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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쇠 전체글ll조회 1612l


한용운 님의 시 '인연설' 에서 모티브를 따온 소설입니다.




因緣說

인연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너무나도 사랑하여, 사랑하고 또 사랑하여.

쉬이 사랑한다 말을 내뱉으면 지고지순 지켜 온 순결한 나의 마음 또한 쉬이 여겨질까 그것이 두려워 못합니다.





-






「…무얼 하고 있는 게냐.


「아, 도련님. 저, 마루 앞에 눈이 많이 쌓여서 청소를 좀…





나의 님은, 사랑하는 나의 님은 차갑습니다. 그러면서도 보드랍고 여려, 꼭 이 눈을 닮았습니다.

나의 님은 나를 쳐다봐주지 않았습니다. 붉은 비단옷을 껴입은 채 하이얀 입김을 작게 뿜으며 눈을 밟고, 나의 님은 나를 지나칩니다.

가만히 뒷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생각난 것에 님을 부릅니다.





「도련님!」


….


「날이 많이 찹니다. 목도리를 두르시지요.」





듣는 둥 마는 둥 님은 문을 나섰습니다. 조금은 무안해진 마음에 고개를 숙입니다.

소복히 쌓인 깨끗한 눈 위에 님의 발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님을 닮아 곧고 정갈한 걸음입니다.


님 생각에 절로 얼굴에 수심이 끼칩니다. 갑갑한 것을 원체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목도리를 잘 하지 않으시는데, 저러다 혹 고뿔이라도 걸리면 어쩌련지.

저번 겨울에 지독한 고뿔에 걸려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있으신데도, 님은 참 어린아이같이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식아!」


「어, 복순아.」


「마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니 너더러 오라 하시더라. 어서 가봐.」


「아 알았다.」





-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에는 말이 없습니다.


몇 번이고 잊자 잊자 되뇌어 보아도, 되뇌이면 되뇌일수록 정처없는 마음은 커져만 갑니다.





-





나의 님을 처음 보게 된 것은… 꼭, 십 년 전 이맘때였습니다.


어머니의 거치른 손을 단단히 붙잡고 영문도 모른 채로 고개를 숙였던 그 날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합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사람은 키가 훤칠하니 컸던 대감도, 수려하고 단아한 얼굴을 지닌 마님도 아닌,

새초롬하니 올라간 모양새의 눈꼬리로 빤하니 나를 내려다보는 새하-얀, 내 또래의 사내아이였습니다.



차가운 듯 하면서도 다정한 그 아이는 내게 잘해주었습니다.


여덟 살, 같은 나이. 

나는 바닥을 쓸고 언 방에서 딱딱한 밥을 먹고, 그 아이는 책을 읽고 따뜻한 방에서 부드러운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한 번도 그 아이에게 부러움과 시기를 느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내게 미안했던지, 내가 마굿간의 소에게 여물을 주고 있으면 몰래 다가와,





「이거… 먹으련.


「무엇입니까, 도련님?」


「경단.」





-이라며 입에 조금 식은 고기 경단을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내게 그 아이는 겨울 칼바람 가운데 오롯이 아름다움을 지키는 동백이었습니다.

그 아이가 유난히도 붉은 옷을 좋아했기 때문인 것도, 이유라면 이유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이 집에 들어온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습니다.

역시나 겨울이었습니다.


인정이 많으시던 대감님과 마님은 자그맣게 장례를 치뤄 주셨고, 나를 딱하게 여기시어 집에서 내쫓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낱 노비에게 하늘과도 같은 은혜였음이 틀림없지만, 이제 아홉 살이 된 꼬마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었습니다.


냉방에 앉아 울었습니다. 눈물로 온 얼굴이 뒤덮이도록 울고 있는데, 얇은 창호지가 발린 문짝이 열렸습니다.

그 아이였습니다.


조용히 내 옆으로 와 무릎을 꿇은 그 아이가 내 손을 잡았습니다.

차가운 바람을 뚫고 내 방을 찾아왔던 모양입니다. 손은 굉장히 차가웠습니다.





「…추우니?」


「윽, 끅… 흑, 으윽…


「…….」





한 손을 더 뻗어 내 손을 제 양 손으로 거머쥔 그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호오-


입김을 불었습니다. 입김이 따스하여 감고 있던 눈을 끔벅거리며 뜨자, 얼굴 앞에 바로 마주한 그 아이의 흰 얼굴이-

찬바람을 맞아 발개진 그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아이는 칠흑같이 새카만 머리카락에, 붉은 비단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자, 가만히 내 손을 쥐고 있던 그 아이가 내게로 다가오더니, 

…나를 안았습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었기에, 눈물이 순간적으로 멈추었습니다.

그 아이의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꽃내음이 풍겼습니다.


나는 그날 생각했습니다.



나의 님은, 붉은 동백이었노라고.





-





나의 님은 커 가면서 점차 변하였습니다. 아니요, 외적인 면에서가 아닙니다.

여전히 새카만 머리카락과 우유 같은 피부, 동백 같은 입술을 지니고 있는 나의 님이지만, 

확실히 무언가를 알게 되는 나이가 지나고부터, 님은 차가워졌습니다.


더 이상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더 이상 손을 잡아 주지 않았으며, 더 이상 내게 가까이 오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겠지요, 님과 나는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더 먼 곳에 놓여 있는 사이이니.

어쩌면 그 편이 님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더 좋은 편일지 모릅니다.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참 많이 노력하였지요.

밤마다 떠오르는 님의 얼굴을 지우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만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깊어가는 님에 대한 연심은 가슴 속에 점점 뿌리내립니다.


이런 나를 용서하여 주신다면, 아니, 용서하여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나의 연심에 대한 죗값이 님의 무심함으로 돌아온다면, 그 죗값을 언제까지고 달게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





「마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식아.

…내 네게 할 말이 있어 불렀다.」





늘 웃음기가 돌던 마님의 얼굴은, 왠지 오늘따라 깊게 패인 주름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답잖게 뜸을 길게 들이시는 마님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조금 들었습니다. 얼굴색이 어두웠습니다.





「마님, 무슨 일이시길래…」


「우리 집에서 그만 나가 주어야겠다.」


「…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집을 나가라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이란 말입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멍하니 위에 앉아 계신 마님의 얼굴만을 바라보았습니다. 마님은 눈을 꼭 감은 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는 머물게 해 줄 테니, 내일 아침 일찍 짐을 싸서 나가거라.

걱정은 말거라. 여기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이 대감 댁에서 너를 데려가고 싶다 하셨으니 그리로 가면 될 게야.」


「마님, 저는…」





밥줄 끊기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닙니다.


목 끝까지 이 말이 차올랐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습니다.






「미안하구나.」





밥을 먹을 수 있으면 뭐 합니까, 잠을 잘 수 있으면 뭐 합니까.

그곳에는 내 님이 없는데.






-












안녕하세요, 돌쇠입니다. :)

한용운 님의 시 인연설은 제가 평소에도 참 좋아하는 시인데

이 시를 모티브로 해서 소설을 써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ㅠㅠ

상, 하편이 있고 번외 하나가 더 있을 예정입니다!


늘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독자분들 제가 많이 사랑합니다♡


+) 인연설이라는 시를 제대로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참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좋은 시거든요ㅠㅠ 


++) 글잡 글맞추기!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은 참여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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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블루밍이예요! 우이시기 안쓰럽네요ㅠㅠㅠㅠ 갑자기 왜 나가라고 하시는 걸까요ㅠㅠㅠㅠㅠㅠㅠ 다음 편 기다릴게요! 엄청 재밌어요 짱짱
10년 전
돌쇠
블루밍 님! 반갑습니다 :) 우이 시기ㅠㅠㅠㅠ 저는 이상하게 좀.. 불쌍하거나 아련한 글을 쓸 때는 늘 랍택으로 가게 되더라구요.. 원식아 미안해 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2
레오정수리)와..얼른 시를 읽으러 가봐야겠네요...정말 이런 필체 너무 좋아요ㅠㅠㅠㅠ브금도 좋고ㅠㅠㅠㅠㅠ
10년 전
돌쇠
레오정수리 님! 반갑습니다 :) 아까 쓰다 뭘 잘못 눌렀는데 등록이 돼서ㅋㅋㅋ 시 꼭 읽어보세요 정말 좋아요ㅠㅠ 짱짱ㅠ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_^
10년 전
독자3
와ㅠㅠㅠㅜ왜 제가 울고싶져?ㅠㅠㅠㅜ식이 너무 안쓰러워요퓨ㅠㅠㅠㅠㅠㅠ 저도 다음편이 막 기다려지네요ㅠㅠㅜ 택운이도 왜 자라면서 그렇게 됐을까요 무슨 이유가 있었나?ㅠㅠ
10년 전
돌쇠
으아앙 독자님 울면 안 돼요ㅠㅠㅠ 뚝ㅠㅠ! 우이 식이.. 이상하게 제 소설 속의 식이는 거의 아련터지구 막 그러더라구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4
잔잔하니 슬픈거같기도하고ㅠㅠ 진짜 눈속에핀 동백같아요
10년 전
돌쇠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렇게 봐주시다니 너무 기쁘네요ㅠㅠ
10년 전
독자5
허류...잔잔하면서 아련하네요ㅜㅜㅜㅜㅜ
10년 전
돌쇠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
10년 전
독자6
으앙 시자체가 이쁘기도 하고 작가님문체가 더해져서 더 분위기가 잘 사는것같아요
10년 전
돌쇠
시 자체가 예뻐서ㅠㅠ 제가 어떻게 건드려도 참 예쁜 것 같아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 전
삭제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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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돌쇠
초롱초롱 님! 반갑습니다 :) 저도 쪼꼬미한 비쮸들 참 좋아해요ㅠㅠ 언젠가는 유치원물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구요ㅎㅎ ㅠㅠㅠㅠㅠ 우이 원식이ㅠㅠㅠㅠㅠ 인연설이라는 시 꼭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좋아하는 시예요 ㅎㅎ
10년 전
독자8
ㅠㅠㅠ헐헐 갑자기 나가라고하다니ㅠㅠㅠ식이 어떡해ㅠㅠㅠ시랑 브금이랑 글이랑 다 너무 잘 어울려요ㅠㅠㅠ너무너무 잘 읽고 갑니당♥♥♥
10년 전
돌쇠
우이 시기 어떡하나요ㅠ^ㅠ 흑흑ㅠㅠㅠ 시도 브금도 제가 참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한번 따로 꼭 읽고 들어 보셔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9
윽ㅠㅠ분위기 짱짱!!bb 완전 취향저격ㅠㅠㅠ 인연설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10년 전
돌쇠
네! 한번 읽어보세요!!ㅎㅎ 정말 좋은 시랍니다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10
간절한 분위기 짱짱 좋아요ㅠㅠㅠ 그냥 제가 고전물을 매니매니 좋아해요 아니 사랑하죠 진짜 고전물은 사랑입니다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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