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극과 S극의 연애방식
by. 달콤한 망개
"근데 누나, 웬일로 윤기 선배랑 점심 같이 안 먹어요?"
민윤기랑 싸운 덕분에 계획에도 없던 박지민과 얼떨결에 점심을 함께하게 됐다. 배는 고프고 밥은 먹어야겠고 그냥 혼자 먹어야겠다 싶어서 급식실로 내려갔던 건데 용케도 나를 찾아낸 박지민이 같이 밥을 먹자며 맞은편에 앉길래 건성으로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이던 찰나였다. 항상 점심은 민윤기랑 둘이 먹는다는 걸 알고 있는 터라 오늘따라 안 보이는 민윤기의 행방이 궁금한 모양이였다.
"아, 걔 얘기는 꺼내지도 마. 밥맛 떨어지니까."
"왜요, 선배랑 싸웠어요?"
"...걔랑 나랑 싸운 게 어디 한 두번이냐."
"하긴 그건 그렇죠. 전 처음에 윤기 선배랑 누나, 친구도 아닌 줄 알았잖아요."
"....."
"눈만 마주치면 하도 싸워대서. 둘이 14년 지기 친구라는 거 알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데요."
쫑알쫑알 민윤기와 내 첫인상에 대해 이야기하던 박지민은 내 살벌한 눈빛에 눈치를 보더니 이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밥만 먹기 시작했다. 깨작깨작 의미 없는 젓가락질로 애꿎은 콩만 괴롭히고 있다 문득 민윤기와 내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의도치 않게 숨겨졌다는 말이 더 맞겠다. 아마 민윤기와 연애한다 밝혔어도 웬만큼 민윤기와 나를 봐 온 사람이라면 끔찍한 농담 하지 말라고 대수롭지 않게 웃어 넘겼을 게 분명했다. 하다못해 나는 우리 부모님과 녀석의 부모님도 그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워낙에 치고 박고 싸워댔어야지. 나도 가끔씩은 내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건지 싸움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니. 곤두박질치는 기분에 한숨만 푹 내쉬고 아무 걱정 없는 얼굴로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지민을 바라보았다.
"지민아."
"응? 왜요 누나."
"너는 연애 안 해?"
"...연애요?"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지민은 글쎄요- 라며 말을 흐렸다. 연애, 뭐 하면 좋겠지만 지금은 딱히 할 마음 없는데요. 이미 좋아하고 있는 사람 있어서요.
"뭐야, 너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
"네, 꽤 됐어요. 한 일 년 반 정도?"
"그 정도면 되게 오래 좋아한 거 아니야? 우리 학교?"
"네."
"왜 고백 안 해? 아, 내가 너무 내 일 아니라고 쉽게 말하는 건가?"
"아니요, 그건 아닌데..."
"여자친구? 무슨 여자친구."
"....."
"자고 있던 사이에 나도 모르는 여자친구가 생긴 건 아닐테고."
"....."
"내가 아는 내 여자친구는 성격 더러운 김여주 외엔 없는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곤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톡톡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린다. 한 마디 뭐라 하려다가 귀찮기도 하고 뭔 말을 하고 싶길래 저러나 싶어서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새까만 머리카락이 이마를 덮다 못해 눈썹 밑으로 몇 가닥 내려와 있는게 눈에 띈다. 습관적으로 쓸어 올려 주려 손을 들었다 허공에서 마주친 두 눈동자에 어색하게 내렸다. 피식- 민윤기가 바람빠진 소리를 내며 웃는다.
"야, 김여주."
"...왜."
"우리 헤어진 거지?"
"어."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래. 내가 언제 한 입으로 두말 했다고. 여전히 태연한 기색인 말간 얼굴을 올려다보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알겠다는 듯 민윤기가 어깨를 으쓱 들어 올렸다.
"그럼, 김여주."
"....."
"남자친구 민윤기가 아니라 친구 민윤기로서 좀 묻자."
"누구냐."
"뭐가."
"귀엽고 애교 많고 착한 애가 이상형이라고 너한테 말한 새끼가 누구냐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너한테 그런 스타일이 이상형이라고 말한 기억이 없거든. 내가 보통 내가 한 말들은 다 기억하는 편인데 머리를 암만 굴려봐도 김여주 너한테 그런 소리 한 기억이 없단 말이지?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 좀 해봐라. 귀엽고 착하고 애교 많은 애가 이상형인데 미쳤다고 내가 너랑 사귀겠냐?
"하여간 양심이 없어요, 양심이."
"....."
"본인 입으로 본인이 귀엽고 애교 많고 착하다는 소리 하는 거랑 대체 뭐가 달라."
네가 생각해도 좀 그렇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혀를 쯧쯧 걷어차는 민윤기에 다시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귀엽고 애교 많은 스타일 아닌 거 잘 알고 있는데 다시 한번 확인사살 시켜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너무 감사해서 저 얄미운 입술을 그대로 빨래집게로 집어버리고 싶다. 비꼴 때 나오는 민윤기 특유의 낮은 목소리가 듣기 거슬린다 싶을 때 쯤, 못마땅한 얼굴로 조목조목 내 말을 짚던 녀석이 일순간 표정을 굳힌다.
"아, 그래서 누구냐고."
또 뭐가 누가야. 도통 알 수 없는 말에 얼굴을 구기자 답답하다는 듯 저의 머리를 마구 헤집는다. 아 진짜 자존심 상한다고-. 볼멘소리로 뭐라 몇 마디 더 툴툴거리던 녀석이 신경질적인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이거 그냥 친구로서 묻는거다?"
"아 알겠다고."
"씨발 진짜, 남자친구로서 묻는 건 자존심 상한다고."
그거나 그거나. 그리고 남자친구가 아니라 전 남자친구라는 말이 맞는 건데. 굳이 정정해주진 않았다. 대체 뭔 말을 하려고 귀까지 빨개져서 저러는 건지, 내 눈을 슬쩍 피하더니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깐다.
"아 그니까... 너 나랑 사귀기 전에."
"....."
"김석진이랑 사겼었잖아. 한 일 년 정도?"
"응, 야 근데 너 내가 일 년 사귄 것 까지 기억하고 있냐?"
"...아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나도 기억 안 나는 걸 왜 기억하고 있대, 쓸데없이. 그래서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데?"
"걔가 그랬냐?"
"걔? 누구, 김석진?"
"어, 걔가 너 보고 자기 이상형은 귀엽고 애교 많고 착한 애라고 그랬냐?"
"...아니? 그런 말 한 적 없던 것 같,"
잠깐만, 민윤기 너 설마 지금.
"질투해?"
"....."
"아니 근데 질투할 게 뭐가 있냐. 그냥 내가 길 가다 누가 귀엽고 애교 많은 스타일 좋아한다 말한 거 들은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친구랑 이상형 이야기 하다 나온 말일 수도 있고."
"...몰라, 짜증나 김여주."
"진짜 넌 내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래서 김석진이 한 말을 네가 한 말이라고 내가 착각이라도 한 줄 알았냐?"
대답 없이 꿍한 표정을 보니 정확히 들어맞는 모양이었다. 지가 애도 아니고... 막말로 지랑 나랑 알고 지낸 시간이 14년인데. 중학교 때 민윤기한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당연히 기억나지만 막상 떠올려보면 자세히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사겼었는지도 기억 안 나고 이름이 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민윤기는 내 중학교 때 남자친구를 잘도 기억하고 있나 보다. 하튼 쓸데없는데서 기억력이 좋은 것도 문제지.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내 앞에 있는 민윤기고. 저도 제가 민망한지 얼굴은 벌게져서 계속 눈만 도륵도륵 굴린다.
"야."
"...왜."
"그럼 이제 할 말은 끝?"
"아니 하나 더 남았는데."
"뭔데, 빨리 말해. 너 아까처럼 쓸데없는 소리 할,"
"나랑 정반대인 여자."
"...뭐?"
"이게 내 이상형이라고."
"....."
"나랑 취향부터 취미까지 전부 다 안 맞는 사람. 어떻게 이렇게 안 맞을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로 모든 게 정반대인 사람. 그래서 같이하면 할수록 새로운 사람. 이게 내 이상형이라고."
"그니까 나랑 다시 사귀자고요, 바보야."
이건 친구 민윤기로서가 아니라 전 남자친구 민윤기로서 하는 말. 솔직히 오전부터 오후 내내 너랑 말 한 마디 못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길게 헤어져 있던 거 아니냐. 내가 볼 때 14년 통틀어서 가장 오래 헤어져 있었던 시간 같은데.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다시는 귀엽고 애교 많고 뭐 이딴 게 내 스타일이라는 말 꺼내지도 말아라. 원랜 별 생각 없었는데 네가 오늘 내 옆에 누구 붙여주는 바람에 완전 정 떨어졌으니까. 하긴 근데 또 모르겠다.
김여주가 귀엽고 애교 많은 건 뭐... 좀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워워- 너 방금 욕하려 그랬지? 아 정민아랑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하라고? 진짜 별 거 아닌데 그거... 그냥 담임이 네 노트 가지고 오라고 정민아한테 심부름 시켜서 걔가 네 노트 찾는다고 네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 때 딱 네가 온 거. 하도 못 찾길래 그냥 네 자리에 앉아서 찾으라 그랬지. 노트 하나 찾다가 다른 물건까지 잘못 건드릴까봐. 뭐, 정민아한테 좀 미안하다고? 됐고 네 남자친구한테나 좀 미안해해라. 푹 자고 일어났더니 뜬금없이 헤어지자고 하지를 않나.
그래서 싫냐니... 싫으면 다시 사귀자는 소리 하지도 않겠지. 김여주 좋아서 미칠 지경이다, 됐냐?
"7시간 만에 재결합한 기념으로 다시 남자친구 옆으로 자리 옮기는 건 어때."
싫음 뭐 내가 여자친구 옆으로 가고-.
+) 더 싸웠음 좋겠는데...ㅎㅎ 윤기가 너무 성격을 죽인 기분... 사실 둘 다 더 개차반인 성격을 원했는데 그랬다가는 욕 수위가 장난이 아닐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ㅋ 둘이 싸우는 거 보다 기 빨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나중에 스트레스 쌓일 때 한 번 가져오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 혹시 저한테 궁금하신게 있으시면 언제든 물어보셔요. ㅎㅅㅎ... 언제든 답할 준비가 되있는 여자... 아 그리고 암호닉은 혹시 필요하시다면 그냥 최근화에 [원하시는 암호닉] 이렇게 댓글 달아주세요. 그럼 이만 말 줄일게요. 모두들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