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어요.
"으음.. 오옳..지..우리 성우 짜란다.." * 제가 반인반수라는 걸 꿈에도 모르는 우리 주인은 제가 말을 알아들을 때마다 격하게 신기해해요. "성우야, 나 지금 입은 거 괜찮아? 괜찮으면 오른손, 별로면 왼손!"
(오른손 척)
(놀람) "너 지금 내 말 알아들은 거야?" "우리 성우 천재야! 내가 어디서 이런 애를 데리고 왔지? 천재, 천재!" 하며 머리를 막 쓰다듬어요. 꿈에서도 저를 훈련시키는지 옳지, 옳지를 연발하는 주인 옆에 가서 잠든 눈을 바라보며 가만 앉아있었어요. "..? 성우 일어났어? 주인 깨우지 그랬어." 소리에 예민한 주인이 제 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눈을 떴어요. "월!" "응, 밥 먹자." 부엌으로 향하는 주인이에요. * 이따금씩 동물로 지내는 게 견디기 힘들만큼 답답할 때가 있어요. 지금 주인은 잠들었는데.. (고민) 몰래 한 번쯤은.. 괜찮겠죠? 점점 사람으로 변해가려는 순간, "성우야! 뭐해?"
휴.. 큰일날 뻔 했네요. "왜 여기 혼자 있었어. 산책가자 성우야!" * 주인과 산책은 언제나 즐거워요. 아무리 저를 산책시킨다고 하지만, 사실 제가 산책시키는 기분이거든요. "성우야 여기 꽃 봐봐. 예쁘지?" 이렇게, 항상 저보다 신나서 돌아다니기 바빠요. "저 강아지 좀 봐. 조그마한 게 귀엽다." 한참을 바라보며 헤헤 웃는데, 작은 개를 산책시키던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오네요. "그쪽도 반인반수 키우시나봐요. 요즘 보기 드문데." "..네?"
"우리 대니는 포메라니안이에요. 이제 5개월!" 사람 좋게 손가락 다섯개를 쫙 피며 말하는 남자예요. "저.. 우리 성우는 그냥 강아지예요.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우리는 결국 산책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어요. 저를 만나기 전 사람에게 데인 일이 많은 주인은 낯선 사람과 말을 섞는 데 굉장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불쑥 말을 건 남자에, 또 그 내용에 많이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성우야.." 저를 꼭 안은 주인의 몸이 가느다랗게 떨려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저는 그저 누구보다 힘들 주인에게 안겨있을 수 밖에 없어요. "네가 사람이라면 난.. 어쩌지..?" 아무래도 반인반수 발언의 여파가 컸나봐요. "아니, 정말 네가 반인반수라면 난.." 순간 긴장하며 듣고 있는데, 잠꼬대처럼 웅얼거리던 주인이 말을 채 끝내지 못하고 잠들어버렸어요. . . . 잘 자요, 주인님. * 눈치 채셨겠지만, 우리 주인은 잠이 참 많아요.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자는 게 취미가 된 것 같아요. 그런 주인을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제 취미가 됐고요. 여느 때처럼 새근거리는 오후예요. 띵동- 왠만해선 손님이 잘 없는데, 얼른 인터폰을 쳐다봤어요.
이 사람, 낯익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전에 산책할 때 본 그 남자네요. 그리고 그 옆엔,
왠 모르는 사람이 서있구요. 우리 주인이 보면 기겁할텐데, 빨리 가라고 해야 하는데, 어쩌지? 생각을 해보자. 생각 생각.. 띵동, 띵, 띵동 띵동 남자가 쉴 새 없이 초인종을 눌러대기 시작했어요. "저기요! 반가운 이웃끼리 인사 좀 해요!" "여가 아닌가바. 가자 주이나." "아니야, 맞다니까?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요!" 급기야 문을 쿵쿵 두드리는 남자에 저는 이내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했어요. 제발 주인이 깨지 않길 바라며. 벌컥
"뭔데요."
"봐봐 대니야. 내가 맞다고 했잖아." "..." 세상 뿌듯한 얼굴로 옆의 처음보는 사람에게 으스대던 남자가 저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이름이 뭐예요?" "그건 왜요." "그때 본 허스키, 맞죠? 조그만 주인님이랑 산책하던." "알아서 뭐하시게요. 문 닫습니다." "아 잠깐잠깐!" "..." "보아하니 아직 반인반수인 거 안 알려줬나 보네요. 이거 위험한데." "이쪽은 대니예요. 사람이름으로는 강다니엘. 그때 말했 듯이 포메라니안이고. 그나저나, 답답해서 어떻게 살아요? 우리 대니랑 친구해요, 친구. 저 바로 밑에 사니까 언제든지 놀러와요. 원하면 상담도 해줄테니까." 포메라니안 치고는 덩치가 좀 많이 큰 '대니'라는 남자는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다가,
"..아녕. 나 대니." ..어눌하게 말했어요. "덩치는 이래도 아직 5개월이니까요,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친하게 지내요."
(끄덕끄덕) "생각보다 경계가 심한 것 같으니까 이만 갈게요. 잘 있어요 허스키 경호원. 다음에 또 봐요!" * 폭풍이 지나간 느낌이에요. 저는 서둘러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해 이제 막 깨는 주인의 곁으로 돌아갔어요. "으응.. 밖이 소란스럽던데 무슨 일 있었어, 성우야?" (도리도리) "분명 사람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꿀꺽) "역시 아니겠지? 밥이나 먹자 성우야. 배고팠지!" 휴.. 오늘도 무사히 넘어가네요. 낯선 일이 유독 많은 하루였어요. 오늘은 주인보다 내가 더 많이 자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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