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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하윽.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던 신음이 깨물리는 입술에 의해 삼켜졌다. 목구멍으로 비릿한 핏물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방아쇠를 붙잡고 있던 손에 땀이 차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먼지가 자욱한 저쪽에서 익숙한 엔진소리가 들렸다. 온다. 핏물이 머리칼과 엉겨붙어 눈조차 뜰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오른쪽 눈은 감다시피 하고, 왼쪽 시력에 의지한 채로 덜덜 떠는 손이 방아쇠를 당겼다. 오로지, 감에 의해서였다. 총구를 벗어난 총알이 바람 가르는 소리를 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나의 세계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렇게, 빛으로.
오전의 경찰서, 그 중에서도 강력계는 정말이지 한가했다. 서류들이 팔랑거리며 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내가 지금 조용한 도서관에 온 건지 강력반에 온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책상 위에 놓인 과자를 집어먹던 백현의 머리통을 누군가 후려쳤다. 이런 씨, 백현이 쌍소리를 내며 맞아서 아픈 머리를 연신 문질렀다.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준면이 온화한 미소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짜 몇번을 봐도 저건 적응이 안된다. 마치 신부님 같은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준면은 백현의 머리를 내려쳤음이 분명한 두꺼운 서류철을 백현의 책상 위로 올려놓았다.
" 새끼야, 좆나 한가하지? " 그래, 내가 이게 적응이 안된다고. 저렇게 하얗고ㅡ백현 자신도 하얀 편이었지만 이건 순전히 철저한 자기관리로 이뤄진 것이었다ㅡ무슨 웃는것도 좆나 신부님처럼 웃으면서. 백현이 투덜거렸다. 준면의 피부는 진짜 미스테리었는데, 얼굴에 대체 뭘 바르냐는 질문에 준면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스킨로션. 왜? 하고 대답한 뒤로 백현은 저게 진정 타고난 거구나. 하고 입을 다물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생각에 빠져 있는 백현을 무릎으로 툭툭 친 준면이 서류나 정리해. 하고는 뒤돌아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시발 시발진짜. 입이 댓발 나온 백현이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준면은 그런 백현을 힐끗 흘겨보곤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 " 오세훈 빨리 안쳐나오냐? " " 아 나간다고! " 개그콘서트의 서태훈을 따라하듯 오~늘은 학교 안~늦을거라고! 라는 드립을 쳤다가 종인에게 뒷통수를 시원하게 까인 세훈이 흐트러진 연한 갈색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눈을 흘겼다. 그러니까 왜 늦게 나오냐고. 종인이 저는 잘못이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몇번 터치했다. 표정이 좀 썩어들어가는 것 같다, 싶어 세훈이 종인의 눈치를 힐끗 보자 종인은 홀드키를 누르자마자 세훈의 어깨에 손을 감고 무작정 그를 밀치기 시작했다. " 아 씨발 늦었다고!! 뛰어 병신아!! " 그래서 이 둘은 오늘도 간당간당하게 교문 통과. 선도를 서고 있던 경수가 그런 둘을 보곤 기가 찬다는 듯이 웃었다. 오늘도야? 눈빛만으로 물어오는 경수의 시선을 우물우물 피한 종인과는 달리 세훈은 해맑게 웃으며 선배 안적을거죠? 아이, 사랑해요~ 따위의 애교를 날려댔다. 경수가 슬쩍 입꼬리를 올리더니 저보다 훨씬 큰 청년티가 나는 교복소년 둘을 올려다봤다. 올라가 빨리. 늦겠다야. " 선배 사랑해요!! " " 아 좀! " 고개만 까닥하곤 뒷목을 만지며 사라져가는 종인과는 달리 세훈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하트를 그리며 윙크를 해대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친놈이 진짜. 종인이 세훈을 거칠게 끌어당기며 교실로 향했다. 쪽팔리게 뭔짓이야, 왜 넌 내가 경수선배한테 애교부릴때만 그러냐? 세훈이 종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고 종인은 그 눈빛을 애써 무시하면서 ㅁ,뭐 미친놈아. 교실로 들어가기나 해. 라며 앞장섰다. 눈을 가늘게 뜬 세훈이 종인의 뒷태를 위아래로 훑었다. " 아, 같이가아~ " 종인의 투덜대는 소리와 세훈의 이죽대는 높은 톤의 목소리를 뒤로 교실문이 닫겼다. 혈기왕성한 딱 그나이대 고등학생들의 와글거리는 소리는 복도로까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가는 단정한 구둣발 소리에 언제 떠들었냐는듯 금방 조용해진 교실문을 쳐다보며 흐뭇하게 미소지은 남자가 문을 열었다.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교탁에까지 다다른 남자가 출석부로 교탁을 두드렸다. 조용. " 뭐 특별한 전달사항은 없고, 요즘 근처에서 삥 뜯기는 애들 많으니까 조심하라더라. " " 헐 쌤. 그렇게 위험한데 학교를 어떻게 와요? " " 오세훈, 난 니가 삥을 뜯을까봐 걱정된다. 머리 염색 안풀지? " " 아.. 쌤... " 꼴 좋다. 입매만 늘여서 웃던 종인의 정강이를 걷어찬 세훈이 애꿎은 데 화풀이를 했다. 그런 둘을 쳐다보며 귀엽다는 듯이 웃던 남자는 그럼 조례는 이걸로 마친다. 좋은말로 할 때 염색 풀어라 오세훈. 하더니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교실을 나섰다. 아ㅡ 왜 차는데! 하는 종인의 목소리르 들으며 쿡쿡거리고 웃은 남자는 시계를 힐끗 보더니 이크, 늦었네. 하며 학생들의 인사를 죄 받더니 꽃미소를 흩뿌리며 복도리를 지나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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