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세계관입니다. 원작을 모르셔도 상관 없으나 읽으신 분이 아마 더 이해하기 쉬우실 거에요.
단편 글로 가볍게 즐겨주세요.
그리핀도르의 미학 中
by. 달콤한 망개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동안 학교를 떠나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탓에 이브 날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곳곳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같이 연휴 동안 학교에 머물기로 한 이지은도 날이 저물자 본인 약혼자랑 데이트 좀 즐기고 오겠다며 기다렸다는 듯 나가 버렸다. 기숙사 통금 시간은 지켜서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저 말 뿐에 불과했던 게 분명하다. 고작 30분 남은 이 시간까지도 안 돌아오고 있는 걸 보면. 평소에는 별반 아무 생각 없었던 그 둘의 관계가 오늘따라 아주 조금은 부러운 것 같기도 했다. 때론 친구 같고 때론 가족 같은 애매하지만 분명 싫지는 않은 그런 관계가 연인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하나 더 있다는 거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건 그 나름대로 행복한 일임은 분명했다.
크리스마스라고 나름 집에서 보내온 선물들이 풀어지지 않은 채 침대 맡에 어지럽히 놓여 있었다. 분명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자정에 같이 풀어보기로 약속까지 했던 것 같은데 정작 그 당사자는 본인 약혼자와 알콩달콩 사랑을 속삭이기 정신없으니. 같이 기숙사를 쓰는 나머지 두 명은 지금쯤 본가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을 거다. 올해에는 기필코 본인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딱 달라붙는 미니 원피스를 입을 거라 다짐하던 민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했다. 발에 채이는 선물들을 조금은 심술궂은 마음으로 툭- 가볍게 찼다. 이럴 거면 그냥 본가에 내려갈 걸 그랬다. 어차피 들을 약혼 이야기 나중에 듣나 지금 듣나, 내가 일방적으로 싫어한다고 달라질 이야기가 아닌 마당에 어떻게든 시간 좀 끌어보겠다고 학교에 남아있는 거였으니까.
그냥 크리스마스고 뭐고 잠이나 일찍 잘까. 풀썩- 침대 위로 누워 멍하니 초록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무기력하게 두 눈만 깜박깜박 감았다 뜨는데 문득 아침 연회장에 나눴던 이지은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브 날이 끝나기까지 불과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오늘 고백한다 했던 것 같은데 고백은 잘했으려나.
시간을 보아하니 고백은 둘째 치고 이미 한 쌍의 다정한 연인이 되어있고도 남아 있을 것 같다. 아마 지금쯤이면 손이라도 잡고 교정이라도 거닐고 있지 않을까. 얼굴도 모르는 여자애와 손을 잡고 웃고 있을 박지민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질 않지만 아침에 연회장을 나서기 전까지 끈질기게 뒤를 쫓던 네 눈빛도 여전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너에게 관심 없는 이지은조차 혹시 박지민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며 물어올 정도였으니.
혼자 있는 건 이래서 문제다. 쓸데없는 생각만 꼬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불과 몇 시간 전과는 달리 확연히 가라앉은 기분에, 영문도 모른 채 죄 없는 이불만 꽉 껴안고 있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이 감정이 왠지 오늘따라 이대로 묻어 버리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막연히 드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한참을 끙끙대다 결국 침대 위에서 일어나 대충 옷매무새만 정리하고 방 밖으로 나왔다.
시원한 바람이나 좀 쐴까 하고 나왔더니 역시나 시원함과는 거리가 좀 있는 확실히 추운 겨울이다. 제법 날카로운 바람이 옷 틈새로 파고드는 느낌에 위에 걸치고 있던 숄더를 더 바짝 끌어당겼다. 목도리랑 장갑은 챙겨서 나올 걸 그랬나. 생각 이상으로 차가운 공기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렇게 추운데 이지은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랑 있으면 추위도 못 느끼나? 나와 있는지 얼마나 됐다고 좀 전까지 따뜻했던 두 손이 얼음장처럼 식어있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입김을 흘려보내며 빨리 한 바퀴만 돌고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걸음을 재촉하는데,
"루모스 솔라이안."
훅-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왔다.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여기서 뭐하는 거야."
게다가 그 얇은 옷차림으로 이 추운 날씨에 어딜 가겠다고- 못마땅한 어투에 녹아들어 있는 익숙한 음색에 그대로 온몸이 굳고 만다.
+) 진짜 지민이... 너무 좋지 않나요. 얼마 나오지는 않았지만 짧은 등장에도 너무 좋은 것... ㅠㅠ 이 더운 날씨에 크리스마스 글이라니 부조화도 이런 부조화가 없네요. 다음 번 미학에서는 여름을 배경으로 쓸 것을 다짐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씨에 추위라니...ㅎㅎ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남은 하편에서 우리 다시 만나기로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