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끝에 나온 너의 대답이다. 마시고 있던 반쯤 남은 물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탁. 조용한 공간 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고개를 들어 김재환을 바라보자 눈이 마주쳤고, 왠지 모를 싸늘함에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야, 뭐라고 했냐? 김재환은 화내는 나를 무시하고 그 말을 남기곤 나갔다. 난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 걔가 나처럼 홧김에 말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헤어지자고 한 김재환 행동이 진심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이은지를 붙잡고 소주잔을 계속 비우고 있을 일은 없었겠지. 김재환에겐 그 날 뒤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김재환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을 때까지는 우리가 헤어졌다는 걸 모르고 그냥 연락을 기다렸다. 싸울 때마다 먼저 연락이 오는 건 김재환이었고, 불변의 법칙처럼 이번에도 당연하게 김재환에게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오지 않았다. 며칠 동안 기다린 나는 김재환에게 먼저 카톡을 보냈고, 온 답은 이랬다.
'우리 헤어졌잖아, 이제 연락할 이유 없어.'
난 멍하게 폰을 붙잡고 우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모든 처음이 너였고, 이별마저 네가 처음이었는데, 그냥 내 감정에 따라 아이처럼 울었다. '헤어졌잖아'라는 다섯 글자가 왜 이리도 슬펐는지, 그 글자가 온종일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양치하다가 눈앞에 다섯 글자가 보였다. '헤어졌잖아' 실감이 나지 않아서 양치를 세게 하다가 잇몸이 긁혀 피가 났는데 아프지 않았다. 더 큰 아픔이 진통제 역할을 해준 것 같았다. 진통제는 개뿔, 존나 아프다. 사실 너무 아파서 작은 아픔은 느끼지도 못하는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인 바람에 의해 움직이던 나뭇잎이 멈추고, 그렇게 나는 내 첫 이별을 겪었다.
이별을 실감하고 나서는 하루 일과 끝이 무조건 술을 마시는 거였다. 언젠가 인터넷에 구여친이 술 마시고 전화했다는 글을 보며 혀를 쯧쯧 찼던 기억이 있다. 처음 헤어지고 술을 마셨던 날엔 그 혀를 쯧쯧 찼던 일을 내가 했다. 술 마시고 김재환에게 오열하며 전화를 걸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통화 기록을 보고 침대에서 UFC만 몇 판을 치렀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구질 구질한 구여친의 끝판왕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페이스북에 있는 너의 흔적을 지웠다. 아무래도 헤어졌는데, 자꾸 남기면 쓸데없는 미련이 남을 것 같았다. 사진을 지우고, 연애 중이라 띄웠던 상태를 지웠다. 너를 지운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서툴렀던, 첫 연애의 완전한 끝인 것 같았다.
7년 사귄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 上 원래 이별이 이렇게 아픈 건가요?
w.소낙
야, 뭐냐 그 눈빛은···. 강의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은지의 아련한 눈빛에 묻자 은지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아, 고개는 왜 끄덕이는데! 등을 한 대 때리자 은지는 그제야 이상한 아련한 눈빛을 바꿨다. 강의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분위기가 이상하더라니, 아무래도 김재환하고 내가 깨진 게 소문이 난 탓인 것 같다. 하긴 그럴 만도 한 게, 김재환이랑 나랑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해서 22살인 지금까지 7년 동안 사귀어 온 커플인데, 그런 커플이 깨졌으니 아이들의 관심사가 쏠릴 만도 했다. 오히려 그런 관심이 날 더 아프게 했다. 왠지 김재환과 헤어졌다는 게 실감이 나서, 더 힘들었다. 하지만 강의실 한가운데에서 대놓고 초상이라도 치른 듯 세상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수는 없어서 애써 웃었다. 예전에 본 드라마에서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여주인공이 주변 지인들에게 애써 괜찮은 척 웃고, 뒤에서는 울었던 장면을 보았던 적이 있다. 그 여주인공과 내가 뭔가 겹쳐 보였다. 그저 영화 한 편을 찍는 거라 생각하고 싶다. 김재환이랑 나랑은 그냥, 7년 동안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한 편 촬영한 거고 우리가 헤어진 건 영화가 엔딩을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아, 내가 생각해도 나 좀 애잔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코를 훌쩍이고 있는데, 강의실 문이 열려 누군가가 들어오고 모든 시선은 그쪽과, 나... 에게로 쏠렸다.
"··· ···."
타이밍 진짜 좆같다. 진짜 우리는 영화를 한 편 찍고 있는 게 아닐까. 주연배우, 김재환과 성이름. 조연배우, 뽀삐.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소설에 나올 것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강의실 문 앞에는 김재환이 서 있었다. 나는 김재환을 쳐다봤고 김재환도 똑같았는데, 시선을 먼저 회피한 건 김재환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정말 당연한 일인데, 그냥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진 것 같다. 입술을 깨물었다. 비린 맛이 나기 시작하는데, 차라리 입술을 깨물어서 아픔을 느끼는 게 지금의 나에겐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야... 괜찮아?"
"어, 어? 응, 괜찮아."
"아니, 너 입술에서 피 나잖아."
사실 입술에서 피가 나는 건 애초에 알고 있었다. 그냥 김재환을 떠올리기 싫었다. 좁은 강의실 안이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아, 괜찮아. 입술 물어뜯어서 그런가 보다."
웃으면서 답을 했다. 은지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김재환과 눈이 마주쳤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왜 김재환 네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강의실에서 김재환과 마주친 날 다음부터는 난 김재환을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다. 이유를 묻는다면, 내가 김재환의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너와 내가 이별을 한 이유도 나의 잘못인데, 너의 얼굴을 당당히 볼 자신이 없었다. 네가 나를 더 미워할까 봐 겁이 났다. 다행히도 김재환과 겹친 강의는 그 날밖에 없었다. 하지만 좁은 캠퍼스 안에서 발을 조금만 뻗어도 들리는 게 너인데, 귀는 막을 수가 없어서 너의 지인도 만나는 걸 피했다. 이로써 나는 완전히 내 작은 세계 안에 갇힌 것 같았다. 내 세계는 이렇게까지 조그맣지는 않았는데, 너라는 중요한 핵심이 빠져나가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만큼 너는 내게 큰 의미였다는 뜻일 수도 있다. 텅 빈 세계는 쓸쓸했다.
소문은 자신이 원하지 않아도 듣게 될 때가 있다. 귀로 들리는 게 소문이고, 어쩔 땐 보이는 게 소문이다. 가령 그 소문의 주인공이 김재환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2학년 후배 중에 서세은이라는 애가 있는데, 걔가 김재환이 깨졌다는 소식을 듣고 따라다닌다던가,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근데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구여친의 특징인 걸까. 나는 너의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다. 딱히 소식을 듣지 않아도 잘 지내겠지, 라고 생각을 하고 너의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근데 그 소문이 김재환을 좋아하는 후배와 관련되어 있는 거라 걸리는 거라 믿고 싶었다. 아씨,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서세은에 대한 소문이 신경 쓰인다. 너어어어무 신경 쓰인다.
서세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은지가 찾아와 카페에 가자며 팔짱을 꼈다. 은지는 요즘 눈에 띄게 나에게 잘 해 주고 있다. 은지의 이런 배려와 관심이 싫다는 뜻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겐 은지의 그런 관심이 그저 좋다고 웃을 수만은 없는 관심이었다. 은지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어서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겐 타이밍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나 보다.
".이름아! 우, 우리 다른 쪽으로 갈까?"
"... 아니야. 이쪽으로 가자."
김재환과 서세은이 보였다. 소문은 괜히 퍼지는 게 아니라더니, 맞는 말 같다. 웃고 있는 김재환과 서세은을 보니 화는 커녕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괜한 오기가 생겨 돌아가자는 은지의 제안해도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돌아가지 않은 걸 나는 조금 후회한다. 거기까지는 예상 못 했는데, 굳이 듣고 싶지 않은 대화를 들었다.
"선배, 점심 같, 이 드실래...요?"
"아, 어. 그래."
"성이름! 빨리 가자 우리..."
저거 분명 나 들으라고 대놓고 대답한 거지? 김재환 존나 나빠. 바보가 아니고서야 저게 고의인 걸 어떻게 몰라. 너와 나는 분명 헤어졌고, 이제 우리 사이를 연결해 줄 수 있는 연결고리도 없는데, 그냥 서세은의 말에 대답을 하는 네가 미웠다. 너무 미워서 당장이라도 달려가 종아리라도 걷어차고 싶다. 이건 진심이다. 은지가 팔을 잡고 이끌었다. 방금 전까지는 김재환이 그리웠지만, 지금은 김재환이 미웠다. 은지의 팔에 이끌려 가는 와중에 나는 김재환을 잔뜩 째려봤다. 뒤라도 돌아봤으면 좋겠다. 한 번만 뒤돌아 봐줬으면 좋겠다. 유치한 걸 알지만... 지금은 네가 너무 미워서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짓이라도 하고 싶었다. 너는 끝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너의 뒤엔 나 홀로 서 있었다.
"야, 그냥 마셔! 내가 산다. 마셔 마셔."
야 은지야... 넌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리얼 대박 완전 헐 베스트한 친구인 것 가타...8ㅁ8 잔뜩 우울한 상태에서 카페 가서 놀다가 단골집인 닭발집을 찾았다. 원래 술을 잘 못 마시는 편인데, 기분이 우울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들이부었다. 은지는 내 투정에도 말없이 빈 소주잔을 채워줬다. 킁, 코를 훌쩍이며 은지에게 안기며 말했다. 은지야 나 김재환 필요 업서,,, 너만 있으면 대ㅜㅜㅜㅜ 은지는 내 말에 징그럽다며 몸을 움츠렸고 나는 장난스레 은지의 등을 한 대 때렸다. 아, 오랜만에 평화로운 것 같다. 김재환이랑 헤어지고 나서는 매일 매일이 어지러웠다. 김재환이 한 번 일렁이면 나에게는 파도가 휘몰아쳤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정신없이 휩쓸리고, 방금 전에도 어지럽게 뒤흔들려서 모든 것이 어지러웠다.
"나 화장실 다녀올게."
혼자 갈 수 있어? 응. 나 멀쩡해! 멀쩡하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꼬인 스텝이 내가 멀쩡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 앞으로도 난 널 잊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겠지. 나의 매일 매일이 지금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너와 내가 남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그 질문의 답은 아니, 였는데 어쩌면 나는 너를 잊고 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7년이라는 세월이 그저 추억으로 물거품이 돼 사라져버리는 걸까, 두려웠지만 이별 앞에 엉엉 울고 싶지만은 않았다. 이제 나는 너를 잊고, 네가 없는 일상을 멀쩡하게 살아갈 거다. 분명 너를 마주하기 전까찌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순간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에 따라 내 삶이 바뀔 수도 있고, 제자리에서 걸을 수도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운이 좋았던 적이 많다. 그러니까, 타이밍 좋았던 적이 많았다. 김재환에게 고백을 하고, 사귀게 된 것도 타이밍이 도와서 좋게 해결됐고, 시험을 봤을 때도 못 풀고 있던 수학 문제 하나를 종 치기 1분 전에 풀어 높은 점수를 맞은 적이 있었다. 나는 내가 '타이밍' 하나는 잘 지키고, 좋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폭풍전야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앞으로의 불행에 쓰일 타이밍은, 난 이미 다 써버린 걸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
김재환과 눈이 마주쳤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심장은 계속 한 칸씩 내려앉아, 결국은 가장 아래에 있는 깊고, 차가운 검정색 공간까지 닿은 것 같다. 김재환과 눈이 마주친 것 그렇다 쳐도, 왜 앞에 서세은이 상기된 얼굴로 앉아 있는 건데? 그리고 네 표정은 왜 나보다도 더 안 좋은 거야. 지금 울고 싶은 건 난데, 말이다.
너와 남이 될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내 답은 이렇다.
절대로 아니.
소낙비 |
안녕하세요!!!! 소낙입미다 소낙비할 때 소나기할 때 그 소낙이 맞습니다!!!!! 저 작가의 말 너무 써 보고 싶었어요 흑흑,,, 글잡에 글 올려야지 하고 생각은 2년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사실 많이 무서웠어요 글 못 써서 묻힐까 봐...8ㅁ8 그래두 인생은 한 방이니까 저질렀슴다!!!!! 저는 화끈하니까!!!1!! 그리구 진짜 별 거 없고 노잼 보스인 글 읽어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소중한 시간을 저 같은 거에다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미다... 제 뽀뽀 받고 가세여 츄♥ 어쨌든 그냥 한 번 저질러보자!! 하고 막 쓴 글인데 반응없으면 조용히 사라지겠슴다... (쭈굴) ♥댓글 다시고 소중한 포인트 다시 받아 가주세요! 언제나 감사합니다. 더 좋은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