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너, 평범하지 않은 나
글, 잎련
"아 담배 피지 말라니까.."
오늘따라 바 수입이 좋아 상쾌한 기분으로 작업을 하러 왔는데, 어두운 색의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담배냄새에 인상을 확 썼다. 황민현은 말 제대로 전달한 거 맞아? 각기 취향 반영된 수트를 입은 남자들이 여럿 서있고 그 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여진 검은 쇼파로 다가가며 속으로 황민현을 열심히 씹었다. 황민현네 애들이 나에게 작게 고개숙여 인사했고 나는 대충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예쁜 언니."
"삼촌. 걸걸한 목소리로 그런 말 하는거 토나와요."
"진짜 당돌해서 좋아. 우리 쪽으로 넘어오면 안돼?"
"담배 피지 말라는 말도 안 들어주는데 내가 뭘 믿고?"
삼촌.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말을 튼 남자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실제로 나에게 삼촌뻘 나이인 남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아저씨라 부르기엔 너무 정없어서. 내가 볼 땐 그냥 싸가지없게 말대답하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이 삼촌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호탕한 웃음을 터트린다. 아마 실력이 받쳐줘야 받아주는 싸가지인듯 싶다.
"알았어, 끈다 꺼."
"이제 좀 볼게요."
본격적으로 보겠다는 내 말에 웃고있던 삼촌도 진지한 표정을 짓고, 가운데 서 있던 남자가 검은 장갑을 낀 손으로 테이블 위에 오늘의 물건을 올려놓는다. 나도 챙겨온 장갑을 양손에 끼고 나서야 물건을 만졌다. 조심스럽게. 잘못 만졌다간, 저렇게 호탕하게 웃는 삼촌이라도 두 손목 날려버리기 쉬운 일이라.
다행스럽게도, 오늘 거래될 물건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없었다. 전에 한 번 진품을 봐서 그런가. 짧은 시간 안에 물건을 살펴본 내가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진짜네요, 하고 입을 열자 삼촌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렇지, 역시 잘 보긴 잘 봐. 하며.
"삼촌 다음부터 담배 피고 있으면 들어오자마자 나갈거에요 나."
"오냐 알았다고."
장갑을 벗은 손으로 휘휘 손을 흔들어보이고 검은 쇼파에서 일어나 슬슬 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왔다. 방금 내가 한 일은 황민현네 조직과 저 삼촌의 조직이 거래할 물건의 진품과 가품을 가려내는 일이다. 몇 번의 사례로 나름 신뢰를 얻어 황민현에게 자주 부탁을 받곤 한다. 아, 강단이한테 여기 온 거 들키면 또 뭐라고 할텐데.
"이름아!"
작업을 끝내니 해가 거의 다 넘어갈 무렵이다. 몸 사이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라이더 자켓 하나만 입고 다니기엔 추운가 하는 생각을 하던 와중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황민현이다. 날씨가 꽤 쌀쌀하긴 한 것인지 황민현의 코 끝과 귀 끝이 빨갛다.
"잘 했어 오늘?"
"잘 했는데, 너 내말 잘 전한 거 맞아?"
"왜? 형이 또 담배 피웠어?"
"어. 하여간 독한 것만 피워."
황민현은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형이라고 부른다. 우호적인 관계라서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꽤나 가까워 보이는 호칭이다. 내가 인상을 쓰며 오늘도 어김없이 맡았던 담배냄새에 대해 투덜거리자 미안미안, 하며 사람좋은 웃음을 짓는다. 딱히 할말이 없어 동생이나 보러 갈까 하고 핸드폰을 켜는데, 여전히 옆에 서있던 황민현이 데려다줄까? 한다.
"니 시커먼 동생들 안 달고 가면."
"애들은 너 보호해주려고 하는건데?"
"생각 좀 해봐. 새까만 차가 줄줄이 이어서 지나가면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황민현은 내 말을 듣고도 그게 무슨 상관이지..? 하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그래, 얘는 그런 시선이 당연한 사람이었지. 나는 됐다 됐어, 하고 먼저 걸음을 뗐다. 굳이굳이 이해시키기는 귀찮았다. 내 부탁이라면 별다른 이유 없어도 들어주니까 별로 상관은 없었다.
"..누나?"
아, 망했다.
강단이도 황민현네 동생들 중 한명이라는 걸 잠시 망각했었다. 강아지를 닮은 순한 인상이지만 안 웃으면 겁나 무서운 그 얼굴로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좀 멀찍이서 강단이를 보자마자 놀라 뒤돌았는데 그 짧은 찰나에 나를 용케 발견하고서 부른다. 뒤 돌은 상태에서 황민현에게 눈으로 욕을 퍼붓자, 나만큼 당황한 황민현이 자기가 부른 게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여기 왜 있어? 설마 또 그 일했어?"
또 시작이다. 잔소리 폭탄. 겨우 고친 부산 사투리가 막무가내로 튀어나온다. 나이 먹을만큼 먹고서 동생한테 혼나는 누나라니. 하지만 약속한 걸 어겼으니 한 소리 들을 만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마음만 먹으면 지역을 움직일 수 있는 거대 조직들의 중간에서 거래의 유무를 판단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큰 중요성이 따르는 만큼 큰 위험에 노출되기도 쉽다. 내가 뱉는 한마디로 모든 게 뒤바뀌어 버리기도 하니까. 그 속에 속해있는 다니엘은 나에게 닥쳐올 지도 모르는 위험이 얼마나 큰지 매일 몸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나를 말렸다.
"황민현이 시켰ㅇ.."
"형도!"
"어..어?"
"형님도 그러면 안 되죠! 저랑 약속 했지 않습니까!"
"어..어 형이 미안."
나에게 잔소리를 퍼붓던 강단이가 옆에 머쓱하게 서있던 황민현에게도 버럭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 주위에 있던 황민현 동생들이 오히려 놀라 흠칫한다. 동생들 중 황민현에게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강단이가 반말을 하고 큰소리를 낼 때마다 자기들이 더 불안해한다. 덩치는 다 커다란 애들이 그러고 있는 걸 보니 뭔가 귀여워 혼자 큭큭 웃는데, 누나. 하는 강단이의 목소리에 얼른 정색하며 표정관리를 했다.
한참을 강단이에게 혼나고 나서야 나는 황민현의 차를 타고 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 옆자리에서 운전하고 있는 황민현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보였다. 노래까지 흥얼거리길래 조용히 하라고 하려다, 듣기에 나쁘지는 않아서 그냥 내버려뒀다. 바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쯤, 성운오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 별 문제 없어?] 성운오빠는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바 매니저다. 금방 답이 왔고, 나는 근처 카페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야. 나 카페에서 세워줘."
"왜?"
"진상 있대. 바에."
"나도 같이 갈까?"
혼자 있을 거야. 단호한 내 말에도 듣는둥 마는둥이다. 결국 내릴 때 한번 더 신신당부 했다. 따라 내리지 마라. 알았다는 황민현을 의심쩍게 바라보다 차에서 내려 바 근처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자주 오던 곳이라 내 얼굴을 금방 알아본 알바생이 같은 걸로 드려요? 하고 알아서 묻는다. 덕분에 나는 곧장 구석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님이 별로 없던 터라 금세 커피가 나왔고 언제쯤 들어가야 하나 싶어 다시 성운오빠에게 카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
열심히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던 내 앞자리는 분명히 비어있었는데,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 보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간 내가 이 사람이랑 같이 들어왔던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눈이 마주치자 한다는 소리가, 안녕하세요. 란다. 싱긋 웃어보이기까지 한다. 처음 보는 남자의 태연한 태도에 내가 최대한 놀라지 않은 척 아직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저기 앞에 바 사장님이시죠?"
"..네."
"아, 스토커 그런 거 아니에요. 단골이어서 알아요."
"..."
"옹성우라고 합니다."
단골 중에 저런 사람이 있었던가. 저정도 얼굴이면 내가 기억할 만도 한데. 아니,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걸까 이 사람은. 딱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서 그냥 멀뚱히 쳐다만 보았다. 아, 설마 이거 그건가. 작업?
"애인 있으세요?"
"..."
"이름아, 너 지갑 두고 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내 앞의 이 남자가 나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걸 인식하던 중이었고, 황민현은 그 타이밍에 불쑥 카페로 들어와 나를 불렀고, 낯선 남자와 앉아있는 나를 보고서 멈칫했다. 낯선 남자와 황민현의 눈이 마주쳤고,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눈빛들이 오갔다. 그 시선을 먼저 끊어낸 건 황민현이었다. 나에게 걸어와 지갑을 건네준 황민현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혹시 남자친구..?"
약간은 실망한 듯 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 옹성우라는 남자는, 내 대답을 듣고서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황민현은 표정이 조금 굳어지며 시선을 떨구었다. 둘의 반응은 내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으니까.
"전남친이요."
우리 셋을 감싸는 공기가 심상치 않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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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이번 작품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새롭게 다시 달립시다!
암호닉 신청은 [요 괄호 안에] 해주세요!
(암호닉 ㅇㅇ로 신청합니다 하는 한줄 댓글은 반영하지 않을게요!)
오늘도 고마워요 ❣