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누구든 믿으면 안되는거야.
그게 설령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라도,
혹은 너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신뢰'라는 것을 쌓으면 안되는거야.
탐미 A
(앞부분만 '슬리데린을 위하여'를 살짝 가져왔습니다)
해리포터 세계관
악의 원천이었던 '그', 볼드모트가 세상에 사라진 지 어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평화가 찾아온 듯 했지만 늘 악의 뿌리는 어디에선가 숨어있는 법, 다시 그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는 악의 행태는 사람들을 좀먹기 시작했다. 알게 모르게 입소문을 타고 흘러가는 '그'의 후계자(볼드모트를 입에 담지 않는 것처럼 그의 후계자 또한 이름을 직접 올리지 않아야만 했다. 입에 그 이름을 담는 순간 저주를 옮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슬리데린 가문 안에서도 말포이 조상을 이어 악의 뿌리를 흡수하려는 세력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다시 원상태로 마법계는 혼란에 빠지기 직전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검은 숲에서 발견된 싸늘한 해리포터 가문의 어린아이 시체, 그리고 옆에 선혈로 적힌 알 수 없는 문구. 그 문구가 뱀의 언어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우리는 그제서야 평화따위는 마법계든 인간계든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차라리 '그'가 존재했을 때는 그를 사살하면 평화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아차리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이 힘을 합했겠지만 누가 그들을 조종하는지 그리고 원천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그저 벙어리처럼 이 피비린내나는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현실이었다. 해리포터, 그 위대한 사람처럼 이 마법계를 구제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순간 완전히 마법계를 저주한 하늘의 장난인건지 '그'의 후계자가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슬리데린 가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던 저주받은 수업이 존재하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한낱 가십거리, 루머에 불과했던 '그'의 후계자가 그 베일을 벗은 순간이었다. 수업현장에서 발견된 것은 살인현장이라고 봐도 무방한 저주로 인해 몸부림치는 짐승들 그리고 여기저기 튀어있는 선혈들이었다. 그 수업을 받고 있던 슬리데린 가문의 유망주이자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어린아이가 자신을 제지하는 마법계 경찰들을 바라봤을 때 그 눈빛은 제 나이 또래와 전혀 달랐다고 했다. 싸늘할 정도로 차가운 눈동자 안에는 두려움따위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비밀리에 쌓인 '그'의 후계자, 사실일까?' 라는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신문에 실린 그의 사진은 마치 죽음을 지배하는 신처럼 감정도, 표정도 없었다. 실제로 본 것도 아닌데 눈을 마주한 순간 등골이 싸늘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즉시 마법계에서 그들을 벌하라는 목소리가 컸지만 이미 마법계 절반을 장악하고 있는 슬리데린 가문의 실세에 그저 조용히 묻혀가게 되었다. 아직 그가 명확하게 후계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몇 년 후 호그와트 입학 첫날 드러낸 그의 모습은 완전히 악의 형태에 도취되어 있었다. 눈빛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한 눈동자를 지닌 그의 모습에 모두 겁을 먹게 되었고 그 학생들 중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후계자, 그 꼬리표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연설을 하기 위해 단상 위에 올랐던 스네이프 교수님의 시선이 잠시 그에게 꽂히게 되었는데 그것을 통해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또다시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섭고 악독하며 또 '잔인한' 사람이었다.
"야야 진짜 쟤 맞아?"
"맞다니깐 저 추종자들 좀 봐라"
"복도에 자기들 전세냈대?"
"재수없는 슬리데린"
김태형과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곳으로 따라 시선을 옮긴 곳에는 '그'의 후계자라 칭송 혹은 비난을 받고 있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하얀 피부와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당당히 걸치고 있는 초록빛 목도리와 망토는 그가 슬리데린에 속해있다는 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었다. 솔직히 나는 김태형이나 슬리데린을 극도로 혐오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얌전히 지내고 싶은 성격이라 대충 대꾸한 뒤 소심하게 시선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입학한 후 자세히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워낙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 사이는 앙숙과 비슷해 주위에서는 눈 깔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도 그 유명인이 궁금했을 뿐이었다.
아..근데 멀리서 봐도 좀 무서워보이기도 하고. 눈빛부터 누구 하나 죽일 기세라 오래 보지는 못하고 바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주위에 득실득실 '추종들'이랍시고 성격이 고약하기로 유명한 슬리데린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도 별로였다. 건들면 뒤진다 이 말인가. 저들끼리 복도에서 눈싸움을 하는 추종자들과 다르게 홀로 고고하게 앞만 보고 걷는 후계자라는 아이는 피의 왕자처럼 고결해보였다. 하지만 생긴건 귀공자 주제에 저 얼굴로 생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을 생각을 하니 소름이 다 돋았다. 역시 슬리데린... 대부분이 생긴건 깔끔하게 생겨가지고 살인마보다 더 잔인한 종족들이었다. 별로 얽히고 싶지 않았다.
"아 쟤네 한 번 골탕을 먹여야 해 진짜로"
"그러니깐. 완전 지네들 세상인 줄 알고 완전 깝친다니깐?"
"저 추종들이랍시고 전정국 감싸서 우월한 행세 하는거 역겨워"
근데 얘네들은 아닌가보다.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전에 퀴디치 싸움 때 한 번 비겁한 슬리데린 아이에게 주술에 걸려 빗자루에 넘어질 뻔한 김태형은 특히 슬리데린 아이들을 싫어하기보다는 그 이상으로 혐오했다. 언제 한 번 싸움이 날까 싶을 정도로 슬리데린 아이들에게 시비를 털고 다니는데 그럴 때마다 가슴 졸이는건 내 쪽이었다. 그런데 김태형도 마법실력이 그렇게 뒤처지는 쪽이 아니라 슬리데린 아이들도 함부로 덤비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깐 누구 하나 큰 일을 터뜨리지 않은 이상 서로 눈치보며 기싸움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아니 그냥 서로 싸우고 싶으면 싸우면 될 것을... 굳이 왜 저렇게 서로 노려보며 기싸움만 하는지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김태형은 항상 슬리데린 아이들에게 한 방을 먹이고싶어해 안달난 상태라 요즘은 독약초 공부까지 하고 있었다. 그 책, 금서로 알고 있는데 ... 더 캐내면 내가 더 다칠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는 상태였지 김태형도 보통은 아니였다. 만약 쟤 심성이 곱지 않거나 집안이 조금이라도 악에 물들여 있었으면 슬리데린에 바로 합류되어도 할 말 없는 아이였다.
*
"뭐?"
내가 지금 잘못 들은건가 싶었다. 김태형과 같이 다니기는 하지만 막 이렇게 둘이서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 왜 나를 불러냈나 싶었는데, 그리핀도르 아이들끼리 아는 은밀한 공간에서 나를 불러낸 김태형이 건넨 물건을 가히 충격적이기도 해 나도 모르게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런 나에게 조용히 하라는듯 제스처를 취한 김태형이 한숨을 한 번 쉬었다. 아니 한숨을 왜 너가 쉬는데? 당황하다 못해 어이가 없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깐, 왜 김태형 손에 악취나는 폴리주스가 들려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 말씀이었다. 그리고 왜 쟤 뒤에 슬리데린 목도리를 한 아이가 창백하게 누워있는지 차마 알아내고 싶지 않았다. 도망갈 곳도 없긴 한데 우선 김태형의 이 무례한 짓은 지금 도를 넘었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내 마음과 생각을 읽은건지 다급하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와 폴리주스를 내민 김태형이 입을 열었다.
"이거 먹고 슬리데린 숙소 안에 들어가서.."
"야 미쳤냐?"
'슬리데린' 그 단어가 언급된 순간, 난 곧 김태형 뒤에 눕혀져 있는 아이가 슬리데린에서 그나마 약한 아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미친놈이 그렇다고 사람을 기절시켜? 기함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내 앞에 내밀어진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를 풍기는 진회색 액체를 바라보았다. 냄새를 맡는데도 저절로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우욱.. 입을 잠시 막고 진지한 눈빛으로 나에게 권하는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 올곧고 정직해서 어떻게 거절을 해야하는지 방법조차 까먹은 기분이었다.
"이거 먹고..뭐하라고?"
"그냥 주위에서 전정국이 뭐하는 지만 알아봐"
"...하"
"미친 짓인거 나도 아는데,"
"알면 하지 말아야지"
"..."
"김태형,"
"이렇게라도 해야 정보를 조금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발..근데 또 저렇게 진지하고 곧은 김태형의 눈빛을 보자니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얼떨결에 그 액체를 받아들였다. 내 개인적은 생각인데 김태형은 아마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무슨 가문 대대로 슬리데린과 무슨 격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은 이상 이렇게 다른 아이들보다 부득부득 슬리데린 애들 족치려고 난리를 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마시지. 부글부글 기포가 올라오는걸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재촉하는 듯 나에게 눈빛을 보내는 김태형을 최대한 노려보며 그 역겨운걸 한 입에 집어삼켰다. 명치 끝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구역질에 겨우 입을 막고 서서히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참았다.
*
전정국을 바라보기'만'하고 특별한 사항이 있으면 곧바로 알려주는 것이 나의 임무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손쉽게 할 수 있다 생각하고 그저 슬리데린 아이들 주변에서 책을 읽는 척, 아이들 중심에서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있는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그'의 후계자라 그런지 그는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아도 이 분위기를 아니 이 장소 자체를 왕궁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말을 걸고 싶어 안달난 여학생들, 그를 추종하기에 바쁜 남학생들 그 사이에 내가 낄 틈따위는 없었다. 그저 멀찍이 떨어져 폴리주스 약효과가 돌 때까지만 그와 그 추종자들의 대화를 조금 엿들을 뿐. 솔직히 슬리데린 숙소에 들어온 적은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을 한건지 책에 나와있는 글자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뻔뻔하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을 해야하는데....잘 되지 않아 입술을 깨물었다.
"야, 너 왜 여기있냐?"
"어..?"
그리고 곧 나의 어깨를 치며 삐딱하게 물어오는 한 아이에 그대로 두꺼운 책을 덮고 자리를 옮겼다. 마치 나를 이상한 아이보듯 쳐다보는 슬리데린 아이들에게 나 어떻게 행동해야 정상적으로 비추어지냐고 물어보고싶을 정도였다. 원래 침실에만 있었던건가..? 하지만 그런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콧방귀만 뀐 채 등을 보이며 전정국에게 다가가는 아이들에 안도의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얘 누군지는 모르지만... 꽤 이곳에서 괴롭힘당하는 아인가보다. 괜히 내가 다 속상하네. 김태형은 왜 이런 애를 기절시켜가지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다시 책을 펼치며 그들의 대화에 관심없는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진짜 슬리데린 숙소에 있던 적은 처음이라 긴장되지 않았다고 하면 모두 다 개구라였다.
"이번 방학 때 훈련하러 다시 돌아갈거야?"
"..."
"아니면 여기 남아서 남은 애들이랑 같이..."
"잠시만"
그런데 조금 힘든 점이 자꾸 바라볼 때마다 전정국이랑 눈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슬리데린 여학생으로 변해있었으면 전정국이 얘한테 관심이 있구나 생각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자꾸 남학생으로 변한 나에게 눈빛을 보내니 들킨건가 싶어 심장이 저절로 쿵쿵 울려댔다. 근데 방금 영양가 있던 대화가 조금 나왔던 것 같은데..굳이 그것을 무자비하게 끊어버린 전정국에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한 번 불안감을 느끼고 가니 그 감정이 점점 산으로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너 여기 와봐"
"...?"
그리고 곧 다시 마주한 눈동자에 피할 찰나, 나에게 손짓을 하는 전정국에 그 주위에 있던 추종자들은 물론 아이들, 그리고 나까지 몸이 굳어졌다. 왜.. 나를? 그것도 한낱 슬리데린에서 가장 약한 아이에게. 아마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걸 보면 이 아이는 따돌림의 대상일 것이 분명했다. 폴리주스를 먹고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전정국이 나를 부른다면 이건 좀 예외였다. 뭐야, 얘 쟤한테 괴롭힘 당하는 인물이었어? 김태형 시발새끼 그런 말 없었잖아. 마른침을 삼킨 채 조금씩 소파에 앉아 나른하게 앉아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전정국에게 다가가갔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 비스무리한 감정들이 나를 좀먹었다. 그리고 곧 나의 멱살을 잡아 얼굴을 가까이 한 전정국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슬리데린 특유의 날카로운 체향이 나의 코끝에 스며들자 손이 저절로 떨렸다. 그런 나의 반응을 즐기는건지 짧은 웃음 한 번 내뱉은 전정국이 살짝 큰소리로 귓가에 나즈막히 속삭였다.
"내가 연회장에,"
"..."
"책을 두고 온 것 같은데, 가져올 수 있어?"
...이게 신종 마법계의 셔틀인가. 괜히 긴장했다. 그리고 곧 주위에서 들려오는 큰 웃음소리에 괜히 내가 다 어깨를 움츠리게 된 것 같았다. 괴롭힘받는 아이 맞나봐, 살짝 동정심이 드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정국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법처럼 손끝에 살짝 느껴지는 고통에 동공을 크게 확장시킬 수밖에 없었다. 폴리주스 약효가 이제 다 된다는 뜻. 김태형이나 나나 상급 마법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폴리주스 약효시간을 길게 늘릴 수가 없었다. 무언가 소름이 돋아 턱을 괸 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전정국의 시선을 피한 채 빠르게 뒤를 돌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했다.
"...미쳤네"
그리고 곧 거짓말같게도 슬리데른 방을 지나 그리핀도르 숙소 쪽으로 갔을 때 욱신거리는 손끝에서부터 다시 내 피부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하는 몸상태에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들킨건가 싶었다, 아니 이건 들킨게 분명했다. 확실히 지금 머리색이 돌아오고 있는걸 보면 폴리주스 약효가 다 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그 기막힌 타이밍에 나를 내보낸 전정국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 아뿔싸. 발끝에서부터 끼쳐올라오는 한기에 몸이 저절로 떨렸다. 불안했다. 알아차렸나보네 시발. 하긴 '그'의 후계자나 되는 사람이 폴리주스로 둔갑한 사람 하나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김태형이 병신인건지 아니면 그 거지같은 제안을 받아들인 내가 병신인건지 분간도 하기 어려웠다. 껌껌한 어둠만이 숨쉬는 아무도 없는 학교 밖을 돌아다니자니 조금 한기가 도는 것 같기도 하고 빨리 돌아가 김태형의 멱살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망토를 다시 고쳐매고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여기서 뭐해?"
"..."
"연회장은 저쪽이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거짓말 하지 않고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릴 뻔했다. 손으로 입을 막고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모습, 머리카락은 그 아이의 본연 것인 금발로, 얼굴은 나의 모습이 된 채 전정국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파악하지도 못한 채 전정국을 마주하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여졌다.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식은땀이 등 뒤에 나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상태를 위아래로 훑어본 전정국이 입꼬리를 기이하게 올리며 나를 다시 바라봤다.
"너,"
좆됐다
"그리핀도르구나?"
씨발. 그리핀도르에게 체향도 나나, 얘 어떻게 알았지? 불안한 눈빛으로 우선 벗어나기 위해 지팡이를 든 순간, 강력한 힘과 함께 손목에 큰 통증이 몰려왔다. 작게 주문을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가보다. 덜덜 떨리는 손을 겨우 다잡고 바닥에 힘없이 굴러떨어진 지팡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먹이를 발견한 짐승처럼 천천히 망토를 펄럭이며 나에게 다가오는 전정국도. 등에 벽이 닿는 순간 저절로 식은땀이 났다. 코끝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한 전정국에게서 위험한 향기가 났다.
"있잖아, 너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난 다 알 수 있어"
"...오지 마"
"나를 한 번 잡아먹으려고 아등바등하는 것들"
"..."
"하찮게 무슨 계략을 꾸미고, 나에게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뻔히 보인다고"
이게 무슨 추한 꼴인지. 손과 어깨를 떨며 눈빛만큼은 살인마로 빙의한 채 전정국을 죽어라 노려보는 것밖에 난 할 수 없었다. 그런 나의 꼴을 내려다보더니 마치 웃긴 것을 본 듯 헛웃음을 지은 전정국이 곧 이제 완전히 나의 원래 머리색인 갈색으로 돌아온 머리카락을 손에 쥐었다. 강한 악력이 실려있는 듯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어색한 신음소리를 내게 되었다. 나 이제 죽는건가, 내일 즈음 김태형은 아마 땅을 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친구 한 명이 이렇게 죽게 되니깐.
"제 발로 기어들어온 먹이는"
"...!"
"놓치지 않는게"
"..."
"미덕이지"
망토에서 지팡이를 꺼낸 채 꽤 섬뜩한 말과 함께 웃는 전정국의 미소는 악마 그 자체였다. 지금 떨리는 손이 주문 때문인지 아니면.. 두려움 때문인지 이제는 헷갈릴 정도였다.
*
컴백 기념으로 올려봅니다! !
항상 늦어서 죄송함니다 이제 하녀도 올릴게요..(쭈굴
한 번 연재하고싶은 글인데 이건 다른 공간에서 해보려고요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