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아주 잘 안다고 자신했던 것들을 놓쳐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말하자면, 현미경 속만 들여다보다가 정작 본모습이 시야 밖으로 나가 버렸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는 경우.
내게 그랬던 사람은.
추출
– 정재현의 순간들 –
“누구… 아, 이제 들어오세요?”
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건 김여주였다. 어딘가 혈색을 되찾은 얼굴이었다. 이제 조금 살기가 괜찮아진 건가.
“안녕. 오랜만이네.”
“네. 헤헤… 일이 늦게 끝나셨나 봐요.”
“아, 응.”
꼭두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보았던 얼굴과는 사뭇 달랐다. 아까의 창백하고 먹먹한 낯빛은 심하게 다친 사람을 본 충격에 질렸던 것인 모양이었다.
굳이 한낮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온 이유는 김여주가 이민형에게 약간의 애정-혹은 애정이 아닌 연민이라도-을 갖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아닌 누군가에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자존심이 강한 이민형도 우리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 약한 모습들을 그 애에게나마 조금씩 터 놓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주에게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아직 예민할 나이이니만큼, 그런 상황을 누군가 보았다는 걸 부끄럽고 민망해할 것 같아서였다.
“아, 어, 오늘 이, 이민형이 다쳐서….”
“민형이가?”
“네. 많이 다쳐서… 큰오빠가 치료해 주고 있어요.”
“큰오빠? 태용이 형?”
“네… 제가 도와주고 싶었는데, 잘 못해서…. “
아직 약간은 어색한 우리 사이의 기류를 깨기 위해서인지 이민형이 다쳤다는 얘기를 꺼낸 김여주는 구두를 벗어 똑바로 정리해 놓는 내 앞에서 민망한 듯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서 있었다. 민형이를 집에 데려다 놓은 장본인이 나였지만 이민형은 아침의 일을 말하지 않은 듯했다. 알리기가 싫었던 걸까. 그렇다면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도, 김여주는 어느새 이태용에게 ‘큰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나가 있는 동안 이 집안의 많은 것들이 달라진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이 작은 방의 중심에 김여주가 자리잡게 된 것 같았다.
이민형을 잘 치료하지 못했다는 말을 하며 입술을 감쳐 무는 얼굴은 이제 한없이 침울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렇게 감정 변화가 빠른 아이인데, 그 동안 하나도 티를 내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이민형을 걱정하는 눈망울이 낯설었다. 벌써 이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었구나. 이민형을 걱정해서 자책을 할 정도로.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마. 민형이는 괜찮을 거야.”
“그렇겠죠… 아픈 사람들이 많네요. 음, 오빠…도 얼른 쉬세요.”
“아, 나도 오빠야? 고맙네. 예쁜 여동생이 생겨서.”
“오빠니까요…”
“응? 민형이도 오빠잖아. 오빠라고 하기엔 좀 귀엽긴 한가?”
“아아… 이민형도 오빠긴 한데, 어쨌든요. 얼른 쉬세요.”
붉어진 낯빛으로 횡설수설하는 게 참 순수해 보였다. 김여주는 확실히 아직 낯선 사람들에게 존칭을 쓰는 것 같았다. 나와 달리 그 애와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친 애들에게는 한두 살 위여도 이름을 막 부르곤 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랬다.
“뭐야. 정재현도 오빠야? 그럼 나는? 나는 뭐야?”
타닥, 타닥 슬리퍼 차림으로 계단을 빠르게 뛰어내려 지하실 안으로 들어온 장본인이 끼어들어 물었다.
“아 진짜… 괜찮다며, 요.”
“아니, 안 괜찮은데? 그건 전부 다 말 깠을 때 얘기지. 나한테만 까고, 얘한테는 오빠오빠 해 주고. 그럼 내가 억울하지. 내가 한 살이나 더 나이 많은데. 그치, 재현아?”
“한 살 더 살았으면 다 오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김여주의 음성을 듣고 홱 그 애를 쳐다본 김도영이 기가 차다는 듯, 허허 웃었다.
“야 인마, 내가 만만하냐. 너 나한테 계속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해.”
“무슨 후회. 그럴 일 없거든, 요.”
등을 돌려 가 버린 김여주를 벙쪄서 쳐다보다, 팔짱을 끼고 그 뒤를 졸졸 따라 걸으며 동네 꼬마 놀리듯 계속해서 장난을 걸어 대는 김도영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김여주를 어지간히도 귀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고 보면 김도영도 참 많이 유해졌다, 싶었다. 예전 같으면 예민해서 조금만 놀려도 지랄을 할까 봐 장난도 잘 못 치던 상대였는데, 이제 웃어넘기는 것도 모자라 자기가 먼저 장난을 걸고 다닌다니. 참 신기했다.
“너 굴렀어?”
헉, 놀란 숨을 들이킨 김도영이 물었다.
이민형은 말갛게 인상을 찌푸리며 웃었다. 다 알만한 형이 뭘. 알면서 뭘 물어보냐는 투였다.
옆에서 수건을 찬물에 담그던 이태용이 도영아, 하고 불렀다.
“너도 와서 앉아 봐. 오늘도 찜질 안 했지.”
“괜찮아. 얘나 해 줘.”
“자꾸 그럴래?”
꾸짖던 목소리가 순간적으로 잦아들었다. 거의 입모양만으로 말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그 눈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목줄에 끌려가는 개처럼 싫은 표정을 하고 엉기적거리며 다가온 김도영이 이민형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깟 어깨 좀 아픈 거 가지고 뭐.”
“지금 제대로 치료 안 하면 나중에 힘들어.”
“…힘들 일이 있어야지.”
“김동영.”
“아, 알았어.”
김동영.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항상 도영아, 도영아 하고 불러온 게 몇 년 째였다.
김도영의 원래 이름은 김동영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우리가 처음으로 모이게 되었을 때는 분명 김동영이었는데, 둥그런 받침자가 빠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무심코 잊고 살았던 열 대여섯 살 즈음의 기억이었다. 사라져 버린 작은 동그라미처럼, 김도영의 동글동글했던 얼굴이 바싹 마르게 된 것도, 원만했던 성격이 뾰족해진 것도 그 때쯤이었지.
아주 어렸을 적에, 한국에 살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까마득해져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김도영은 살인의 죄를 쓰고 소년원에 들어왔다.
개미 새끼 하나 못 죽일만큼 새하얀 얼굴에 비리비리한 꼴을 하고. 그 자리에서 겁에 질린 김도영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 중에는 단 한 명도 그가 살인자라고 믿는 사람이 없었다.
초등학교도 채 나오지 못한 나이였다. 저 애도 엄마 아빠가 없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불량한, 회생 불가능한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소년원이라지만 그 중에도 나이가 어린 편이었던 우리에게는 그다지 중대한 죄가 없었다. 우리는 그저 사회의 날카로운 울타리가 가진 양날의 검이 겨누는 한구석에 몰아붙여진 피해자일 뿐이었다.
아이들을 보호하려 세워진 울타리의 창끝은 그 안에서 벗어난 어린양들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한 폭력배와 같았다. 아직 말이 서툴어 제 신변 하나 챙기지 못했던 어린 우리를 품에 보호해 줄 부모님은 없었다. 그 이유만으로 우리는 두 번이나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배를 곯다가 한 번 뻗은 손, 갖은 폭력에 지쳐 한 번 뻗은 손, 조금이라도 행복해지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한 번 뻗은 손의 죄값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과중했다.
김도영의 생부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술과 담배를 한 시도 떼어놓지 못하는 남자였다.
마약을 달고 살던 우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술과 담배를 제외한 그의 가장 큰 실수는 폭력을 일삼았다는 점이었다. 어린 아들과 임신한 아내를 매일같이 술병으로 마구 폭행했다. 그의 얼굴과 만신창이로 어질러진 좁은 집은 틀림없는 흑백사진으로 남아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김도영은, 그런 자의 아들이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푹 숙인 채 끌려 들어온 그 애를 봤을 때 우리 중 누구도 그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도 그 애가 폭력적일 거라고 짐작하지 않았다. 오히려 겁먹은 토끼처럼 소심해 빠졌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형은 몇 살이야? 여긴 왜 왔어?”
까불이 이동혁이 붙임성 좋게 다가가 물었다. 옷 전체에 얼룩덜룩한 혈흔을 묻히고 들어온 남자애가 무섭지도 않은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텃세라도 부리는 건지 같은 방의 소년들은 전부 묘한 눈으로 김도영을 훑어보았었다. 툭 치면 쓰러질 것처럼 약해 보인다고 해도 막상 ‘살인’이라는 죄목을 뒤집어쓴 토끼 새끼에게는 쉽게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진짜 토끼마냥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김도영은 대답도 없이 코앞에 들이밀어진 이동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나는 다가가 이동혁의 뒷덜미를 끌어다가 떼어 놓았었다. 정신 없이 굴지 말고 가만히 내버려 둬, 하면서.
보름 정도가 지났을까, 한밤중에 내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와 속삭이던 이동혁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저 형, 아버지를 죽였대.”
아버지를 죽였대. 어린 미성이 계속해서 귓가를 소용돌이쳤다.
아버지를 죽인다는 것. 그로부터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끝끝내 단념하지 못할 내 평생의 목적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 일을 저지르고 온 김도영은 내게 하나도 못나 빠진 죄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를 우러러봤던 것 같다.
김도영은 단 한 번도 제 이야기를 우리에게 꺼내 놓지 않았다. 우리를 믿지 못해서라기보단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확실히, 언젠가 그의 서랍 깊은 곳에 처박혀 있던 작은 액자 뒤에서 발견한 낡은 신문 기사 속의 이야기는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 만큼 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가장 큰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기억되어 버린 어린 남자아이에게는 더더욱.
김도영의 아버지는 모아둔 돈 하나 없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깨진 병을 휘두를 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김도영을 끌어안아 눈을 가리며 그 아버지를 향해 욕을 해 댔다. 품에 안긴 채 아버지를 욕하는 음성의 울림을 느낄 때면 김도영은 늘 온몸에 소름이 돋았을 것이었다. 내가 늘 느꼈던 그 감정과 똑같이.
평소와 달리 집이 고요하던 날 밤, 처음으로 친절하게 어린 아들을 품에 꼭 끌어안았던 남자는 두꺼운 천을 아들의 눈 위에 몇 바퀴나 감으며 속삭였다.
‘엄마를 사랑하니?’
‘네, 많이요. 전 아버지도… 사랑해요.’
‘그래. 엄마는 많이 아파. 엄마를 사랑한다면 너도 그 아픔을 나눠야지, 그렇지? 동영아.’
갓 열 살을 넘긴 어린아이를 설득하기란 궤변으로서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그의 어머니에게는 천천히 시력을 잃게 되는 병이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시신경 위축증이었다.
남자는 눈이 멀어가는 아내와, 반강제로 눈과 귀를 막아버린 아들을 방 안에 가두어 놓고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 눈이 멀어 살림도, 돈벌이도 할 수 없게 된 반려자를 내팽개칠 만큼 정신이 나가 있던 알코올 중독자에게 두 사람은 그저 방 안에 놓여진 푸대자루만도 못했던 것이 분명했다.
매일같은 폭언과 위협의 해일 속에서 구석에 붙어 몸을 떨던 소년은 상상 속의 악마를 키워갔다. 그리고 비닐 봉투에 미끄러진 아버지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넘어진 순간에도, 차마 그를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에게 쓰러진 중년의 남자는 악마일 뿐이었다. 소년은 제 손에 생채기가 나서 피가 끊임없이 흐르는지도 알지 못하는 채로 보이지 않는 땅을 마구 더듬어 깨어진 맥주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쉬지 않고 내리찍었다.
그리고 이성을 잃은 아들을 끌어안으려다 남편과 함께 쓰러진 어머니의 곁에서, 어린 김도영은 제 눈 앞을 거대한 벽처럼 가로막은, 벽이라기에 몹시도 여리디 여린 천 쪼가리를 풀어낼 용기가 없어서 천이 전부 피와 눈물로 젖어들 때까지 울었다. 늦은 새벽 발견된 김도영은 더 이상 누구에게서도 보호받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해의 가장 끔찍한, 생부 살해 사건이었다. 드물게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치했던.
꼼짝없이 소년원에 잡혀 들어왔지만 소심해빠졌을 뿐 죄목에 어울리는 독기라든지, 암울함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은 아이였다. 오히려 김도영은 착하고 감수성 많은 성격이었다.
이를테면, 제가 좋아하는 동생들에게 제 몫의 반찬을 몰래 조금씩 밀어 주는 식이었다. 그에게서 늘 어묵이나 작은 햄 조각 따위를 얻어 먹고 자란 이동혁은 김도영을 죽어라 따랐다. 퍽도 단순하구나, 싶은 모습들을 지켜보면서도 은연 중에 김도영이 좋아 보였다. 확실히 그런 곳에 있기에는 너무 순한 애였다.
김도영이 예민해지기 시작한 건 마지막 남은 한 줄기 희망이 꺼졌다는 소식이 들려온 날이었다.
소년원에 들어와서 의미 없는 삼 년이 지나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나서 끝없이 무너져 내린 김도영은 한 달이 넘게 웃음을 짓지 않았다. 그 후로 김도영이 처음으로 웃었던 것은 우리를 타지로 데려가 줄 지원자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이었다.
나와는 하나하나 전부 달랐지만 잘 생각해 보면 다를 것 하나 없는 가정사였다. 차이라면, 내가 누구도 죽이지 않은 대신 내겐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었다는 점 정도였다.
나는 돈복이 많았다. 언제든 하고 싶은 건 전부 다 하고 살 수 있었다. 그건 지금도 다름없는 일이었고, 나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재물을 원해 본 적이 없었다.
나와 같은 삭막해 빠진 어린 시절을 보내고 원치 않았던 결혼을 해서, 꼴 보기도 싫은 와이프는 뒤로 하고 술집 여자와 유흥과 같은 밤을 보내어, 그 결과로 짐짝처럼 태어난 아이는 넓은 집에 남아도는 방구석이나 하나 내어주면 되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삶의 루틴이었다.
화려한 방문 너머로 쩌렁쩌렁 새어 들어오는 불화의 소리가 의미하는 것들이 무언지 조금씩 알기 시작했을 무렵, 나도 아버지처럼 자라서 똑같이 살면 된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어머니가 아닌 도우미 아주머니의 품 안에 안겨 등을 담담히 두들기는 손길을 느끼고 있을 때도 울지 않았다. 내게 부모님의 싸움은 전혀 슬플 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것은 매일 밤 정적이 감도는 식탁에 앉아 기도를 졸라 버릴 것 같이 질긴 고기를 씹는 일과 똑같았다.
무슨 일이든 만사 오케이라는 돈으로도 유지되지 못할 만큼 허울뿐이었던 관계가 기어코 파탄 났을 때, 나는 내 얼굴도 모르는 생모에게 던져졌다. 말 그대로 던져졌다. 그리고 나는 소년원에 내 발로 기어 들어왔다. 나약하게도, 배를 곯고 산 경험은 처음이어서였다.
잘 아는 것도 아니지만, 김도영의 과거는 호기심에 읽어 본 차가운 종이면의 텍스트만으로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억이었다. 아주 가끔 이태용은 김도영을 동영아,라고 불렀다. 주로, 김도영이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여기저기 상해서 들어올 때였다. 이태용은 유독 그런 일에 예민했다.
한쪽 팔다리가 전부 쓸려서 들어온 오늘의 이민형처럼 김도영도 몸의 절반에 찰과상을 입고 온 날이 있었다. 그 날 김도영은 낄낄거리며 좀 부딪혀 구른 값으로 삼 천 위안이나 받아 냈다며 주머니에 고이 접어 두었던 지폐를 흔들어 댔다. 이태용은 그 자리에서 김도영의 뺨을 때리고, 곧바로 그 머리통을 끌어 안으며 울었다.
이태용은, 김동영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후로 김동영은 김도영이 되었다.
아버지의 이름에 같이 들어가 있던 그 이름자 하나를 빼면 저도 조금이나마 깨끗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과거의 생각을 하다 보면 끊임없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곤 했다. 한동안 잊고 살았었는데, 김도영에 이어 나의 어린 날까지 떠오르니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마리화나라도 하나 말아야 할 모양이었다.
지하실 안쪽에서 치료를 전부 마친 이태용이 허리를 통통 두드리며 환풍구 방향으로 몸을 틀어 앉았다.
달달거리며 돌아가는 파란색 날개에 토옥, 톡,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오늘도 비가 오네. 몸을 둥글게 말아 무릎을 끌어안은 이태용이 무릎 위에 턱을 괴었다.
피곤한 사람,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피곤한 사람들.
옆에 앉아 물끄러미 치료하는 것을 지켜보던 이동혁이 끙차,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차가웠던 물이 미지근해진 대야에 하얀 수건을 폭 담갔다 비틀어 짠 이동혁이 이태용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발간 핏자국이 눌러 붙은 손가락을 하나씩 집어 닦았다. 고맙네… 동혁이가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내가 원래 착했지 뭐. 툴툴거리는 대화들이 들려왔다. 다들, 좋아 보이네.
시멘트 바닥 위에 달랑 놓여져서 침대 흉내만 내는 삐걱거리는 매트리스 위에 이태용과 꼭 같은 모양새로 무릎을 끌어안고 두 사람을 지켜보던 김여주가 입꼬리를 조금 올리다 말고 나를 보았다. 숨어서 지켜보던 걸 들키던 느낌이었을까,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시 평소처럼 굳어버리는 얼굴을 향해 눈을 전부 접어 웃어 보였다.
웃는 얼굴이 예뻐. 가만히 입을 움직여 말했다.
느릿느릿한 입모양을 읽어낸 얼굴이 또 붉어졌다.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으면서, 아까랑은 달리 나와 부딪힌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계속해서 내 눈동자에 닿아오는 눈길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너는 왜 눈으로만 웃는데?
김여주를 좋아하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게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실제에서 가능한 일이라는 것조차 몰랐다.
김여주만 보면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벌게지고, 말 한 마디라도 더 붙이고 싶어서 주변을 맴도는 게 좋아한다는 거라면 어느 정도 알 것도 같았다. 지금 내 눈앞에서 첫사랑을 시작한 사춘기 남자애처럼 구는 애들이 몇 명은 되었으니까.
나는 그저, 자꾸 욕심이 날 뿐이었다. 그다지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남은 생애에.
김여주, 그 애만 보면 왠지 모르게 살고 싶었다.
사랑스런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평화로운 미래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 애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것도 아니었고, 그냥 살고 싶어질 뿐이었다.
나는 아쉬움을 가져서는 안 되었다. 무슨 일에든 욕심을 내면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게 나의 유일한 철학이었다. 내일 당장 죽는다 해도, 한 치의 두려움이나 애석함 따위도 없어야 했다.
고통으로 가득 채워진 판도라의 상자에 던져진 채 질식해 죽어가는 것이 내게 인생의 정의였다.
온갖 불온한 사건사고들 속에서 나약한 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 무엇에도 무심해지는 방법이 유일했다. 어디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늘상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남들에게서 나를 속이고 내 자신을 속였다. 그리고 그런 나의 오랜 결심을 무너뜨리려는 김여주를 볼 때면, 어쩔 수 없이 화가 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랑을 못 받고 자라온 애들이 섣불리 정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일방적인 감정들만으로 보이지도 않아서 더 화가 났다. 그 애가 그러면, 나도 점점 기대하게 되니까.
목을 조르는 듯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대상 없는 분노를 가슴 속으로 삭였다. 상처가 쓰라린지 앓는 소리를 내던 이민형이 옆에 앉아 잔소리를 해대는 이동혁에게 신경질을 냈다.
아, 이동혁. 귀찮게 하지 말고 일이나 나가라고. 어지간히 예민할 이민형을 타이밍 안 좋게도 지금 건드린 이동혁이 안쓰러울 뿐이었다. 자존심은 세 가지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될 걸 옆에 붙어 앉아 끝까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모양을 지켜보다가 결국 다가가 이동혁의 양 팔 아래에 손을 넣어 일으켰다.
“아, 형! 잠깐만. 이민형 진짜 너무한 거 아니야? 난 그냥 걱정이 돼서…”
“시끄럽고 저리 가라고!”
이민형이 집어 던진 핀셋이 내 뺨을 스치고 떨어진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의 일이었다. 날카로운 핀셋의 끝부분에 얇은 피부가 찢어지고, 뜨거운 피가 한 줄기 흘러 내려 이동혁을 향해 뻗었던 하얀 와이셔츠 소매에 스며든 것 또한 한 순간이었다.
잘만 해오던 자제가 되지 않았다.
“……씨발, 돈은 다 벌었네.”
“아, 형, 미안해. 내가, 순간적으로, 이동혁한테 던지려다가…”
“우리 사랑하는 동생들은 이런 데 나오지 말라고 형이 이 한 몸 바쳐서 좆빠지게 벌어 오는데… 자꾸 별 것도 아닌 걸로 싸우고… 이제 니들이 직접 나가고 싶어서 그래? 귀한 에이스 자리, 이제 넘겨달라고 떼 쓰나?”
벙쪄서 나를 돌아보는 뺨을 강하게 내려친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짝, 사방이 막힌 공간에 울린 파열음에 놀라 선잠에서 깬 김도영이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줏대 없이 흔들리는 모양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감정적이 되다니 나도 다를 게 없었다. 나를 통제하려고 노력해 왔던 것들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재현아...”
천천히 다가온 이태용이 내 뒷목을 손바닥으로 감싸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잖아…. 그치. 민형이도 진정하고, 동혁이도. 괜찮아, 다 괜찮아.”
발갛게 손자국이 난 볼을 문지르던 이동혁이 고개를 숙이고 미안해, 라고 중얼댔다. 손을 마구 떨며 발작하듯 숨을 헐떡인 이민형이 눈물이 가득 괸 눈으로 나를 보다가 부들거리는 손으로 입을 꽉 막았다. 하얀 수건을 들고 뛰듯이 다가오던 창백해진 낯의 여자애가 머뭇거리며 멈춰 서서 손톱을 딱딱 소리가 나게 물어 뜯었다. 이태용의 잔잔한 음성 이후로 바늘 같은 정적이 흐르던 공간 안에, 손톱과 이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렸다.
“…내가 미안.”
고개를 푹 숙인 머리통에 손끝이 닿자마자 순간적으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미안해서, 보듬어 주려고 그런 거였는데. 씁쓸한 웃음을 삼키며 손바닥을 내려 등을 두어 번 쓰다듬었다. 바싹 마른 등이 굳어 있었다.
“너한테도 미안, 민형아. 형이 오늘 좀, 그랬네.”
겨우 숨을 고르는 이민형에게서 등을 돌리고 빠르게 걸어 나왔다. 되는 게 없는 날이네. 완전히 형편없었다. 그 동안 이를 악물고 지켜 왔던 평정심은 이토록 하찮은 것이었다.
이유 모를 충격을 이기지 못해 벽에 거의 기대듯이 휘청이며 계단을 올랐다. 붉은 어스름이 내린 바깥에, 투명한 빗방울이 그칠 듯 말 듯 떨어졌다.
나의 분노와 애증, 악에 받친 시간들이 해와 함께 내렸다. 골목 뒤로 저물어 가는 빨간 원이,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순간과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따라 올라온 작은 손이 내 어깨를 잡아 부드럽게 돌려 세웠다.
“아프겠다…….”
“…….”
“아프지 않아요?”
“……너 간호사야?”
“네?”
“네가 간호사냐고. 마더 테레사도 아니고, 왜 네가 아무 관계도 없는 애들 뒤꽁무니 쫓아다니면서 일일이 치료를 해 준답시고 고생인데.”
“이러고 또 나한테도 미안하다고 그럴 거죠.”
“뭐라는 거야, 얜 또…….”
내가 온갖 지랄을 하고 나온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어느새 볼에 닿아있는 수건을 밀어내고 푸석해진 얼굴을 쓸었다. 이렇게 잘해줘 놓고 또 떠나가버릴 것이 뻔하다.
이 애가 진심으로 우리를 위해 주고 있다고 해도… 그 애정의 끝은 비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여주가 정을 주고 있는 우리는 모두 거짓이니까, 단 한 사람도 이 아이에게 진실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아 변화한다고 해도 그 끝은 분명했다.
우리는 그 아이처럼 될 수 없고, 그 아이는 우리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확실한 명제였다.
“좀 대 봐요. 중요하잖아요, 얼굴.”
“그 놈의 얼굴…… 중요하지. 그리고 네가 치료해준다고 흉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재현… 음, 오빠는 잘생겼으니까 괜찮을 거 아니에요. 맞죠? 얼굴이 차갑네…….”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젖은 얼굴은 차게 식어갔다. 십 수 년간 감정을 억눌러 온 덕분인지, 묘하게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낯을 김여주가 알아채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미묘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이번엔, 다시금 어깨를 붙잡아 오는 손을 떼어내지 못했다. 아까 본 것과 꼭 같이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것 같았다. 따뜻한 온기가 머무는 손이 어깨를 살짝 눌러 왔다.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댄 채, 그 애와 눈높이가 비슷하게 맞을 때까지 무릎을 굽혔다.
“어떡해. 무슨 깡패처럼 찢어졌네.”
아무래도 어색해서인지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항상 묘하게 마주쳐 오던 눈 옆을 비껴간 볼 한쪽에만 시선을 붙박아 두고 있는 얼굴을 세세히 살폈다.
눈과 코, 그리고 입, 모두 부슬비에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내리깐 검은 속눈썹 위에 올라 앉은 한 방울, 발개진 코끝을 타고 내 오른쪽 어깨 위로 떨어진 한 방울, 볼을 타고 흘러서 입가에 가 닿은 한 방울이 전부 신경 쓰였다.
연고를 바르고 작은 반창고를 붙일 때까지 그 빗방울들을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다 붙인 반창고를 톡톡 두드리는 손을 잡아 내리며 빗물에 촉촉해진 그 입술에 가 닿았다.
차가웠던 물기가 미지근한 온도로 변할 때까지, 입술을 맞댄 그 짧고도 긴 시간이 내게도 변화를 일으켜줄 수 있을까, 기대하며.
감싸 잡은 작은 손끝이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가까이 맞닿은 뺨 위로 물방울이 한 줄기 떨어져 흘러내렸다. 혹시 눈물은 아닐까. 아마 그건 아닐 것이다. 눈을 감은 아이의 속눈썹 위에 내려앉아 있던 작은 물방울이리라,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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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풀이에요 여러분 ;ㅅ;
오래 기다리셨죠... 현생이 쉽지 않네요... 휴ㅠㅠ
늦어도 조금씩 조금씩 올릴 테니까 걱정들 마시와요! 사랑합니다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