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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오월의 소년 14 | 인스티즈


 

오월의 소년 














14-01







"시험 앞두고 요새 도난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니까, 문단속 철저히 하도록."





아침 조회 시간. 담임선생님께서 간단히 전달사항을 말씀하시고 반을 나가시자마자, 반 곳곳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다들 힐끔힐끔 나를 돌아보는 게, 나에게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일게 분명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돌아보는 친구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 서랍 속에 손을 넣었다. 무릎 위로 서랍 안에 든 책을 꺼내어 놓고 하나, 하나 세어보았다. 내가 두었던 상태 그대로였다. 혹시나 몰라 책을 펼쳐 손상된 페이지가 있나 살펴보았지만, 멀쩡한 상태였다. 안도감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찢긴 교과서와 참고서는 총 두 권이었고 전체가 망가진 게 아니라 일부가 망가졌기 때문에, 친구들의 책을 빌려 복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엄청나게 큰 타격을 입진 않았단 거였다. 일부만 망가졌으니 충분히 복사를 해서 엉망이 된 부분을 메울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궁금한 건 대체 누가,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하느냐는 거였다. 왜 그랬는지 정확히 몰라도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한 짓이라는 건 분명했다. 





"진짜 큰일이다. 시험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러게……."

"저번에 그러고 나서 또 그런 일 없었지?"

"응. 요샌 좀 잠잠하더라."





오늘은 금요일. 오늘하고 주말이 지나면 바로 시험을 치는 날이었다. 그때 이후로 또 며칠 바짝 긴장했지만 또 그런 일은 없었다. 여기서 그만두면 좋을 텐데.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러면 좋겠다. 오늘만 넘기면 이제 시험이니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될 텐데. 사실 이번 시험기간이 평소보다 훨씬 힘든 기간이긴 했다. 내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김태형 공부도 봐줘야 했고, 늘 유지해오던 패턴이 깨졌었다. 평일 오후 시간 대부분을 반으로 나누어 김태형을 가르쳐주는데 할애했고, 주말에도 몇 번 만났으니까. 내가 도와주겠다는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아무튼 전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했어야 되는 거였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책을 누군가 의도적으로 망가뜨리는 일이 여러 번 일어나니까 신경이 안 쓰이는 게 이상한 거였다. 범인이 만약 내가 시험공부를 못하게 방해하고 싶었던 거라면, 어쨌든 반은 성공한 거다.





"사물함 건든 거 보면 무조건 우리 반인데. 우리 반에 그럴만한 애가 있나?"

"에이, 설마……."

"야, 김여주. 너는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보는 경향이 있어! 누가 알아, 범인이 얘일지."

"야, 미쳤냐? 네가 범인이지!"

"아니거드은!"





무조건 우리 반인데. 턱을 메만지며 친구가 하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에이, 설마 하고 대답하자 친구는 주먹을 쥐고 책상을 쿵 내리쳤다. 세상은 네 생각보다 아주 드럽단다. 누가 알아, 범인이 얘일지. 바로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를 가리키며 하는 말에, 장단을 맞춰 의심스럽단 표정을 지으며 친구를 올려다보자 친구는 억울하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친구 둘이서 헤드록을 걸고, 티격태격 대는 걸 지켜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진짜 친구 말대로 범인이 우리 반에 있을까. 아무리 봐도 그럴 애는 없는데. 또 이렇게 말하면 친구는 핀잔을 줄 것이다. 그럴 애, 안 그럴 애 누가 구분 지어놨냐? 사람 속은 아무도 모른다구. 그래도 괜한 의심은 하기 싫은 게 내 기분이었다.





"근데 범인이 누군진 몰라도 진짜 간 크다, 어떻게 이과탑한테 난동 부릴 생각을 하냐."

"그니까. 야, 혹시 박영희 아냐? 저번에 너한테 노트 빌려달라고 했는데 우리가 막아줬잖아."

"난 그냥 빌려주는 것도 괜찮았는데."

"걔 맨날 수업시간에 자는데 뭘 빌려줘, 그런 양심 없는 애들한테 네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자꾸 빌려주니까 우리가 막아준 거지."

"영희가 그런 짓을 하진 않았을 거 같은데……."

"하긴, 쟤 하루 종일 자잖아. 그리고 영희 성격에 그런 짓 절대 못해."





박영희 아냐?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소곤 묻는 말에 고개를 들어 앞쪽 자리에 앉은 영희를 바라보았다. 늘 그랬듯 책상 위에 엎어져서 자는 뒷모습을 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희가? 친구들 말대로 얼마 전에 영희가 내게 노트를 빌려달라고 한 적은 있다. 난 그냥 빌려주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친구들이 어디서 날로 먹으려고 하냐며 막았었지. 내 생각에도 영희는 아니다. 나한테 노트 못 빌리니까 바로 실장한테 빌렸으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반엔 딱히 나한테 그런 짓 할 애가 없는데……. 괜히 심란해져 혼자 생각에 빠져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오늘이랑 주말만 지나면 바로 시험인걸. 더 이상 신경 쓰지 말자.





"야, 근데 오늘 5교시에 체육 한다며?"

"자습 아니었어?"

"수행 평가 시수 밀린다고 오늘 해야 된대."

"근데, 뭐. 계속 교실에 앉아있으면 답답하긴 해."





이내 복잡한 생각을 버리고 친구들이 하는 대화를 들으며 웃었다. 그래, 가끔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그래야 머리가 잘 돌아가. 한마디 덧붙이며 책을 덮었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오늘만 잘 버티고 싶다. 







14-02







"여주야, 다 갈아입었어?"

"어, 이제 나가자."





점심시간, 곧 5교시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풀린 운동화 끈을 꽉 묶었다. 확실히 날이 쌀쌀해져서 긴 체육복을 꺼내 입어야 했다. 친구와 팔짱을 끼고 수다를 떨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며칠째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자습만 하다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본관 로비 계단으로 내려와 체육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문득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한 무리의 남자애들이 보였다. 쟤네도 체육인가? 체육복을 입고 있는 차림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시험 전주엔 체육 수업 잘 안 하는데, 우리 반처럼 수업 시수가 모자란 반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걸어갔다. 걷다 보니 점점 그 애들과 나의 거리가 가까워졌고, 아무 생각 없이 선두에 선 남자애를 힐끔 바라봤을 때, 나는 내 눈에 들어온 익숙한 얼굴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 저절로 떨어진 내 입보다 먼저 그 남자앤 내 이름을 불렀다.





"어, 김여주!"

"너네 체육 해? 자습 안 하고?"

"원래 자습이었는데 우리가 쌤한테 졸랐지. 자습 지겹잖아. 축구나 하려고. 근데 너네는?"

"우리 수행평가 시수 부족하다 그래서."

"아아, 근데 너."





그 남자앤 당연히, 축구공을 옆구리에 낀 김태형이었다. 뒤따라오던 제 반 친구들에게 눈짓으로 가란 말을 하고, 김태형은 내 앞에 멈춰 섰다. 요새 날씨가 부쩍 쌀쌀해졌는데 까만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원래 자습인데 축구하고 싶다고 졸랐다니. 역시 남자반은 여자반이랑 좀 다른가. 우리 반 같았으면 자습을 하자고 졸랐을 텐데. 얼굴에 미소를 띄고 대화를 나누던 김태형은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미간도 조금 좁히고. 짐짓 심각해 보이는 표정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김태형은 허리를 숙여 내 얼굴에 눈높이를 맞추더니 말했다.





"너 어디 아파?"

"어? 아닌데?"

"뭔가 묘하게 안색이 안 좋은데. 그치, 친구야."

"어? 아, 아까 여주 머리 아프다고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너 어디 아파?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며 하는 말에 부정의 대답을 하자, 김태형은 제 턱에 손을 대더니 뜬금없이 내 옆에 서 있던 친구에게 물었다. 그치, 친구야. 아, 맞다. 내 친구 나랑 김태형이랑 대화할 때 옆에서 되게 뻘쭘했겠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친구를 돌아보자, 친구는 당황했는지 나와 김태형을 번갈아 보다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아까 여주 머리 아프다고 그랬는데. 점심시간에 살짝 어지럽고 두통이 오긴 했다. 지금은 좀 괜찮아졌는데. 분명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랬던 게 뻔하고. 그 말을 듣고 김태형이 눈썹 한쪽을 치켜올리며 날 바라보기에, 난 손사래를 쳤다. 지금은 괜찮다니까!





"야, 빨리 축구하러 가. 공이 없는데 어떻게 축구를 하냐."

"지금은 괜찮다니까 뭐……. 아프면 약 먹어."

"알아서 잘 먹어. 얼른 가! 우리도 빨리 가야 돼."

"그래, 좀 이따 보자."





진짜 별거 아닌데, 요새 나에게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이 신경쓰이는건지 김태형은 멈춰서서 말을 덧붙였다. 아프면 약 먹어. 톡톡, 내 머리에 손을 얹는 김태형에 고개를 살짝 뒤로 빼고 황급히 말했다. 알아서 잘 먹어. 왜인지 모르게 약을 먹으란 그 말이 낯간지럽게 들려서였다. 김태형은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듯 보더니 어깨를 으쓱이곤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운동장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을 힐끔 보다가 돌아섰다. 아, 뭔가 이상해. 막 목구멍이 간질간질거리는. 목감기에 걸린건 아닐테고. 무엇인지 모를 기분에 입을 꾹 다무는데 옆에서 내 팔짱을 낀 친구가 말했다. 야, 거의 썸남이네, 썸남이야.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친구를 돌아보자, 베시시 웃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뭔 소리야!"

"전부터 낌새가 영, 쟤가 널 좋아하거나, 네가 쟬 좋아하거나, 쌍방이거나 셋 중 하나야."

"야, 쟤가 왜 날 좋아해!"

"왜, 우리 여주 똑똑하고 이쁘잖아! 김태형이 좋아할 만 하지."

"뭐라는 거야. 아무튼 아냐."

"거의 멘트가 남친급이구만. 아프면 약 먹어,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뒷말은 한적 없거든!"

"차마 티를 낼 수 없어서 뒷말을 삼킨 거지. 난 쟤 마음의 소리를 다 들었어."

"야, 아니라니까!"





또, 또 이런다. 쟤가 널 좋아하거나, 네가 쟬 좋아하거나, 쌍방이거나 셋 중 하나야.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열심히 저으며 부정을 했다. 절대 아냐, 진짜로. 나랑 김태형은 그냥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사이잖아. 그냥 어쩌다 보니 좀 친해졌고, 어쩌다 보니 비밀을 좀 많이 공유했고. 그냥 딱 그 정도 사이인데. 심장이 쿵쿵거려서 숨을 크게 쉬었다. 갑자기 막 덥고 그러네. 쟤가 생긴 건 좀 양아치스러워도, 아니 실제로도 좀 노는 애긴 한데. 그런 애 치고 되게 착한 데다 속도 깊고, 동물도 좋아하고, 나를 좀 챙겨주는 것 같긴 한데 그건 그냥 나한테 요새 험한 일이 생겨서 그런 걸테고. 맛있는 것도 좀 많이 사주긴 하는데. 하여튼 아닌 건 아닌 거다. 아무튼 아니야. 하지만 내 부정에도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놀리는 투로 말했다. 에이, 내가 보기엔 아닌데.





"보통 친구 사이가 그렇게 다정하진 않거든."

"다정하긴 뭐가 다정해, 쟤가 얼마나 날 놀리는데."

"관심이 있으니까 놀리는 거지."

"아, 아니야!"

"넌 모솔이라서 몰라. 난 딱 촉이 오거든."





다정은 무슨! 내 끊임없는 부정에도 친구는 절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말도 안 돼. 김태형이 날 좋아해? 내가 김태형을 좋아해? 서로 좋아한다고?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인데. 갑자기 얼굴이 왜 이렇게 후끈거리는 건지. 왜 자꾸 숨이 찰 만큼 심장이 두근거리는지 모르겠다. 먼저 체육관 쪽으로 뛰어가버리는 친구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몰라, 그냥 말도 안 되는 소릴 들어서 그래.







체육 수업은 생각보다 헐렁했다. 시험 바로 전주라 그런지 선생님도 수업시간을 꽉 채워 활동을 시키실 생각은 없으셨나 보다. 선생님은 농구공을 들고 와서 드리블 연습을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우리가 무얼 하든 딱히 신경 쓰지 않으셨기 때문에 대충 연습을 해도 상관없었다. 대부분이 초반에 몇 번 연습하다가 이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곤 했다. 나 역시도 친구들과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보니 금방 시간이 흘러 종이 치는 시간까지 10분을 남겨놓고 있었다. 어차피 여기 앉아 있어 봤자 할 일도 없는데 일찍 교실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친구 역시 그렇게 느낀 모양인지 선생님께 다가가 말했다.





"쌤, 10분 남았는데 지금 교실 올라가면 안 돼요?"

"에이, 안돼. 너무 많이 남았어."

"아, 쌔앰. 저희 월요일에 시험인데."

"그럼 들어가는 대신 조용히 들어가라, 아직 수업 중이니까."

"쌤 감사합니다! 시험 끝나고 뵈요!"





지금 교실에 가면 안 되냐는 친구의 말에 선생님은 시간을 확인하시더니 안된다고 말씀하셨지만, 친구가 한 번 더 조르듯 말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락해주셨다. 원래 일찍 마쳐주시는 분이 아닌데, 시험이 코앞이다 보니 맘을 너그럽게 쓰신듯 했다. 친구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선생님께 고개를 꾸벅 숙였고, 빨리 가자며 자리에 앉아있던 내 손을 잡아끌었다. 우리 1등으로 가자! 일단 왜 1등으로 가야 되는진 모르겠지만 친구는 제일 먼저 반에 도착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나는 순순히 일어나 친구를 따라갔다. 뒤에서 함께 앉아있던 친구들이 함께 가자며 소리를 질렀지만 친구는 아랑곳 않고 내 팔짱을 꼈다. 왠지 모르게 반에 1등으로 도착하면 기분이 좋단 말이야. 그러면서.


그렇게 친구와 수다를 떨며 계단을 오르는 것도 잠시, 우리 반이 있는 복도 앞에 도착하자 친구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자리에 멈춰 섰다. 왜 그러느냐는 뜻으로 친구를 바라보자, 친구는 울상을 짓더니 말했다. 빨리 온다고 주번한테 열쇠 받아오는 걸 깜빡했네. 아, 맞다. 열쇠. 어쩐지 허전하다 했다. 친구는 복도 저만치에 있을 우리 반 쪽을 보며 한숨을 작게 쉬다가 말했다. 내가 빨리 가서 주번한테 열쇠 받아올게.





"너는 먼저 교실에 가있어."

"응? 같이 가자."

"아냐, 귀찮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그냥 문 앞에 있어."

"그래, 빨리 갔다 와!"





제가 빨리 가서 열쇠를 받아오겠다며 발걸음을 돌리는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지만 친구는 혼자 가도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진짜 같이 가도 되는데. 친구가 돌아가는 걸 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곤 천천히 복도를 걸어갔다. 뭐, 우리가 좀 빨리 오긴 했는데 다른 애들도 뒤따라 오고 있었으니까 금방 열쇠 받아서 오겠지. 점점 우리 반이 가까워지고 나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근데 오늘 주번이 누구였더라. 그게 아마…….


달칵. 아무 생각 없이 반에 도착해 문 손잡이를 건드린 순간, 손잡이는 힘없이 돌아갔고 천천히 열렸다. 어라, 분명 잠그고 나왔을 텐데. 문이 왜 열려있지? 그런 생각을 하며 무의식적으로 천천히 교실 안으로 들어갔고 바로 교실 뒤편에 선 누군가를 발견했다. 불이 꺼진 교실, 교실 뒤편에서 등을 보이고 서있는 짧은 단발머리를 한 아이. 햇빛에 그 여자애의 안경에 닿아 반사되면서 빛을 냈다. 내가 들어왔다는 것을 모르는 건지 그 앤 뒤돌아서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열심히 찢고 난도질하고 있었다. 바닥에 종잇조각이 흩날리든 말든, 미친 듯이 손으로 책장을 뜯어내고, 어린아이가 벽에 낙서를 하듯 마구잡이로 책에 빨간 칠을 했다. 누가 왔는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열중하며, 숨까지 헐떡이면서. 그리고 난 불현듯 깨달았다. 그 애의 뒤로 열려있는 사물함이 나의 사물함이고, 그 애가 망가뜨리고 있는 책이 나의 책임을 깨달았을 때. 그때, 누가 목을 조르듯 숨이 턱 막혀오는 걸 느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숨이 너무 막혀서, 머리가 핑 돌아서 이대로 가다가는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제자리에 서있어 보려고 했는데,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발을 헛디뎠다. 탁, 내 발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에 그 앤 열심히 책을 찢어내던 손을 멈췄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런 표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날 봤다. 식은땀이 맺힌 이마를 마른 손으로 닦아내고, 발에 힘을 주어 섰다. 그리고 똑바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책상 사이로 걸어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리고 그 애 앞에 멈춰 서서 그 애의 손에 들린 걸 내려다보았다. 갈기갈기 찢어진, 분노와 악의가 잔뜩 담긴 말들로 물든 책. 꽉 막혔던 목에서 한숨과 비슷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체 왜, 네가 왜 나한테.





"너 뭐 하는 거야?"

"……."

"뭐 하는 거냐니까, 실장."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날 멍하니 바라보는 그 얼굴에게, 입술을 꾹 깨물고 물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넘기고,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린 그 앤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너무 익숙한 얼굴이었다.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에, 내겐 매일 먼저 인사를 건네던 애였다. 내 책이 망가진 걸 보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담임선생님께 대신 말씀드려도 될지를 물어보던 애였다. 무엇보다, 우리 반 실장이잖아 너는. 네가 어떻게.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은, 의심의 범주 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애였는데. 너무 빼도 박도 못하게 범인은 실장이라고, 그동안 날 힘들고 지치게 했던 모든 사건의 범인이 내 앞에 서있는 이 애라고 모든 상황이 말해주고 있었다.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입술을 피가 날 만큼 세게 깨물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는데, 지금 내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충격적이라 입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내 책 망가뜨린 거, 다 네가 한 거야?"

"……원래 체육쌤 수업 정각에 마치는데. 오늘은 일찍 마쳐줬나 보네."

"묻잖아, 네가 한 거냐고."

"다 봤으면서 뭘 물어. 그럼 내가 했지, 네가 했겠어?"

"……뭐?"





그래도, 그래도 확실히 확인하고 싶어서 정말 네가 한 짓이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네가 한 게 맞다고? 실장은 평소에 보던 실장의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일말의 죄책감과 미안함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쌀쌀하고 날카로운 말투로 피식 비웃음을 내뱉는 모습에 두 팔에 소름이 끼쳐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내가 알던 그 애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안 들킬 수 있었는데, 아깝네. 혼자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손이 덜덜 떨렸다. 분명 넌 이런 애가 아니었잖아, 사이가 안 좋았던 것도 아니고 넌 오히려 나한테 잘해줬는데.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했다. 대체 왜 그런 거야?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말에 실장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 날 바라보았다. 정말, 내가 싫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어라 말하려 그 애가 입을 여는 순간, 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돌렸고, 막 앞문으로 들어오는 친구와 눈이 마주쳤다.





"여주야, 열쇠 실장이 가지고 있다던……, 뭐야?"





친구는 평소처럼 웃으며 말을 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표정을 굳혔고,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이윽고 꺼져있던 교실 전등이 켜지며 다른 아이들이 교실로 우르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숙인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주먹을 꼭 쥐었다. 있는 힘껏, 손바닥에 빨간 자국이 날 때까지 꽉 쥐었는데도 떨림이 도저히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웅성이는 소리가 점점 커져 내 귓가에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가장 먼저 들어왔던 친구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고, 순간 윙윙거리던 것이 멈추고 정신이 확 들었다.





"야, 그동안 여주 괴롭히던 거 너였어? 너 미쳤냐?"

"뭐? 쟤가 범인이야?"

"실장이 그랬다고?"





어느새 친구들은 나와 실장 주위를 둘러싸고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웅성대고 있었고, 멍하니 내려다본 실장의 손은 여전히 엉망이 된 내 책을 쥔 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까 어쩐지 안 보인다 했더니, 너 또 이딴 짓 하고 있었어? 친구는 가까이 다가와 그 애의 손에 들린 내 책을 확 뺏어갔다. 여주야, 괜찮아?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감싸 쥐며 걱정스럽다는 말투로 무어라 말을 했지만 들리지가 않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종잇조각들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들어 실장의 눈을 바라보았다. 너 아직 대답 안 했잖아.





"너 나한테 왜 그런 거야?"

"아직 모르겠어? 니가 싫으니까."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왜 싫어?"





니가 싫으니까. 정말, 딱 내가 너무 싫어서 당장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눈으로, 이를 악물고 대답하는 그 애의 모습에 옆에 서 있던 친구는 화가 났는지 달려들려 했다. 그런 친구의 손을 붙잡아 멈추고, 한숨을 길게 내쉰 뒤 물었다. 내가 왜 싫어?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너에게 나쁜 짓을 한 적도, 못할 짓을 한 적도 없는데 너는 내가 왜 그렇게 싫은 거야? 그렇게 못된 짓을 할 만큼 내가 싫었던 거야, 왜. 그 앤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어버리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너무 싫어. 너같이 이기적인 애를 왜 다들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

"좀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애들이 관심 가져주니까 좋아? 거기에다 공부까지 잘하니까 기고만장하지? 세상이 다 네 편 같고 그렇지?"

"너, 무슨……."

"아아, 맞다. 너 김태형도 옆에 달고 다니지. 인기 많고 잘생긴 애 데리고 다니니까 우쭐해? 다들 부러워하니까, 우월감 느껴지고 좋겠다. 응?"





아무것도 보기도, 듣기도 싫다는 듯 주먹을 꽉 쥐고 무섭게 마구 쏘아대는 그 애의 모습에 다시금 머리가 핑 돌았다. 내가 정말 잘못한 건가? 내가 그렇게 질책 받을 만큼 이기적인 사람이었나? 수많은 생각들이 거미줄처럼 내 모든 것을 휘감아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교실은 싸해졌고 모두가 숨을 죽이고 나와 그 애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 앤 숨을 헐떡이더니 분을 이기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나는 너 같은 애들 잘 알아, 지 잘난 거 믿고 남 무시하는 애들. 너 나 무시하잖아, 나 같은 거 실장으로도 안 보이지? 다 알아, 나는."

"야, 미쳤어? 피해 의식 있냐?"

"닥쳐! 넌 끼어들지 마. 니들도 그래. 내가 실장인데! 너넨 궁금한 거 있어도 다 김여주한테 묻더라, 응? 난 필요할 때만, 귀찮은 일 시킬 때나 찾고 평소엔 개무시하잖아. 내가 실장이야, 김여주가 아니라. 니들이 믿고 따를 사람은 얘가 아니라 나라고!"

"……."

"니가 너무 싫어. 행복하다는 듯이 웃고 있는 것도 꼴보기 싫어 죽겠어. 니가 뭔데 내가 못 가진 걸 다 가지고 있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악을 쓰듯 소리를 질러가며 하는 말에 숨이 막히고 손이 벌벌 떨렸다. 내가 싫대. 내가 행복해 보여서 싫대. 내가 웃는 것도 싫고, 다 꼴보기 싫어 죽을 것 같대. 정말로, 내가 너무 싫어서 당장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눈으로 그렇게, 그 앤 소리쳤다. 친구가 끼어들려 하자 실장은 경기를 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고, 지켜보던 아이들은 그 애에게 질릴 대로 질린 건지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려 하지 않고 조용히 나와 그 앨 지켜보고 있었다. 그 앤 헐떡이던 숨을 고르더니 안경을 추켜올리고 충혈된 눈으로 날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넌 어차피 다 가졌잖아. 이깟 책 좀 망가져도 되잖아. 니 친구들이 다 빌려줄 텐데, 이깟 책 하나 없는 게 뭐가 어때서."

"……뭐?"

"이때까지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살아와서 넌 내가 너 볼 때 어떤 기분인지도 모르겠지. 그러니까 느껴봐야 돼. 너도 힘들어봐야 돼. 난 잘못 없어. 다 니가 잘못한 거야, 니 잘못이야!"

"아니, 니 잘못이야."





그냥 멍했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화인지 슬픔인지도 모른 채 멍하니 말하는 그 앨 봤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데, 가슴께가 욱신욱신 쑤시듯이 너무 아파서, 차마 입을 열지도 못한 채로 그 애가 하는 말을 모조리 받아내고 있었다. 자기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는지 내가 느껴봐야 하는 거라고, 모든 건 내 잘못이라고, 그렇게 말했다. 이제껏 항상 웃는 얼굴로 날 도와주고 친절하게 대해주었으면서, 속으로는 내가 너무 미웠대. 너무 미워서 내가 힘들길 바랐대. 그렇게 내 잘못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그 애의 말을 끊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내가 너무 잘 아는, 중저음의 목소리. 아니, 니 잘못이야. 바로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 니가 잘못한 거야."

"김여주 니, 니가 불렀지."

"그만해. 너 그거 열등감이고, 피해 의식이고, 질투야."

"……."

"이기주의 같은 소리하고 있네. 얘가 착해빠졌으면 착해빠졌지 남 무시하고 못되게 굴 애 아닌 거 여기 있는 사람 다 알아."

"아, 아니야. 아니라고!"

"그냥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을 해. 니가 못난 걸 왜 얘 탓을 해."





뒷문 앞에 서서 잔뜩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건, 김태형이었다. 내게 너무 익숙한 그 목소리에 순간 무언가 왈칵 터질 것 같아서 손을 꽉 쥐었다. 김태형은 한 번도 못 본 눈을 하고선,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표정을 하고선 뚜벅뚜벅 이쪽으로 걸어와 내 옆에 섰다. 웅성이는 소리로 가득했던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김태형은 싸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그 앨 내려다보며 말했다. 니가 못난 걸 왜 얘 탓을 해. 평소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차갑고 날이 선 목소리로 낮게 말하는 김태형의 목소리에 그 앤 하얗게 질려 덜덜 떨다가,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다 얘가 잘못한 거야! 난 아무 잘못 없어! 발악하듯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질러대는 그 애의 모습에 목 끝까지 차올랐던 게 정말 터져 나올 것 같아 속이 어지러웠다. 





"야, 정신 차려."

"……."

"지금 화나는 거 존나 참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멈춘 건 김태형의 한 마디였다. 힘없이 고개를 숙였고, 내 눈에 보인 김태형의 손은 나만큼이나 주먹을 꽉 쥔 채로 떨리고 있었다. 이를 꽉 물고 낮게 뱉은 날이 선 목소리에 그 앤 말없이 울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아니야.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쉴 새 없이 중얼거리며 나를 노려보는 빨갛게 충혈된 눈에, 순간 온몸에 힘이 빠져 몸이 휘청거렸고, 곧 고꾸라져 넘어질 뻔한 나를 옆에서 단단히 잡는 손길이 있었다. 괜찮아? 내 팔을 꽉 잡아 지탱하고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김태형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다시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섰다. 안되겠다, 양호실 가자. 양호실에 가자는 김태형의 목소리에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내 팔을 지탱해 뒷문으로 나가려는 김태형을 따라 힘없이 걸었다. 너무 한 번에 모든 걸 온몸으로 받아버려서, 걸을 힘도, 말할 힘도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걷다가, 문득 이렇게 그냥 가버리면 정말 영영 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그 애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동안 날 그렇게 생각했다는 거……, 나는 몰랐어. 근데."

"……."

"나 한 번도 너 무시하고 싫어한 적 없어. 나는 항상……, 항상 네가 착하고 좋은 애라고 생각했어."

"……."

"나 때문에 네가 힘들었으면, 진짜 미안해. 근데……,"

"……."

"그래도 그러지 말지, 그런 짓은 하지 말지."





멍하니 날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그 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겨우 뱉어내고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지 말지, 왜 그랬던 거야, 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아 황급히 뒤를 돌았다. 뒷문에 기대어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김태형의 얼굴이 보였다. 마주한 김태형의 얼굴이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걸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으면서, 억지로 눈물을 참아가면서.







14-03







"쌤 안계시네, 일단 여기 앉아있어."

"……응."





불이 꺼진 양호실엔 아무도 없었다. 그저 깨끗한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환한 햇빛이 양호실을 조용히 밝힐 뿐이었다.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아직까지도 심장이 쿵쿵거려 도무지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김태형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양호실 선반에서 약 상자를 꺼내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너 왜 우리 반 왔어? 내 물음에 김태형은 살짝 뒤를 돌아보더니 하던 일을 마저 하며 대답했다.





"너 아까 머리 아프다며. 이제 괜찮은가, 약은 먹었나 싶어서. 아, 찾았다."

"……."

"여기, 두통약. 물이랑 마셔."

"고마워."





내게 등을 보이고 대답을 하던 김태형은 찾던 약을 발견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김태형은 내가 걸터앉아있는 침대 앞에 놓인 보조 의자에 앉아 내게 종이컵과 캡슐을 건넸다. 캡슐을 받아들어 포장을 까려는데, 손에 힘이 빠져서인지 자꾸만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이리줘, 내가 까줄게. 그걸 가만히 보던 김태형은 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내 손에서 캡슐을 가져가 포장을 금방 벗겨냈다. 내 손바닥에 하얀 알약을 올려놓고 얼른 삼키라며 종이컵을 건네는 김태형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약을 삼켰다. 목구멍으로 알약이 넘어가면서 쓴맛이 입안에 맴돌았다. 





"아까 네 친구한테 말해놨으니까, 이번 교시는 그냥 여기서 쉬어."

"으응."

"눈 좀 붙여. 너 요새 제대로 잠 못 잤잖아. 응?"

"……."

"……김여주?"





분명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 끝났어. 날 괴롭히던 애가 누군지도 알았고, 왜 그런 짓을 했는지도 알았고, 내가 할 말도 했어. 그래서 이제 된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닌가 보다. 숨이 턱턱 막히고, 머리는 어지럽고, 심장을 누가 짓누르는 것처럼 쓰리고 아렸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괴롭게 한 사람이었다는 게 계속 나를 괴롭게 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김태형은 내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는지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더니 무릎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손을 힘을 주어 잡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밑을 내려다보자, 미친 듯이 덜덜 떨리고 있는 내 두 손이 보였다. 덜덜 떨리는 손을 김태형은 꽉 잡고 놓지 않았고, 떨림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간신히 떨림을 멈추고 나서야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여주, 내 이름을 부르는 김태형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멍하니 김태형의 손에 잡힌 내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여주, 여주야."

"응?"

"……괜찮아?"





내 이름을 거듭 부르는 목소리에 힘없이 고개를 들어 김태형의 눈을 바라보았고, 김태형은 가만히 날 보다 물었다. 괜찮아? 걱정을 담은 눈빛으로, 그렇게 김태형은 물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끝까지 차올랐던 무언가가 북받쳐 오르는 느낌에 입술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나는, 나는 있잖아. 너무 무서워. 나를 보는 김태형의 눈이 그냥 다 말해도 된다고, 털어버려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울음을 억지로 꾹 삼켜내고 겨우 입을 뗐다.





"진짜, 진짜 내가 잘못한 거야?"

"야, 무슨 소리야. 진짜 아니야. 너 잘못한 거 없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 힘들게 한 거잖아. 나 때문에 괴로웠다잖아. 그런 짓까지 할 만큼 내가 싫대."

"그게 왜 네 잘못이야. 무조건 걔 잘못이야. 신경 쓰지 마. 응?"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이기적이고 못된 애라고……."

"내가 말했지, 너 착해빠졌으면 착해빠졌지 나쁜 애 아닌 거 다 안다고."





진짜, 내가 그런 애일까 봐 무서웠다. 아직도 내 잘못이라며 소리 지르던 그 목소리와 표정이 눈앞에 생생해서. 진짜 내 잘못일까 봐, 정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를 줬을까 봐. 정작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내가 가진 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날 미워할까 봐. 그 애처럼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으론 날 죽일 듯이 싫어할까 봐. 그게 나는 너무 무섭고 아팠다. 울음이 계속 나올 것 같았는데, 눈물을 보이는 게 싫어서, 온갖 힘을 다 써서 참아내려고 입술을 꽉 물었다. 하지만 김태형은 아니라고 말을 해줬다. 다 그 애 잘못이라고. 넌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다고, 너는 착한 아이라고. 괜찮아, 응? 신경 쓰지 마. 아직 손을 놓지 않은 채로 거듭해서 위로하듯 하는 말에 순간, 아까부터 위태위태하던 수도꼭지가 팍 터져버렸다. 괜찮아. 그 한마디에, 꾹꾹 눌러왔던 울음이 터져 금세 눈가가 축축하게 젖었다. 또르르 흘러나온 눈물에 김태형은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안절부절못했다. 왜, 왜 울어.





"우, 울지 마. 어? 휴, 휴지가……."

"흐으……. 지, 진짜, 내 잘못 아닌 거 마, 맞아? 응?"

"맞아, 너 잘못한 거 하나도 없어. 그러니까 울지 마, 응? 울지 마."

"……."

"아, 왜 휴지가 없어. 아씨. 울지 마, 여주야."





한번 터진 울음은 멈출 수가 없었고, 눈물을 계속 줄줄 쏟아내는 나를 앞에 두고 김태형은 눈에 띄게 당황하며 주위를 살폈다. 휴지를 찾으려 온 사방을 뒤졌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다, 손을 어정쩡하게 내밀었다, 거두었다를 반복했다. 아씨, 결국 제 머리칼을 마구 헝클이며 김태형은 자리에 앉았지만 내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고, 오히려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그동안 눌러왔던 게 한 번에 터져버려서, 설움과 슬픔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와버려서. 김태형은 사정하듯이 울지 말라고 말하며 제 손톱을 물어뜯다가,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 대어 내 뺨에 얼룩진 눈물을 닦아내었다. 진짜 괜찮다니까, 응? 나 믿어. 계속 흘러나오는 눈물을 손으로 아프지 않게 살살 닦아내며 김태형은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이, 오히려 더 날 안심이 되게 만들어서, 진짜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확인해주는 것 같아서, 그래서 더 눈물이 났다.





"어, 어떡해야 돼. 내가 뭐 해줄까? 응? 울지 마, 진짜."

"누, 눈물이 계속 나는 걸 어떡해애. 흐어엉……."

"……그래. 울어, 그냥 지금 다 울고 다 잊어버려."





울지 말라는 김태형의 말에 엉엉 울며 계속 눈물이 난다고 말하자, 김태형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자리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다 울고 잊어버려. 아픈 거, 힘든 거, 다 쏟아내고 잊으라고. 그 말에 나는 온 힘이 다 빠지도록 엉엉 소리 내어 울었고, 김태형은 불안한 듯 제 입술을 연신 깨물다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살살 쓰다듬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하면서. 그렇게 마주 앉아서, 김태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서 그 어깨가 축축이 젖어갈 때까지 나는 펑펑 울었다. 네 말대로 다 잊어보려고, 다 쏟아내가면서. 나는 한참이나 그렇게 울었다. 
















*

안녕하세요 여러분! 너무너무너무 오랜만이라서 저를 까먹으셨다고 해도 전혀 할 말이 없는 티티입니다.

저번 편하고 이번 편 사이의 간격이 너어어어무 길었죠. 맨날 변명과 사과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ㅠㅠ...

오늘로서 기나긴 이번 에피소드가 끝났네요. 일단 이번 편은 제가 이 글 막 구상 시작 할 때부터 계속 생각했던 편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이번 시험 에피소드 자체가 오월의 소년 안에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에피고, 그 에피를 마무리하는 게 이번 편이기 때문에 굉장히 쓰는데 오래 걸렸어요.

몇 번을 썼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하고, 심지어 도중에 썼던 부분 일부가 날아가기까지 해서 시간이 많이 소요됐던 것 같아요. 분량도 길어지구요.

더구나 복잡한 감정과 갈등 상황을 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려니 더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구요. 브금도 나름 신중히 골랐답니다. ㅎㅎ

그래도 결국엔 이렇게 이번 에피를 마무리 지을 수가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참 후련해요!ㅋㅋ

근데 전부터 범인을 실장으로 예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ㅋㅋㅋㅋ 그런 댓글을 볼 때마다 속으로 흠칫흠칫했답니다.

네, 결국 범인은 실장이 맞았답니다. 여주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가 잘못된 방향으로 표출된 것 같아요. 불쌍한 아이죠, 허허.

어찌 됐든 결론은 범인 잡았습니다! 더 이상 슬픈 이야기는 노노해요. 빠른 시일 내에 다음 화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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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뜌입니다ㅠㅠ 여주를 많이 힘들게했던 범인이 드디어 잡혔네요ㅠㅠ 옆에서 친구들이랑 태형이가 있어줘서 다행이에요ㅠㅠ 이번편도 정말 잘 읽고가요!! 글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2
으아ㅏ 범인 ... 진짜소름돋네요 근데 언제어디서든 나타나주는태형이 넘좋아요 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3
ㅈㅁ입니다❤
작가님 오랜만이에요 보고 싶었어요!!역시나 작가님의 글은 보는 내내 글 안에서 헤어나올수 없는 그런ㅠㅠ하 태형이 진짜 너무 다정함의 끝인거 같아요ㅠㅠ 이번편은 정말 여주곁에 있는 친구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여주 안색만 보고도 아픈지 눈치채는 태형이도 듬직한 그런 14화였어요 왠지 이번화의 계기로 둘사이의 관계도 크게 진전이 있을거라 봅니다!

6년 전
독자4
헐 범인이 실장인건 어렴풋이 예상할수있었지만 저렇게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서 여주탓만 할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요 그와중에 태형이와는 오묘한 분위기를 보이다가 이번 일로 감정적으로 큰 변화가 생기지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그 상황에서 태형이가 하나하나 다 정확하게 팩트로 날려버려서 진짜 이렇게 든든한 친구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여주가 제일 무섭고 서러울 상황이지않을까 싶었는데 딱 저렇게 대처해주고 보건실까지 데려다줘서 달래주는데 태형이한테 반했습니다ㅠㅠㅠㅠ진짜요ㅠㅠㅠ / 작가님 혹시 암호닉 받으시나요? 제가 못본건가 싶어서요ㅠㅠ 혹시 받으시면 [새벽별]로 가능할까요?ㅠㅠㅠ
6년 전
비회원78.31
청록입니다!!오늘은 분위기가 많이 무거운편인것같아요 점심때부터 머리가아픈상황에 이런일까지 일어나니깐 여주정말 혼란스러워서 어떡해요ㅠㅠ이게 차라리 모르는사람이 그런거라면 화만날텐데 자기가믿었던 자기와함께생활하는 반친구여서 배신감과 내가잘못했나 내실수인가등등 여러생각이들거예요 제가 여고였어서 진짜 이런비슷한일이 많았는데 겪어보면 오만생각이 다들어서 나자신이 싫어지는마음도 들게되는데 옆에서 태형이가 지탱해주니깐 든든하네요 이번일로 전보다 더많이 여주에게 태형이가 번지게 될것같아서 다음화가 기대됩니다!!작가님 항상 좋은글 써주셔서 감사하고 기다리고 응원하고있습니다♥♥
6년 전
독자5
[웅앵웅]
실장이 느낌 싸하다는 생각은 했는데 들켜도 여주 탓하다니 뻔뻔하네요 여주가 많이 상처받아서 걱정이네요

6년 전
비회원110.169
봉이 입니당
으아아 잘해결되서 다행이에여ㅠㅠ이걸 잘됐다고 말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하핫 자까님 너무 오랜만이에여ㅠㅠㅠ그리구 정말 탄탄하게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당~~ 빨리 시험끝난 소년과 소녀를 보고싶습니당~~~( 사실 속으로 범인은 실장... 범인은 실장,...그랬던 저...ㅋㅋㅋ

6년 전
독자6
으아아아 너무 좋아요 기분 좋은 설렘으로 가득해졌어요! 태형이 나타나준 게 너무 다행이에요 진짜. 여주의 버팀목 같달까.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해요 작가님.
6년 전
독자7
와.... 이번 글 진짜 푹 빠져서 읽었어요... 처음 시작 브금부터 어? 뭔가 아련아련하다.. 했었는데 ㅠㅠㅠㅠ
오늘 일로 여주의 힘든 일이 어떻게 해결됐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참아오던 걸 터트릴 수 있어서 다행인 거 같아요 ㅠㅠㅠㅠ 그리고 태형이가 위로해줘서 더 다행이구요 ㅠㅠㅠ
저 실장은 진짜 그저 다른 사람 시기밖에 할 줄 모르는 열등감에 빠져사는 사람이었네요 계속 제 탓이 아닌 남탓만 하는.. 불쌍하네요
이번 편은 뭔가 되게 깊게 와닿은 편인 거 같아요 ㅠㅠㅠㅠ
작가님 지금도 암호닉 받으시나요?
다음 글도 기다릴게요!

6년 전
독자8
저런친구들 꼭 있죠...ㅋㅋㅋ 어쩔 수 없으면서도 참.....ㅠㅠ 곁에 태형이가 있어서 다행이네요 실장 곁에 좋은 사람이 나타나기를....ㅎㅎㅎ
6년 전
독자9
자까님 오랜만입니다~~
꼭 저런애들 한명씩 있져....으휴...태태가 잘 위로해줫면...

6년 전
독자10
<해나>
뭔가 실장일 것 같았는데 진짜 실장이였네요 정말 태형이는 진짜로 다정하게 나오는 그런 것 같아요ㅠㅠㅠ 너무 설레는 ㅠㅠㅠ

6년 전
독자11
작가님ㅠㅠ이런 좋은글을 지금 봤다니ㅠㅠ정주행 하고 왔어요ㅠㅠㅠ좋은글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12
핫초코
실장이였다니.... 와...진짜 장난없다
실장 저러는거 아파보여 정신이건 마음이건 사람이 피폐해진 듯해보인달까
자기가 힘들걸 왜 남도 겪어야 하는지 진짜 소름돋는다
태형이가 위로해주니까 더ㅜ눙물이ㅠㅠ

6년 전
독자13
실장 뭔가 느낌이 싸하긴했는데 진짜 범인일줄이야.... 와 진짜 작가님 지금 1화부터 다 보고왔는데 너무 재밌어요 진짜진짜 너무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 태형이 너무 다정해서 설렌다구요ㅠㅠㅠㅠㅠㅠ
6년 전
독자14
실장일 줄 알았다 진짜 열등감에 똘똘 뭉쳐가지구 진짜 어휴 반 아이들이 다같이 봐서 다행이예여 잘 보고 갑니다 총총
6년 전
독자15
아오 ㅜㅜㅜ역시 실장이었어요 충격이다.. 소름ㅠㅠㅠ 그래도 잡아서 다행이긴한데 아오 진짜..... 어쩌려구 저런거야 근데 오늘 김태형... 아 진짜 세상에 저런 다정보스 스윗가이 진짜 설레요 너무 설레서 주글 것 같아요 아아아아아아 작가님 정주행 끝나떠요!!!! 오예 이제 같이 달려나가봅시다 암호닉 [태형]신청해도 되나요?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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