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성
9
"꿈에서 깨는게 꼭 괴로워야할까?" 그녀가 나간 후, 민형의 첫마디에 일제히 시선이 집중됐다. 그 또한 꿈 속의 사람이니, 그동안 괴로워하던 그녀의 모습을 보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민형은 궁금증과 더불어 확고하게 말을 이었다. "자다가 일어나는거잖아. 우릴 꿈꾸다 일어나는건데. 맨날 올 때마다 말하잖아. '너네 보고싶어서 오늘도 일찍 잤어' 라고.""원인이 우리면, 끝도 우리여야지." 하자드에 가보자. 마지막 말에 그를 보던 모두가 탄식을 내뱉었다. 두렵단 뜻이었다. 민형이 이 말을 내뱉을 당시엔 태일 말고 '천러'라는 존재를 다들 모르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하자드에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몰랐다. 묵묵히 이 상황을 듣고만 있던 재현이 입을 열었다. "하자드도 그 아이꺼야. 너가 함부로 건들 수 없는 거라고." "그러면 저렇게 힘들어하는거 계속 두고봐?" 민형의 말에 그 누구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녀가 괴로워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았으니까. 누구보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잠들고 있을 그녀가 자신들로 인해 힘겨운 꿈을 꾸어선 안되니까. "잊더라도, 우릴 다 잊더라도. 편하게 보내줘야 내 맘이 놓일 것 같아." "........" "너네가 같이 안갈거라면, 나 혼자서라도 갈거야." 민형이 그 말을 끝으로 방을 나갈 때까지 도영은 그 어떤 말없이 길게 뻗은 자신의 손가락과 손톱 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민형이 완전히 밖에 나가버리고 방 안이 조용해질 때 쯤엔, 혼자 이 상황이 재밌어보인다는듯 씩 웃어보였다. 오랜만에 이들과 어울려 평소처럼 지내려 했건만, 우연찮게 기회를 잡았다 생각한 그였다. 그 뒤로 아무도 말이 없자, 도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안가면 마리한테 혼날게 뻔해서. 먼저 가볼게." "..... 이 상황에 마리가 중요해?" 어이없는 말투로 재현이 툭 쏘아붙이자, 싱긋 웃고있던 도영의 표정이 순간 차갑게 식었다. 그리고 살짝 풀린 눈을 하며 재현에게 답했다. "마리는 창조주의 친구야. 그 누구보다, 소중히 아끼는. ... 그러니 중요해. 걔가 좋아하니까. 걔가 아끼니까 중요해." 도영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문고리를 잡아 올렸다. 그리고 재현에 들으라는 식으로 말을 남기며 방을 나갔다.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마리!!!" "웬일로 일찍 오셨네요?" 마리. 최마리. 그녀는 Fuzzy 왕국의 왕자 도영의 비서이자, 도영이 마법으로 만든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마리인 이유는 간단했다. 창조주의 친구가 분홍색을 좋아하는 마리였기에. 조금이라도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만들어놓고 싶던 도영이었다. 마리는 어떤 날에 도영에게 창조주였으며, 어떤 날엔 외로움을 달래줄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늘 그의 옆에서 그만을 바라보며 따끔하게 조언해줄 수 있는 여자였다. "마리 보고싶어서 일찍 왔지." "됐어요. 방이나 들어가보세요. 뭐 잔뜩 왕자님 앞으로 와있던데요." 그런 마리와의 짧았던 도착 인사를 마치고, 이어진 마리의 말에 도영이 흥미롭다는 미소를 띄었다. "아, 오늘이 그 날이었던가?" ".... 그 날이요?" "아, 마리는 몰라도 돼. 그리고 내 방 안으로 오늘 하루 누구도 들이지마." "네? 또 무슨 사고를 칠," "대답." "....... 위험한건 안돼요." 위험한거라... 고개를 갸우뚱하던 도영은 알겠다는 대답대신 늘 그가 얼렁뚱땅 넘어갈 때 쓰는 수법을 쓰기 시작했다. "알지? 내가 마리 많이 좋아하는거." "...... 몰라요, 그런거." "그럼 부탁해!" 부탁해! 라는 무책임한 말만 남기고 방 문을 쾅 닫고 들어온 도영은, 자신의 서재 책상 위로 잔뜩 쌓여있는 정체불명의 것들을 활짝 웃으며 맞았다. 도영은 익숙한 손길로 [CAUTION!] 으로 도배되어있는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상자 속엔 마법서적으로 보이는 두꺼운 분량의 책과 함께 검푸른 색의 용액으로 가득찬 병들이 나란히 세워져있었다. "하자드 문은 내가 닫아, 민형아." "... 그리고 그 문 너머로는, 너만 들어가게 될거야." 검푸른 수면 위로 비춰지는 도영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어둡고, 차가웠다.
구름성 (Cloud-Castle) 하자드 문이 닫히기 하루 전날 밤. 나의 꿈 속 세계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냉기가 가득한 밤이었다. 다들 밉다고 뛰쳐나오긴 했지만, 진심으로 말한 건 아니란 것 쯤 다들 알거다. 되려 미안해하고 있을지도 모를 터였다. 그걸 너무나 잘알아서 스스로에게 화나는 밤이었다. 멍하니 창문 밖을 보고 있는데 나의 세계라 그런가, 늘 분홍빛과 보라빛이 섞여있던 하늘은 검푸른 색으로 변해있었다. 우울하다는게 이런건가. 어른들이 자주하던 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트레스 받아. 우울해. 뭐 이런 감정들. 똑똑, -. "들어가도 될까?" 한참 생각하던 것도 잠시, 방 문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와 민형의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자동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냥 민형이라고 한다하면, 왠지 모르게 빨리 마중나가고 싶었다. 기분이 어떻든 간에, 그냥 보고싶었다. "괜찮," "왜 이제서 와." 문이 열리고, 난 그대로 민형이를 안아버렸다. 그는 내가 태일에게 바랐던 대답보다, 더 다정하게 날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늘 내 생각보다 한 발짝 앞서서 날 보고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세계 속 첫 사람이 민형이라서, 그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안고있는 지금도 마찬가지. 그는 자기를 안고있는 날 밀쳐내긴 커녕 더 꼭 안아줬다. 중간중간, 등을 토닥여주기도 했다. "속상했지." 역시. 이럴 때마다 위로해줄 사람은 그 뿐이다. 다정하게 내 감정을 알아채고 말해줄 사람은 민형이 너 뿐이었어. "하늘이 까맣게 변했어. 한번도 이런 적 없는데." "....... 미안해." "뭐가 미안해. 나는 까만 하늘도 좋아. 처음보는 풍경이잖아. 별이 더 잘보이던데, 같이 볼까?" 다른 말없이 그는 그대로 나와 창가로 향했다. 둘이서 창가 옆 침대 끝에 앉아 보는 까만 밤 풍경은 더이상 우울해보이지가 않았다. 민형이 말대로 별이 더 잘보였고, 검푸른 하늘은 그것대로 멋있었다. 한동안 하늘에 집중하고 있는데,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민형이와 눈을 맞췄다. 오로지 달빛으로 비춰진 그의 얼굴을 나 또한 물끄러미 바라봤다.
".........." ".........." 쿵, 쿵. 가슴 한 켠에서 무언가 빠르게 뛰는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꼭 감고 그대로 그의 볼에 입맞췄다. 볼에 입술을 떼자마자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막 좋아서 아무것도 못하겠는 기분, 아 그거였다.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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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댓글로 아직까지 구름성을 기억하고 찾아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 드리고 싶어요 ㅠㅠ 얼른 구름성 나머지 이야기까지 끝맺음하고 구름성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 보여드리고 싶네요❤️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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