."
"니 울었나."
"..."
내가 미처 닫지 못한 교실의 문을 닫고는 박우진이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내 머리를 감싸안아 천천히 토닥거렸다. 괜찮다. 울지마라. 내 속 아프다. 서투른 손길로 나를 달랜다. 내 머리를 끌어안은 박우진에게 내 팔을 뻗어 허리를 살짝 잡았다. 내가 박우진의 허리를 살짝 잡으면, 박우진은 자신의 손으로 나로 하여금 허리를 단단히 잡게 만든다. 어느정도 내 울음이 진정이되고 천천히 박우진의 품에서 벗어났다.
"좀 괜찮나."
"응.."
"이제 가자. 학원 갈래, 아님 집 갈래?"
"..바다 가자."
"어?"
"우리 내일 바다가자."
"..내일이면 니 수능 100일 남은 건데..?"
"100일 기념으로 가자. 응?"
"..알았다. 가자."
나의 터무니 없는 소리에도, 내가 하자고 하면 뭐든지 다 해주는 너는 아무래도 사랑인가보다.
* 안녕하세요! 밤구름입니당 * |
* 생각보다 너무 반응이 좋아서 정말 깜짝 놀랬어요 ㅠㅠ! 많은 분들이 나이 추천을 해주셨는데 제가 이 편을 쓰기 전까지는 19살이 많았어서 우진이와 여주를 19살로 설정했답니다! 나중에 18살 우진이와 여주는 spin off로 꼭 찾아올게용!
* 그리고 우진이 사투리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던데..ㅎㅎ 우진이 사투리는 제 말투예요..제가 경상도사람이라서..ㅎㅎ
* 감사하게도 암호닉을 신청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ㅠㅠ 부족한 제 글이지만 암호닉은 언제나 신청 받아요! 감사드립니다 정말!
내일은 오전이 아닌 오후 늦게 찾아뵐게용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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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코뭉뭉 님 / 무밍 님 / 참깨비 님
늘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